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제로)의 대장정(大長征)
  
  석유는 좋은 의미에서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다. 근대 석유개발산업은 1859년 탄생이래 수많은 광신자와 집념의 사나이들과 영웅들을 만들어 냈다. 이들은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확신만 가지고 불모지대에서, 밀림 속에서, 사막에서 유전을 찾아 다녔다. 빗발치는 학자들의 비판과 냉소를 그들은 무시했다. 대중의 웃음거리가 돼도 그들은 주저앉지 않았다. 기름은 광물이 아니라 신앙이었다. 낙망 속에 빠져 있다가도 그들은 환상을 붙들고 일어섰다. 기름과 가스가 폭포수처럼 솟구치는 환상이 나타날 때마다 그들은 각오를 새롭게 했다.
  
  사생활은 석유를 위해 희생됐다. 이런 광신자들은 또 거의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가산을 시추에 탕진하고 친구와 친척의 돈까지 끌어들여 물만 나오는 구멍 속으로 부어 넣었다. 횡재를 하겠다는 것이 당초 목표였겠지만 나중엔 석유 발견 자체가 진짜 목표로 된다. 그래서 기름을 발견하는 데만 신경을 쓰고 그것이 가져오는 부의 획득에 대해서는 순진할 만큼 무관심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광신자들의 대부분은 유전을 찾지 못하고 가난과 조롱 속에서 생을 마쳤다.
  
  그러나 소수의 운 좋은 사나이들은 세계사를 바꿨다. 드레이크, 루카스, 조이너, 홈즈, 굴벤키안, 야마시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부의 원천을 발견했던 드레이크는 가난하게 죽었다. 현재 싯가로 환산하여 1천8백억 달러 짜리 이스트 텍사스 유전을 발견한 조이너도 빈곤 속에서 숨져갔다. 유전이 발견되자 기름군들이 몰려와 주변의 땅을 모두 차지하여 석유를 뽑아갔다. 남에게 좋은 일만 시킨 조이너는 석유 값이 폭락하자 개발권을 유명한 포커꾼 헌트에게 팔아버렸다. 헌트는 그 뒤 개인 재산 80억달러를 가진 미국 최대 부호가 됐다.
  
  이들 광신자들이 성공한 다음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곤 했다. 그때까지 광신湄湧?욕하던 지질학자들이 이번엔 광신자들의 기적을 설명하는 학설을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홈즈 대령 이전에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석유를 찾으려는 학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일단 석유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자 중도의 석유지질은 그들의 가장 인기있는 연구 과제가 됐다. 왜 이런 광신자와 아마추어의 승리가 유독 석유 개발에서만 일어나고 있는가. 석유는 과학이 힘을 크게 못쓰는 분야다. 모든 광물 중에서 가장 연구가 많이 된 것인데도. 그 이유는 석유가 땅속 가장 깊은 곳에서 발견되는 광물이기 때문이다. 석유의 행태에 대한 연구는 추리의 단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
  
  석유에는 과학의 영역보다도 추리의 영역이 더 넓다. 유전 발견율이 2∼10%이니까. 비 과학의 분야는 90% 이상이고 10% 이하만이 과학의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성공률이 이렇게 낮으면 지질학자의 선택(시추지점)이나 문외한의 무작위선택이나 적중률은 비슷할 가능성도 있다. 초기에 심령주의자들이 석유개발산업에 등장한 까닭이나 지질학자가 등장하기 전과 후의 유전 발견율이 크게 변하지 않았던 것이 모두 석유 개발의 비 과학성을 보여주고 있다. 석유 개발이 가진 넓은 추리의 현장에 나타난 것이 광신자와 아마추어 탐광자들이었다. 그들의 정신은 합리적 추리와 이성이 아니라 도박의 정신이었다. 석유 개발에서 이런 도박의 정신이 없어질 날은 올 것인가. 브라이트 스파트식 직접 탐사법이 기적과 같은 발전을 하여 시추도 하기 전에 물리탐사로 오일풀과 가스풀을 책상머리에서 찾아내는 일이 오지 않는 한 그것은 불가능하다.
  
  석유 개발에 독불장군 같은 영웅들이 많이 나타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정치성을 강하게 띠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산업은 경제학의 이론으로 설명이 잘 안 된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에 석유 값이 스무 배로 뛴 것을 어떻게 경제학 이론으로 납득시킬 수 있겠는가. 석유산업은 정치의 프리즘을 통해 관찰하고 설명하기가 더 쉽다. 경제학의 대상이라면 횡재와 기적과 같은 비 경제학적인 사건은 잘 일어나지 않을 터인데 변화가 심한 정치적 광물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높고 그 틈에서 히로이즘이 무대를 발견하는 것이다.
  
  메이저가 석권하던 중동에 진출하여 세븐 시스터즈의 신화를 무너뜨린 이태리의 엔리코 마띠, 미국의 폴 게티, 일본의 야마시다는 모두 정치의 길을 통해 광구개발권을 얻음으로써 놀라운 역전극을 연출했다. 특히 첫 시추에서 카푸지 대유전을 발견한 야마시다는 정치적 술수와 기막힌 행운을 동시에 가졌던 인물로서 세계 석유 개발 사상 최상의 기적을 이룩한 사나이로 기록될 것이다. 한국의 오일 맨이 그런 영웅적인 일을 해냈다면 한국 석유수급 문제를 30년 동안(카푸지 유전의 매장량은 한국 원유 소모량의 30년 분에 해당) 해결해 버렸을 것이니 한 개인의 도박 정신이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실감케 한다.
  
  77년 여름 필리핀의 팔라와섬 근해에서 미국의 시티즈 용역회사는 남(南)니도 1호 갱정 굴착을 끝냈다. 최종 심도는 2천4백50m였다. 이 회사는 산출시험에 들어갔다. 2천2백m에서는 소금물만 나왔다. 2천1백30m의 두 번째 시험에선 원유가 솟아 나오다가 곧 사라지고 물이 콸콸 치솟았다. 세 번째의 지층에서 비로소 원유가 솟았다. 일산(日産) 1천2백 배럴. 네 번째 지층에선 원유가 나오다가 곧 죽어버렸다. 염산을 넣어 유층 벽을 문질러 자극했다. 그러자 흥분된 유층은 일산(日産) 3천 배럴의 원유를 배설했다. 다섯 번째 지층은 일산 4천3백70배럴의 기름을 뱉어냈다. 이로써 80년에 걸친 지긋지긋한 제로의 행진이 끝났다.
  
  필리핀 육상에서 처음 시추가 시작된 것은 1896년. 대륙붕 시추는 1971년에 시작됐다. 그 동안 바다와 육지에서 뚫려진 시추 구멍은 3백 개를 넘었다. 석유나 가스가 조금씩 발견 안된 구멍은 거의 없었으나 모두 경제성이 없었다. 석유를 향한 필리핀의 대장정은 세계 최장 기록일 것이다. 캐나다의 북동해안 대륙붕에선 1966년 이후 80년까지 1백41개 구멍이 뚫려졌다. 약 6억5천만달러가 들었다. 아직 경제성 있는 유전을 발견 안되고 있다. 이 대륙붕은 빙산이 떠다니는 위험한 바다인데다가 근처에 석유 대량 소비 지역이 없는 탓으로 긴 파이프라인 부설이 필요한 곳. 매장량이 5억 배럴을 넘어야 경제성이 있다는 것이다. 5억 배럴 이상의 유전은 세계 석유산업 1백20년 역사에서 2백70여 개 밖에 발견되지 않았으니 이곳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겠다.
  
  유전 발견이 얼마나 성취하기 힘든 일인가는 통계로 더 잘 설명이 된다. 1958∼1967년 동안 1백만 배럴 이상의 유층 발견율은 미국이 1.88%, 극동 2.5%, 남아메리카 1.7%, 중동 8.3%, 아프리카 4.7%였다. AAPG(미국 석유지질학회)의 통계에 따르면 1971∼75년 사이 미국 해저 및 육상 시추에선 3천2백94개의 오일풀이 발견돼 성공률은 12%였다. 이중에서 매장량이 1백만 배럴 이상인 것은 전체 시추 갱정 수의 약 1.5%인 4백80개에 불과했다. 1977년에 미국에선 새 유전을 발견키 위한 시추가 6천1백1개나 있었는데 오일풀은 16.5%인 1천4개구멍에서 확인됐으나 매장량 1천만 배럴(혹은 6백억 입방 피트의 가스) 이상의 유층은 4개에 불과했다. 1억 배럴 이상은 하나도 없었다.
  
  세계 유수의 산유국인 미국에서조차 6천 개를 뚫어 1억 배럴짜리를 하나도 못 찾을 정도인데 미지의 한·일 공동광구에서 1억 배럴급 유전을 성급히 기대한다는 것은 바로 기적을 바라는 일인 것이다. 성공률이 이처럼 낮은 석유 개발에서 성공하는 요령은 바로 노름꾼의 행동원리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여러 번 거는 것이다. 성공률이 2%이면 50번을 건다. 1%이면 백 번을 건다. 0.5%이면 2백 번을 건다. 이런 배짱으로 밀고 나가려면 엄청난 자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석유 회사는 모두 거대기업이다. 1980년 5월에 미국 잡지「포춘」이 발표한 매출액 기준의 세계대기업(은행 등 금융 및 서비스업 제외)은 다음과 같다.
  
  세계 10대 기업
  
  
  
  톱 텐 가운데 일곱 개가 모두 세븐 시스터즈로 불리는 메이저다. 그 가운데 엑손과 쉘의 매출액은 우리 나라 GNP보다 많다. 석유와 관련되는 것은 모두 세계 최대다. 석유 개발은 80년에 약6천5백억 달러의 부가가치를 창출, 자동차·석탄·곡물·철강업을 저 아래로 누르고 최대업종으로 독주하고 있다. 석유를 운반하는 탱커 산업은 해운업 중 최대이고 석유 화학은 화학공업에서 최대이며 세계 최대 토목공사는 알래스카 송유관 부설이었고 인간이 움직인 최대의 철 구조물은 북해 브렌트 유전의 채유 시설(60만t)이었으며 세계 최고 부자는 헌트, 게티, 오나시스 등 모두 석유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고 세계 최대 선박도 유조선이다.
  
  이런 석유 회사들도 혼자서 시추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보통 4∼6개 회사가 공동투자를 하는 조인트 벤추어(Joint-Venture) 체제이다. 실패했을 때 그 부담을 나눠 갖기 위한 것이다. 5, 7소구역 개발이 모두 3∼6개 회사의 공통 투자사업으로 돼 있는 것도 이런 생리에 따른 것이다. 낮은 성공률을 상쇄시키는 물량공세―이것이 현대 석유산업의 작전이다. 이런 시대에는 옛날과 같은 광신자의 집념이 통용되기 힘들다. 그런 집념은 과학과 자금력으로 표현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유 산업의 속성인 도박의 정신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도박의 양식이 더 거창해지고 세련됐고 실패에 따른 파산의 위험이 줄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