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전 저희 '마당'에서 사형수 박철웅에 관해 기사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만 그 사람도 보니 어떤 죽음이라는 것을 대면할 각오를 하고 나서부터는 사람이 백팔십 도로 달라진 것 같은데, 죽음에 대한 깊은, 진지한 인식은 사람을 바꾸어 놓는 모양이지요?
  
  일종의 깨달음도 일종의 죽음이야. 그래서 대사일번(大死一番 )이란 말이 있지. 크게 한 번 죽는거야. 깨달음의 정의가, 부활이나 이런 것도 마찬가지지요. 죽고 나서 다시 사는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 이 때 죽는다는 뜻은 그 동안에 우리가 깨닫고 있던 그 전 세계를 부순다는…….
  
  그런 것을 깨뜨려버리는 거지요. 지금까지의 것을. 그래서 명상 중에는 시체 있죠, 그것을 태워 화장시키는 장면을 두고 하는 명상법도 있어요. 직접가서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면서.
  
  - 상상으로요?
  
  아니 실제로 인도에선 사람을 화장하니까. 그래서 인도가 겁나는 거예요. 왜냐면 현대 문명에서 감춰버리는 더럽고 추한 것들을 인도는 그냥 보여 주어요. 감춰진 게 진실이라. 사람이 죽으면 그냥 거적데기 덮어 가서 장작을 쌓아 놓고 불질러버려요. 눈도 타고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그냥 옆에서 다 보는 거예요. 그럼 그걸 보고 나서 자기 마음도 타는거야. 명상하고 있으니까. 얼마든지 볼 수 있어요. 화장터가 그냥 동네 한 가운데 있으니까 우리 생활하고 떨어져 있지 않아요. 무섭지도 않고. 우리 같으면 밤에 귀신이 나타난다고 해서 음침하죠? 근데 사원은 마당이 화장터예요.
  
  - 그런 식으로 득도한 사람이라고 해서 인간적인 고민에서 모두 해탈한다고는 볼 수 없겠죠. 그 경지를 유지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수도해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지켜 가는 게 중요하죠. 그런 사람이 인간적인 고민에서 벗어나지만 그렇다고 우리 보기에 인간적인 고통을 못 느낀募?건 아니죠. 단지 이런 고통이 지나가는 구멍이라는 거죠. 우리가 그 사람을 꼬집으면 아픈 걸 못 느끼나요? 아니죠, 아픈데 좀더 분명히 아픈 걸 느끼고 말죠. 왜냐면 지나가는 구멍이니까.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아픈 걸 백 프로 못 느끼죠. 이것을 지나가는 거라고 못 느끼는 거야. 이게 다르지.
  보통 사람들은 깨달음이 오면 완전히 목석인간 비슷하게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주 착각이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거울과 같지요. 거울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비춥니다. 빨강은 빨강으로, 노랑은 노랑으로, 그러나 거울 글 자체에는 아무 색도 묻지 않아요. 순간순간을 성실하게 반영하지만 그 세상사에, 즉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겁니다. 보통 사람의 마음 거울은 빨강이 지나가면 빨강으로 물들고 파랑이 지나가면 빨강 위에 파랑이 덮어 씌워지고……이런 식으로 관념에 의해 착색이 되지만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순간순간을 정직하게 비추고 지나가면 깨끗이 잊고 그러는거죠.
  
  - 그런 마음 상태는 말하자면 무심, 공(空)과는 다른 겁니까?
  
  그러니까 무심이란 것이 마음이 없다는 게 아니라 사고가 달라붙질 않는다는 거야. 그런데 마음이 없다니까 무슨 멍한 모델로 착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생각이 붙지 않는다는 거야, 의식이. 그러니까 이 사람은 울 때는 백 프로 울고 먹을 땐 백 프로 먹고 말할 땐 백 프로 말하고 지나가면 아무 것도 없어요. 그냥 순간순간 사는 거야.
  
  - 요전에 경봉 스님이 자주 '인생은 연극이다. 이 무대에서 한 번 멋지게 살고 가라'고 하셨다는데 순간순간을 열심히 사는 것 그게 멋지게 사는 방식입니까?
  
  우리가 지금 손을 한 번 올렸다가 내리고 다시 그 손을 올린다면 다른 건데 우리가 보기에는 같아 뵈는 거지요. 그런데 이걸, 그 차이를 느끼는 게 깨닫는 거지. 모든 건 일회, 딱 이 세상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행동이다, 이런 걸 알고 경험을 할 땐 가장 신성하지요. 그렇게 산다는 거예요. 삶. 남보기엔 똑같이 보일지라고 이처럼 순간순간을 절실하게 산다면 똑같은 삶이라도 지루해 죽겠다는 소리는 안 하거든요. 매일 희망에 차 있고, 그러나 볼 때엔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깨닫기만 하면 하늘을 날고 물위를 걷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사람이 많지. 그게 우리가 잘못된 거지, 그게 아닙니다. 깨달음을 얻고 나서는 신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덧 없음을 한탄하는 게 아니라 아주 성실한 생활인이 되는 거지요.
  
  - 일본 작가가 쓴'화염경의 세계' 라는 책을 읽어보니까, 보시(布施)를 할 때에는 남을 도와 준다는 동정심을 갖기보다는 남을 도와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그 도움 받는 사람에게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며 나아가서는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말라고 했더군요.
  
  그런 얘기는 화엄경에도 있고 금강경에도 보면 '무주상보시(無住想布施)', 내가 주었다는 상(想)에 주하지 말고 보시하라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이건 경제하는 사람들이 알 텐데 물질이라는 것은 주인이 없다는 거예요. 단지 나한테 와서 내가 쓸 뿐이지 영원히 내것은 아니라는 거죠. 여기에 밥이 두 그릇 있다고 칩시다. 여기 내가 내 양껏 한 그릇을 먹고 한 그릇이 남았다면 이건 누구 겁니까? 내 것이 아니라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내 몫이 아니면 줘야죠. 다른 사람 몫이 나한테 와서 주는거니까 주는 거예요, 당연히. 그러니까 사실은 감사할 필요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그냥 네 몫이니까 네가 가져가라는 거예요. 자기 꺼니까. 그러니까 먹다가 자기 양이 반 그릇이면 그대로 먹고 또 주어라, 그거지. 바로 무주상. 내가 쓰고 남은 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 고맙고 감사할 게 없다는 거죠.
  
  - 불교의 내세관을 좀 설명해 주시죠?
  
  인간은 죽어서 서로 다른 여섯 개의 차원을 헤맨다는 거야. 인간의 차원, 짐승의 차원, 하늘의 차원, 귀신의 차원, 아수라라고 하는 투쟁의 차원, 지옥이라는 괴로움의 차원을 끊임없이 헤맨다는 거지. 이 여섯 개가 윤회라고 해요. 윤회란 바퀴가 도는 거니까 벗어날 수가 없지요. 그런데 인간을 최적기라고 그러죠. 왜냐하면 여기는 중간이니까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거쟎아요. 자기 노력에 의해서. 그리고 훌륭한 성자의 도움에 의해서…… 기도에 의해서…….
  
  - 최적기라뇨?
  
  최적기, 가장 적당한 기간이지. 왜냐면 선악이 공존하니까. 천상 같은 덴 너무 즐거우니까 해탈의 정신이 안 난다는 거야. 그러니 여기서 또 안 되고. 고통의 세계 지옥 같은 데는 너무 괴로우니까 어떤 틈이 없는 거죠. 그러니 인간을 최적기라 하죠. 그런데 왜 깨달으려 하냐면 깨달은 순간에 여기에서 이탈을 해요. 지금 이 여섯 개의 세계가 실제 있는 것이 아니라 미몽, 꿈 꿀 때 우리가 막 헤메는 식이라 내가 꿈을 꿀 때 이뤄진다는 거야. 왜냐믄 내가 이루어 논 어떤 전파니까. 근데 깨닫는 순간에 이게 없어져요. 벗어난다는 거지.
  
  - 그렇다면 이 차원 아닌 다른 차원으로, 즉 깨달은 사람에겐 육도 윤회의 내세관은 적용이 안 된다는 거죠?
  
  그러니 그게 해탈이예요.
  
  - 그럼 해탈은 득도와는 다릅니까?
  
  득도하는 순간 영혼은 그 세계에 갔고 몸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여기에 잡혀 그렇다면 이 차원 아닌 다른 차원으로, 있지만 혼은 이미 간 거예요. 그러니까 몸이 죽으면서 완전히 데려가지. 그래서 열반이 두 개가 있어요. 무형 열반, 유형 열반. 유형 열반이라면 불완전한 열반이죠. 육체가 있으니까. 아무리 깨달아도 누가 날 때리는 육체의 재앙에는 아프거든? 정신은 한없이 높이 가는데 몸은 말을 안 듣는다. 그러니 육체를 가진 사람은 다 마찬가지야. 부다도 죽을 때 제자들을 앉혀 놓고'아, 나 등이 아프다, 등을 자꾸 문질러 달라'고 말하면서 열반으로 갔고. 그러니 어떤 몸을 가진 자의 고통은 몸을 벗어날 수 없어요. 예수도 마찬가지였죠.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 그러면 열반으로 가서 해탈한 혼은 어떻게 됩니까?
  
  죽고 나서 말이요? 죽고 나면 여기서 벗어나서 혼과 합친다는 거죠. 영혼 그 자체가 돼버려. 그러니까 여기 물이 있쟎아요? 물이 여깄을 땐 이 주전자에 갇혀서 파도도 안 치고 바닷물의 파워가 없쟎아요. 이걸 바다에 부어버리면 그 순간 바다 전체가 되는 거지. 이 물을 부산에다 부었다면 부산 앞바다인 동시에 미국 바다고 중국 바다고 세계 어디 바다도 다 되는 거지. 세계 어디나 똑같은 물인 거야. 그러니 나는 여기 있음과 동시에 중국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고…… 그렇게 되는거지. 그러니 우리가 근본적으로 구별이 없다는 거지요. 너와 내가 개체로서 말이야요.
  
  - 그러니 우리가 말하는 무(無)라는 건 죽음과 다릅니까?
  
  무를 얘기하면 자꾸 허무주의와 연관되니까. 원래 불교의 무의 개념이 중국에서 말하는 공(空)의 개념이 아닙니다. 어떤 거울의 상태, 텅 비었으나 어둡지는 않은 상태거든. 그러니 무는 캄캄한 상태고 공은 거울의 상태죠. 그런데 중국에서는 원래 '공'의 개념이 없어서 불교가 처음 중국에 들어갔을 때 노자의 '무'사상, 그 노장 사상을 가지고 불교를 설명했어요. 그냥하면 잘 이해가 안 가니까. '공'이라는 것은 대강 '무'와 같다…… 모양이나 빛깔이나 감각이나 사고로 잡을 수는 없되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에너지에 소용된다는 거죠.
  
  - '주역'의 '태극'이나 같은 의미입니까?
  
  음양이 생기기 전이죠. 굳이 갖다가 붙이면 같다고 할까……
  
  - 비유해서 설명한다면…….
  
  비유해서 설명한다면 태극하고 신은 또 어떻게 달라?
  
  - 그럼 같다는 말씀입니까?
  
  같은 걸 그냥 그렇게 표현하는 거지요. 영혼은 어떻게 달라, 같은 거지. 태극이 있고 뭐가 있고 뭐가 있고……하는데, 설명이 다를 뿐이지 결국 같은거지. 비슷한 개념들이 그렇게 나오는 거겠죠? 섭리라든지 영혼이라든지 신이라든지 부처라든지…….
  
  - 그런데 성경에서 보면 심판이 시기에 천년 왕국이 있고 천년 왕국이 끝나면 지옥으로 천당으로 갈라진다고 하고 그런 것을 성경에 딱 규정해 그 외의 것은 이단시하고 아주 기계적이다 보니까 그런 점에 대해서 상당한 의문을 갖게 되고, 또 예수를 몰라서 안 믿었던 사람은 과연 어떻게 되느냐는 의문이 생기는데 불교는 그런 면의 해답은 어떻게 내립니까?
  
  그래서 부처나 보살의 성자들은 우기가 'SOS' 친다면 언제든지 온다는 거예요. 불가사의한 파워로 거기서 기도가 필요하고 명상이 필요하고, 이게 다르죠. 근데 아마 기독교의 내세관이 유태교 쪽에서 영향을 받은 모양이에요.
  
  - 어떤 기독교 교파에선 천당 가고 지옥 갈 사람은 이미 다 예정되어서 노력해 봤자 이미 다 명부에 적혀 있다는 이른바 예정설도 있습니다만…….
  
  그런데 그런 건 다 후세 인간들이 만든 것 아냐? 그러니 그런 것 때문에 우리가 떨 필요는 없고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현재에 잘 사느냐, 내 직분에 스스로 충실하고 겸손하게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데 있는 거예요. 내세고 뭐고 아무 것도 필요 없어요.
  
  - 성경 말씀에도 내일 걱정은 내일 하고 오늘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취지의 말씀이 있는데…….
  
  그러니까 어제의 결과가 오늘이고, 오늘의 결과는 내일이고…… 그러니 오늘이 중요하죠. 내세라는 것은 지금의 결과니까요. 전 세상의 그 결과가 지금이고. 그러니 문제는 지금이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정신의 허영으로 공연히 내세라는 엉뚱한 얘기를 해요. 아, 여기 좋은 얘기가 있네, 불경에서는 독전(毒箭)에 비유하지, 독화살의 비유. 어떤 얘긴가 하면 두 사람이 길을 가는데 길가에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고 죽어 가더라 이거야. 그 둘 중 한 명은 빨리 화살을 뽑고 이 사람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야 한다, 그러고 또 다른 하나는 말하길 아니다, 이 사람이 어떤 독화살을 맞았고 어떻게 맞았고 누가 쏘았는가를 면밀히 조사한 다음에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옥신각신 싸우는 거예요.
  왜 부처가 이 비유를 하셨냐 하면 어떤 제자가 부처에게 내세를 물었기 때문이예요. 그래 부처가 이 비유를 하시면서 '그래 너희 같으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우선 화살을 뽑고 살려 놓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시면서 현세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거예요. 내세는 필요없다, 현재가 중요한 거지, 그러니 지금에서 네가 최선을 다하고 진실을 다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겸허하게 살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거예요. 일체 내세에 대한 거론은 무시해버렸죠. 그건 어리석은 얘기라고, 그걸 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아예 명상을 하라고, 그게 벌써 다르지요.
  
  - 내세관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이군요.
  
  그렇죠. 해답이라면 기가 막히죠. 그러니까 그런 문제가 나올 땐 그런 식으로 잘라버렸죠.
  
  - 성실하게 산다는 말은 좋은데 그렇다면 과연 성실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있는데요…….
  
  이와 같은 거죠. 해답은 간단해요. 이 세상에 바람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없다고는 못 느껴요. 나뭇잎의 흔들림을 봐서, 그렇죠? 진실이 뭐냐고 하면 아무도 대답할 사람이 없지만, 자기 자신은 알아요. 가만히 자기 본 자세로 돌아왔을 때 생각해 보면 자기 자신만은 알아요. 그런데 남에게 설명은 안돼요. 왜냐면 자기 처지에서 진실은 자기만 아니까. 그런데 배운 자들은 이것으로 자기 합리화를 해서 묘하게 진리를 은폐시키고, 차라리 무식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데.
  그래서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씀도 있지만 이것은 꼭 물질적인 부자만은 아닌 거 같아요. 이게 지식적인 부자도 마찬가지예요.
  
  - 그런 점에서 보면 요즘 많이 쓰는 민족 종교라는 말도 민족이라는 말에 어폐가 있겠군요.
  
  그럼요. 민족이라는 말도 웃기는 거죠. 차라리 인간 종교지.
  
  - 어떤 민족적 종교라는 게 하나의 과정이듯이 돼야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까?
  
  그럼요, 안 되죠. 그렇다면 유태교 식이지. 그건 유태교의 모방이예요.
  
  - 종교라는 것의 기본이 보편성인데 그것을 잃는다면 그건…….
  
  그건 끝난 거죠,그 자체가 아편이고. 기본적인 보편성을 잃는다면 누구 말마따나 아편이란 게 안 좋은 말이니까 마리화나 정도라고 해주지.
  
  - 종교가 국수주의로 흐르는 건 좋지 않지만 어떤 지역적인 특성을 살리는 것, 곧 개성을 돋보이는 것이 되면 그 특수성으로 해서 보편성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까. 예를 들면 선 같은 것이 우리 나라에 들어와 우리 나름대로의 선으로 되는 것은 보편성에서 이탈하는 게 아니고 그것을 더 빛나게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 차이, 즉 배타적 국수주의와 개방적 지역주의가 우리 나라에선 아직 구분이 안되는 것 같아요. 민족 종교라면 그저 '애국심'하고 내세우는 걸로 착가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렇게 잘못되면 그건 종교가 아니라 어떤 정책이예요.
  
  -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조국애를 시로 다루어 썼다는 평가를 받아온 한용운 스님의 해석도 새로와지지 않겠습니까?
  
  그건 평론가들이 억지로 한 거죠.
  
  - 불교를 많이 아는 분들은 '님'을 문학 평론가들과는 다르게 해석하던데요.
  
  그 '님'은 한용운의 '님'이지 객관적으로 누가 해석해도 다 틀려요. 그러니까 가끔 '님'이 조국도 되고 평범한 술집 여자도 되고, 어떤 땐 부처도 되고 순간순간 다달라요. 그 때마다 다 틀렸을 거야. 그런데 '님'은 바로 이것이다 하고 말한다는 게 우스운 일이죠.
  
  - 한용운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훌륭하시죠. 훌륭하시고 뒷사람들에게 많은 가르침도 주셨고…….
  
  - 그런데 스님께서 쓰신 책을 보니까 한용운을 나오게 한 그 뒤에는 만공 스님이나 경허 스님 같은 분이 있어 그 분들이 하나의 큰 물이고 거기에 파도로 나타난 게 바로 한용운이라고 하셨던데….
  
  그렇다 해서 물하고 파도와의 관계는 물이 폼으로 나타날 때 파도이거든요. 파도가 가라앉으면 물이 되니까. 뭐가 높다 낮다 할 수 없는 거지요. 한용운은 만공이나 경허 같은 세계가 다리 활성화 됐다 뿐이지, 그렇다고 경허나 만공이 한용운을 가르쳤다는 것은 아니거든요. 만공 스님하곤 친구였죠, 한용운은.
  
  - 동년배입니까?
  
  약간 나이가 어린데 친구였어요. 그러니 어떤 사람은 파도 역할을 하고 어떤 사람은 물의 역할을 하는 건 순전히 그 사람 특성이지 높낮이는 없죠.
  
  - 요즈음 불교를 보면 상업주의로 흐르는 경향을 볼 수 있는데요, 예를 들자면 기행(奇行) 만을 즐긴다든지 사랑학 운운하는 식의 책을 중이 저술하는 둥…… 경허 스님의 기행이 유명한데 누군가가 그 스님보고 그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하고 물으니까, '주저 없이, 그리고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해라'고 말씀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 외도하는 중들이 과연 '주저 없이, 후회 없이, 그런 기행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일정한 주류가 굳건히 있어서 이단 같은 것이 그 옆에 와서 달라 붙게 되면 그래도 괜찮은데 그런 주류라는 것이 없고 이단이 하나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루면 그건 곤란하겠죠?
  
  그런 것들이 나타나면 그것을 자극으로 해서라도 주류가 깨어나겠죠. 주류가 약하니까 미꾸라지가 논물을 흐려놓는 것처럼…… 그러니 이 때 주류가 각성해야죠.
  
  - 그런 점에서는 그 사람들 나름대로 공헌도 했네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얘기해선 안 되죠. 허허…… 너무 좋다고 그러면 기회를 잡으니까 혼도 좀 내야죠.
  
  - 우리 나라 불교가 앞으로 활성화 될 에너지는 충분히 있는 겁니까?
  
  있어요. 그리고 밖을 다녀 보니까 우리 나라 불교 좋아요. 아주 융통성도 있고.
  
  - 스님께 지금까지 가장 영향을 많이 준 분은 누굽니까?
  
  저는요, 사상이란 게 없습니다. 굳이 얘길하자면 지금 생각해 보니까 위대한 분들보다는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 스쳐 지나가는 장며들 있죠, 그리고 제일 두고두고 남는 건 그런 장면들이죠. 그런 영향으로서……제가 한 칠, 팔년 전인가쯤 동대문을 지나 가는데 시골에서 올라온 소녀인가 봐요. 떡을 먹었는 것 같은데 입에 떡고물 잔뜩 묻히고 그런데 돈이 없나 봐요. 하나를 더 먹고 싶은 모양인데 그냥 쳐다 보고만 서 있는 거예요. 굉장히 아쉬워 하면서. 그 때는 몰랐는데 그 표정이 두고두고 안 잊혀지는 거예요. 그런 어떤 것들, 스쳐가는 것들이 쌓여서 나타나요. 그러면서 내가 찾아야 할 스승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이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생활인들. 나는 괜히 엉뚱한 델 돌아다니고 위대한 구루를 찾고…… '이게 잘못됐구나,' 요즘 그 생각들 뿐예요.
  하여튼 그런 식의 장면들이 여러 개가 있어요, 저한테. 그런 것들이 가장 영향을 주는 거죠, 제게.
  
  - 요즘은 시 안 쓰십니까?
  
  원래 일기를 썼죠. 그게 시를 쓰게 된 동기가 된 거죠. 그래 가지고 시를 썼는데 요즘은 안 써요. 요즘은 어떤 생각을 하냐 하믄 '생활이 바로 시가 아닌가',이런 생각이 들어요.
  
  - 시상을 갈구하는 마음이 없어진 겁니까?
  
  시상이 떠올라도 제가 그냥 지워버려요. 왜냐면 시를 쓴답시고 원고지 들고 돌아 다니는 게 인젠 싫어요.
  
  - 제일 첨에 시를 쓰실 때 어떤 이의 시를 모델로 했다는 그런 것이 있습니까?
  
  그 때는 제가 타고르 시 번역된 것을 많이 봤어요. 한용운 시도 많이 봤고……
  
  - 연세가…….
  
  아니 서른여덟이죠.
  
  - 본명은…….
  
  본명은 그냥 함(咸)씨에요. 함석헌(咸錫憲) 함 자지. 함씨는 본이 하납니다. 강릉이지요.
  
  - 경봉 스님께서 선생님 책의 발문을 쓰신 적이 있던데요?
  
  제가 갔었어요. 그래 사무실에서 쓰셨는데. 그 원본을 잃었어요. 그걸 표구해 놓으면 참 좋은데 친필로 쓰신 거라…….
  
  - 원광(圓光)할 때 원을 경봉 스님은 동그라미로 쓰셨던데 그건 무슨…….
  
  이 양반이 어느 날부터 그렇게 바꿨어요. 그게 훨씬 낫죠.
  
  - 경봉 스님은 어떤 분입니까?
  
  아주 좋은 선사시죠. 그렇게 훌륭하신 선사가 없으시겠죠.
  
  - 그 분 말씀하시는 폼에 어떤 거침이 없다던데요.
  
  그렇죠. 굳이 잘하려고 하지도 않고 꾸밈이 없고. 몸에서 그냥 배어 나오죠.
  
  - 그게 말하자면 훌륭한 연극 배우라는….
  
  아, 그럼요. 진짜 그렇지.
  
  - 몸집이 아주 크시죠?
  
  굉장히 거구죠. 인상이 할머니 비슷하고.
  
  - 요번에는 그 분의 사리가 안 나왔죠?
  
  사리를 안 채취했죠. 그런 것을 문중에서 안하기로 했죠. 그것도 그래요. 사리라는 것이 윈래 뼙니다, 뼈. 근데 뒤에 가서 그게 구슬이니 뭐니 요사스런 얘기가 나오는데, 진짜 사리는 그 사람이 살아서 다른 삶의 영혼을 얼마나 충전시키느냐 그게 진짜 사리지요. 무슨 그걸 가지고 요사스런 구슬이라고 하는지…… 그것을 스스로 안 해야 하는데 어떤 데를 보면 신문 기자를 모아 놓고 발표를 하기도 하고 사리가 안 나오면 발표도 안 하고…….
  
  - 스님, 수염이 빨리 자랍니까, 머리털이 빨리 자랍니까?
  
  거의 비슷하게 자라는데 수염이 좀 빠른 것 같아요.
  
  - 그런 경험은 스님밖에는 못하실 것 같아서요.
  
  허허. 깎기가 귀찮아서……인도에 있을 때는 그냥 놔뒀어요.
  
  - 앞으로 대한 민국이 새로운 전환점을 져오는 데 종교가 가장 큰 역할을 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던데요?
  
  그럼요. 그리고 우리 나라가 종교든지 영적인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안 뒤지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자부심을 가져도 괜찮을 거예요.
  
  - 그것이 잘 되어지면 세계사적인 의미를 가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리고 우리 위치가 상당히 초 점이 아니겠어요. 우리 문제만 잘 해결되면 세계 문제가 거의 해결되는 거니까.
  
  - 그런 말을 많이 하더군요. 최종적인 해결은 한국에서 일어나야 되겠다…….
  
  그럼요. 상황이 결국은 무엇을 만드니까. 우리 하나 하나가 자각을 하고 나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