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든 것을 보면 누구나가 시인이 될 것이다. 좋으면 싫은 것도 있는 법이라 은행 열매가 열리고 또 떨어지면 그 아래를 걷기가 싫어진다. 밟으면 기분이 안 좋아 열매를 피해 이러저리 비켜 걷기도 하지만 종내는 밟고 만다. 밟은 것을 떨쳐내려 구둣발을 땅바닥에 문대는 일 또한 기분 나쁘다.
  
  《서울 ‘은행’들이 다 털렸다》라는 기사 제목이 며칠째 조선일보에 실려 있었다. 가로수로 심은 은행나무에서 떨어지는 은행 열매를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시청이 그물망을 쳐놓고 은행 열매를 털어내는 작업을 한다는 기사이다.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교체한 것 자체가 근시안적인 행정이었는데 이를 꼬집는 대목은 없다.
  
  기사에서도 소개하고 있지만, 이전의 가로수는 거의 버짐나무 곧 플라타나스였다. 지금도 그 시절의 사람들은 플라타나스라는 말만 들어도 묘한 감상에 빠지게 된다. 그 서정성 많던 플라타나스를 싹 베어 없애고 은행나무로 교체했었다. 이 일로써 시청 직원은 시민들에게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었다. 가로수인 은행나무에 은행 열매가 달리고 익을 때쯤 아지매들이 열매를 따가서 삶아도 먹고 볶아도 먹었다. 이때 시청 직원이 열매를 따지도 줍지도 못하게 단속하면서 과태료를 물리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은행 열매를 따 가지 않게 되었다. 이젠 은행 열매가 땅에 떨어져 밟히기도 하고 더러운 냄새를 풍기기도 하여 여름부터 은행나무 가로수 밑을 걷기가 싫어진다. 가로수라기보다 천덕꾸러기가 된 것이다. 아지매들이 은행 열매를 따갈 때 시청 직원이 위압적이지 않았다면 열매를 따거나 주워가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어서 은행나무가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아도 되었고, 세금을 들여 열매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막지 않아도 되었다. 근시안적 행정이 세금을 이중 삼중으로 허비하게 만든 것이다.
  
  서을시청이 은행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게 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쓰고 또 열매가 안 열리는 숫나무로 교체하기도 하려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손쉬운 방법이 있다. 일정 거리(정확한 거리가 몇m 인지는 잊었음) 이내에 숫나무가 없으면 암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그러니 암나무를 숫나무로 교체하기보다 근처에 있는 숫나무 하나를 제거하는 게 비용과 수고를 덜게 할 것이다.
  
  가로수가 꼭 은행나무여야 할 이유도 없다. 그래도 은행나무를 고집하는 모습인데 이 또한 피해야 할 고정관념이 아닐 수 없다. 은행나무를 뽑고 느티나무로 교체한 구청도 있다니 더욱 그러하다. 1980년대에 기히 있던 플라타나스를 은행나무로 교체한 가장 큰 이유는 은행나무가 병충해에 강하고 공기 정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개발시대가 아니므로 공기 정화 능력을 따질 필요가 없다. 또 한갓 은행나무가 공기를 정화하면 얼마나 하겠는가.
  
  1980년대엔 마산 앞바다가 똥물이었고 물 색깔은 콜라빛이었다. 지금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푸른 바다가 되었다 가로수가 공기 정화 능력이 없어도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공기 정화 능력과 병충해가 가로수의 필요조건일 필요는 없게 되었는데도 관리가 굳이 은행나무를 고집한다면 반국가적이라 하겠다.
  
  마산 시청도 아름답고 우람했던 플라타나스 가로수를 하루아침에 싹 베어내고 손가락처럼 허약하고 작은 은행나무로 교체했었다. 어린 나무가 커져 열매를 맺자 천더기가 되었고, 시민은 그 가로수 밑을 걸을 땐 똥을 피해 걷듯 한다. 플라타나스는 천더기도 아니었지만 베어내었다. 은행나무는 천더기인데도 베어내기를 망설인다. 누구를 위한 망설임인가?
  
  아래는 플라타너스가 가로수이던 시절에 모르는 사람이 없던 유명한 시인데 요사이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모양이다
  
  플라타너스 / 김현승(金顯承)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오를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