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트리의 문제
  
  10월 7일은 바쁜 날이었다. 백룡3호와 부산기지는 산출시험(DST) 채비에 눈코 뜰 사이가 없었다. JDC 부산사무소는 도쿄본사에 7인치 파이프 연결기 등 산출시험용 장비를 긴급 공수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다우던은 자가호 편으로 7인치 파이프 1백 수십 개를 부산에서 리그로 보냈다. 이때서야 한국 직원들도 시추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음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7인치 파이프가 들어가면 좋은 징조라는 얘기를 그들은 어렴풋이 듣고 있었던 것이다. 다우던은 또 싱가포르의 브라운 석유기재상사로 전보를 쳤다. 7인치 파이프를 설치할 때 기술자문을 해 줄 전문가를 급히 보내 달라고 했다.
  
  싱가포르는 동남아 석유개발시장의 센터다. 전문회사들이 모두 싱가포르에 지사를 두고 있으며 중공 북괴 등 공산권의 석유정보도 이곳에 집중되고 있다. 싱가포르는 또 원유수송항로의 관문인 말래카해협의 입구를 누르고 있다. 유조선에 대한 보급·예인·구조도 이곳이 중심이다. 굴착선을 전문으로 만드는 조선소도 많고 정유공장도 집중돼 있는 석유도시다. 요즘엔 로떼르담에 이어 석유 현물시장까지 형성되고 있다. 이날 하오엔 덴버로부터 텔렉스가 연방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산 담당 이사인 게리 헤플러는 DST준비지침을 잇달아 내려보내고 있었다. 헤플러는 다우던에게 DST경비를 추산하여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세 군데 지층에서 산출시험을 하는 것으로 잡고 한 지층의 시험이 7일 걸린다고 기준, 계산해 보라고 했다.
  
  이밖에 염산과 염화칼슘 및 중수를 구해 보도록 지시했다. 염산은 「에시다이징(Acidizing)」으로 불리는 산 처리에 쓰일 것이다. 이 구멍의 사암층엔 회분 등 불순물이 공극을 틀어막고 있음이 밝혀졌다. 염산을 이 사암층에 침투시키면 이들 불순물이 녹아 나오므로 가스의 분출이 순조롭게 이뤄질 것으로 헤플러는 내다보고 있었다. 헤플러는 굴진을 계속하여 다음 번에 사암층이 발견되면 즉시 코어샘플을 채취하도록 당부했다. 이 전문의 끝에는 다우던에게만 보여 주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우리들의 생각은 산출시험을 내년에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시험에 필요한 자재를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번에 테스트를 할 것에 대비하여 준비는 차질이 없도록 추진하라.」
  
  다우던은 펄쩍 뛰었다. 서둘러 답신을 보냈다. 「내년에 산출시험을 하려면 갱구장치를 해저에 남겨 놓고 철수해야 된다. 이것은 수산단체와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 문제다. 잘 생각해서 결정했겠지만 이 점을 다시 한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우던의 얘기는 옳은 말이었다. 갱구장치는 기선저인망 어업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었다. 갱구장치는 그 모양대로 크리스마스 트리란 별명을 갖고 있다. 높이 약 4m, 나뭇가지처럼 복잡한 계기(計器)가 옆으로 뻗어 있다. 방폭장치가 여기에 붙어 있다. 그물이 그 돌출부에 걸리면 이 장치가 부러지든지 그물이 찢어지든지 둘 중의 하나일 터이다.
  
  갱구 장치가 말썽을 부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72년 11월 걸프는 2광구에서 H-Ⅸ 갱정을 뚫기 시작했다. 828m 까지 뚫었을 때 태풍을 방불케하는 세찬 북서풍이 엄습해 왔다. 선박식 굴착선 글로마4호는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갱구장치를 남겨두고 12월초 진해로 돌아와 버렸다. 73년 3월 글로마4호는 이 구멍에 재돌입을 시도했다. 재돌입에 성공하면 이미 뚫어둔 8백28m를 공 먹고 들어간다. 약 50만 달러의 굴착비가 절약된다. 그러나 글로마4호는 수심 80m 해저에 버려 둔 갱구장치를 찾을 수 없었다. 잠수부가 내려갔지만 황해 특유의 뻘물에 시야가 가려져 갱구장치를 발견할 수 없었다.
  
  거센 조류에 휩쓸릴 뻔 했다. 끝내 이 시도는 실패했다. 73년 3월 돌고래A 시추를 끝내고 철수할 때 쉘에선 수산청에 떼를 쓰기 시작했다. 갱구장치를 설치할 때 연결이 어긋나 있어 철거하기도 어려우니 그냥 두고 가고 싶다는 억지였다. 수산청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철거하라고 잘라 말했다. 수심 1백 96m의 이 해역엔 기선저인망 어선들이 자주 조업을 하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높다는 것이 수산청 측의 태도였다. 결국 쉘은 이 갱구장치를 톱으로 잘라 회수해 가져갔다. 쉘은 철거비용 10만 달러가 아까워 그런 꾀를 낸 것 같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7소구역의 경우엔 문제는 더 심각했다. 갱구 장치를 해저에 버려 두고 가면 81년까지 1년 동안 누가 보호해 줄 것인가. 공동광구는 공해다. 외국 선박이나 군함의 접근을 막을 수 없다. 북괴나 소련이 사보타지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파괴 공작은 손쉽고 그 효과는 크다. 잠수함은 수중레이다로 평평한 해저에서 우뚝 솟은 이 갱구장치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뢰발사 훈련을 하는 척하고 한방 쏘면 어떻게 되나. 갱구 장치가 박살나버리면 갱정 입구는 뻘이나 모래에 덮혀 버린다. 지름 2m도 안 되는 갱구는 자취도 없이 숨어버린다. 1년 뒤 코암이 다시 돌아와 갱구를 찾아 파이프를 집어넣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할 수 없이 4천4백86m를 다시 뚫어야 하는데 이것은 1천만달러의 손해를 뜻한다.
  
  더 짓궂은 파괴 공작도 가능하다. 훈련된 수중폭발 특공대를 잠수시켜 구멍 속으로 폭약을 내려보낸다. 그리고 터뜨린다. 이 구멍의 가스층이 대 폭발을 일으키며 불기둥이 해면 위로 치솟는다. 그러면 일본 수산단체에선 시추금지 운동을 벌일 것이고 북괴는 박수를 보낼지 모른다. 이 갱구 장치를 그냥 두고 갈 때는 두 가지 조치 중 하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부표를 달아 그 위치를 표시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적대국 함정에겐 초대장이 된다. 다른 한 방법은 발신기를 갱구 장치에 붙여 두는 것이다. 재돌입을 시도할 때 이 발신기를 역 추적하여 갱구에 파이프를 박아 넣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방법은 좋긴 하지만 적의 전자 추적장치에 노출됨을 뜻한다. 두 번에 걸쳐 백룡3호를 찾아온 중공 선박들이 놀러온 것은 아닐 것이다. 동지나해에서 활동하는 북괴와 소련의 잠수함이 극동의 세력 균형을 바꿔놓을지도 모르는 이 시추현장에 무관심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평화지역의 해역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 동지나해에선 큰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는 데서 우리는 해저석유개발이 지니 미묘한 국제 정치적 역할을 발견할 수 있다. 7일 하오에 또 덴버에서 헤플러의 전문이 날라 들었다. 그는 다우던에게 다음 번 검층 프로그램을 시달했다.
  
  그리고는 덴버의 방침은 두 군데 지층에서 DST를 실시하는 것으로 굳어지고 있다고 했다. 하나는 4천25m 부근, 다른 하나는 나머지 지층에서 가장 유망한 것을 택하겠다고 했다. 8일 다우던은 DST실시에 따른 일정과 경비 예상결과를 덴버로 통보했다.
  
   7인치 파이프 설치 및 시멘팅작업 : 1.5일
   파이프 안정성 시험 : 1일
   방폭장치의 점검 : 2일
   3.5인치 산출시험용 철관 삽입 : 1.5일
   이수 제거 및 방사능 검층 : 1.5일
   DST(세지층) : 21일
   염화칼슘을 이수 대신 쓸 경우 : 2일
  일수합계 : 29.5일 : 3백68만7천5백$(1일작업비 12만5천$), 7인치 파이프의 가격 : 11만3천$, 경비합계 : 3백80만5백$
  
  산출시험을 하는 데는 약 한 달이 더 걸릴 뿐만 아니라 약 20억원의 추가 경비가 든다는 얘기였다. 나는 지난번의 검층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점을 생각하고 해밀턴이 과연 이 정도 추가 부담을 감당할 만큼 자신이 있는 건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더구나 부산기지는 그 동안 DST를 예상하지 않고 있었다. 이에 필요한 자재나 기재도 미리 점검해 두지 않았었다. 급하게 구하려고 하니까 큰 무리가 빚어지고 있었다. 염산을 담을 탱크도 당장 발견할 수가 없었다. 열제어제(熱制禦劑)도 싱가포르에서 구해와야 했다. 더 큰 문제는 폭약이었다. 백룡엔 폭약과 폭발장치가 있긴 했다. 이것은 그러나 방벽철관을 뚫어 가스층에 구멍을 내는데 밖에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덴버에선 7인치 파이프를 박은 다음 그 속에 다시 지름 3.5인치짜리 철관을 삽입하고 폭약을 터뜨려 두 겹의 철관과 가스층에 구멍을 낸다는 계획을 지시하고 있었다. 이 폭발 작업에 필요한 기재와 폭약을 일본에서 수입하는데 한 달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작업진척 방향을 여러 가지로 예상하여 준비를 안 해 놓은 것이 그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한 셈이었다. 덴버가 다음 해에 필요한 자재를 충분히 확보하여 테스트를 할 뜻을 비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DST계획은 마지막 단계에서 혼선을 빚기 시작했다. 당장 테스트를 하자니 자재를 구할 수 없고 한 해 연기하자니 갱구 장치의 보안 문제가 골칫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