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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주」 부산대학교 총학생회는 1985년 10월에 부마사태 6주년을 맞아 74쪽 분량의 보고서 {거역의 밤을 불사르라―10월 부마민중항쟁사}를 펴냈다. 운동권 학생들의 시각으로 분석 평가한 이 보고서 가운데서 시위상황을 중심으로 한 부분을 발췌 소개한다.
  
  부산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민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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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앞의 글에서 10월항쟁의 객관적 배경을 우리 사회 전체의 구조적 모순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이 개별 지역사회에 보편적으로 관철됨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울러 개별지역이 갖는 지역특수성에 의해 그 모순구조는 심화 확대되어 전개된다. 1)
  
  따라서 10월항쟁의 출발지였던 부산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파악함으로써 그 객관적 배경의 구체성을 획득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부산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주로 부산지역경제의 동향을 중심으로 부산지역 민중생활의 위기가 얼마나 심화되고 있었는가를 몇 가지 지표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부마민중항쟁이 격렬하게 타올랐던 남포동, 광복동 등을 중심으로 한 시위의 확산지역 및 배후지역에 대한 경제·지리적 상황을 개관해보고자 한다.
  
  주 : 1) 지역특수성과 지역사회의 중층적 모순구조에 대해서는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심포지움 자료집 『한국자본주의와 부산지역경제』(1985. 1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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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당시의 부산지역경제의 주요지표는 전반적으로 급격한 하강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쇠퇴현상은 한국경제의 일반적 현상이긴 하지만 부산지역에서도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부산지역경제의 대전국비(對全國比)의 감소추세 중에서도 수출실적의 감소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경제개발계획 이후 부산지역경제의 급속한 성장이 주로 높은 수출의존도(원화로 환산한 부산지역의 수출액을 주민총생산으로 나눈 값에 100을 곱하여 산출한 부산지역의 수출의전도)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1979년을 기점으로 한 수출실적 대전국비의 감소는 부산지역경제의 상태를 짐작하게 한다. 1979년의 부산지역 수출의존도는 55.2퍼센트로서 1976년의 73.7퍼센트보다 엄청나게 하락하였고 수출의 증가율 역시 크게 둔화되었다.
  
  실제로 1979년의 부산지역 수출의 증가율은 10.2퍼센트로서 전국평균 증가율 18.4퍼센트에 훨씬 못 미치고 있으며, 1978년의 증가율 21.7퍼센트에 비하여 그 감소현상이 매우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수출증가율이 저하되는 주요한 원인은 노동집약적 경공업에 수출이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주 : 2) 1979년의 한국경제 위기는 한국자본주의 자본축적양식 및 대외의존적 상인자본적 경제외적 축적양식의 총체적 반영이지만 부산지역경제의 위기는 그와 같은 일반적 위기구조가 보편적으로 관철되면서 산업구조적 파생성의 심화로 인한 위기가 더욱 격렬하게 발현하고 있다.
  
  1979년 경공업 및 중화학공업 수출비율의 전국구성비는 56대 44로 되어 있으나 부산지역은 78대 22로 경공업쪽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다. 따라서 부산의 수출공산품 중 경공업제품의 수출진도는 11월말 현재 목표대비 89.5퍼센트로서 중화학제품의 95.4퍼센트보다 더한 부진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위와 같은 수출의존적 경제구조의 그물에 걸려 있는 부산지역의 민중생활문제이다. 부산지역 민중의 압도적 다수는 노동자이다.
  
  최근의 한 연구에 의하면 3) 부산지역의 계급구성 중 약 73퍼센트 이상이 노동자계층으로서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높은 구성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이들 노동자계층 중 생산적 노동자층이 약 40퍼센트로서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생산적 노동자의 대부분은 신발, 섬유 등의 수출지향적 경공업 부문에 취업하고 있으며, 전국최저수준의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으로 극심하게 혹사당하고 있다.
  
  주 : 3) 김석준, 「부산시 계급구조분석시론」, 『부산대 사회과학논총』, 제 4권 제 1호 (1985).
  
  이와 같이 열악한 노동조건하에 놓여 있는 부산지역의 생산자 대중은 1979년의 부산지역경제의 전반적 위기와 함께 극심한 생존적 위기로 내몰리게 되었다. 즉 수출의 부진→조업단축 또는 파산→대량해고로 이어지는 경제위기의 고리 속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그 위기를 전가받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의 업체당 평균근로자 수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1979년 8월말 현재 제조업체당 평균근로자는 85명으로 나타나 1978년말보다 26.7퍼센트 줄어들었고 업종별로도 최저 1.4퍼센트에서 최고 45.4퍼센트가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대기업 및 중소기업의 평균근로자 수도 각각 1,248명과 38명으로 나타나 1978년말보다 5.7퍼센트와 13.6퍼센트가 줄어들었다. 4)
  
  주 : 4) 국제신문사, 『'80 부산·경남 연감』(1980).
  
  이와 같이 대량실업이 부산지역경제의 주축산업이자 대표적 수출산업인 신발, 섬유 등의 경공업 부문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또한 대량실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임금체불 건수 역시 급증하고 있었다. 1979년 7월에 문을 닫은 봉제품수출 및 하청업체인 삼신산업사의 근로자 500여 명이 1억4천만 원의 임금을 받지 못한 것을 비롯하여, 의류보세가공 하청업체인 유진실업 역시 8. 9월분 임금 1천여만 원을 체불하였으며, 성광섬유에서도 3,500만 원을 체불하여 근로자 450여 명의 생계를 파탄에 빠뜨렸다.
  
  이밖에도 해운업의 체불과 임금지불을 요구하는 농성 등의 사태가 빈발하였다. 이러한 대량실업과 체불임금 등으로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 근로자들은 기물파손, 항의, 농성, 자살 등으로 대응하였다. 5) 위와 같은 민중생활의 위기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중소자본의 존립조건 역시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는 어음부도율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부도기업이 중소자본이라는 사실에서 부산지역 중소자본의 몰락과 파멸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주 : 5) 1979년 『부산일보』 9월, 10월의 사회면 및 경제면 기사 참조.
  
  1979년 당시 부산지역 어음부도율은 0.24퍼센트로서 전국평균 0.10보다 2.4배나 높으며, 서울지역 0.08보다는 3.0배가 더 높다. 6) 이것은 중앙집권적 재정금융체계에 의해 부산지역에서 생산된 경제잉여가 중앙으로 유출됨과 아울러 독점자본 위주의 금융지원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또한 이것은 경제위기를 독점자본의 집적과 집중의 강화를 통해서 해소하려는 것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중소자본의 열악한 존립조건과 파산은 다름 아닌 지역민중생활의 파탄으로 현상하는 것이다.
  
  주 : 6) 부산경제연구센터, 『부산경제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아울러 10월 항쟁과 관련하여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부산지역의 과잉퇴적인구가 많다는 것이다. 7) 대부분 정체적 과잉인구의 형태를 취하는 이들은 자본재 부문에서의 고용기회를 상실하고 도시잡업층 혹은 서비스업종에 불완전하게 취업하고 있거나 반프로적인 영세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다. 1979년 당시의 실업율의 증가는 자기생존의 재생산을 크게 위협받으면서 하루하루를 불안정하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만성적 과잉퇴적인구를 급증시켰다.
  
  주 : 7) 부산지역의 과잉퇴적 인구를 노동시장과 관련하여 파악한 것으로는 황한식, 「부산지역 노동시장의 구조에 관한 연구」, 『부산경제연구총서』 1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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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항쟁을 민중항쟁으로 규정할 때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시각』에서 제시된 지역민중운동사적 성격규정을 뒷받침하는 주체의 분석은 물론이거니와 그 주체들이 항쟁의 격전지와 어떻게 관계하는가를 해명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부마항쟁이 민중항쟁으로 전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부산시 전역이 아닌 특정한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특히 항쟁의 중심지역이었던 중구가 소비지적 성격이 지배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불생산적 노동자뿐 아니라 생산적 노동자도 일정하게 참여하였다는 사실에서 항쟁지역의 경제·지리적 특성이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항쟁주체의 분석이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 경제·지리를 주체와의 관련하에 파악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만 여기서는 중심지역·확산지역·배후지역으로 나누어 각 지역의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생산적 노동자의 분포상황8)만을 확인하는 것으로서 대신하고자 한다.
  
  주 : 8) 이 부분에서 주로 참고한 것은 1981년판 『부일연감』이다.
  
  1) 중심지역―중구
  중구는 국제시장, 남포동, 광복동, 자갈치시장, 수산센터 등의 상가로서 상품 및 수산물의 집산지일 뿐 아니라 40여 개의 금융기관과 3,300여 개에 달하는 접객업소와 이를 이용하는 유동인구 6, 70만으로 추산되는 부산의 중심지이다. 중구의 제조업체 수는 1979년 현재 88개로 규모별로 보면 중소기업이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취업하고 있는 근로자 수는 1,898명에 이르고 있으며, 업종별로는 섬유공업 15, 화학제품 4, 기계금속 16, 기타 53개 업체로 분류된다. 이는 부산지역 전체 제조업체 수 3,508개의 2.9퍼센트, 전체 근로자 수 350,860명의 0.5퍼센트로서 매우 작은 비중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중구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3,300여개에 달하는 접객업소 등에 취업하고 있는 불생산적 노동자가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다. 9)
  
  주 : 9) 3차산업에 취업하고 있는 불생산적 노동자 수는 자료의 빈곤으로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 특히 그들의 고용형태, 임금, 근로시간 등에 관한 자료는 전무한 편이다.
  
  2) 확산지구―서구
  서구는 중구와 가장 근접한 지역으로서 중심지역의 시위가 제일 먼저 확산된 지역이다. 서구에서도 서대신동, 동대신동 등은 안정된 주택지역이지만 아미 1·2동, 초장동, 충무동, 남부민 1·2·3동 등은 광범한 도시 빈민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동·서 대신동 주변에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50여 개교가 밀집되어 있으며 특히 16일의 동대신동 쪽으로의 시위확산과 일정한 관련을 갖는 동아대학도 이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서구의 제조업체 수는 120 개이다.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 3, 중소기업 117개로 중소기업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취업한 근로자 수는 5,124 명에 이르고 있다. 업종별로는 섬유공업 21, 화학 17, 기계 24, 기타 대기업 3, 중소기업 55개체로 분류된다. 이는 부산지역 전체 제조업체 수 및 근로자 수에 비하여 각각 3퍼센트, 1.4퍼센트를 점한다. 따라서 서구지역도 생산지로서의 성격을 지니기보다는 도시중산층의 거주지로서 혹은 소생산부문에 광범하게 체류하고 있는 도시빈민의 밀집지역으로서의 성격이 지배적이다.
  
  3) 확산지역―동구
  동구는 부산역, 제 3부두 등 대규모 항만·철도·수송 시설이 밀집되어 있으며, 초량동·수정동은 대부분 주거지역이다. 수정 3·4·5동은 서민 아파트단지로 형성되어 있으며 고지대로서 도시빈민이 많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도시빈민 생활실태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부산시의 영세민 구호대상자 수10)로 보아 다른 지역보다 도시빈민이 많이 집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구의 제조업체 수는 96개이다. 규모별로는 대기업 2, 중소기업 94로 중소기업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취업한 근로자 수는 8,155명에 이르고 있다. 업종별로는 섬유공업 대기업 2, 중소기업 23, 화학공업 중소기업 12, 기계공업 중소기업 13, 기타 중소기업 46개이다. 이는 부산지역 전체 제조업체 수 및 근로자 수의 2.7퍼센트와 2.3퍼센트이다.
  
  주 : 10) 구호대상은 세대수 2,028 세대, 인원 7,619명으로 나타나 있다.
  
  4) 배후지역―영도구
  영도구는 시위가 진행된 지역은 아니지만 중구와는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정도로 매우 가까운 곳이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영도는 지리적 여건으로 일제하부터 조선공업과 수산관련 산업이 발달하였다. 영도구의 제조업체 수는 299개이다. 규모별로는 대기업 9, 중소기업 290개이다. 여기에 취업한 근로자 수는 18,513명이다.
  
  업종별로는 섬유공업 대기업 2, 중소기업 23, 화학공업 중소기업 4, 기계공업 대기업 5, 중소기업 56, 기타 대기업 2, 중소기업 207개이다. 영도구는 부산에서 다른 지역과는 달리 중공업인 조선공업의 입지로서 대한조선공사, 대동조선 등의 대기업 외에도 중소 규모의 조선관계업체가 밀집되어 있다. 따라서 부산지역 전체 제조업체 수 및 근로자 수의 6퍼센트, 5.3퍼센트라는 양적 비중보다도 조선공업＝중공업의 노동운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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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마민중항쟁의 구체적 배경으로서 부산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이 지역 민중의 생존을 급박한 상태로 몰고 갔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부산지역 민중생활을 가늠할 수 있는 모든 지표는 거의 전국적 최저 수준에서 맴돌고 있었고, 더욱이 1979년을 기점으로 파멸적인 양상을 드러내는 부산지역경제의 위기는 민중생활을 더욱 열악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구조화된 생활의 위기 앞에서 아무런 방어장치도 없이 내던져진 부산지역 민중들은 자신의 존재조건을 개조하려는 현실변혁의 에네르기를 강하게 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고(15) - 부산지역의 민주화운동의 발전과정
  
  부산지역 민주화운동의 발전과정과 그 역량분석
  
  70년대 한국운동사의 풍성한 수확, 풍부한 경험들을 보고 나서 부산지역으로 눈을 돌릴 때, 우리는 황량한 벌판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척박한 토양 가운데 어줍잖은 유산이 드문드문 헐벗은 몇 그루 나무로 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언덕에 갖은 풍상을 견디며 선, 튼튼한 한 그루의 나무를 발견한다. 메마르고 거친 들판에서 이것은 어쩌면 기이하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것은 정말 우연인가?
  
  우리는 황량한 벌판의 튼튼한 나무를 바라보면서 부산지역운동사, 아니 소박하게 말하여 부산지역운동의 경험들을 새롭게 읽어가야 한다. 반도의 말단부, 한국 제 2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문화의 불모지, 거친 땅에서 자기운동의 기반, 자기운동의 논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치열하게 싸워온 선배들의 지난한 몸부림을 우리는 반드시 읽어내야 한다. 이 읽어냄이 바른 것일 때, 우리는 현재의 과제를 바로 이해하고 미래를 향한 비약적인 발전을 꿈꿀 수 있다.
  
  1. 투쟁과 좌절의 경험
  
  1965년 한일회담 반대투쟁 이후 단절된 학생운동의 흐름은 1969년 삼선개헌저지투쟁으로 다시금 불길이 치솟게 된다. 이 1969년에서 75년에 이르기까지 부산지역 학생운동은 목전의 현실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일시적으로 전국규모로 형성되는 싸움의 대열에 참여했다가 함께 된서리를 맞고 물러서는 단절적인 경험을 되풀이한다.
  
  4·19혁명을 짓밟고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권의 반민주적 성격이 전면에 드러나는 삼선개헌은 전국 대학과 지식인들을 봉기하게 했다. 부산대학교의 삼선개헌반대투쟁 역시 이러한 전국적 물결 가운데서 전개되는데, 학생회만이 아닌 일반학생들의 주도로 산발적으로 확산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60년대 학생운동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은 시위의 양상은 여전히 낭만적 엘리트적 성격을 고수한 채, 반대의사의 표명 정도에 그쳤으며 지속적인 투쟁의 일환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서면서, 60년대 세계경제의 안정을 배경으로 순조로이 진행되었던 한국의 경제성장정책의 한계에 부닥치고 그간 누적되어온 모순을 폭발시킴에 따라, 운동은 새로운 모습을 요구받는 전환기에 들어서게 된다. 70년대 벽두를 장식했던 전태일분신자살사건에 이어 해고노동자 이상찬의 분신자살 기도 등 노동자의 생존권 요구가 자해의 형태로 제기되는 한편, 도시빈민 문제, 중소상인들의 조세저항이 심각한 양상으로 표출되었고, 정권의 부도덕성이 드러나는 사건이 속출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의 급진전과 더불어, 기층대중들의 문제제기 속에서 민주화운동은 급속히 고조 확산되는데, 바로 이러한 현실 운동의 지속성과 아울러 현장지향성·민중지향성의 확보를 운동 발전의 관건이 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부산대학교의 '사회문제비교연구회'(1970) '한얼'(1971)과 같은 서클의 등장과 법대 언덕 스터디그룹의 출현 등은 서울대의 '사회법학회' '후진국사회연구회', 이화여대의 '새얼', 고려대의 '한사회' '한맥', 경북대의 '정진회' '정사회'와 같은 이념서클이 결성되는 전국적인 분위기와 맥을 같이하면서 이루어졌다.
  
  '지속성'이라는 현실의 요구에 답하면서 결성된 이념서클들은 당시의 주제였던 '통일' '한일' '민족' 문제 등을 중심대상으로 전국토론대회 (1970년 고대에서 개최, 사비연 참가, 1971년 경북대에서 개최, 한얼 참가)를 개최하기도 하였는데, 통일·한일·민족 문제들을 다양한 민생문제와 체계적으로 연결짓는 심화된 이론의 정리보다는 주로 반독재 민주정치 확립이라는 현실의 과제로 산만하게 연결짓는데 그친다.
  
  또한 지속성 모색의 역량이 전국적 연결망 가운데서 해소하는 형태가 지배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조류는 부산대 이념서클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70년대 전반기에 특징적인 전국 규모의 학원사건으로 탄압을 받는 시련을 거치게 했다. 사비연, 한얼 등의 지속성 모색은 이상과 같은 조류에 의해 규정되면서 학습의 비체계성·원시성을 간직한 위에, 내부적 확충·확산보다는 전국적 연대에 많은 역량을 소진한다.
  
  따라서 이 서클들은 현실의 강한 시련에 견디지 못한 채 해체되었으며, 부산대 학생운동은 전국의 물결 가운데서 거듭하는 단절적 경험들을 계속해갔던 것이다. 1971년 교련강화 반대 시위를 뒤이은 전학련사건, 1973년 반유신 시위에 뒤이은 민청학련사건들과 같은 대대적인 학원탄압의 와중에서 부산대 학생운동그룹은 거의 소멸한다. 더욱이 베트남사태를 배경으로 강화된 정권의 이데올로기공세 가운데서 몇 차례 조작된 학생간첩단사건의 하나인 김호자사건을 겪으면서 부산대학은 오랜 침묵기로 빠져들어갔던 것이다.
  
  이 시기 부산지역 학생운동은 단속적 단절적인 형태로 전개되었으며, 중앙의 일개 지부로서 전국적 이슈를 떠맡는 형태로 운동역량을 소진해간 것으로 특징지울 수 있다. 70년대 전반의 시기가 요구하는 지속성·현장지향성이라는 과제를 자기운동의 공간＝부산지역내에서 이론적 실천적으로 소화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70년대 후반 상황의 격렬한 전개 속에서 지속적인 싸움을 전개할 수 없게 했으며, 다음 시기에 과중한 부담을 지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 사회운동의 맹아형성
  
  1976년부터 79년에 이르는 시기는 부산지역운동사에 중요한 성과를 이룩했던 시기였다. 전시기에서 이월된 과제들이 어느 정도 바른 줄기를 잡아 해소되어갔으며, 무엇보다도 운동의 재생산기반이 마련되는 큰 성과를 획득했던 것이다. 70년대 후반은 유신체제의 모순이 격렬하게 양상으로 드러나는 가운데 각계각층의 운동이 고양되고, 이미 도덕성과 정당성을 상실한 박정권의 최후의 발악이 전면화되는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성취된 부산지역운동의 성과는 박정권의 붕괴에 중요한 일격을 기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1974, 75년 학내상황이 극도로 침체되고 패배적 분위기가 만연한 가운데 운동의 잠재력은 학외로 빠져나간다. 1973년부터 적극적으로 전개된 중부교회 청년회 활동은 민청학련사건으로 타격을 입긴 하였지만, 1976년부터 정기적인 스터디가 이루어지고, 부산시내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비판적 지식청년·학생들을 끌어모으는 흡인력을 발휘했다.
  
  중부교회 중심의 활동을 기독청년운동의 전개로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운동의 미분화된 저차적 단계에서 지역운동권 형성의 중요한 산파구실을 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더욱이 중부교회에 드나들던 학생·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양서조합이 태동했던 것이다.
  
  1978년 4월 22일, 부산의 거의 대부분의 운동역량을 끌어모아 큰 흐름을 형성한 양서조합이 정식으로 창립됐다. 조합원 100 여 명으로 창립된 양서조합은 1979년 11월 19일 해체되기까지 560여 명의 조합원을 확보하였으며 2선운동으로서 부산지역내 자기운동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책을 매개로 한 소비조합'인 양협은 가위 '세계 최초의 것'이라 할 만했다.
  
  협동의 원리, 협동조합운동사, 해방후 한국경제 등의 교재로 조합원 교육을 실시함과 아울러 수련회, 농촌활동, 조합원 배가운동 등으로 조직·훈련을 강화하는 한편 상당한 대중성을 확보하였고, 이러한 성과들은 서울·대구·울산·마산·수원·광주로 양협운동을 확산하게 했다. 특히 양협 내부에 조직된 소그룹들은 전체집단의 차원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구성원들의 소속감 마련과 연대형상에 기여함은 물론 농촌문제연구반, 노동문제연구반과 같은 소그룹을 통해 지식인 2선운동으로서 전체집단은 민중지향성·현장지향성의 단초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의 경과, 집단의 성장에 따라 새롭게 치솟는 잠재역량들은 양협의 형식과 내용의 모순을 새로운 형태로 제기하였다. 부산지역 내부에서 양협의 위치·역할이 분명히 설정되어야 할 필요성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 점에 관하여 양협이 어느 정도 부응하였던가 하는 점에 관해서는 후에 더욱 정확한 분석·비판이 가해져야 하겠지만, 양협 창립 당시부터 싹터서 양협과 함께 성장한 문제가 다른 장에서 새로운 형태로 전개된다.
  
  3. 학생운동의 토대구축과 70년대 후반의 민주화운동
  
  선진적인 이론을 획득하고 선도적인 실천을 수행하면서 주어진 시기에 운동의 지도력을 발휘하고 핵심인자를 조직 훈련하는 한편, 탄압시기를 견디면서 전투력을 확보할 수 있는 운동의 근거지를 건설한다는 것은 오늘날 한국의 조건에서는 상대적인 의미에서 학내일 수밖에 없다. 학외에서 형성된 큰 흐름과 역량은 학내에서 새롭게 흡수되고 정리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학내의 운동의 중심고리를 건설한다는 사고가 양협내에서 싹텄던 것이라 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양협 창립 당시부터 문제시되었으며, 양협의 존재라는 것으로부터 일정한 영향을 받으면서 크게는 70년대 후반의 한국상황, 또한 1978년의 학내상황에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온 문제라고 할 수 있다. 1978년 4월 19일 중부교회 대학생들이 시도했던 부산대 시위 미수사건과 1978년 7월 2일 남부교회 출신 대학생들의 페인팅사건은 가라앉은 학내분위기에 돌을 던진 일이었다. 그간 외부에서 쌓인 역량이 산만하게 표출된 것으로서 당시 부산지역의 한계와 금후의 과제를 함께 던져준 중요한 자극이었다.
  
  개별인자의 고립된 외침으로 끝나버리고 만 처참한 실패 가운데서 70년대초부터 끊임없이 내재해 있던 재생산 기반 확보, 자기운동의 기반건설이라는 문제가 부산 자신의 현실의 과제로 명확히 떠오르게 된 것이다. 일회적인 사건의 제기와 같은 '건수' 중심의 운동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반성이 심각하게 제기되면서, 1978년말 본격적으로 시작된 재생산 기반 시설은 1979년에 이르러 규모는 작지만 학번별로 완결된 구조를 갖는다.
  
  1981년 부림사건 당시 호되게 된서리를 맞은 소위 '사랑공화국'이 탄생했던 것이다. 사공국은 당시 전국의 대학내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언더그룹에 속하는 것이었는데, 1979년부터는 학내 몇몇 서클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한다. 아카데미, 성아, 전통예술연구회, 영목 등에서 체계적인 학습이 이루어졌으며, 1977년에 나타난 부산 최초의 가야야학그룹(1980년 부산대학교 '민족사연구회'로 나타남)과도 만나게 된다.
  
  학내는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으며, 1979년에는 언더그룹이 중심이 되어 아카, 성아, 영목, 전통, 가야야학이 모여 방향을 잡아나가기 위한 논의구조를 형성하려는 노력도 진행되었다. 중앙에서 형성된 물결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던 시대는 지났다. 선진적인 개별인자·그룹에 의해 중앙의 지부가 건설되던 시대는 끝났다. 70년대 전반기의 과제를 떠맡아 마르게 정리하려는 중요한 시도가 나타난 것이다.
  
  부산지역운동은 학내든 학외든 비록 조악한 모습이긴 하지만 자기운동의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이 가운데서 자기운동의 논리를 형성해가기 시작했고, 현장지향성을 자기것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었으며, 자기운동의 논리는 끊임없는 현실의 투쟁 속에서, 탄압과 시련 속에서 만들어가야 할 과제였다.
  
  1979년의 학내의 이런 괄목할 만한 변화에 비해 학외는 다소 정체한 듯한 느낌이었다. 양협 외에 몇 개의 기구는 있었지만 70년대 후반의 격랑에도 불구하고 1979년말 대규모 민중항쟁이 있기까지 큰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이 무렵 사회기구로는 양협을 비롯, 엠네스티, 산선, 지오세(JOC, 가톨릭노동청년회의), 부산지구 기독청년협의회를 들 수 있는데, 청년그룹인 부산지구기청협조차도 올바른 운동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1976년 창립된 부산진구 기청협은 중앙의 한국기청협의 선진성·진보성에도 불구하고, 지역 에큐메니칼운동의 실현과는 거리가 먼, 몇몇 비판적 기독청년그룹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엠네스티는 처음부터 전투적 운동단체는 아니었고, 국내 양심수 지원 등의 인권운동을 해나가는 단체였다. 일선투쟁의 역량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종교·일반권의 명망가그룹을 형성하여 후에 '사선'(사회선교협의회)의 물적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산선 또한 기독교 운동단체로 들 수 있는데, 노동현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고, 탄압사례를 수집하여 자료집을 배포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가 1979년 부마민중항쟁 후에 소멸한다. 산선에 대해서는 앞으로 부산지역 기독교운동권의 중요한 연구·분석의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오세는 20년의 역사를 가진 단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개인의 수양이라는 차원에 머물러 있었는데, 동일방직 해고근로자들이 참여하면서 다소 활기를 띠면서 1978년부터는 노동현장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당시 섬유노조위원장(동일방직사건때는 동일방직의 어용노조위원장이었음) 김영태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출마를 저지하려 했던 몇 가지 시도가 지오세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학외에 이상과 같은 몇 개의 운동공간들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1979년 부마항쟁 당시 적극적인 대응이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70년대 부산지역의 피땀을 먹고 자란 부마민중항쟁의 튼튼한 뿌리를 대할수록 그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부산지역의 사회운동기구들이 부마항쟁의 흐름을 변화시킬 수도 있었으리라는 상상은 환상에 불과하지만, 이와 같은 대규모 민중항쟁을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대응하는 노력 가운데서 기구의 발판은 더욱 튼튼해지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앞으로 많은 비판과 반성이 행해져야 하겠지만 당시 공개기구에 대한 인식이 지역내에서 상당히 부족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운동공간으로서 공개기구의 논리는 주어진 객관적 상황에 따른 다양한 실천의 모색 가운데서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어떤 기구라 하더라도 구체적인 실천이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은 어느 상황에서건 필요한 원칙이다.
  
  양서조합의 경우, 이것을 지식인 2선운동으로 규정하면서 한계를 설정한다 하더라도 실천이란 대원칙에서 면제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양협이 수행했어야 했던 일상활동의 바람직한 방향, 또는 이것을 담아내고 지속성을 유지하는 구체적인 구조와 운영이라는 면을 포함하여 다각적인 비판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4. 맺는 말
  
  70년대 전반의 과제를 안으면서 격동기의 한국사 가운데서 성장한 부산지역운동의 70년대 후반의 모습은 어떻든 새롭게 변화했다. 1979년에 이르러 모습을 드러낸 '자기운동'의 기반 위에서 폭발한 부마민중항쟁의 함성은 앞으로의 수다한 투쟁과 시련 가운데서, 어렵게 어렵게 극복해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