<어리석은 사기꾼>
  
  도대체 그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괜찮은 환경 속에서 자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부자집 딸과 결혼 후 미국으로 가서 살았다. 무역업을 하는 그는 한국의 수출업자에게서 의류들을 받아 미국 전역에 파는 일을 했다. 그런 그가 물품 대금을 미루었다고 서울에 온 길에 잡혀서 구속 기소된 것이다. 변호사인 내가 구치소에서 그를 만날 때마다 그는 보고 있던 영어판 포켓북을 옆에 놓고 있었다. 그 안에서도 잠시라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열정을 다해서 그의 무죄를 주장했다. 사기죄가 되려면 상대방을 속이려는 고의가 있어야 했다. 검사는 대금 지급이 지체된 것만으로 그의 악마적 내면을 추정하는 것 같았다. 재판의 끝 무렵 그를 고소했던 수출업자가 증인으로 법정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업계에서는 ‘징검다리 사기’라는 게 있어요. 수출대금을 줬다가 안 줬다가 또 일부 줬다가 하면서 돈을 떼먹는 거죠. 사기로 안 걸리려고 지능적으로 하는 겁니다.”
  
  재판부는 피해자인 수출업자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래도 나는 계속 그가 무죄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오후였다. 감옥에서 징역을 다 살고 나온 그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예전에 보던 것 같이 착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에게 소파를 권하고 마주앉았다.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만기 출소를 했는데 미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지금 누나집에 묵으면서 신세지고 있어요. 그냥 공짜밥 얻어먹기는 미안하고 그래서 정수기 세일즈로 나섰습니다. 변호사님이 한 대만 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를 무죄로 해주지 못한 마음의 빚도 있고 해서 얼른 승낙을 하고 그중 가장 비싼 걸 골랐다.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하는데 그가 뭔지 모르게 내 눈치를 살피는 느낌이었다. 잠시 후 그가 힘들게 이런 말을 꺼내는 것 같았다.
  
  “변호사님 사실 제가 오피스텔이라도 하나 얻어서 누나한테서 독립을 해야 하는데 당장 돈이 급한 형편입니다. 저한테 아직 지급 기일이 도래하지 않은 미국 수표가 있습니다. 이 미국 수표를 받으시고 돈을 돌려주실 수 없을까요? 지급 기일에 은행에 넣으시면 바로 교환이 되는 틀림없는 수표입니다.”
  
  나는 당장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표가 문제가 생기면 형사 범죄가 될 수도 있다. 감옥에 갈 위험성을, 사업을 하던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또 지급 기일까지의 이자를 치면 몇 푼 안됐다. 힘든 상황에 있는 그를 도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나는 그에게 수표의 액면금만큼의 돈을 은행에서 찾아주었다. 그 며칠 후 은행에 갔다온 여직원이 내게 말했다.
  
  “그 미국 수표 지급 정지된 거라고 은행 직원이 말해주네요.”
  
  순간 나는 그가 내 눈치를 보며 짓던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처음부터 알고 내게 사기를 친 것이었다. 그는 사기범이 맞았다. 전에 내가 그에게 속아서 열심히 무죄를 주장했던 것이다. 그의 무죄를 선고받지 못해 찜찜했던 마음이 증발해 버렸다. 나는 그를 멍청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를 사기죄로 고소하면 그는 빠져나가기 힘들 것 같았다. 엉터리 수표와 이미 사기전과로 복역을 한 범죄 전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걸 생각하지 않고 나를 속인 것일까. 어쩌면 내가 고소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수 높은 계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그를 고소하지 않았다. 선임료를 돌려준 공짜 변호로 치고 마음을 접었다.
  
  나에게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고교 동기가 찾아와 사흘 후에 갚겠다고 돈을 빌려간 후 삼십 년이 지나도 얼굴 한번 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내게 돈을 꿔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충 갚을 의사가 없는 것 같았다. 한 달에 한 번 법조 선배들 몇 명이 모여 밥을 먹는 자리에서였다. 법관 생활을 삼십 년이 넘게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경험한 사기꾼들은 대개 중키에 말끔한 얼굴을 가졌어. 하얀 얼굴에 짙은 눈썹을 가진 미남 스타일이 많았지. 말도 사근사근하고 아주 논리적이야. 법대(法臺)에 앉아 처음에 그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헷갈리는 거야. 그러다가 점차 시간이 가면서 사기꾼이라는 걸 알게 되지.”
  
  그 사기꾼은 아는 사람의 동생이었다. 동생이 사기친 걸 알면 미안해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몰래 봐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