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건달들, 그리고 위선자 - 「황장엽(黃長燁)비밀파일」은 누구를 고발하고 있나
  
  黃長燁은 공산주의를 파쇼와 동일시하면서 그 뿌리에서부터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그는 마르크시즘에 내재(內在)한 교조성과 절대성이 자체 수정 능력을 거세했다고 말했다. 이런 교조성을 더욱 극단적으로 심화시킨 북한의 역사적 문화적 토양은 주자학의 위선적 명분론이었다. 주자학과 공산주의의 악마적인 교배. 黃씨의 글은 이 땅의 지식인 사회가 지니고 있는 이 유전인자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그가 고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이다
  
  <1997년 5월 월간조선>
  
  지옥을 본 사람이 천사를 알아본다
  
  기자는 지난 3월23일 보스턴의 로간 공항을 출발하는 유나이티드 항공 여객기에 오를 때 월간조선(月刊朝鮮) 4월호 부록 「황장엽(黃長燁) 비밀파일」을 갖고 탔다. 기자는 로스엔젤레스 공항을 경유하여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까지 날아갔다. 비행시간만 11시간이 걸렸다. 기자가 연수 중인 하버드 대학이 봄방학이라 하와이로 놀러 가는 길이었다. 태평양 상공에서 黃長燁을 읽기 시작했다.
  
  냉정하게 생긴 그의 얼굴 사진과 어울리는 문상(文相/문장의 인상)이 떠올랐다. 공산주의를 마르크시즘과 레닌이즘의 뿌리에서부터 사정없이 공격하고 있는 이 글이 쓰여진 상황은 상당히 절박한 것이었으리라. 남한으로 탈출할 것을 결심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두려고 쓴 것으로 보아 이 글의 가치는 평양의 권부(權府), 그 깊은 곳에서 한 지식인이 목숨을 걸고 공산주의를 고발하고 있다는 현장성과 긴박성에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가 1936년 소련 여행에서 돌아와서 썼던 「러시아 기행」, 김현희(金賢姬)가 안기부의 안가(安家)에서 썼던 책과는 다르다. 나치 비밀경찰의 눈을 피해 골방에 숨어 살면서 썼던 유태인 소녀 안네 프랑크의 일기와 더 비슷하다. 차이점은 안네 프랑크는 결국 수용소로 끌려가 사라졌지만 黃長燁은 안전하게 탈출하여 이 책보다 더 실감나게 증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70평생을 공산주의를 위해 바친 사람이 어떻게 이처럼 미련 없이, 유보 없이, 철저하게 자신의 신앙을 부정할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을 하면서 기자는 옛날에 읽었던 어떤 책에서 한 전향한 전(前) 공산주의자가 한 말이 생각났다. 「앞으로 전개될 진정한 대결은 현(現)공산주의자와 前 공산주의자의 싸움이 될 것이다」(한반도에서는 前 공산주의자 박정희(朴正熙)가 체제경쟁에서 現 공산주의자 김일성(金日成)을 눌렀다)
  
  아서 퀘스틀러는 헝가리 출신의 공산주의자로서 나중에 전향하여 「백주의 암흑」을 썼다. 1930년대 소련의 스탈린 정적(政敵) 재판을 다룬 소설이다. 제국주의자들의 스파이로 몰린 한 직업적 공산주의자가 비밀경찰의 설득에 따라서 당의 무 오류성을 옹호하기 위하여 재판정에서 자발적으로 「나는 제국주의자들의 앞잡이였다」고 거짓 자백을 하고 사형을 당하는 과정을 끈끈하게 묘사해 간 소설이다. 퀘스틀러는 이런 말을 했다. 『지옥을 본 사람이라야 천사를 알아본다』 공산주의란 지옥을 본 사람이라야 자본주의 체제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자는 아주 어릴 때 공산주의에 관심을 가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읽은 미국 작가 에드먼드 윌슨의 「핀란드 역까지」(To the Finland Station)의 번역서가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극적인 생애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트로츠키는 곧 나의 우상이 되었다. 고 서점에서 산 영어책 속에 공산당 선언의 원문이 소개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가슴을 두근두근 거리면서 「한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로 시작되는 글을 밤새워 읽던 기억, 그리고 대학 1학년 때 도서관 서가에서 썩고 있던 일본어판 자본론을 찾아내 잉여 가치론을 읽다가 햇볕드는 창가에서 잠이 들었던 1960년대 초반의 일들이 태평양 상공 11km에서 되살아났다.
  
  트로츠키의 유언
  
  적군(赤軍)의 창건자로서 10월 혁명 뒤의 내전(內戰)에서 무자비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소련 혁명의 성공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트로츠키는 지성, 열정, 그리고 문학성까지 갖추었던 세계주의자였다. 레닌의 사후(死後), 이 교양 있는 혁명가가 정권을 잡았더라면 세계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공상해볼 때가 있다. 스탈린이 소련의 사회주의 혁명을 정착시키는 게 선결과제라고 주장한 데 대하여 트로츠키는 마르크시즘의 원칙에 충실하여 세계 노동자 계급의 총 단결을 통한 세계혁명론을 고집하였다.
  
  1929년 스탈린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하여 추방된 그는 멕시코에서 망명생활 중이던 1940년 8월 스탈린이 보낸 자객(刺客)에 의해 암살되었다. 트로츠키의 미발표 원고와 일기를 포함한 그의 기록들은 기자가 다니는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기자는 지난가을 이곳으로 온 뒤 30여년 만에 다시 이 유태인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고 일기와 자서전을 읽고 있다.
  
  하와이 여행에서 돌아와 그의 일기를 다시 뒤지다가 맨 끝에 붙어 있는 유언을 읽게 되었다. 그가 암살되기 7개월 전에 고혈압으로 고생하면서 써둔 유서이다. 「스탈린의 음험한 비방에 대하여 일일이 대답할 필요가 없지만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하거니와 나는 혁명가로서 한 점도 오점이 없는 생애를 살았다. 노동계급의 적들과 한 번도 뒷거래를 한 적도 없고 협상을 시도해본 적도 없다.
  
  나의 의지에 따라 산 43년간 나는 혁명가였고 그 중 42년간은 마르크시즘의 기치 아래서 싸웠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 갈 것이다. 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로서, 마르크시스트로서, 변증법적 유물론자로서, 그리고 비(非)타협적 무신론자로서 죽을 것이다.
  
  인류의 공산주의적 미래에 대하여 나는 어린 시절 때보다 더 확고한 낙관적 전망을 갖고 있다. 나타샤(기자注-트로츠키의 아내)가 지금 막 오더니 창문을 활짝 열어 청신한 공기가 방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담 밑에서 자라 올라오는 녹색의 잔디와 담 위의 푸른 창공, 그리고 온 천지를 덮은 햇볕을 본다. 생(生)은 아름다운 것이다. 미래의 세대들이 이 生으로부터 모든 악과 압제와 폭력을 청소해버리고 이 삶을 한껏 즐기게 되기를 기원한다」
  
  악성 암종의 토양
  
  황장엽(黃長燁)은 「비밀파일」에서 트로츠키가 무덤으로 가지고 간 이 모든 신념을 오류요, 착각이요, 사기라고 부정하고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한 역사발전 법칙, 계급투쟁, 프롤레타리아 독재, 무신론, 시장(市場)의 무시. 당(黨)의 무 오류적 영도성은 다 쓰레기라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레닌과 스탈린은 마르크시즘을 잘못 적용하여 마르크스의 본의를 왜곡했다는 식으로 변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黃씨의 논리는 마르크시즘 안에 악마의 씨앗이 다 들어있기 때문에 그런 변명은 헛소리라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가 북한 이념체계의 수호자요, 주체사상이란 것의 설계자였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이 책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실감할 수가 있겠다.
  
  黃씨의 망명 보도를 전하면서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건국 이념을 기초했던 터마스 제퍼슨의 미국 탈출과 같은 사건이라고 평했다. 소련 이념의 수호자이던 수슬로프가 미국으로 탈출한 것과 비슷한 사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남북전쟁 중에 느닷없이 링컨이 남군한테로 달아날 사건 정도라야 黃씨의 망명을 능가하는 충격을 지닐 것이다.
  
  전체주의 권력의 핵심부에서 현직에 있던 사람이 이런 철저한 「배교(背敎)」를 한 예를 인류사에서 달리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고슬라비아에서 티토 다음의 제2인자였던 밀로반 질라스가 「신(新)계급」이란 책을 써서 공산 특권층의 등장을 비판한 적은 있으나 비판의 강도에 있어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황(黃)씨의 전면적인 부정은 그가 경험한 북한 공산체제의 전면적인 악마성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목격한 것의 참혹성에 비례하여 비판도 살벌해진 것이리라. 이 책을 읽으면서 기자는 黃씨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가 비판하고 있는 것의 한 30% 쯤은 한국의 위선적, 친북(親北) 지식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비판하고 있는 것은 북한 공산주의뿐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이 악성 변종이 자란 토양이 한국 사회이고 먹물 먹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 피 속에서 지녀온 역사적 문화적 유전인자가 이 암 덩어리의 생성에 크게 기여한 그 점인 것이다.
  
  그가 정말 고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이다. 공산주의를 비판한 전(前) 공산주의자의 기념비적인 저술로 「황장엽(黃長燁), 비밀파일」은 이제 앙드레 지드, 아서 퀘스틀러, 밀로반 질라스, 스티븐 스펜더(영국 시인)와 같은 반열에 오를 것이다. 한국의 분단시대 지성사에서도 한 획을 긋는 책이 될 것이다. 분단은 언제 끝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북한 공산 집단에 대한 도덕적, 역사적 확정판결은 이 책에 의하여 내려진 바나 다름없다. 「다만 이 글을 정직하게 받아들인다면」하는 단서를 붙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남한의 親北 지식인들이 이 책을 놓고 온갖 모함과 비방을 다할 가능성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박정희(朴正熙) 노선과 같은 주장
  
  황(黃)씨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이 책이 쓰여진 관점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경제개혁으로 될 수 없는 것처럼 자본주의의 다당제 의회 민주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합리적인 정치개혁으로 될 수 없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 사회 공동의 이익에 배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유는 귀중하지만 자유주의는 옳지 않다.
  
  개인의 자유는 집단의 요구에 맞게 제한되어야 한다. 굶어죽는 자유와 평등은 참다운 자유와 평등이 아니고 인권의 옹호도 아니다. 인민의 이익을 침해하고 사회 발전에 역행하는 자들은 아무리 주관적 동기가 좋다고 하더라도 탄압되어야 한다. 이런 자들에게 동정하는 것은 가짜 도주의이며 가짜 민주주의이다. 학생들이 동맹휴학을 하고 반정부 시위에 나서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학생들에게 정권을 맡기면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생산 노동자들이 생산을 포기하고 파업에 나서는 것은 탄압되어야 한다. 경제발전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 약간의 결함이 있다 하여 반대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든 사회주의를 표방하든 다 반동적이기 때문에 철저히 탄압하여야 한다. 문화적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의 자유화는 분열을 초래하고 분열은 국력을 약화시키며 외세에게 침략의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평화주의에만 의거해서는 안 된다.
  
  미친개와 맨손으로 싸운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아무런 힌트 없이 위의 인용문을 보여주면 박정희(朴正熙)의 연설문이라고 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朴正熙가 주장한 한국적 민주주의의 핵심은 1960∼70년대의 한국은 서구와 사회발전 단계가 다르기 때문에 서구식 민주주의를 그대로 도입할 수는 없고 우선 경제발전에 주력하여 민주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황장엽(黃長燁)씨의 주장도 거의 이런 맥락인데 주장의 대상은 중국과 북한이다. 중국의 등소평(鄧小平)식 개혁개방도 정치를 제한하고 경제를 푼 점에서는 朴正熙식과 기본적으로 같은 노선인데 黃씨는 이 중국식 근대화 정책을 극구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의 개혁정책을 비난하고 있다. 黃씨는 비록 소련 공산당이 집단농장 같은 좌경적 오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같은 마르크시즘의 근본적 문제로 인하여 사회주의 건설에 실패하였지만 인민들이 피땀 흘려 건설한 70년의 역사를 소중히 여기고 거기서 긍정적인 것을 뽑아내려고 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소련 공산당 지도자들은 이 70년 역사를 「허무적으로 대하고 무조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투항하는」꼴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 공산당은 모택동(毛澤東)의 인민 공사 같은 과오가 있었음에도 「과거를 허무적으로 대하지 않고 비판은 하되 부정은 하지 않는」역사관으로써 성공적인 전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적을 때려부수고 적에게 이기는 것보다 자기를 옳게 비판하고 자기에게 이기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봉건적 잔재
  
  黃씨의 이런 생각은 그의 역사관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는 귀순 직전에 쓴 편지에서 「남북한의 대결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이 아니라 봉건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이다」라고 했었다. 이 「비밀파일」에서도 그는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의 성격을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봉건체제에서 자본주의로나가는 민주주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공산당이 했어야 할 일은 러시아의 자본주의적 요소를 말살하지 않고 오히려 장려하여 자본주의를 거쳐 사회주의로 전진하도록 도왔어야 했었다고 비판했다.
  
  黃씨는 봉건체제를 근대화하는 데 있어서는 그 후진성에 걸 맞는 정치적 자유가 허용되어야지 서구적 민주주의를 그대로 적용하면 자주성을 잃고 선진국에 투항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의 이 시각은 朴正熙가 5·16 직후 쓴 두 권의 책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과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선명하게 주장했던 역사관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박정희(朴正熙) 근대화 혁명 이념의 핵심은 당시의 한국을 민주주의가 아닌 봉건체제로 보았다는 점이다. 장면(張勉)정권의 껍데기는 자유민주주의로 돼 있으나 실속은 봉건적 질서라는 그의 시각에서 우리는 그의 혁명성의 정체를 포착할 수가 있다. 상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상황의 해석이 역사를 바꾸는 경우이다. 그는 한민당에서 시작된 구(舊)정치인들(조병옥(趙炳玉) 윤보선(尹潽善) 장면(張勉)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으로 이어지는 직업 정치인 그룹)을 조선(朝鮮)시대 주자학 선비들의 당파성을 이어받은 봉건적 잔재로 파악하였다. 사대성과 당파성, 그리고 위선성을 舊정치형태의 문제점으로 진단한 그는 자주성, 실용성, 단결성을 근대화의 기본정신으로 설정하였다.
  
  박정희(朴正熙)의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한 국가건설을 우리가 지금 별 이의 없이 근대화라고 부른다는 것은 그것의 기반이 되는 이념으로서의 이런 혁명적 논리를 사실상 추인하고 있는 셈이다. 황장엽(黃長燁)씨의 글은 북한이 지금 역사발전 단계상 5·16 이전의 남한과 같은 봉건체제이며 이 단계에 맞는 개혁은 朴正熙식이라는 논리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면 북한에서 朴正熙식의 개혁이 가능한가. 월간조선(月刊朝鮮)에서 특종 보도한 金正日의 비밀연설이 해답을 내려주고 있다. 이 연설에서 김정일(金正日)은 농민시장을 비판하고 있다. 농민시장이란 농민들이 개인적으로 관리하는 작은 텃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파는 일종의 암시장이다. 그래도 이 기능이 있기 때문에 인민들이 식량난에 그나마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는 「당에 정책이 있으면 우리에게는 대책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이 「인민의 대책」이 암시장인 것이다.
  
  김정일(金正日)이 이것을 비판한 것은 식량난의 근본 원인인 생산성 낮은 집단농장을 개인농화 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수단을 개인이 가지면 생산물은 많아지지만 국가에 의한 통제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사상통제의 고삐를 놓지 않으려고 방법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 길을 막고는 국가적 구걸을 계속하겠다는 金正日이다.
  
  그는 또 자신은 군대의 관리에 전념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에는 관계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최고 통치자가 그 통치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관여하지 않는다니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朴正熙 근대화의 성공은 그의 경제 제일주의에 있었고 金日成 실패의 가장 큰 이유는 군사제일주의에 있었는데 아들이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본질적으로 봉건체제라는 의미는 통일의 방도에 있어서 고민거리를 제공한다. 봉건체제와 선진 자본주의 체제를 어떻게 합칠 것인가. 수평적 통합은 불가능하다. 역사발전 단계가 다른 두 사회의 격차 때문이다. 수직적 통합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남한이 북한을 접수하여 朴正熙식 개발전략으로써 강력하게 통제하고 지도해야 된다는 것을 뜻한다. 시민적 자질은 없고 거민적(巨民的) 태도만 갖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시민적인 처방을 한다는 것은 부작용을 낸다.
  
  위선적 온정론은 그들을 망친다. 南에 의한 이런 지도력이 먹혀들려면 통일부터가 힘의 압도적 우위에 근거한 북한 접수라야 한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통일 뒤 남한의 친북 지식인들이 인도주의자로 위장하여 북한 주민들의 불만을 선동하여 정치세력화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연구도 필요할 것이다.
  
  마르크스의 역사관
  
  황장엽(黃長燁)씨의 공산주의 비판을 이해하려면 공산주의의 기본논리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는 독일 관념철학의 거봉(巨峰) 헤겔의 변증법을 빌어와 관념이 아닌 물질세계에 적용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불리는 공산주의자들의 역사관이다. 역사는 正-反-合의 운동을 반복하면서 높은 단계로 발전한다. 즉 봉건체제-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 역사발전의 기반을 마르크스는 경제구조, 특히 생산양식의 변화에서 찾았고, 그 변화의 동력을 계급투쟁으로 보았다.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그의 공식을 변증법적 유물론과 결합시키면 이런 역사발전의 청사진이 펼쳐진다. 자본주의(正) 속에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 갈등하다가 노동자 계급이 정권을 잡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시하는 사회주의(反) 단계에 도달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목적은 계급을 타파하는 것이다. 그 작업이 끝나면 계급이 없는, 따라서 더 이상의 정-반-합 운동도 필요없는 공산주의(合)에 도달하여 착하게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이다.
  
  ▲여기에 레닌이 중요한 하나를 덧붙였으니 당의 영도적 역할이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지도할 선봉조직으로서 무자비한 규율로 무장한 소수의 정예 집단인 당(黨)이 혁명을 영도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지휘해야 한다고 했다. 이 당의 결정은 무 오류라는 것이었다. 레닌 시절에는 그래도 당의 무 오류적 결정에 도달하기 위한 당내의 민주적 토론은 어느 정도 이루어지기도 했었으나 스탈린 시절에 와서는 이것이 사라졌다.
  
  따라서 당의 무 오류성은 지도자의 무 오류성으로 둔갑하게 되었다. 金日成은 여기에 또 주체사상이란 혹을 붙였다. 주체사상의 십계명인 「유일사상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에 의하면 金日成의 교시는 무 오류이므로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고 돼 있다. 교시를 놓고 찬반토론을 하는 것은 엄금되었다. 토론대상에서도 제외된 것이다. 무 오류인 인간은 신격(神格)을 갖게 된다. 金日成의 유령이 지금도 북한을 통치하고 있는 것은 그가 神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