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점보기의 조종석에 앉아 파리→앵커리지간의 9시간 비행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이 북극항로는 북위 80도의 북극권을 통과한다. 지구의 꼭지점 위를 나는 기분을 내게 하는 항로이다. 왼쪽엔 해, 오른쪽엔 달이 떠 반쪽의 낮과 반쪽의 밤사이로 점보기는 날아갔다. 지평선은 붉은 노을로 불타고 있었다. 그 색깔은 하늘이 높아질수록 노랑, 코발트 블루, 네이비 블루, 다크 블루로 변색되어 하늘의 화폭에다가 열정적인 그림을 그려놓고 있었다.
  
  그 아래로 전개되는 백색의 대륙은 신이 만든 거대한 아이스크림이었다. 높이가 4천m 이상인, 눈 덮인 얼음산은 그 눈의 부피로 해서 푹신푹신한 얼음과자의 느낌을 주었다. 쫙쫙 갈라진 얼음바다, 빙하, 얼음산 언저리를 도끼로 쳐 낸 것처럼 쭈빗한 빙산, 끝없는 대 빙원, 거창한 접시 모양의 대 분화구가 계속 나타났다. 인간의 손이 한번도 닿은 적이 없는 태초 그대로의 자연 위를 현대문명의 정수가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조종석에서 지도와 기상레이다와 육안을 총동원하여 입체적으로 이 天下의 세계를 감상하였다. 지도를 보고 3백30도 방향 3백km 근방에 그린랜드 해안이 있음을 확인하면 얼마 뒤 어김없이 레이다 스코프에서는 바로 그 방향에 샛노란 육지의 음영이 나타나고, 그 몇 분 뒤에는 아득한 수평선 너머 가물거리는 해안선이 육안으로 포착되는 것이었다. 조종석 앞에 양쪽으로 붙어 있는 두 개의 기상 레이다는 부채 만한 화면 안에 넓은 세상을 다 집어넣고 있었다.
  
  레이다야 말로 현대의 천리안에 다름 아닌 것이다. 말주변이 없는 나도 레이다 이야기가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물고 다변가가 된다. 공군에서 레이다 부대에 근무하였고, 그것을 여태껏 자랑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부대는 높이 1천2백m의 산꼭대기에 있었다. 하얀 레이다의 돔(Dome)이 푸른 창공을 배경으로 빛나는 부대여서, 군 시설이라기보다는 첨단과학시설을 갖춘 공장 같았다. 늘 안개가 산꼭대기를 휘감아 돌았고, 점심시간에는 하나밖에 없는 레코드판을 되풀이되풀이 틀어주는데, 그것이 그대 막 유행하던 정훈희의 「안개」였다.
  
  레이다를, 하늘에 뜬 물체는 무엇이든지 식별할 수 있는 만능의 기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레이다는 그렇지 않았다. 많은 헛점을 갖고 있고 사람들로 하여금 우스꽝스런 실수를 하도록 하는 변덕장이가 레이다인 것이다. 구름이 많이 끼거나 비가 오면 레이다의 화면은 부옇게 변해, 노란 점으로 나타나는 비행기를 잡기가 어렵다. 새떼나 큰 풍선도 움직이는 점으로 잡히기 때문에 경험이 얕은 사람들은 「적기내습」으로 오인하여 일대소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낮게 날아가는 비행기는 레이다에 잘 잡히지 않아 레이다 관측요원과 비행기가 숨바꼭질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여러 항적이 뒤엉켜 있을 때는 관제사가 가끔 자신이 관제하는 항적을 혼동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때로는 북쪽 휴전선을 향하여 비행기를 날게 했다가 혼이 빠지기도 하였다. 수원, 김포, 오산 상공에는 비행기 항적이 점점이 은하수처럼 몰려 있어 저러다가는 공중충돌이 생기지 않나 걱정스러울 지경이었다. 레이다는 이처럼 인간의 시야가 아니라 신의 시각에서 세상을 척 내려다보게 하는 기계인 것이다.
  
  레이다의 발견은 사람들이 가진 인식의 폭과 깊이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레이다의 원리는 극초단파를 발사하여 그것이 어떤 물체와 부딪쳐 돌아오는 것을 포착, 화면의 음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박쥐나 고래도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앞을 본다고 한다. 레이다가 본격적으로 실용된 것은 1940년 여름이었다. 나치 독일은 프랑스를 점령, 승승장구의 세를 몰아영국 상륙작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 전 단계로 나치 독일의 공군은 영국 런던과 군 비행장에 대한 대규모 폭격을 시작하였다. 수 백대의 비행기가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몰려가는 폭격 장면은 2차세계대전의 기록영화에 자주 나온다.
  
  이때 영국 공군은 아주 원시적인 레이다를 도입, 독일의 폭격기 편대가 어느 방향에서 오고 있다는 정도의 정보를 영국의 요격기 편대에 알려 효율적으로 대처하도록 하였다. 그때 영국 공군은 비행기 대수에 있어서는 훨씬 열세에 있었으므로 레이다의 가르침에 따라 능률적으로 요격기들을 투입함으로써 수적인 열세를 다소 만회할 수 있었다. 이에 대응하여 독일 공군은 은박지 조각들을 하늘에 뿌려 레이다의 화면을 뿌옇게 만듦으로써 포착기능을 마비시키는 방법을 동원하였다.
  
  레이다 교란을 ECM(Electronic Counter Measure)이라고 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ECCM(Electronic Counter-Counter Measure)이라고 하는데 별별 기묘한 방법이 다 있다. 상대방의 레이다 전파 주파수를 알면 전파교란으로써 레이다 스코프를 혼란시킬 수 있고, 레이다 추적을 당하는 비행기가 허수아비(Decoy)로 불리는 가짜 비행기를 발사하면 레이다 스코프에서는 한 비행기가 두 개로 분리된 것처럼 나타나 어느 것이 진짜인지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보잉 737-400에는 비행기 동체의 맨 앞에 레이다가 들어 있다. 오목렌즈처럼 생긴 재래식 레이다가 아니고 평판식(Flat Plate)이다. 좌우로 90도씩 회전하여 전방으로 1백80도의 관측이 가능하며 상하로는 15도씩 모두 30도의 관측을 할 수 있다. 포착 반경은 3백20NM(항공해리 1NM=1,852m)이다. 여객기의 레이다는 포착, 식별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부차적인 목적으로서는 해안선이나 섬을 포착하여 비행기가 날고 있는 위치를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737-400의 레이다는 기상현상을 색깔로 구분하여 표시하는데 그 강도가 높을수록 흑색→초록→노랑→적색→자홍색(마젠타)으로 변한다. 폭우와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구름은 적색, 거센 난기류가 일어나고 있는 부분은 마젠타색깔로 나타난다. 737-400의 조종실에는 기상 레이다의 화면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비행 계기와 함께 EFIS(Electronic Flight Instrumental System)화면에 통합돼 있다. 레이다의 화면은 EFIS의 배경으로 돼 있어 비행기가 날고 있는 항로가 레이다 화면상의 섬.해안선 등을 배경으로 표시돼 있다. 육안으로 쉽게, 마치 살아 있는 지도를 보듯 이해할 수 있게 돼 있다.
  
  점보기 등 대형 여객기에는 기상레이다가 2개 있다. 두 개가 모두 작동되지 않으면 비행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하나만 작동하면 뜰 수 있다. 737-400의 경우, 레이다가 하나뿐인데 다음과 같은 경우엔 그 하나가 작동하지 않아도 뜰 수 있다.
  ①시계 주간비행을 할 경우
  ②야간시계 또는 계기 비행상태에서 레이다에 의해 발겨할 수 있는 뇌우 또는 잠재적으로 위험한 기상 상태가 항로상에서 예상되지 않을 경우
  ③훈련, 시험 비행일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