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北)에서 온 여배우 - 최은희(崔銀姬)·신상옥(申相玉)의 북한탈출(北韓脫出)
  
  <1986년 4월 월간조선>
  
  崔·申 北에서 무얼 했나
  
  최은희(崔銀姬) 마중 나온 金正日
  
  홍콩에서 북괴 공작선을 탄 최은희(崔銀姬)가 북한의 황해도 해주 항에 발을 디딘 것은 78년 1월17일 아침이었다. 최은희를 태운 공작선 능라도 호가 부두에 닿자 金正日이 직접 최은희를 환영(?)했다고 한다. 신상옥(申相玉)이 최은희 앞에 나타난 것은 그 여섯 달 뒤였다. 84년4월 관계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두 사람은 평양시 삼석 구역 대동강변에 있는 철봉리 초대소 등의 숙소에 분리 수용됐다고 한다.
  
  당국의 발표문은 「북괴는 두 사람에게 협박과 회유를 병행하면서 집중적인 세뇌교양을 실시했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이들의 재북 사실을 은폐해 오면서, 79년부터 崔銀姬와 申相玉에게 영화 「첫 보안서원이었다」 「설한령의 메아리」 「춘향전」등의 연기 및 연출지도를 맡기는 등 북괴 영화 제작에 강압적으로 이용하였고, 崔銀姬를 가끔 金正日이 주최한 비공식 연회에 불러내어 유희대상, 또는 말동무 노릇을 시켜 왔다」고 밝혔다.
  
  金正日은 영화에 대해서 평소부터 관심이 많았다. 그가 지난 64년에 처음으로 북괴 집단의 「공직」에 등장했을 때 맡은 직책은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영화·예술담당 비서였다는 인연도 있다. 그는 북한의 영화가 수준이 낮은 데 대해 불만이 많았다. 金正日은 직책상 한국이나 일본, 서구의 수준 높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그러는 가운데 최은희(崔銀姬) 신상옥(申相玉) 두 사람을 탐내게 됐다고 한다.
  
  북괴가 申, 崔 두 사람의 재북 사실을 6년간이나 쉬쉬하고 있었다는 것은 두 사람이 적극적으로 전향, 협조하지는 않았음을 암시한다. 한국인을 납치하기만 하면 「의거 월북」으로 단숨에 위장 발표하곤 했던 그들이 기막힌 호재(好材)를 손에 넣고도 침묵하고 있었던 것은 두 영화인의 북한체제 적응이 더디었기 때문일 것이다. 金正日이 바란 것은 북한의 영화 수준을 높이기 위한 두 사람의 자발적 협조였다. 이 자발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선전 자료로 이용했을 경우, 국제적으로 자신들의 치부가 노출될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두 번째 납북, 기구한 운명의 여배우
  
  두 사람이 표면상의 협조를 하기 시작한 것은 납치 1년 뒤인 79년부터다. 그것도 출연이나 감독이 아니고 연기 및 연출 지도였던 것으로 봐 적극적인 행동은 아니었던 것 같다. 「빨간 마후라」 「평양 폭격대」 등 수많은 반공 영화를 만든 월남민 신상옥(申相玉)과 6·25때 북괴에 납치돼 말못할 고초를 겪었던 최은희(崔銀姬)에게 있어서는 북괴에 의한 두 번째 피납이었다.
  
  6·25동란이 일어난 그날 최은희는 목포에서 「사나이의 길」이란 영화를 찍고 막 서울로 돌아와 있었다. 남편인 촬영기사 김학성(金學成)씨는 위궤양으로 피란을 가지 못한 채 서울에 남았고 최은희도 남편을 따랐다. 적 치하에서 친척들의 소식을 듣기 위해 외출했던 최은희는 월북 연극인 심영에게 발견됐다. 정치보위국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끝에 전선위문단에 배치돼 북괴군 후방부대의 위문공연을 다니게 됐다.
  
  유엔군의 반격으로 북괴군이 후퇴할 때도 최은희는 탈출을 못하고 청천강까지 끌려갔다. 이때 최를 발견, 구출한 것은 김기봉(李基奉)씨(54·자유기고가)였다. 국군부대의 첩보원이었던 李씨는 성천 지역을 수색하던 도중 북괴군으로부터 낙오되어 야산에 숨어 있던 최를 발견했었다고 한다. 『머리는 삭발한 채 인민군 복장의 최씨를 본 순간 여배우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굶주림과 공포로 일그러진 최의 애처로운 모습이 지금도 눈에 생생합니다』 최은희는 그 뒤 부역 혐의를 받고 군 수사기관에서 여러 날 집요한 신문을 받았다. 최는 군부대로 호송되는 도중 『난 이제 어떻게 되느냐』고 李씨를 붙들고 애소를 했다고 한다.
  
  민족상잔의 상처를 연약한 몸으로 맞받았던 최씨는 수사기관에서 풀려난 뒤 부산에서 남편 김학성(金學成)씨와 재회했다. 金씨는 종군기자 생활 중 부상을 당해 생활력을 잃고 있었다. 최는 겨울에도 무연탄 덩어리를 만들어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때 영화감독 申相玉이었던 것이다.
  
  일제시대엔 정신대를 피하려고 배우의 길을 택하여 그 자신이 바로 민족수난의 나이테이기도 한 최은희가 두 번째로 끌려온 북한에서 느꼈을 인간적 고뇌의 깊이는 굉장했을 것이다. 북한의 언론은 지난해 두 사람이 부부라고 소개한 적이 있었다. 지난 76년 이혼한 두 사람이 극한 상황 아래의 북한에서 다시 결합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귀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납치된 이후 두 사람을 최초로 만난 일본의 영화평론가 구사가베 구시로씨는 그들의 삶을 엿보게 해주는 글을 일본 주간지에 실은 적이 있다. 구사가베씨는 申相玉과 절친한 사이로 申이 실종된 이후 일본에서 「신상옥(申相玉)감독 영화감상회」를 개최한 적도 있었다. 구사가베씨에 따르면 그는 지난 83년 12월10일 신(申), 최(崔) 두 사람을 항가리 부다페스트의 힐튼호텔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그보다 한 달 전에 구사가베씨는 체코의 프라하에 있을 때 신상옥(申相玉)의 국제전화를 받고 면담 약속이 이뤄졌다고 한다. 申, 崔는 털외투를 입고 있었다. 申씨는 북괴당국의 지시로 프라하에서 「돌아오지 않는 밀사」란 장편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도 부다페스트를 중심으로 영화촬영을 계속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신상옥(申相玉)은 또 홍콩·스위스·파리·동구를 거쳐 북한으로 갔다고 털어놓았고, 金正日을 만났으며, 첫 작품으로 「돌아오지 않는 밀사」를 제작했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申은 또 소련, 중공 등 여섯 나라 영화인들의 도움을 받아 「징기스칸」이란 영화를 제작중이라고 했다. 신(申), 최(崔)가 북한에서 다른 영화인들에 비해 특혜를 받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해외나들이를 자주 하면서 스케일이 큰 영화를 만든 다든지, 공산권 내에서 국제적 규모의 영화를 기획한 것이라든지, 金正日 등 북괴 수뇌부의 뒷받침을 엿보게 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만든 영화는 외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84년 4월 두 사람의 재북(在北) 사실이 한국에서 공개되자 申, 崔는 부다페스트에서 일본 요미우리신문 기자를 초청(?), 기자회견을 가졌다.
  
  북괴의 지시로 이뤄진 것이 분명한 이 회견에서 두 사람은 『76년의 이혼은 출국을 위한 위장이었고,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이 영화 제작의 자유를 제한하여 자유의사로 북한에 갔다』고 말했었다. 이에 대해 두 사람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을 때 입회했던 이태영(李兌榮)여사는 『그 이혼은 2년간의 상담 끝에 이뤄진 것이고, 崔씨는 申씨에 대한 노여움으로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고 위장 이혼설을 일축했었다. 이혼하는 자리에서 崔의 조카딸 장(張)희진씨가 울음을 터뜨리자 崔는 『왜 네가 우니?』라고 나무랐다고 한다.
  
  최(崔)·신(申) 가족들의 근황
  
  ▲오수미(吳樹美)씨(37·申相玉감독의 전부인·본명 윤영희(尹英姬)). 신상옥(申相玉)감독이 최은희(崔銀姬)와 이혼하기 전인 73년, 파리로케이션으로 제작한 「이별」 주연배우로 출연하면서 申감독과 동거, 1남1녀를 둔 吳씨는 지난 82년 사진작가인 김중만(金重晩)씨(33)와 재혼했었다. 吳씨는 『자유분방한 예술가인 그들이 결코 자의로 북에 갔을 리는 없다고 생각해왔다』고 밝히고 『언젠가 이 같은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며 큰짐을 벗은 듯한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吳씨는 현재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64동 108호에서 재혼한 金重晩씨, 申감독과의 사이에서 난 상균(相均)군(13), 승리(勝利)양(10)과 함께 살고 있다.
  
  ▲상균(相均)·승리(勝利)남매·어머니 오수미(吳樹美)씨와 살고 있는 이들 남매는 각각 국민학교 6학년과 3학년에 재학 중. 申감독이 북에 있으면서 자신의 친구인 재미동포 김인환(金寅煥)씨(60·미국 뉴저지주 거주·申감독이 함북 경성고보 동기동창)를 통해 미국에 유학시키려고 시도한 사실이 밝혀져 매스컴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아버지 申감독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상균(相均)군은 입버릇처럼 『이담에 커서 아빠(申相玉)보다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포부를 펼쳐 보이곤 한다고 하며 얼마 전에는 「용감한 군인이 되어 북에 있는 아빠를 구출해 오겠다」는 글을 짓기도 했다는 것이다.
  
  ▲신정균(申正均)씨(24·申相玉·崔銀姬의 양아들). 82년 안양예술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조감독으로 영화현장엘 쫓아다니고 있다. 생후 백일 됐을 때 신(申)·최(崔)부부에 의해 입양된 正均씨는 申씨 납치 당시 모 고등학교 야간부에 적을 두고 있었으나 충격으로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않아 퇴학을 당하기도 했었다. 외삼촌인 최경옥(崔慶玉)씨(崔銀姬 남동생)의 서울 강남구 풍납동 집에 기거하고 있는 정균(正均)씨는 언젠가 申·崔부부에 관한 영화를 찍어보는 것이 소원이라며 영화 일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신명희(申明姬)씨(26·申·崔의 양딸). 『아버지가 8년 전에 어머니를 데리고 오겠다고 우리에게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 약속을 지켰다』며 申·崔씨 부부의 북한탈출을 예상했다는 듯이 기뻐한 明姬씨는 60년 봄 백일 때 申감독 부부의 양녀로 입적됐었다. 78년 납치사건 때 선광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明熙씨는 충격을 받아 한때 방황하기도 했으나, 이를 염려한 외삼촌 최경옥(崔慶玉)씨가 집에 데려다 함께 살면서 마음을 작고 결혼까지 했다. 남편은 영화촬영 효과 맨으로 일하는 서동엽씨(29).
  
  ▲신태선(申泰璿)씨(65·申相玉감독의 둘째형). 지난 84년 4월 일본인 영화감독 니시타 데쓰오(西田哲雄)가 신상옥(申相玉)·최은희(崔銀姬)커플의 육성녹음을 건네주기 위해 접선할 대상으로 지상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 申씨는 申감독이 어려울 때 申필림의 표를 맡기도 했으며 崔銀姬교장의 납북 이후 한때 안양예술학교를 관리하기도 했다. 申필름은 59년 서울영화소로 출발, 61년 申필름으로 상호를 바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연산군」, 「벙어리 삼룡」 등 대표작품을 남겼으나, 경영은 계속 어려워 적자에 허덕였고 75년 11월 검열삭제 부분을 영화에 삽입했다는 사소한 이유로 허가 취소의 비운을 맞았다.
  
  안양예술학교는 66년 申감독에 의해 설립됐다. 교장은 崔銀姬가 맡았었다. 78년 崔교장의 납북된 후 폐교 위기를 맞았던 이 학교는 申泰善씨에 의해 관리되다 80년 말 현재의 이사장 연명흠(廷明 欽)(62)에게 넘어갔다. 廷씨가 이사장에 취임한 뒤 새 건물을 지어 완성한 이 학교는 연기과 3개반 미술과 2개반, 문예창작과를 신설 종합예술고 등 학교로 발전하고 있다.
  
  ▲최경헌(崔慶憲)씨(70·崔銀姬의 큰 언니). 최은희(崔銀熙)가 남북 되기 전 두 양 자녀와 서울 동부이촌동 청탑아파트에서 함께 살았던 崔씨는 동생의 탈출소식을 듣고 재회의 기쁨에 들떠있었다. 동생의 소식을 기다리며 8년 동안 같은 전화번호를 지켜왔으나 지난달 8일 아들이 살고 있는 경기도 여주군 가천면으로 이사했다.
  
  ▲최경옥(崔慶玉)씨(55·영화감독·崔銀姬의 남동생). 崔銀姬가 申감독과 이혼한 후, 崔銀姬측 재산 청산인으로 선정될 만큼 崔銀姬가 기둥처럼 기댔던 가족이다. 72년까지 영화배우, 영화감독으로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 연출했으며 직접 영화제작에 나서기도 했었다. 영화와 손을 끊고 개 사육으로 한때 재미를 보기도 한 그는 『누님의 눈물어린 지난 8년을 영화로 제작, 후세에 남기겠다』는 의욕을 나타냈다. 崔씨는 申·崔가 납북된 후 양 자녀들이 충격을 받고 방황하자, 자기 집에 데려다 기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