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읽으셨겠지만, 오늘 조선일보에 박상현 기자의 명칼럼이 있다 제목은 “적은 비는 하늘 탓, 물 부족은 정치 탓”이다 농민은 저렇게 말했는데 지자체장은 가뭄이 심하자 “극심한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박 기자의 말을 빌리자면 지자체장이 기후변화 뒤에 숨어 버린 것이다
  
  저 농민의 말도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물 부족은 정치 탓”이 아니라 문재인 탓이었다 문재인을 필두로 해서 그의 하수인과 환경론자가 얼싸 얼싸 해서 보(洑)를 부수고 수문을 열어 물을 내다 버린 탓이었지 않은가. 또 저 칼럼의 표현을 빌리자면 농민은 메마른 양파밭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보 수문만 닫으면 되는 일”이라 말했다
  
  지난 한때 정치인이나 지식인이란 자들이 국민을 이렇게 속여 먹었다 충격적이거나 비극적인 사건이 터지면 한결같이 “사회 탓이다” 고 말했다 책임의 범위를 넓혀서 아무도 책임 안 지려고 있지도 않은 사회책임론을 창작한 것이다 여기서 조갑제 선생의 문장을 통해 배운 대처 수상의 말이 생각난다 “사회가 누구예요? 사회? 그런 건 없습니다! 개인으로서의 남자와 여자가 있고, 가족들이 있는 것뿐입니다.”
  
  마찬가지로 호남의 물 부족은 보를 부수고 수문을 연 사람의 탓이 99.9%인데 어째서 정치인 모두를 싸잡아 “정치 탓”이라 하는가. 머리띠를 두르고 수문 여는 것에 반대한 정치인에게도 책임을 지우면 그들이 억울하지 않겠나. 열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고 법언은 가르치고 있다
  
  
  추측건대, 농민은 사실대로 문재인 탓이라 말했을 것인데 기자가 차마 그렇게 받아 쓰지 못해서 정치 탓이라 에둘러 썼을 것이다 이러므로 해서 전직 대통령은 책임을 안 져도 되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정치에 독버섯이 자라나게 되고,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게 되고, 정치는 더욱 거칠어지게 된다 민주당과 그 당류(黨類)들은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행동철학을 갖고 덤비는데 이쪽은 공자왈 맹자왈하고 앉은 격이다
  
  여기서 문장 특히 주의(奏議 임금에게 올리는 의견서) 쓰기에 능한 육지(陸贄)의 가르침 두 개를 옮긴다 하나는 저 명칼럼을 위해서 하나는 정치인을 위해서.
  
  “사실 여부를 논할 때는 정곡을 찔러서 말하되 표현은 부드럽게 하라”
  
  “사람이 하는 일이 이치에 맞는데 천명이 혼란을 내리는 경우는 아직 없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 혼란스러운데 천명이 평안을 내리는 경우 역시 아직 없었다.(人事理而天命降亂者 未之有也 人事亂而天命降康者 亦未之有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