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이런 기쁜 날도 오는구나 생각이 든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탈북자 전원수용 방침을 명시하고
  이제는 '북한이탈주민의 날'도 제정한다고 하니 말이다.
  너무나 당연한 입장이고 원칙인 것 같지만 30년 전부터 그렇지 않았다.
  중국, 북한 감옥 거치고 세 개 나라 국경을 넘어, 간난신고와
  사선 끝에 모스크바 한국 대사관에 찾아 갔을 때이다(1992.7.6)
  먼저 공관에 들어선 벌목 및 건설 탈북인 3명이 있었는데
  "안 나가면 경찰을 부르겠어!" 하며 내쫓고 있었다.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김 부자 체제 안정을 보장해주는 대가로
  핵 개발을 포기토록 하려는 정책 하에 아래 일꾼들의 행정 집행이었다.
  이때는 노태우 보수 정권이었다.
  문민 정권이 들어서서도 마찬가지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솔직하게 "북한 당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란 답으로 증명된다(1994.7.6).
  하지만 윤석열 정권에 들어서서 뭔가 다른 것이 느껴진다.
  30여 년 동안 북한에 하도 당해서 그래서일까.
  아니면 정말 인권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일까.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어느 날로 제정하면 좋을까.
  제정 날은 역사적이기도 하고 그 의미도 뜻 깊어야 할 것이다.
  남북 회담의 산 증인이신 이동복 전 의원님은
  1945년 11 23일 신의주 반공 학생의거 날을 추천하신다.
  역사성과 그 뜻깊은 날임에 공감하지만 너무 먼 느낌이 든다.
  넓은 의미에서 탈북자는 맞지만 6·25 전쟁과 그 이전에 오신 분들은
  실향민, 정전 후에는 귀순자, 귀순용사로 불려졌다.
  
  사실 탈북자란 명칭이 개념으로 대두된 것은 1994년 월간조선 4월호부터이다. 탈북자로 불려지기 시작한 동기는 북한문제에 관심 높은 월간조선(조갑제)이 파견한 황성준 기자와 필자와의 모스크바 인터뷰에서이다. 인터뷰 시작부터 명칭 문제에 대해 충돌이 있었다. 환영은 고사하고 제대로 받지도 않으면서 '귀순용사'라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또 '귀순'은 전쟁시의 용어이며 또 어미도 <귀신>같다는 뉘앙스가 풍기어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럼 어떻게 불렀으면 좋을까요라는 황 기자의 질문에 북한을 탈출하였으니 '탈북자'로 하면 될 것이 아니냐고 하니 그게 참 좋겠다고 하여 정해진 것이다.
  
  이때 정해진 '탈북자'는 명칭으로뿐 아니라 뜻 깊은 의미도 함께하고 있다.
  이 기사는 특종으로 국내외에 크게 이슈화되었는데
  이는 탈북자를 유엔을 통해 보호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필자가 탈북자로서 첫 유엔 난민증(UNHCR)을 받았는 바 이날은 1994년 9월12일이다.
  정부도 탈북자를 유엔(UNHCR)를 통해 받아들이는 정책으로 정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비롯해서 일체 탈북자들은
  UNHCR 난민 등록 절차를 통해 남한에 받아들이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때부터(1994년)를 북한 인권 운동의 시작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깊고 깊은 의미를 잘 알아 전 서울시장, 북한구원운동 대표였던 김상철 변호사는
  '탈북난민보호 유엔 청원 1천만 서명운동'을 전개하여
  2001년 5월15일 유엔 본부에 서명지를 전달하기도 하였다.
  
  '귀순자' 대신 탈북자로 광범위하게 쓰여지고 있지만 책상머리 정부에서는
  그 어떤 대중과의 논의도 없이 '북한이탈주민'으로 법제화하여 지금껏 유지하고 있다.
  
  탈북자란 명칭은 한 차례 환란을 당한다. 2003년 노무현 친북 정권 때 김정일이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새터민'으로 개칭한다. 이전 정권과 다른 것은 공청회를 거치는 민주적 절차였다. 이 공청회에 주요 토론자로 참여하게 된 필자는 '새터민'보다는 '탈북동포'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으로 가장 표를 많이 받았었다. '미주 교포', '재일 동포'라는 통용적인 흐름에 '탈북동포'가 좋겠다고 대부분 호응한 것이다. 하지만 통일부는 <새터민>으로 밀어붙여 발표하였다.
  
  그럼에도 요즘은 '탈북민'으로 많이 불려지고 있는 것 같다.
  '탈북자'는 범죄자 뉘앙스가 풍긴다는 탈북 사회의 반영이다.
  '탈북민'은 좋기는 한데 포괄적인 명칭이 못 되는 약점도 있다.
  황장엽과 같은 고위급 탈북자도 탈북민으로 부르는 것은 어색한 것이다.
  황장엽 선생도 김정일이 싫어하는 탈북자로 부르는 것이 뭐가 나쁜가고 하면서
  단체명도 '탈북자 동지회' 그대로 유지시켰다.
  그럼에도 열등감이 농후한 탈북 사회의 반영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
  '탈북자'가 범죄 의미가 풍기니 '탈북민'으로 하자고 하는데
  필자 생각에는 '탈북인'으로 하면 포괄적이어서 손색이 없을 것이라 본다.
  '탈북 동포'도 정감이 있어 여전히 좋다고 본다.
  단지 석 자로 명칭을 지어야 부르기 좋다는 원칙에는 어긋나지만
  정부가 법제화한 '북한이탈주민'보다는 훨씬 선생이라고 본다.
  
  기타 좋은 명칭과 뜻 깊은 의미의 날은 많다. 최초의 자율적인 탈북단체로서 탈북자의 인권과 권익을 위해 투쟁을 하여 쟁취를 한 1998년 12월13일 '자유북한인협회' 창립일이다. 이 투쟁을 통하여 입국 후 조사 과정 80% 폭언 폭행당하던 것을 금지, 남한인과 동등한 여권 발급과 언론, 결사의 자유보장, 조사 위주가 아니라 정착 위주의 하나원 체계 도입 등이 보장된 것이다.
  
  이때 자유를 찾아온 북한인이란 준말로 '자유북한인'이라고 하였다. 이는 최근 김국성 탈북 인사가 창립한 '세계 자유북한인 총연합'에서도 사용되었다. '자유북한인협회'의 투쟁 업적은 한국 사회라면 크게 의미를 두겠지만 감사함이 인색한 탈북 사회에서는 그럴 것 같지 않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정보기관과 싸우면서 감옥에 가고 각종 불이익을 당하면서 탈북자 인권과 권익을 위해 희생한 '자유북한인협회'를 알아주는 이들이 몇이나 될지 미지수이다.
  
  북한인권 카톡 방에 보면 - 제정 날을 북한 정권 수립날, 김정일 생일날, 탈북 어부 강세 북송날 등으로 하면 어떤가 하는 의견들이 올라와 있다. 왜 이런 날들이 '탈북자의 날'로 정해져야 하는지? 아무튼 이 정부에서 탈북자 전원 수용 방침과 탈북자의 날을 제정한다니 기쁘고 기쁜 일이다. 좋은 의견들이 모아지어 결정되기를 기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