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 지내오면서 그때 정말 화가 났었다. 사건을 맡아 처리하면서 공감하고 마음을 다 써주었다. 승소도 했다. 그런데도 마지막에 내게 독화살이 날아왔다. 내가 상대방에게 매수되어 불리한 변론을 했다면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나는 배신감과 분노를 자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법관 생활을 했던 선배를 변호사로 선임했다. 내가 그에게 바란 건 딱 하나였다. 법정에서 “엄 변호사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해주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점이 있다면 사건을 맡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니까 내 바람과는 전혀 달랐다. 로펌의 대표인 그 선배는 부하 변호사에게 글을 쓰게 했다. 그 글은 삭막했다. 종이를 씹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랜 법관생활을 한 선배는 법정에 가서 얼굴을 비춘 걸 나에 대한 특혜같이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전관예우로 봐달라는 청탁를 부탁하지 않았다. 내 억울함을 글로 쓰고 당당하게 법정에서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선배인 로펌의 대표는 내게 똥 한 번 밟은 것으로 생각하고 참으라고 했다. 그럴 거면 그를 선임할 이유도 없었다. 나중에 그는 선임료 청구서를 보내왔다. 나는 분노했다. 사람이 아니라 마네킹을 법정에 대신 세워놓은 것 같았다. 마지막에 내가 직접 글을 써서 법원에 제출했다.
  
  오랫동안 판사 생활을 하고 사법연수원장을 지냈던 분을 만났다. ‘도가니’라는 영화가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고 있을 때였다. 장애자들이 남이 보지 않는데서 엄청나게 고통받고 성폭행까지 당하는 사실을 고발한 영화였다. 법원이 가해자들을 풀어준 데 대해 여론이 들끓었다. 그에 대해 그가 판사의 입장에서 말했다.
  
  “영화 도가니를 판사가 직접 봤다면 엄한 실형이 떨어졌을 거에요. 그런데 현실에서 판사들이 보는 건 무미건조한 기록이거든. 이삼 주 정도의 상해진단서가 있었을 것이고 합의서가 제출됐을 거에요. 그러면 집행유예를 하는 거지. 기록 안에는 피냄새도 어떤 한 서린 외침도 없어요. 판사가 기록에 없는 그걸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가 말을 잠시 끊었다가 계속했다.
  
  “지나가다가 깡패들이 싸우는 걸 봤어요. 피가 터지고 유리창이 깨지고 무시무시했죠. 그런데 법대에 앉아서 공소장을 보면 별 거 아니에요. 몇줄로 정리된 폭력행위죠. 그 잔혹성을 전혀 실감나게 묘사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 죽은 문장 속에서는 현장이 나와 있지 않아요. 판사는 판결문에 그런 검사의 공소장을 글자 한 자 안 틀리게 그대로 인용하죠.”
  
  그렇게 말하면서 그가 한 마디 덧붙였다.
  
  “판사도 당사자들을 납득시키려면 판결문에 법률 이외에 살아있는 문장을 자유롭게 가미해야 한다고 봐요. 이미 그런 판결들이 있잖아요? 박철 판사가 엄동설한에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는 게 과연 법이겠느냐 하는 문장을 쓴 판결도 있고 또 권성 판사가 전두환 노태우를 재판하면서 고사를 인용한 부분도 있구요. 그런 게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해요. 그렇다고 그런 판결들이 법원의 기존 틀을 벗어난 건 아니죠. 좀 더 자유로워진 거죠.”
  
  변호사가 된 후 수많은 법률 서류들을 보았다. 백년 전 일제강점기부터 내려오는 정해진 문틀이 있었고 어떤 사건이든 그게 거푸집이 되어 정리되고 있었다. 판결문도 보면 백년 전 일본 판사가 쓴 내용이나 지금이나 거의 유사한 것들도 많았다.
  
  변호사는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과 곡절을 듣고 공감해야 하는 직업이다. 변호사가 쓰는 글의 행간에서는 피냄새와 탄식소리 그리고 울음이 들려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 한 유명 가수와 기획사간의 소송대리를 맡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가수가 받은 온갖 학대와 수모 그리고 노예계약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적어 법원에 제출했다. 법정에서 기획사를 대리하는 상대방 변호사가 화를 내면서 나를 꾸짖었다.
  
  “변호사는 법과 논리만 쓰면 되는 거지 이게 뭡니까? 이따위로 쓰지 마세요.”
  그는 법원장 출신이었다. 나의 글이 그의 고정관념을 벗어난 모양이다.
  
  “변호사가 어떤 글을 쓰든지 자유 아닌가요? 나는 내 의뢰인의 눈물과 한탄도 적고 싶어서 그랬어요.”
  “그래도 그렇게 쓰지 말란 말이요”
  상대 변호사가 엄한 어조로 나를 꾸짖었다.
  
  “잠깐만요”
  재판장이 나서서 상대편 변호사를 보며 말했다.
  
  “이 재판을 진행하는 건 재판장인 저 아닌가요? 그리고 문제점이 있으면 지적하는 권한도 저에게 있는 거 아닌가요?”
  
  상대방 변호사는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가만히 있었다. 순간 그가 법원장인 것으로 착각했던 것 같기도 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듯 내가 그 소송에서 이겼다. 증거도 거의 없었고 저작권에 관한 전문지식도 약했다. 의뢰인인 가수측의 실수도 있었다. 왜 이겼을까?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 변호사의 글에는 형식논리가 아니라 진실과 감정이 솔직하게 들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