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학과 공산주의의 악마의 교배
  
  이 공산주의 이론은 종교의 속성을 다 갖고 있다. 낙관적인 미래, 천국 같은 공산사회, 그것의 도래에 대한 자신 있는 예언, 교회보다 더 든든한 당(黨), 신(神)으로서의 마르크스, 그의 수제자 레닌, 스탈린, 김일성(金日成)…. 이 공산당 종교는 그러나 그것이 토착화된 나라의 역사와 문화의 토양에 따라서 성격이 달라져 갔다.
  
  음험한 제정 러시아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린 공산주의는 전제주의로 흘렀고, 민주주의의 전통이 있었던 동독, 체코, 폴란드, 헝가리의 공산주의는 「인간의 얼굴을 한 공산주의」를 모색하면서 온건해졌다. 그런 전통이 약했던 알바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에 들어간 공산주의는 1인 장기집권으로 굳어져 당내의 개혁 세력을 키우지 못했다. 그 대가로 이 세 나라는 공산권 붕괴시기에 큰 혼란을 겪었고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허덕이고 있다.
  
  주자학(朱子學) 문화권에 들어간 공산주의는 어떻게 변용 되었던가. 베트남은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도 왕이라 하지 않고 황제라 호칭할 만큼 자주성이 강했다. 이 나라에 토착된 공산주의는 20세기에 들어서 프랑스, 미국, 중국과 세 차례 전쟁을 하여 독립과 자주를 지키는 데 있어서 정치무기로 쓰였다. 그런 효용성이 사라지니까 베트남의 지도층은 공산주의의 교리 중에서 경제부문은 잘라 없애버리고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면서 나머지 반쪽 즉, 정치통제 장치로서만 이용하고 있다.
  
  그들은 또 한때의 적장(敵將)이었던 박정희(朴正熙)의 개발전략을 따라 배우고 있다. 중국은 명분론이 너무 강한 주자학에 반발하여 일어난 실용적 유교인 양명학을 발전시킨 전통을 이어받아 공산주의를 실용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등소평(鄧小平)이 한 유명한 말-『고양이는 쥐만 잡으면 되지 검든 희든 무슨 상관인가』라는 실용성은 공산주의가 가진 교조성을 중화시켰다. 조선조(朝鮮朝)는 주자학을 수입하여 그 본산인 중국보다도 더 극단화하고 교조화, 절대화함으로써 근대화를 스스로 제약하는 족쇄를 채웠던 전력이 있다. 그런 토양에 뿌려진 공산주의의 씨앗은 본산인 소련보다도 더 교조화 된 김일성(金日成)주의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교조적 유교와 교조적 공산주의 사이에 악마의 교배가 일어난 것이다.
  
  ▲주자학의 핵심논리는 성리학(性理學)이란 세 글자에 들어 있다. 性은 글자 그대로 인간이 날(生)때 가지고 태어난 마음(心)이다. 주자학에서는 이 性은 인간과 우주를 관통하는 원리인 理가 인간에 들어와서 구현된 절대 신이라고 본다. 주자학은 공산주의처럼 아주 낙관적인 인간관, 즉 성선설(性善說)을 갖고 있다. 어떤 인간도 수양만 하면 이 절대선의 경지인 性에 도달할 수 있고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물론인 공산주의는 이상사회에 도달하는 방법을 경제구조에서 찾는데 반해 유심론인 주자학은 인간의 마음에서 찾는 것이 다를 뿐 미래에 대한 엄청난 자신감에서는 같다.
  
  ▲절대선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수양을 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주자학은 독서, 그것도 신학문이 아닌 고전의 반복적 독서를 주장했다. 인간의 심성을 풍부하게 해주는 문학적 독서보다도 도덕 규범을 가르치는 경학, 즉 사서오경을 주로 했다. 교양인보다는 딱딱한 관료를 키우기에 적당한 학문법이었다. 더구나 明의 쇄국정책에 의해 조선조는 유학생을 중국으로 보낼 수가 없었다. 외국 사정을 모르는 폐쇄적 풍토가 조장되었다.
  
  선비와 노동당 간부
  
  ▲선비들은 독서 이외의 활동을 경멸하였다. 대신(大臣)이 활 타고 말 타고 하는 것을 수치로 보았다. 그런 의식을 반영한 주자학적 계급구조가 사농공상(士農工商)이었다. 그 핵심은 경제활동, 그 중에서도 시장과 상인을 천대하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주자학은 시장을 착취의 도구로 본 공산주의와 일치하고 있다. 주자학과 공산주의가 들어간 곳에서는 경제와 그에 따른 과학 기술이 발전할 수가 없게 돼 있다. 이것이 이 두 이념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前근대성의 원인인 것이다.
  
  ▲주자학의 지배 엘리트는 공산주의 사회의 당에 해당하는 선비계급이었다. 사회주의가 프롤레타리아를 앞세운 소수 지식인데 의한 독재라면 조선(朝鮮)은 선비들에 의한 독재였다. 이 두 엘리트 계급의 특징은 경제, 기술, 과학 같은 실무에 무능한 대신 관념, 도덕, 교리, 이념 같은 종론에는 유능한 그 교조성에 있었다.
  
  ▲이들 지식인 지배층은 명분, 이념, 정통성 같은 관념을 극단적으로 추종하다가 현실, 국가, 민족을 희생시키는 모순을 드러낸다. 金正日이 주체사상의 순결성을 지킨다고 집단농장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주민들을 굶기고 있는 현실, 광해군이 자주 실용 외교로써 후금(後金) 누루하치의 침략을 저지하고 있을 때 이것이 명(明)에 대한 사대에 어긋난다고 하여 인조반정(仁祖反正)을 일으켜 결국은 두 번의 호란을 불렀던 선비들의 위선이 좋은 예이다. 위선적 명분에 충성하면 국가와 민족을 배신하게 되었다.
  
  면면히 흘러온 조선조(朝鮮朝) 지식인 사회의 위선, 명분, 도덕주의, 극단적 교조성, 경제 무시의 전통은 「주자학적 공산주의」인 오늘의 북한 金日成 주의를 결과하는 역사적, 문화적 토양이 되었다. 이것은 남북한이 공유하고 있는 주자학적 체질이 지금도 위험한 독소를 생성시킬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다행히 남한에서는 이승만(李承晩), 박정희(朴正熙) 두 대통령에 의하여 단행된 농지개혁과 근대화 혁명에 의해서 그런 봉건적 잔재가 많이 약화되고 독소가 많이 제거되었다. 북한은 주자학의 독소가 그대로 공산주의로 전이되어 악성 암 덩어리를 만들고 만 경우이다.
  
  히틀러와 같은 공산당의 파쇼
  
  황장엽(黃長燁)씨가 「비밀파일」에서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공산주의의 문제점은 절대화, 교조화, 무오류성, 계급독재, 전체주의이다. 그는 심지어 공산주의식 전체주의는 히틀러식 파쇼와 본질적으로 같다고 말하고 있다. 남한의 친북(親北)세력은 군사정권을 파쇼라고 욕했는데 黃씨는 그 친북 세력이 바로 파쇼세력의 앞잡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아서 퀘스틀러는 1938년 파리의 독일 망명 작가협회에서 연설하는 것을 기회로 잡아 공산주의와 결별하려는 메시지를 담기 위하여 세 마디를 연설문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어떤 운동도 어떤 당도 어떤 인간도 무오류성을 주장해서는 안된다』 『적에게 아부하는 것이나 다른 방법으로 같은 목적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것이나 나쁘기는 마찬가지이다』 『해로운 진실은 쓸모 있는 거짓말보다 낫다』(A harmful truth is better than a useful lie) 이 마지막 말은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말이다. 앙드레 지드도 「러시아 기행」에서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구호-믿어라, 복종하라, 싸우라-를 모스크바에 붙여 놓아도 구별을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썼다.
  
  「한 사람과 이야기하면 모든 사람과 이야기한 것이 된다. 관료주의에 의한 독재, 새로운 귀족의 탄생. 그들이 노동자들에게 보이는 경멸. 승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보원이 되는 것. 모든 사람들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의심… 자본주의의 가장 나쁜 점들만이 여기서 재생되고 있다. 히틀러의 독일을 포함해서 이렇게 인민을 압박하고 겁주고 복종시키고 있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나는 소련이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작은 희망이라도 있었다면 침묵을 선택했을 것이다. 소련은 유혈과 희생이 만들어준 혁명을 버렸다. 그들이 反혁명이라고 매도하고 있는 그것이 사실은 고귀한 혁명정신이다. 소련은 다른 나라들의 공산당을 끌고 같이 침몰하고 있다. 소련은 우리의 우정어린 희망을 배신하였다. 러시아는 신이 되는 데 실패했다. 러시아는 이 불구덩이의 시련에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진실을 당위에 놓는다」
  
  교조성이 자체 수정능력을 봉쇄
  
  황장엽(黃長燁)씨는 이렇게 쓰고 있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상의 순결성, 혁명의 순결성이라 떠들면서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도 않는 절대적인 것을 바라고 있다. 일방을 절대화하면 타방도 절대화되어 결국 그 차이가 상대적인 것으로 되어버린다.
  
  노동 계급적인 것은 다 좋고 자본주의적인 것은 나쁘다고 주장하는 당성(黨性)을 고집하면서 자기 반성을 하려는 사람들을 수정주의적 이단자라고 공격하였으며, 경쟁 상대자로부터 배우려는 아량을 가지지 못하고 더욱 더 교조주의를 심화시켜 나갔다. 독일식 전체주의는 민족주의를 이념으로 하였다면 소련식 전체주의는 계급주의를 이념으로 하고 있을 뿐 전체주의임에는 차이가 없다. 전체주의가 민주주의에 의하여 패망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민주주의보다 낡은 사상이라는 것, 즉 봉건사상과 통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黃씨는 소련식 전체주의와 등소평(鄧小平)식 개발 독재를 구별하고 있다. 개발독재의 타당성은 옹호하고 전체주의는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독재는 국민들의 사상이나 사생활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지만, 전체주의는 인간의 모든 면을 통제한다. 몇 년 전 김영삼(金泳三) 정권에 봉사한 한 어용학자는 박정희(朴正熙) 통치를 스탈린 압제와 동리시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런 과장법으로써 金泳三 정부의 민주성을 강조하려 한 것이지만 이런 태도야말로 黃씨의 말을 빌면 과거를 허무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마르크시즘의 교조성은 자체 수정의 길을 봉쇄하였다. 黃씨는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자본주의를 수정한 케인즈주의를 배척하지 않았으나 사회주의 나라에서는 마르크스주의의 순결성을 고수한다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배척하였다」고 개탄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역사의 주인이고 사회주의는 역사의 객(客)이라고 한다. 자본주의가 가진 놀라운 자체반성 능력과 궤도수정 능력, 그러면서도 본질을 잃지 않는 자주성이 그 끈질긴 생명력의 비결이다. 黃씨는 자본주의체제가 가진 그런 생존력의 요인을 민주적 토론이 보장되는 분위기라고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
  
  「모택동(毛澤東)은 전략적으로는 적을 경시하더라도 전술적으로는 적을 중시하라고 했는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타도 대상의 역량에 대한 과학적 고찰도 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이론은 결국 엉터리임이 증명되었는데 그의 가장 큰 오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으로 양분되어 투쟁한다는 예언이었다. 과학과 기술, 그리고 생산성의 발달로 중산층이 생기고 노동자들이 이 중산층으로 승격하는 사건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국이 좋은 예이지만 이 중산층이야말로 점진적인 개혁의 중심세력이 되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점을 개선해 감으로써 사회주의 혁명의 소지를 없애갔던 것이다. 마르크시즘에 내재(內在)된 파쇼적 전체주의의 씨앗은 계급투쟁설에 입각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의한 독재 이론이다. 黃씨는 그의 저서에서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가짜 사회주의
  
  「계급을 없애는 방법으로서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이익을 신성화한 것이 잘못이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낡은 계급을 없애고 새로운 지배계급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계급투쟁을 절대화하는 데로부터 출발하여 계급투쟁은 무자비할수록 좋고, 따라서 폭력적으로 진행할수록 좋다고 보면서 폭력성을 혁명성의 최고 표현으로서 찬양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주의와 배치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도 배치된다」 黃씨는 마르크스주의를 가짜 사회주의로 보고 있다. 이 부분이 그의 가장 신랄한 비판일 것이다. 마르크스는 로버트 오웬 같은 사람들의 이상촌 건설을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경멸하고 자신을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추켜세웠는데 黃씨는 이 공상적 사회주의를 인도주의의 관점에서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 점이야말로 黃씨를 이해하는 열쇠인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레닌-스탈린-金日成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비판의 기준은 휴머니즘이다. 이 책에서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폭력, 독재, 파쇼, 절대성, 과거부정, 당내의 비(非)민주성, 무오류성에 대한 그의 비판은 그것이 反인도적이라는 데 있다. 학생들의 폭력시위와 노동자들의 파업도 같은 차원에서 비판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폭력과 사랑이다. 그는 사랑의 이름으로 폭력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과 생명의 존귀성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와 목사의 수필집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순간적으로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그는 「강요와 폭력으로는 친딸의 사랑도 얻을 수 없다」면서 사랑의 기쁨과 힘에 대하여 감동적인 토로를 한다. 「사랑이 주는 기쁨과 힘은 결합된 보다 큰 생명을 자기의 생명으로 지니게 되는 데서 받는 기쁨과 힘이며, 고독이 주는 고독과 슬픔은 사랑의 유대가 끊어져 보다 큰 생명으로부터 떨어져 작은 개인의 생명만을 지니게 되는데서 받는 슬픔과 고통이다. 어떤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
  
  가장 큰 생명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다. 가장 큰 생명을 지닌다는 것은 가장 많은 생명과 결합되어 있는 사람이다. 10명의 생명이 사랑의 유대로 굳게 결합될 때 그 생명력은 1백 배, 1천 배의 생명력이 나오게 된다」 그는 생존경쟁이 사회 발전을 주동하는 힘이란 점을 인정하면서 「그 도수를 넘어 약육강식으로 되면 사회 발전을 억제하고 인간생활을 동물화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이 서로 싸워 한 사람을 타도하여 버린다면 한 사람의 신세를 망쳐버릴 뿐 아니라 한 사람이 벌 수 있는 몫을 벌지 못하게 만들며, 더 나아가서는 두 사람이 협력을 하여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을 못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은 혁명가의 일생은 투쟁으로부터 시작하여 투쟁으로 끝난다고 주장하면서 투쟁을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본성으로 떠벌이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관인 개인주의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개인적 자유와 평등에 대한 극도의 이기적 추구가 불러올 폐해를 집단적 사랑에 기초한 사회주의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이익보다 가족의 이익, 가족의 이익보다 민족의 이익, 민족의 이익보다 인류의 이익이 더 귀중하다」는 그의 주장에서는 세계주의자의 입장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사랑에 기초한 사회주의만을 민족과 국가간의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金正日 암살에 대한 암시
  
  그가 주장하는 사회주의는 결국 집단적 사랑, 사회적 유대관계, 당내 민주주의에 기초하여 경쟁과 협력을 균형 잡은 평화로운 사회, 자주성과 창조성이 꽃피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이것이 주체사상이라고 짤막하게 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기초했다는 주체사상은 金日成에 의하여 왜곡되었다는 것인지, 최근에 와서 당초의 이론을 스스로 수정한 것인지는 그가 설명해야 할 부분이다. 그의 저서를 읽으면서 문득 생각난 사람이 있다.
  
  장기균(張琪杓)씨이다. 사랑의 사회화를 강조하고 있는 논리나 설명이 張씨와의 대화에서 들었던 것과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張琪杓씨를 재야 운동가로 만든 전태일(全泰壹)의 일기에 나타나는 대목을 연상시키는 황(黃)씨의 주장도 더러 있다.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바로 이런 「사회적 사랑」이 아닌가 하는 감상이 생겼다.
  
  대학생이 노동현장에 나가 위장취업을 감행하였던 그 열정의 바탕에는 이 사랑의 사회적 확산이라는 명제가 있었다. 이 정의감은 민주화 운동의 동력이었다. 한국 역사상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집단적 정의감과 인도주의, 그것이 바로 1970∼80년대의 시대정신이었다. 6·29선언 뒤 민주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순수성은 사회주의 혁명 이데올로기의 침투에 의해서, 정치건달과 위선적 지식인들의 협잡과 말장난에 의해서 오염되고 배반되고 이제는 추억하기도 싫은 과거사로 된 것이다.
  
  마르크시즘은 인간의 악마성을 총동원하는 정교한 기술을 발전시킨 증오와 위선의 과학이다. 이 악마의 씨앗이 한국 사회, 특히 지식인 사회와 정치권, 그리고 권부(權府)에까지 침투함으로써 민주화 투쟁을 통해서 소중하게 쌓아올린 집단적 사랑이란 우리의 사회적 자산이 사라져 버렸거나 소매치기 당해서 지금도 권력 건달들과 위선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 것이 黃長燁씨의 글이었다.
  
  인도주의로 일관하고 있는 黃씨가 두 번 화를 내면서 총살 암살 운운하는 험악한 말을 하는 대목이 있다. 「시위와 파업은 인민에 큰 손실을 줄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 자신 없는 자들이 수준이 낮은 자들을 선동하여 폭력적으로 지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편 이성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하여 폭력을 쓰는 자에 대하여는 폭력을 적용해야 하며 총살까지 하여야 한다」 이 대목은 그가 그리고 있는 인도적 사회주의의 공권력관(觀)이다.
  
  그는 또 「언론 자유가 없고 결사의 자유도 없어 이성적 투쟁이 불가능한 독재체제하에서 폭군을 제거하는 폭력은 정당화된다」고 했다. 그것이 대중적 희생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을 쓸 때 黃씨는 金正日 암살을 염두에 두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북한에서 민중봉기나 인민혁명을 기대할 수는 없다. 북한의 변화는 지배층 내부의 권력투쟁이 불을 붙이는 방향으로 진전될 수밖에 없다. 북한 지배층은 세상 돌아가는 정보에 노출되어 있어 내심 장래를 가장 불안하게 생각하는 그룹이다.
  
  정보가 차단된 인민들보다는 이 지배층 속에서 변화의 씨앗이 이미 자라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1990년대 초에 평양에 갔던 남한측 대표단의 한 인사는 친숙해진 북한측 인사로부터 『통일된 뒤에 우리 아이들을 잘 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불안한 특권층을 표적으로 삼아 심리전을 편다면 북한을 손바닥에 놓고 갖고 놀 수가 있다.
  
  金正日의 기 꺾고 갖고 노는 방법
  
  예컨대 「지금 정치범 수용소의 인간 도륙에 관계하고 있는 책임자들에 대해서는 통일된 뒤에 유태인 학살범 처벌에 준 하는 방식으로 전범재판을 벌여 끝까지 처단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정치범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金正日의 기를 꺽어놓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이스라엘에서 개발하여 하나에 50만 달러씩 팔고 있는 공대지(空對地) 미사일은, 가령 전투기가 휴전선을 넘어가지 않고도 주석궁의 사진과 좌표만 입력하여 발사하면 조종사가 스크린을 통해서 비행경로를 조정하는 데 따라서 金正日의 집무실 창 속으로 정확무비하게 돌입한다.
  
  이런 미사일을 수십 기 배치하여 놓고서 매일 金正日의 행선지를 추적하여 발사 자세를 취하고 있고, 그 사실을 언론에 흘려 둔다면 과연 남한에 대한 테러를 지금처럼 멋대로 할 수 있겠는가.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집단은 그 지휘자의 기만 죽여 놓으면 다루기가 의외로 쉽다. 더구나 우리 헌법에 의하면 金正日은 내란군의 수괴로서 그를 암살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정당화된다. 도덕적으로도 金正日의 지령에 의하여 1백15명이 죽은 대한항공 858편 사건과 17명의 엘리트가 피살된 아웅산 사건을 상기한다면, 또 그 한 사람의 죽음으로써 수천만 명의 생명이 보다 안전해진다면 암살은 黃씨의 말대로 이상적인 해결책일 수가 있다.
  
  국가적으로 봐서도 테러를 당했을 때 보복 수단을 갖지 못한 조직은 협회이지 근대국가가 아닌 것이다. 평화주의자 黃씨의 이 조언은 상당한 검토를 요한다. 黃씨는 「노동계급에게는 조국도 민족도 없다고 하면서 모든 사회관계를 계급에 귀착시키고, 계급의 이익을 사회 전체의 이익보다 위에 놓는 계급주의적 관점은 反사회적이다」라고 했다.
  
  그는 또 「노예주와 노예의 관계보다는 지주와 농노의 관계가 더 좋고, 그보다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가 더 좋은 법인데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를 불구대천의 관계라고 하여 계급투쟁을 절대화한 것은 잘못이다」라고도 했다. 아무리 좋은 이론, 음식, 제도, 이상도 그것을 절대화하면 우상숭배가 되어버리고 현실을 파괴하게 된다. 「절대로」 「최고로」 「확실히」같은 강력한 말들을 많이 쓰는 사람은 위험하다.
  
  절대화라는 것은 균형감각과 건전한 상식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이 절대화를 숭배하는 분위기에 너무 오래 젖어 있었다. 비(非)타협적, 순결성, 처녀성, 지조, 고결, 대쪽, 강경 같은 말들이 애용되고 있다. 도덕의 절대화는 인간과 공동체(사회, 국가, 민족)를 파괴한다. 공산주의자들은 계급의 이름으로 가족의 가부장적 윤리를 봉건적인 것으로, 민주주의와 국가주의를 국수주의로 매도하였다. 조선조(朝鮮朝)의 선비들은 그들의 계급이익을 국민의 복지와 국가의 정통성보다 위에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