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본 석유
  
  지질일보(1980년 9월 29)
  
  ·4,147∼4,153m―사암 50∼90%, 혈암 10∼30%, 침적암 0∼20%.
   사암 : 회백색. 단단함 입자는 잘고 탄화물·회분·진흙성분, 형광 없음.
   혈암 : 회색 또는 암갈색. 회분 없고 단단한 덩어리.
   침적암 : 회갈색, 단단, 돌비늘. 탄화물 및 회분. 형광 없음.
  ·4,153∼4.162m―혈암 50∼70%, 침적암 20∼30%, 사암 10∼20%.
   혈암 : 약간 회색, 암갈색, 단단함, 침적암 성분이 간혹, 잘 쪼개짐. 회분 없고 돌비늘 적 음. 탄화물 때때로.
   침적암 : 암갈색, 부서지기 쉬움. 단단, 약간의 회분.
   사암 : 약간의 회갈색, 때로 백색. 매우 단단한 입자, 회분, 형광없음.
  ·4,162∼4,174m―사암 40∼80%, 침적암 10∼40%, 혈암 10∼20%
   사암 : 전과 동
   침적암 : 〃
   혈암 : 〃
  ·기본가스(Background Gas) : 0.3∼0.4U(메탄 128∼175PPM, 에탄 흔적량),
   최고 2.4U ; 4,147m
   메탄 : 1,490PPM
   에탄 : 38 〃
   프로판 : 흔적량
   1.6U ; 4,168m
   메탄 : 650PPM
   에탄 : 18 〃
   프로판 : 흔적량
  ·급속굴진지층 : 4,168m(시간당 4m)
  ·공급압력 : 11.7PPG
  ·이수온도 : 섭씨 58.3
  
  로스차일드의 평가 : 지난번 검층 이후 우리는 사암, 침적암, 혈암층이 번갈아 나오는 지층을 뚫고 있음. 각각의 암층은 수m 정도로 얇으며 굴진 속도의 변화로만 구별이 가능할 정돛? 사암엔 불순물이 계속 늘고 있으며 진흙 성분과 화성암 조각이 많음. 육안으로는 공극율을 발견할 수 없음. 혈암은 변함없이 암회색, 균일성, 돌비늘, 단단함. 침적암은 사암과 혈암 사이의 중간 정도 입자 크기로 구성. 퇴적 환경은 해양동물 화석이 전혀 안 보이는 것으로 보아 육성층 사암에 진흙 성분이 많고 입자 마모가 잘 안된 것으로 보아 빈약한 탄화수소 부존량 입자의 마모도가 적은 것으로 미뤄 퇴적물 운반 거리는 짧고 퇴적물의 근원은 가까이 있음. 결론적으로 퇴적 환경은 준평원의 강바닥 또는 삼각주 상층부에서 퇴적된 것으로 추리됨.
  
  이것은 덴버에서 7소구역 시추자료의 확대평가회의가 열리기 직전에 로스차일드가 보낸 지질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에서 그는 매우 비관적인 견해를 전달했다. 육안으로는 사암에서 공극률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지적이었다. 이것은 깊이에 따라 지층의 무게가 증가함에 따라 퇴적층이 짓눌리고 단단해져 경제적 기반암이 되어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현상이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다우던도 같은 생각인지 귀국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부산기지의 분위기는 어딘가 모르게 긴장이 풀린 것 같았다.
  
  나의 열 번째 구멍도 드라이 홀(Dry Hole)로 끝나는가 보다 생각했다. 이즈음 나는 한국의 오일 맨 한 분을 다우던에게 소개해 주었다. 서울에 사는 서재금 씨(43)는 어느 날 가방에 돌 뭉치를 잔뜩 넣고 다우던을 찾아왔다. 충남 서산 바닷가의 시추갱정 지하 1백m 근방에서 코어(Core) 철관으로 뽑아 올린 암석시료였다. 그는 다우던의 책상 위에 시커먼 돌들을 쭉 늘어놓았다. 감정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다우던은 손때 묻은 작은 손칼을 호주머니에서 끄집어냈다. 돌의 표면을 긁고 자르고 하더니 「단단한 혈암」이라고 판정했다. 골든이 옆에 있다가 돌에 새까맣게 진흙처럼 묻은 물질을 떼내어 갔다. 성냥을 그어 보고 냄새를 맡더니 갈탄조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서씨가 더 정확히 알았으면 좋겠다고 하니 다우던은 선뜻 「백룡3호에 있는 우리 지질학자에게 이것을 보내 소견을 들어보겠다」고 승낙했다. 다우던은 그러나 이 돌이 유전에서 나오는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이미 굴착을 시작했다는 서씨의 말에 다우던은 그러면 할 수 없다는 듯이 「행운을 빈다」고 싱긋 웃었다. 서씨는 그때 서산 바닷가에서 두 번째 구멍을 뚫고 있었다. 첫째 구멍은 1백m도 못 뚫고 집어치운 뒤 꿈속에서 신령님이 계시한 지점을 찾아내 두 번째 시추를 하고 있었다. 자꾸 갱정벽이 무너진다면서 그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심도 7백m 이전에 무슨 좋은 소식이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는 공장을 두개나 가진 기업인이었다. 사회봉사활동도 많이 한 사람이었다. 20년 동안 서른 여덟 가지 직업을 가져 봤다는 파란만장의 인물이었다. 서씨는 79년 10월 26일, 그 운명적인 밤에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돌아와 잠에 들었는데 꿈속에서 신령을 만났다는 것이었다. 신령은 석유가 나올 자리까지 지정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 서씨는 간밤의 꿈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사건 뉴스가 들어왔다. 문득 그는 깨달았다. 국난이 닥쳐온 이 시점에 신령은 나에게 크나 큰 짐을 내려 주셨다. 이 민족에게 밝은 미래를 열어줄 책임을.
  
  그 뒤 몇 달 동안 서씨는 신령이 계시한 장소를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서산에서 그는 꿈에 본 장면과 일치하는 지형을 발견한다. 이곳의 지질은 땅거죽만 봐도 심상치 않은 것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새까맣고 윤기가 나는 듯한 지질이 몇십리나 계속되고 있었다. 이 부근에는 유정골(油井谷)이란 지명도 있었으며 어느 마을에선 우물에서 기름이 섞여 나왔다 하여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서씨는 이곳을 뚫기로 결심한 뒤 두 사람을 찾아 나섰다. 한 사람은 나였고 다른 사람은 포항 시추의 정성엽씨였다. 내가 쓴 책을 읽고 만나고 싶었다면서 그는 80년 봄에 신문사로 찾아왔다. 나는 그의 시추를 말리려 했으나 그의 집념이 움직일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자기의 행동이 무모한 짓이라는 것을 그 스스로가 먼저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과학도 완벽한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과학은 현재 시점에서 정립된 이론만을 바탕으로 해서 추리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안 일어난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저는 한 2년간 뚫을 생각입니다. 가산을 몽땅 탕진할 만큼 돈을 넣지는 않겠습니다. 한 10억 쓸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느냐구요. 친구와 함께 술 한잔 마시고 껄껄 웃어버리고 털고 일어나는 거죠, 뭐.』
  
  집념이 있어도 이 사람은 꽉 막힌 사람이 아니구나. 편견이 없고 트인 사람이구나. 더구나 재미 삼아 뚫어볼 수 있는 재력도 있지 않은가. 아마도 시추가 진행되는 몇 년간은 이 사람이 이 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일 것이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그의 가슴엔 석유 발견의 희망이 부풀어오를 것이다. 그 꿈은 날마다 깨지겠지. 그러나 그때마다 다시 살아날 거야. 그야말로 희망과 좌절이 번갈아 나타나고 사라지는 꽉 찬 생활이 되겠지. 이 사회나 국가에 손해도 없지 않은가. 시추한 자료를 잘 정리만 해 놓으면 정부가 할 지질조사를 이 분이 대신해 놓는 일이 되지. 나는 시추할 때 나오는 암석 파편을 잘 정리해 두고 가능하다면 전문가에게도 보여 보라고 당부했다.
  
  서씨는 그 뒤 정성엽씨를 찾아냈다. 그를 졸라 시추 현장에까지 데려 갔다. 정씨는 석유가 나올 곳이 못된다고 잘라 말했다. 고생대 지층인데다가 변성암이 널리 발달해 있다. 지층의 경사도 매우 급하다. 차라리 포항에 돈을 쓰는 것이 더 보람된 일이 아니겠느냐고 그는 말했다는 것이었다. 정씨는 포항에의 미련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있었다. 서씨는 80년 7월에 시추를 시작했다. 시추기계를 조립하고 포항시추 때 일한 굴착부를 포섭하여 굴진을 시작한 것이었다. 1천5백m까지 뚫겠다고 그는 장담했다. 다우던은 서씨의 이 말을 듣더니 벽에 걸린 백룡3호를 가리키며 저놈은 9천m까지 파고 들어갈 수 있다고 자랑해 보였다.
  
  덴버의 종합평가회의 결과는 다우던에게 통보되지 않고 있었다.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계속 뚫는 수밖에 없었다. 비트는 4천2백m를 넘어서고 있었다. 4천2백31∼4천2백50m에선 또 그 반갑지 않는 석탄층이 나타났다. 가스 검출량도 약간 늘었으나 여전히 낮은 수준이었다. 사암의 진흙 성분도 계속 나타났다. 사암의 그 귀중한 공극을 틀어막는 구실을 하는 원수 같은 진흙이었다. 9월 30일에도 10월 1일에도 덴버는 침묵하고 있었다.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는건가? 2일 하오 6시 20분 퇴근하고 아무도 없는 부산기지 텔렉스 룸에 「따닥 딱, 따닥 딱」하는 수신음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장문의 전문이 덴버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DST 계획
  수신 : 잭 다우먼
  발신 : 해밀턴, 덴버, 존 본너빌, 게리 헤플러
  제목 : JDZ-Ⅶ-I
  다음번 비트를 갈아 끼울 때 슐룸버저음파속도검층기를 집어넣어 검층을 실시하고 천공시료 채취(SWC)를 할 것. 그 다음간이 생산성 시험기(RFT)를 내려보내 지층 유체채취시험 및 지층압력측정을 할 것. 이 작업이 끝난 뒤엔 굴진을 계속하여 코어시료 채취를 할 것.
   천공시료 채취계획
   심도: 현재 심도에서 4060m까지(비고 : 최소 24개의 샘플을 채취할 것).
   나머지 시료채취 심도 : 4060, 4049.5, 4045, 4040, 3952, 3945, 3938, 3925, 3892.5, 3887.5, 3881, 3831, 3817, 3782, 3747, 3740.5, 3732, 3725.5, 3696, 3681, 3672, 3652, 3638, 3630, 3624, 3611.5, 3601.5, 3583.5, 3575, 3565, 3558, 3528.5, 3521.5, 3517, 3502, 3492, 3485, 3444.5, 3430, 3426, 3390, 3355, 3349, 3344M
  
   음파속도 검층
  현재심도, 4천, 3천, 2천, 1천m에서 실시할 것.
  
   간이생산성 시험
   현재심도와 4060m 사이 지층에서 두 군데 선택.
   나머지 심도 : 4065, 4041, 3952, 3935, 3924, 3894, 3881, 3832, 3817, 3783, 3746, 3729, 3696, 3682, 3652, 3638, 3624, 3601.5, 3579, 3565, 3528, 3520, 3512, 3502, 3485, 3444.5, 3435, 3426, 3415, 3390, 3355, 3344
   요령 : 먼저 지층 압력측정을 한 뒤 지층유체시료를 채취할 것. 3390m에서는 지층수를 채취할 것.
  
   자료의 처리
  샘플 채취가 끝나면 슐룸버저 검층기를 사용, 지층수의 전기저항 값을 구할 것. 가스가 채취되면 현장에서 분석할 것. 지층수 는 플라스틱 용기에 넣어 첫 헬기 편으로 부산기지로 보낼 것. 이것과 천공시료와 간이생산성 시험자료를 인편으로 덴버와 캘리포니아의 원유시험연구소에 각각 급송 할 것.
  
   DST 준비작업
  헬리버턴사(社)에게 백룡3호에 있는 산출시험(DST)기재를 점검토록 할 것. 지금 7인치 짜리 파이프 속에 끼울 3.5인치 짜리 철관의 연결기를 구할 것. 산출효율을 높이기 위해 지층자극이 필요할 경우에 대비, 관계 기자재를 확보할 것. 현재의 생각으로는 7인치 파이프를 구멍에 끼운 뒤 산출시험을 몇 차례 해야할 것 같음. 다우던과 로스차일드는 덴버의 전화를 즉각 받을 수 있는 위치에서 늘 대기할 것.
  
  이 전문은 쇼크였다. DST를 하겠다는 대목은 나를 흥분시켰다. DST(Drill Stem Test. 산출시험 또는 Production Test라고도 함.)는 얼마나 듣고 싶었던 단어였던가. 나는 어느새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어 갔다. 백룡3호가 DST를 한다. 뽑아 올린 가스를 태우면 새까만 연기와 화염이 바다를 뒤덮으리라. 며칠 밤 며칠 낮 동안 남해는 불바다가 되리라. 근처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은 이 장관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 역사적인 사진을 찍어두자.
  
  나는 이 특종을 기사로 쓸 수 없는 입장에 놓인 스스로를 원망했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는 내가 DST계획을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인 것은 확실했다. 비록 기사를 못쓰더라도 이 사실은 분명히 해두고 싶었다. DST란 단어는 석유 시추세계에서 이상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DST를 한다는 것은 행운이며 영광이고 자랑이었다. 한국 대륙붕에서 아홉 구멍을 뚫었지만 DST를 한 곳은 한 구멍도 없었다. 75∼77년 사이 포항시추에서 비록 원유는 발견됐지만 DST는 계획도 하지 못했다. 65∼68년 사이의 포항 1차 시추에선 PY-2호, PY-3호 갱정에서 DST를 했다. 수용성가스만 나왔지만.
  
  DST를 하려면 여러 관문을 무사 통과하지 않으면 안된다. 먼저 석유나 가스가 발견돼야 한다. 둘째, 이 석유나 가스가 풀(Pool)상태로 모여 있어야 한다. 그 풀은 공극률·투수율·함(含)탄화수소율(率)에서 모두 합격하여 생산성이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생산성이 있다는 말은 경제성이 있다는 뜻이 아니고 유체 역학상 기름이나 가스의 산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석유는 아무리 모여 있어도 투수율이 낮으면 지층에 구멍을 뚫어도 바깥으로 빠져 나오지 못한다. 생산성이 없는 것이다.
  
  셋째, 이 풀이 충분히 커서 경제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돈이 많이 드는 DST를 걸 수 있는 것이다. 덴버는 한편으로 DST계획을 확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간이생산성 시험의 결과를 본 뒤 최종 결론을 내리겠다는 태도였다. 덴버에서 지정한 천공시료채취 및 간이생산성 시험 대상지층의 심도는 대부분 천연가스가 많이 검출된 두꺼운 사암층을 더 정확히 파악하려는 의도에서 선택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4020∼4070, 3928∼3957, 3883∼3901, 3783∼3788, 3719∼3769, 3562∼3643, 3520∼3532, 3412∼3454m 등 사암층이 심사대상에 오른 것이었다. 이 사암층에서 천공시료를 채취하면 공극률 투수율 등의 저류암(貯留岩) 성질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다가 또 다시 간이생산성시험을 하면 가스나 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생산성 뿐 아니라 지층 압력과 온도 따위도 알아내 전반적인 잠재력을 평가하는 열쇠를 갖게 되는 것이다.
  
  덴버에서 이처럼 서두르게 된 것은 종합평가회의에서 로스차일드의 비관적 보고와는 딴판으로 희망적인 해석이 나왔음을 시사했다. 로스차일드의 검층자료 현장 판독대로 모든 지층의 수분 함유량이 90% 이상이라면 비싼 돈을 들여 이런 시험을 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덴버의 종합평가 과정에서 로스차일드가 눈여겨보지 못했던 가스층이 드러났음이 분명했다. 3일 덴버의 헤플러는 다우던에게 또 작업지침을 내려보냈다.
  
  이 지시에서 그는 DST를 서너군데 지층에 대해 실시할 계획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추가로 4천55m와 3천8백87.5m에서도 지층유체를 채취하도록 지시했다. 이 두 군데 지층에서는 가스가 틀림없이 채취될 것이니 이 천연가스에 탄소·일산화탄소·질소 등 불순물이 섞여 있는지 즉시 시험하도록 당부했다. 이들 시험이 끝나는 대로 로스차일드는 위성중계 전화로 핵심자료를 요약해서 덴버로 보고하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JDZ-Ⅶ-I의 운명을 결정할 검층은 10월 5일에 시작됐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가을날씨가 백룡을 감싸고 있었다. 비트는 심도 4천3백54m에서 전진을 잠시 멈추었다. 먼저 갱정벽에 60발의 총알을 쏘아 넣었다. 36개는 지층이 너무 단단하여 박히지 못해 실패했다. 나머지 24개는 지층이 속살을 한 웅큼씩 물고 돌아왔다. 6개는 혈암, 18개는 사암이었다. 로스차일드는 시험실에서 이들 샘플을 훑어본 다음 개략 평가를 했다.
  
  --천공시료 채취시험에서 얻어진 모든 사암은 매우 높은 진흙성분을 갖고 있다. 투수율은 매우 낮으며 밀도는 극히 높다. 맨눈으로는 공극률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이다. 총알이 박히지 않은 지층이 많다는 것은 이상과 같은 지질을 입증하고 있다.--
  
  이어서 음속 검층이 실시됐다. 이것은 지층에 음파를 보내 그 전달 속도를 조사하여 암석의 밀도를 계산하는 것이었다. 이 검층 결과도 깊어질수록 지층이 단단해지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심도 472.7m까지는 음파 전달속도가 초속 1,792m였는데 3,162m에선 2,708m, 3,726m에선 2,867m, 4,322m 에선 초속 3,021m였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RFT시험이 실시됐다. 54군데에서 지층압력을 조사했다. 이어서 지층유체 시험이 실시됐다. 피아노 강선에 54개의 실린더를 구멍 속으로 주렁주렁 달아 내렸다.
  
  이것들을 목표 지층에 부착시켜 놓고 상하의 압력을 차단 시켰다. 그러면 압력이 높은 지층의 내부에서 압력이 낮은 실린더 안으로 지층유체가 밀려들어 올 것이다. 이 시험에서 샘플 채취에 성공한 것은 두 곳뿐이었다. 30군데 지층은 투수율이 낮은 타이트(Tight)한 지층으로서 유체가 나올 수 없었다. 22군데 지층에선 상하의 압력을 차단하는 계기가 작동하지 못해 실패했다. 유체회수에 성공한 곳은 3,528m와 3,389m 였다.
  
  ◇ 3,528m 사암층
   윗쪽 실린더(용량 10,250cc)
   압력
   ·최초밀폐압력 : 7,025PSI (1분)
   ·자분(自噴)압력 : 200PSI(15분)
   ·최종밀폐압력 : 7,025PSI(0.5分)
   ·유체압력 : 7,186PSI
   ·표면압력 : 1,000PSI
   유체시료
   ·가스 0.1 입방피트＋물 3,800cc(침투된 이수인 듯)
   ·화씨 84도에서 전기저항 0.41
   ·물의 염소농도 : 5,500PPM
  
   아래쪽 실린더
   압력
   ·최초밀폐압력 : 7,025PSI(0.5분)
   ·자분압력 : 400PSI(15분)
   ·최종밀폐압력 : 7,025PSI(1분)
   ·유체압력 : 7,186PSI
   ·표면압력 : 1,000PSI
   유체시료
   ·가스 0.1 입방피트
   ·물 9,200cc(침투 이수인 듯)
   ·화씨 84도에서 전기저항값 0.43
   ·물의 염소농도 5,500PPM
  
  3천5백 28m 지층의 RFT검사는 말썽 많았던 3천5백20∼3천5백32m의 순사암층을 면밀히 조사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이 12m 두께 사암층은 굴진 때부터 이 구멍의 스타가 돼 있었다. 천연가스를 뿜어내어 사흘동안 굴진을 중단시켰던 장본인이었다. 이번 간이생산성 시험으로 이 지층엔 천연가스가 많은 물과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물3대(對) 가스 1의 비율로 샘플이 채취되었다. 이 가스는 7천PSI의 고압상태이므로 지표면에 나오면 약 4백 배로 팽창한다. 그러므로 실제 생산을 할 땐 물 1대 가스 1백의 용적비율로 산출이 된다.
  
  하루 1천만 입방 피트의 가스를 뽑아 올리려면 약 10만 입방 피트, 곧 약 3천7백t의 물을 함께 퍼 올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스회수 효율이 좋지 않다는 계산이다. 이번의 검층 결과를 종합해서 로스차일드는 「모든 사암층이 너무 단단하고 진흙 성분이 사암의 공극을 틀어막고 있다」고 덴버에 보고했다. 그는 천공시료와 RFT자료를 꾸러미로 만들어 7일 헬기편으로 부산기지에 긴급 공수했다. 10인승 헬기는 오직 이 시료 한 보따리를 운반하기 위해 왕복 5시간을 비행했다. 돌덩어리의 헬기 수송에만 약 4백만원이 든 것이었다.
  
  긴급 수송작전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부산기지에서 스티븐 피어스가 릴레이 선수처럼 기다리고 있다가 돌 보따리가 닿자마자 김해공항으로 들고뛰었다. 그리곤 로스엔젤스행 KAL기에 올랐다. 미국 시간으로 10월 7일 하오 5시 30분에 로스엔젤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그는 보따리를 인계하고 돌아왔다. 암석 샘플 수송에 든 약 6백 만원은 이 자료의 수송이 늦어져 작업 기일이 하루 더 길어질 때 손해볼 7천 만원에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시추 작전의 생명은 속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