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언어 질서가 이래 가지고서야>
  
  오래 전에 어떤 경기단체의 운영 책임을 맡아 본 적이 있었다. 경남도 단위의 코치를 서너 명 정하고서 이력서를 갖고 오라고 했더니 한 녀석이 자기의 직업란에 준공무원이라 써놓았었다. 임시직 공무원이란 말은 들어봤지만 준공무원이란 용어는 처음 보았다. 그래서 그놈을 불러서 “야. 이놈아. 너가 너 자신을 소개하는데도 충실하지 못하면 어떻게 남을 가르칠래”하고 가르친 적이 있었다.
  
  어떤 이가 스스로를 일러 '준공인'이라 말한 모양이다. 아마 準公人의 뜻으로 말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녘에 준공인이란 말이 새로 생겼나 싶어서 사전을 찾아보니 그런 용어는 없다. 내친 김에 공인을 찾아보았더니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돼 있다.
  
  뜻풀이상으로는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가 공인이겠지만, 공인이란 말에는 존경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리고 긍정적 용어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를 공인이라 소개하면 정인군자는 “나 같은 게 무슨 공인입니까?”이렇게 겸양의 미덕을 보인다. 그래서 더욱 공인다운 것이다.
  
  만약에 공무원이 남부끄러운 짓을 했다고 치자. 그러면 불문곡직 “저게 무슨 공무원이냐”는 말부터 하는 사람이 열에 여덟 아홉이다. 다만 직업을 이르는 용어인 '공무원'이란 말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도덕규범과 강제규범이 들어있는 것이다. 하물며 공인은 공무원보다 더 예사롭지 않은 말인데 더 말해 무얼 하겠나.
  
  타인이 자기를 준공인이라고 말해 주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먼저 나는 준공인이다 이렇게 말하면 남들이 어떻다 여기겠는가. 그래서 더욱 준공인이 될 품성이 없어 보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