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서서 직접 장관들을 챙길 때가 온 것 같다 - 黃寅性 국무총리의 소신 토로 6시간
  
  ● 『금융실명제 실시는 나도 당일 통보받았다』
  ● 『건설비리 조사해 보니 30%가 로비자금으로 나가기도…』
  ● 『언론이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부당하게 혹평하고 있다』
  ● 『각료 제청권 행사한다』
  ● 『개혁은 근본을 바로잡는 일…, 부정척결의 근본은 행정쇄신』
  ● 『한번도 내가 하고 싶어 맡았던 자리는 없었다』
  ● 『요사이 18번은 「고향무정」…』
  
  총리공관 삼청당에서 여섯 시간 동안 진지하고 솔직하게 총리직의 마음고생과 보람을 털어놓은 黃총리는 『6개월이란 준비기간이 지나갔으므로 전면에 나서서 직접 장관들을 챙기고 있다』면서 『행정쇄신위원회에서 과감하게 벌이고 있는 국민 위주의 행정개혁 작업을 언론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억울하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1993년 9월 월간조선>
  
  황인성(黃寅性) 국무총리(67)와의 인터뷰는 8월 7일 있었다. 그러나 8월 12일 金泳三 대통령이 금융실명제 시행을 발표해 추가로 黃총리 인터뷰가 필요해졌다. 금융실명제 발표 다음날인 8월 13일 오후 黃총리를 그의 집무실에서 다시 만났다.
  
  『당일 날 발표 통보 받아』
  
  ―8월 12일에 있었던 금융실명제 발표를 黃총리께서는 언제 통보받으셨습니까.
  
  『금융실명제 문제에 대해선 종종 대통령과 협의해왔고 제 나름대로 건의 드린 바가 있었습니다. 특별한 팀이 결성되어 이 문제를 검토해왔다는 것은 대충 알고 있었습니다. 발표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대통령께서 결정할 일입니다. 최종 결정된 것을 통보받은 것은 8월 12일 당일이었습니다.
  
  ―8월 12일날 주가가 2·29포인트 올랐습니다. 이것으로 보면 금융실명제 발표시기에 대한 보안이 상당히 철저했던 것 같습니다. 신문 보도를 보니까 삼성의 이건희(李健熙) 회장이 오후 4시 30분에 알았다고 되어 있고 다른 기업의 총수들도 은행 마감 시간이 지난 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를 대비한 사람들을 꽤 많았던 것 같습니다. 금융실명제를 준비하는 실무자들 차원에서 정확한 시기는 몰라도 곧 금융실명제가 있을 것이란 소문이 새 나온 것 아닙니까.
  
  『여러 가지 소문이 증시에 돌았다는 것은 저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물들이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소문에 따라 각자 판단하고 행동한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절대로 근거 있는 내용이 새나간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께서도 그렇고, 저도 국회에서 답변할 때마다 「빠른 시일 내에 금융실명제를 단행한다. 그러나 그 시기는 말할 수 없다」고 누차 말해왔기 때문에 그런 추측이나 소문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금융실명제를 언제부터 어떻게 준비해왔습니까. 금융실명제 발표를 준비하려면 별도의 팀을 구성했을 텐데요.
  
  『금융실명제 발표는 우리나라만 있는 특별한 조처입니다. 다른 나라엔 이런 조처가 있었던 전례가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미 80년대 초반 금융실명제에 관한 법(금융실명거래에 관한 법률)이 (82년 12월 2일) 국회를 통과했습니다만 여러 번 검토되는 과정에서 동면(冬眠)에 들어가 사실상 폐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후에도 금융실명제를 실시한다는 전제를 해왔습니다. 차이점이라면 이번에는 실천에 옮긴다는 전제하에서 검토를 한 것입니다. 이번엔 마지막 단계에서 전문가들이 20여일 검토했습니다』
  
  실명제와 재산등록
  
  ―금융실명제를 발표하는 데 있어서 黃총리의 역할을 무엇이었습니까.
  
  『저는 하는 것 없었어요. 업무에 대한 추진이야 경제부서 장관들이 하는 일이니까요. 다만 언제쯤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는 것이 좋겠다하고 대통령께 건의하고 협의하는 것이 내 역할의 전부였습니다』
  
  ―대통령과 협의할 때 총리께서는 금융실명제 실시를 빨리 하자는 쪽이었습니까. 아니면 아시아나 항공을 비롯한 기업체에도 그무하셨으니까 늦게 실시하자는 쪽이었습니까.
  
  『대통령께선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제가 보고드리면 공감을 표하는 것으로 의중을 짐작하게 하는 그런 분입니다. 저는 대통령과의 대화와 보고를 통해 대통령의 뜻이 무엇이라고 짐작하는데, 개혁에 관해서는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혁에 관해서 대통령과 제 뜻이 똑 같다고 생각될 정도로 말입니다. 금융실명제 실시에 대해서도 대통령과 저는 똑 같은 판단을 해왔습니다. 「발표하기 전까진 실시시기가 알려져서는 안된다. 신중히 하자. 그러나 시기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黃총리의 재산이 24억원으로 국무위원중에선 가장 많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내 큰아들이 50이 가까워요, 마흔여덟입니다. 독립해 나가서 살고 있는지 30여년 가까이 되지요. 둘째아들은 마흔다섯인데 역시 분가해서 살고 있고 셋째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집마다 손자 손녀도 있고…. 제 재산으로 등록한 것은 제것과 세 아들의 것을 모두 합친 4세대 분입니다. 24억원이라고 했자 넷으로 나누면 6억원 정도 되나요. 제 명의로 된 재산은 고향에 있는 선산을 합쳐서 4억원 정도 될 것입니다. 공직자윤리법은 분가해서 따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자녀의 재산은 신고해도되고 안해도 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대통령께서도 공개했듯 저도 같이 공개했습니다. 지난 번 재산공개 때 밝힌 것과 이번에 등록한 재산 금액 사이에는 큰 차이는 없습니다. 공시지가 변동에 따라 약간 변했을 뿐입니다』
  
  ―공교롭게도 고위공직자의 재산등록이 8월 11일 마감되고 금융실명제 발표가 8월 12일 있었습니다. 재산을 등록한 공직자가 가명계좌나 차명계좌를 숨긴 사실이 금융실명제 실시로 적발되면, 과거 재산공개 때처럼 공직사퇴를 하는 게 아니라, 범법자로 처벌받게 됩니다. 상위 공직자 사회에 찬 바람이 불게 됐습니다.
  
  『찬 바람이든 더운 바람이든 이 조치는 잘 하는 겁니다. 재산을 공개함으로써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고 하는 공직자는 「양심적으로 공직을 수행하겠다. 공직 재임 기간중에 재산이 늘고 준 것을 떳떳이 밝혀도 좋다」는 양심의 선언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실명제 실시로 공직자의 등록재산이 정확한 것인가 아닌가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상：맙舅?목적을 갖고 시행되는 것인데 이로써 깨끗한 공직사회를 마련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가 깨끗해질 수 있는 계기도 만들어졌습니다』
  
  정경유착의 끝은 붕괴
  
  ―재산등록을 마감한 시점과 금융실명제를 발표한 시기가 가까워서 일부러 모아놓은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금융실명제 발표 시기는 대통령 결심사항인데, 모아놓았다는 표현보다는 이 문제를 결심할 때는 다분히 (재산등록 마감을) 고려하셨겠지요』
  
  ―미국처럼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에선 고소득자에 대漫?고율의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중산층이상에서의 가처분 소득은 비슷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최선을 다 해 일해보았자 세금으로 다 나간다고 생각, 부의 창출에 최선을 다 하지 않는 사람도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는 부의 창출에 더 노력해야 하는 단계 아닙니까. 금융실명제 실시가 너무 빠른 것은 아닙니까.
  
  『생산직에 종사함으로써 얻어지는 부는 바람직한 것입니다. 이것을 억제할 이유는 없습니다. 정부가 종합소득세로 중과세 하려는 것은 부동산등을 통해 불로소득을 갖게 되는 경우입니다. 아직 우리는 선진국가처럼 세금으로 인해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는 단계에까지 와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가명이나 차명계좌에 숨어 있는 떳떳하지 못한 돈이 생산 목적, 산업발전을 위해서 동원되고 투자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과거 기업은 정경유착을 통해 발전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정과 비리에 의한 발전에는 한계가 있고 그 끝은 「붕괴」입니다. 이제는 정경유착이 아닌 정상적인 기업 경영을 해야 국제 경쟁력이 생겨날 수 있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금융실명제의 실시는 이런 목적을 품고 있습니다』
  
  黃寅性 국무총리에 대한 공식 인터뷰는 지난 8월7일(토) 오후 2시40분부터 9시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소재 총리공관 회의실인 「삼청당(三靑堂)」에서 이루어졌다. 장장 6시간20분에 걸친 인터뷰 동안 黃총리는 전혀 피곤한 기색 없이 하나하나 천천히 답변했다. 인터뷰 도중 식사시간이 되자 黃총리는 『저녁을 대접하겠다』며 수제비를 내오게 했다. 이 인터뷰에는 이흥주(李興柱) 총리실 제1행정조정관, 지원훈(智元薰) 공보비서관이 배석해 黃총리의 답변을 보충했다.
  
  『아시아나 사고 가슴 아파』
  
  ―총리께서는 아시아나 항공 회장을 지내셨으니 이번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가 남달리 큰 충격이었겠습니다.
  
  『나와 인연이 있었던 아시아나 항공기가 추락해서 놀랐을 뿐 아니라 공적으로도 워낙 엄청난 사고라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주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처음 사고보고가 올라왔을 땐 행방불명이라고 했습니다. 바다에 추락했으면 어쩌나 염려했는데 행방불명 두 시간 후 산에 추락했다는 보고가 와서 「생존자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기대를 가졌었습니다. 산에 떨어져도 불이 나면 생존자가 거의 없을 수도 있습니다. 몇년 전 일본에서 JAL기가 추락했을 때도 불이 나서 몇 명만 살고 모두 죽지 않았습니까. 후속보고가 들어오는데 「반 정도는 살아 있는 것 같다」여서 여간 다행스럽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현지에 내려가 부상자를 위로하는데 스튜어디스가 누워 있었어요. 그래,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라고 했더니 모른다고 그래요. 참 안됐더군요』
  
  ―사고 보상은 잘 된 편인가요.
  
  『금호그룹의 박성용(朴晟容) 회장이 도덕적인 분이라 쉽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전 같으면 열흘 보름씩 장례도 안 치르고 다투었는데…』
  
  ―우리 민족성이 지기 싫어하는 성질이라 조종사들도 악천후에서 무리하게 운항하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모험심이 강한 편이지요. 그게 잘못되면 요행을 바라고 하는 만용이 되는데…. 여러 사람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다는, 안전에 대한 의식이 약한 것 같습니다.』
  
  ―오늘(8월7일) 개장된 대전 엑스포는 잘 진행되고 있답니까.
  
  『새벽부터 3천여명이 대기했고 오전 11시 현재 7만여명이 입장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처음엔 홍보가 안되어서 사람이 안 오면 어쩌나 했는데 언론에서 많이 도와줘서 이제는 거꾸로 사람이 덜 오도록 협조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한국은 참 반응이 빠른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때 우리나라 경기가 냄비처럼 빨리 끓었다가 빨리 식는다하여 냄비경제라는 말이 있었는데 사회도 냄비사회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전 엑스포에는 학생들이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엑스포를 보고 과학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들은 과학하는 눈으로 관찰하고 과학에 대한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요즘 자라는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많이 봐서인지 생각하는 것이 예전 세대보다 앞서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텔레비전에 과학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있어야 하는데 교육방송을 제외하고는 과학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매일같이 춤추고 노래 부르는 프로그램과 뉴스링뎔?전부에요. 선진국가일수록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건전하다고 합니다. 웬만한 채널에선 모두 과학 교육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답니다』
  
  의병활동중 전사한 조부
  
  ―저는 KBS의 세 채널 중 적어도 하나는 예술, 문화, 과학 등 고급 프로그램만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론 비판을 한번 해볼까요. 요즘 우리 언론은 즐기는 프로만 만들고 있어요. 그래서는 아이들이 먹고 마시는 게 전부인 줄 알게 됩니다. 고통을 이겨내는 것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데는 텔레비전의 힘이 가장 큰데 공보처에서 잘 지도해서 다음 세대에는 건전한 사회,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해야 합니다』
  
  ―월간조선 4월호의 「인물연구 黃寅性 국무총리」를 보니 黃총리의 조부 (黃大潤)께서 한말에 의병장을 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조부를 뵌 적이 없어요. 어릴 때 할머니께선 저를 안아 키우면서 「네 할아버지는 활을 잘 쏘셨단다. 아침에 반찬거리가 없다고 하면 활을 들고 산에 올라가 꿩 두어 마리를 잡아서 부엌에 내려 놓곤 하셨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조부는 시골(전북 무주)의 선비셨답니다. 젊어서 활을 잘 쏘았고, 총이 나오자 몇 번 쏘아보더니 총도 잘 쏘게 되었다고 합니다. 포(총)를 잘 쏜다고 해서 사람들은 조부를 「황포(黃砲)대장」이라고 불렀답니다. 을사보호조약(1905년) 2년 후 조부께선 전답을 팔고 빚까지 내서 총을 사고 군량(軍糧)을 사들여서 의병을 일으키셨답니다. 덕유산을 중심으로 무주, 진안, 함양, 거창까지 다니면서 일본 군대와 싸웠고 무주경찰서를 습격하기도 하셨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유격대 전투를 하신 것이지요.
  
  아마 일본군이 돈으로 사람을 매수해서 첩자로 삼은 사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조부께서 병사들을 산 속에 모아놓고 조련시키는데 일본군 1개 소대가 총을 쏘면서 습격을 해, 조부께선 싸우다가 전사하셨습니다. 우리 집에선 겁이 나서 그날 조부의 시신을 거두지 못했답니다. 다음날 새벽 일본군이 철수했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 아버지와 숙부께서 그곳에 가서 시신을 거둬 가매장을 했답니다. 그후 좀더 안전해지고 나서 조부를 지금의 산소에 안장했습니다』
  
  ―그때 조부의 연세가 얼마셨습니까.
  
  『돌아가실 때가 스물 여덟이라고 했습니다. 청상에 과부가 된 할머니께선 매일 할아버지 산소에 올라가곤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곳곳에서 채권자가 찾아오는데, 하루 아침에 빚더미에 올라 앉았답니다. 그래서 부친께선 무일푼으로 살림을 하셨다고 합니다』
  
  (총리공관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9백년 된 등나무를 비롯 여러 종의 수목이 자라고 있었다. 이 수풀 때문인 듯 서울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닌데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매미떼가 나무에 앉아 귀가 따가울 만큼 울어대 잠시 무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총리공관에서 인사를 겸한 짤막한 대화가 있은 후 본격적인 인터뷰는 「삼청당」으로 옮겨가서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