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터넷언론협회 주최]
  
   趙甲濟의 기자교실 제2기 제3교시 강의록
  
   주제: 취재의 원칙
  
   지난 강의록은 정리를 해서 제 사이트에 올리고 있습니다. 정리를 충실히 해서 올리고 있으니까 자료를 출력해서 들고 다니면서 읽어보세요. 그리고 다음부터는 꼭 시간을 지키세요. 강의는 오후 7시부터입니다. 기자는 시간과 싸우는 직업인데 시간을 안지키면 기자로써의 자질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다음 강의부터는 한 사람만 있어도 7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KAL에 칼을 댄다’라는 기사 읽어봤습니까? 읽어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먼저 양해를 구하겠습니다만 입력을 부탁한 겁니다. 제가 교정을 못봐서 군데군데 誤字가 있습니다. 자, 누가 이 기사에 대해서 코멘트할 사람 없습니까?
  ('KAL에 칼을 댄다'는 기사는 별도 파일로 올립니다)
   고성달: 저도 밀리터리 매니아로써 항공기에 관심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현재 시점과는 많이 차이가 있습니다만 당시의 기준으로 봐서는 항공기 관제라는 것이 굉장히 전문분야 아니겠습니까? 1984년도에 게재된 것으로 봐서는 당시 굉장한 심층취재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조갑제: 그다음 다른 분? 공학도이신 김권혁 박사님께서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김권혁: 내용은 관제라든지 하는 부분은 이미 아는 부분이라서요... 글 최초에 나오는 KAL007기 추락 사건은 이후 GPS를 민간 항공기에서 사용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KAL기가 앵커리지를 떠나면서 문제가 됐었던 게 계기가 돼서 신기술을 쓰게 됐습니다.
   조갑제: 그 때 문제가 됐던 기술들이 이 사건이 계기가 돼서 기술이 많이 발전했죠?
   김권혁: 예, 그 뿐만 아니라 음모론도 당시 많았습니다. 미국이 INS를 조작했다 등등의 말들이 많았습니다.
   고성달: 그리고 제가 볼 때는 사실 관계가 틀린 게 있는 거 같습니다. 에어버스 A300기종은 항법사가 없습니다. 조종사와 부조종사만 있습니다.
   조갑제: 지금이겠지...
   고성달: 아닙니다. 그 때부터 없었습니다. 다른 비행기와는 달랐습니다. 그리고 ‘INS와 나침반이 다 고장났을 때 어떻게 할거냐’는 질문에 조종사가 ‘아,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건 일종의 실수같습니다. 실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면 조종사가 관제탑과 교신하면서 자신의 상황을 보고합니다. 그러면 관제탑에서 비행기의 위치를 확인해 줍니다. 그러면 조종사는 관제탑과 계속 교신하면서 지시에 따라 운항하게 됩니다. 또 실제 비상사태가 일어나게 되면 ‘비상 매뉴얼’을 보면서 응급조처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조종사가 인터뷰를 하면서 ‘아, 그런 상황이 닥치면 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다는 건 조금 말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조갑제: 이해 안되는 부분은 없었어요? 기술적인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
   신은정: 視界(시계)비행 등 이렇게 잘 모르는 단어들이 있었거든요. 그런 부분이 있어서 읽을 때 좀 어려웠습니다.
   조갑제: 그래도 굉장히 쉽게 쓰려고 노력을 한 겁니다. 이 이상 쉽게 쓰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이 기사를 보실 때 도입 부분하고 끝 부분을 보세요. 기사의 도입 부분과 끝 부분이 중요합니다. 기사를 읽을 때 사람의 인상에 남는 게 처음과 마지막 부분입니다.
  
  기사의 첫 부분에서 제가 일본에서 타고 들어온 비행기 연료가 떨어질 뻔했다는 게 나오죠? 이 기사는 제가 취재하는 데 한 달 정도 걸린 겁니다. 제가 원래 공군 출신입니다. 주특기가 요격관제였습니다. 그래서 비행기에 대해 기본적인 부분은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이 취재의 주요 취재원은 조종사들이었습니다. 취재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고 제 군대생활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선 말이 통하니까요. 만약 공군 출신이 아닌 기자라면 조종사와 이야기할 때 조종사가 굉장히 답답할 겁니다. 일일이 모두 설명해줘야 하니까요. 저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리했었습니다.
   그 때 KAL기 사고가 연달아 일어날 때였습니다. 그래서 조종사들도 굉장히 긴장해 있을 때였습니다. 하드트레이닝을 받고 있었구요. 제가 조종사의 입장에서 취재를 했기 때문에 조종사들 중에서도 퇴직한 조종사라든지 현직에 있는 조종사들이 자발적으로 제게 협조를 많이 해줬고 회사의 문제점을 많이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그러다보니 취재 과정에서 특종 거리가 될 만한 정보가 많이 숨어 있습니다. 회사 내부에서 나온 자료를 인용해서 쓴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기사의 주제인 항공기의 안전이라는 것은 굉장히 전문적이고 어려운 분야인데 여기에 대해 종합적으로 취재한 최초의 기사일 겁니다. 이 기사를 쓴 6개월 후에는 ‘한국 자동차, 알고는 못탄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그것도 우리나라 자동차의 안전에 대한 최초의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를 쓴 다음 저는 이 기사 덕을 많이 봤습니다. 당시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이 기사를 읽은 이후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실하고 정확하게 써줬다고 해서 제 이름을 기억해가지고 제가 비행기를 타면 조종사들이 저를 조종실에 데려가서 구경도 시켜주고 하는 등 조종사들이 저를 많이 좋아했습니다. 제가 회사 편을 안들고 조종사의 편에서 기사를 작성했었기 때문이지요. 당시에는 조종사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입니다.
   이 기사를 취재하다보니까 ‘대한항공 007기가 이렇게 해서 항로를 벗어났구나’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중에서 007기 뒤에 떴던 018기. 그 기사에 나오는 018기 조종사 박용만이라는 사람이 제 기사를 읽은 다음 2년 뒤에 연락이 와서는 007 사건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과 함께 취재를 해서 1986년 12월, 007기 최후의 목격자라는 기사를 또 하나 더 썼습니다. 그것은 007이 왜 항로를 이탈하게 되었나 하는 이 사람의 연구결과를 제게 이야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사람의 이론이 맞았습니다. 블랙박스 회수하고 난 다음에요. 즉, 이 기사를 통해 또 다른 특종을 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항공전문 기자 비슷한 대우를 받으면서 대한항공에 자리 부탁도 잘 통하고 하는 등 좋았습니다. 이건 농담입니다. 하여튼 여러 가지로 이 기사 때문에 덕을 많이 봤습니다.
   그 뒤에도 저는 계속 항공 사고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졌습니다. 그 후 괌 사고 때에도 제가 취재를 해서 1998년 기사를 썼습니다. 대한항공 괌 사고 아시죠? 그 때도 약 200여 명이 죽고 30여 명이 살아난, 그런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로써는 굉장히 여러 가지 뒤에 남는 게 많은 취재였습니다.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취재를 충실하게 하면 뭔가 남는 게 많습니다. 남는 게 많다는 이야기는 그것을 계기로 자기 전문분야가 정해질 수도 있고 자기가 전문기자인 양 할 수도 있고, 그 분야의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습니다. 즉, 그것이 기자 생활을 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된다는 겁니다. 이 기사는 제게 자산이 된 기사 중 하나입니다.
  
   요새도 이 기사를 읽어보면 한달 취재한 거 치고는 꽤 충실하게 했구나 하는 조금 대견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여러분들께 한 번 읽어보라고 한 겁니다. 특히 기자들이 과학 분야에 대해서 기사를 쓰면 용어부터 틀리는 일도 있어서 전문가들이 읽어보면 ‘뭐 이따위 기사를 썼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사람들이야 뭐가 틀렸는지 모르지만 그 분야의 사람들은 잘못된 부분을 잘 알거든요. 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높게 평가하는 기사가 좋은 기사입니다. 그 사람들은 정확하게 보니까요. 그 당시 대한항공이나 조종사들이 이 기사를 높게 평가해줘서 굉장히 보람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기사를 가지고 읽어보시면서 요모조모 한 번 따져보셨으면 합니다.
   이 기사는 길기 때문에 긴장감 있게 읽혀야 한다는 게 기사를 쓸 때 제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 있게 읽혀야 한다, 그러려면 사례를 많이 발굴해야 됩니다. 사례와 사례를 이어주는 식으로 기사가 흘러가야지 설명이 많이 들어가면 안된다 이겁니다. 사례를 보여주는 것의 연속이라야 되지 설명을 길게 하기 시작하면 보는 사람이 지겨워진다는 겁니다. 설교는 듣기 싫지 않습니까? 하지만 영화 보는 건 쉽고 재미있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마치 영화를 보는 기법처럼 사례가 이 기사를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레이터가 아니라 사례를 따라 읽어가다 보니까 그 재미 가운데서 ‘아, 대한항공의 안전에 문제가 있구나’하고 느끼면 기사는 성공한 게 아니겠느냐, 그래서 이 긴장도를 유지하는 방식에 많은 신경을 쓴 기사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고성달: 그렇다면 상황을 눈에 보이게끔...
   조갑제: 묘사가 아니라 사례입니다. 사례. 그 안에 각각의 사례가 많지요? 긴 기사는 사례가 벽돌입니다. 하나의 사례가 하나의 벽돌입니다. 벽돌이 수백 개가 모여야 무슨 집을 지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긴 기사를 쓸 때는 사례를 많이 수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사는 적절한 곳에 집어넣어야겠죠? 네모잡이 돌은 네모난 곳에 집어넣고, 세모잡이 돌은 세모난 곳에 집어넣는, 그런 역할. 그래서 긴 기사는 사례 수집이라고 합니다. 사례를 여러 개를 모아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례와 사례의 연결이 심층취재이니까요. 다만 사례를 연결할 때에는 논리의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사례가 그냥 병렬적으로 연결되면 안됩니다. 직렬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1.5V 배터리 10개를 가지고 병렬로 연결하면 1.5V밖에 안됩니다만 직렬로 연결하면 15V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직렬과 병렬의 차이가 무엇인가? 병렬은 각각의 사례를 아무런 논리적인 구성 없이 그냥 무질서하게 나열한 것으로써 기사가 아니라 사례집, 자료집이 되어 버린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논리에 입각한 긴장도 있는 구성에 의해서 독자가 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례를 재미있게 읽어가면서 따라갈 수 있도록 건물을 짓듯이 기사를 건축하는 게 직렬입니다. 사례라는 벽돌로써 기사를 건축하는 게 기자가 할 일입니다. 긴 기사의 경우에 특히 그렇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취재의 원칙입니다. 오늘 나눠준 메모대로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취재에는 공식이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취재의 대상이 되는 사건-사고는 같은 게 하나도 없고 계속 바뀌기 때문입니다. 또 뉴스라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것을 똑같이 취재하는 게 아닙니다.
   ‘취재에 공식은 없으나 취재의 원칙은 있다’는 것을 알아놓으면 각각의 다른 취재를 할 때에도 참고가 될 것입니다. 취재의 원칙 또는 취재의 원리이다라고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첫 번째, 모든 취재는 특종을 겨냥해야 한다. 자기가 무슨 취재를 하든지 거기서 큰 기사거리를 캐내야 되겠다는 목표를 높게 잡아서 취재를 하다가 보면 설사 특종은 건지지 못할지라도 그 다음 낮은 단계의 기사거리는 건질 수가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득이 된다는 겁니다. 목표를 높게 잡자 이런 뜻이기도 합니다. 또 특종을 겨냥해야 되기 때문에 똑같은 기사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취재를 하다가 무엇이 새로우냐, 이런 것은 이렇게 새롭게 볼 수 없느냐 하는 항상 새로운 방식, 새로운 자료를 추구하게 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모든 취재는 특종을 목표로 하고 취재를 해야 좋은 값진 정보를 얻는다. 플러스 특종을 겨냥해야 기자가 용감해진다 이런 뜻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특종을 위한 행동이니까 더 적극적이어야 하지 않느냐 하면서 스스로를 격분시키고 스스로를 격동시키게 됩니다.
   두 번째, 취재는 용감하게, 끈질기게, 겸손하게 해야 한다. 취재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동시에 끈질기게 해야 하고 자세를 낮춰서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기자의 기본 자세하고도 같이 하는 원칙입니다.
   세 번째, 기자는 듣는 직업이지 말하는 직업인이 아니다. 기자가 말을 많이 하면 이상해요. 나중에 쓸 것이 없어져 버립니다. 또 기사를 쓸려고 할 때 기분이 내키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특종을 쓰는 기자는 특종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고 참으면서 안으로 계속 정보를 쌓아가야 합니다. 내공을 쌓는 겁니다. 또 누구하고 대화할 때 기자가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기자를 만나면 저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싫다, 이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기자를 만나면 저 사람에게는 괜히 자꾸 이야기하고 싶어지고 뭘 털어놓고 싶고 털어놓으면 저 사람이 잘 받아주고 자신의 말을 이해하고 하는, 이런 호응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꼭 기자가 아니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면 괜히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아주 의지가 되고 신뢰가 가는 사람이면 그렇습니다. 또 많이 알고.
   그러나 어떤 사람은 뭘 이야기해도 못알아 먹으니까 답답해서 아예 긴 설명을 하지 않고 뭐 적당히 해버리고, 또 그 기자가 성실한 것 같지도 않고 내가 이런 좋은 이야기를 해줘도 기사를 쓰지 않고 그것가지고 무슨 장난이나 할 거 같고 이렇게 되면 안됩니다. 그래서 기자는 그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도록 유도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네 번째, 보안은 기자의 생명이다. 자기가 취재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들키면 안되죠. 자기가 취재하는 중요한 특종거리일수록 스스로 이것을 지켜내고 보안을 해야 됩니다. 특종거리를 다 취재를 해놓고 보안을 잘못해가지고 남한테 특종을 선물하는 그런 바보같은 기자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사람처럼 보안에 실패하면 군인으로 말하면 경계에 실패한 사람처럼 용서를 못받습니다.
   다섯 번째, 작은 데서 큰 의미를 뽑아내자. 뭐냐하면 이런 기자가 있습니다. ‘나는 특종만 쓰겠다’라고 하는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큰 기사만 쓰겠다 해서 작은 기사를 쫓지 않는 기자가 있어요. 그런 기자는 어떻냐? 특종도 잡지 못하고 작은 기사도 쓰지 못합니다. 그러나 ‘작은 기사부터 제대로 챙기자’해서 열심히 돌아다니다 보면 그 안에서 큰 기사가 낚이는 겁니다.
   사회부에서 이런 기자를 많이 만나게 됩니다. 사회부 기자가 새벽에 보통 새벽 6시, 7시 이 때 경찰서에 나오거든요. 그러면 우선 간밤에 교통사고가 어떤게 일어났느냐, 간밤에 형사피의자로 누가 구속되었느냐, 누가 연행되어 유치장에 들어와 있느냐 하는 이런 것을 각 부서를 돌아다니면서 형사과, 교통과 등을 챙깁니다. 그 다음에는 관내에서 오늘 무슨 시위가 있는지 알아보려면 정보과에 가고, 그 다음에 경찰 내부의 인사 이런 걸 알려면 경무과에 가고 이런 식으로 경찰서에 나오면 꼭 챙겨야 할 부서가 약 10여 군데 됩니다. 10여 군데를 한 시간에 걸쳐 돌아다니게 되면 간밤에 자기가 맡은 지역이 강남이면 강남, 또 용산구가 간밤에 조용했구나 시끄러웠구나 하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러나 경찰은 강도나 살인사건 같은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기자한테 감추려고 합니다.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은 사건이 나도 기자가 알면 수사에 방해가 되니까 일부러 모른 척 해버립니다. 그런 것을 어떻게 하면 알아내느냐 하는 숨바꼭질을 하게 됩니다. 그런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자기가 특별히 잘 아는 형사한테 부탁하기도 하고 외부제보를 받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 경찰에서는 살인사건을 숨기지만 구청에서는 그건 자기와 관계가 없으니까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면 구청에 전화를 해서 그런 걸 챙기는 게 구청의 행정담당, 계가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간밤에 무슨 사고 없었습니까 하면 아, 오늘 XX동에서 간밤에 무슨 살인사건이 있었다는데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 사람들은 꼭 보안유지를 해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러면 경찰에서 놓친 것을 구청에서 얻는 경우, 이런 게 말하자면 작은 것을 하다 보면 큰 게 걸린다는 말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루틴 체크(Routine check)라고 합니다. 이런 것은 하기 싫고 그냥 큰 것만 챙기겠다면서 큰 사건 터지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사람한테는 사건도 안날 뿐만 아니라 사건이 났을 때는 그 사람은 어디 저 멀리 가있어서 낙종하기 좋습니다. 작은 것을 치밀하게 하다보면…. 고래잡으려면 그물이 치밀해야 하지 않습니까? 고래 잡으려고 그물망을 넓게 해서는 안되지 않습니까? 그물망을 좁게 하듯 ‘작은 것부터 소중하게 여기자’이런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경험한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1978년 제가 부산 서부경찰서를 출입할 때입니다. 우리가 항상 가는 곳이 종합병원 응급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연탄가스 중독사고로 가족이 몽땅 실려와서 누워있는 경우가 거의 매일 있었습니다. 70년대에는 연탄가스중독사고로 매년 1000명 이상 죽었습니다. 지금은 연탄가스 중독사고가 거의 없죠? 여기에 계신 분들 형님, 부모 세대들은 다들 연탄가스 한 번씩 마시고, 김치국 먹고 소생한 그런 경험이 없는 집이 없을 거에요. 그러니까 정부에서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새마을 보일러라는 걸 하나 만들었습니다. 새마을 보일러란 연탄은 사용하지만 보일러를 통해서 구들 밑으로 파이프를 지나가게 해, 구들로부터 바로 가스가 올라오지 않도록 하고 가스는 별도의 굴뚝을 통해 빠져나가도록 한, 이런 걸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시기에 제가 부산대학교 병원에 가보니까 다섯사람 가족이 중독돼 왔습니다. 가족 다섯 명 중 이미 두 사람은 죽고 세 사람은 인사불성이 돼 있었습니다. 당시 그 정도 사고는 일단짜리 기사밖에 안됐습니다. 워낙 그런 사고가 많이 나니까요. 그런데 저는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봐야겠다 싶어서 관내 파출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파출소에 전화를 해서 가족들이 이렇게 죽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물어보니 파출소에 전화받는 사람이 친절하게 그 분들이 이사들어오고 다음다음날인가 사고가 났다는 겁니다. ‘무슨 집입니까’하고 물어보니까 ‘새마을 보일러를 놓은 집인데 이상하게 가스를 마신 거 같아요’라고 대답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새마을 보일러는 가스중독이 안된다고 되어 있는데 그거 참 이상하다 해서 뒤에 취재를 해보니까 사고의 원인을 알게 됐습니다.
   어떻게 사고가 났느냐 하면 이 가스가 빠져나가는 굴뚝을 집 바깥에 별도로 내야 되는데 이 업자가 굴뚝을 벽-그때는 벽이 블록, 블록집 알죠? 요새도 블록을 쓰는지 모르겠는데, 왜 블록담을 쌓잖아요? 블록을 죽 쌓으면 가운데 공간이 생깁니다-을 연돌로 사용한 겁니다. 그 가스를 벽으로 통해 바깥으로 노출시킨 겁니다. 그 때 벽에 도배를 제대로 안해놓았던 겁니다. 그래서 벽을 통해 가스가 방안으로 들어와서-일산화탄소는 공기보다 무겁죠. 이게 밑으로 깔립니다. 만약 벽에서 연탄가스가 새게 되면 자고 있는 사람 코로 다 들어와 버립니다.-그래서 사고가 난 겁니다. ‘아 그럼 이건 이런 식의 새마을 보일러 공사를 하면 안되겠구나, 새마을 보일러는 반드시 바깥에 연돌을 만들어야지 짓는 사람이 돈 아낀다고 해서 벽을 연돌로 쓰면 큰 일 나겠구나’하는 판단으로 기사를 썼습니다.
   반면, 다른 기자들은 그냥 연탄가스 중독으로 일가족 다섯 명 중 두 명이 죽었고 세 명이 중태다 라고 일단짜리 기사를 썼지만 저는 아주 큰 기사를 썼습니다. ‘새마을 보일러를 쓰는 집에서 연탄가스 중독사고가 났기 때문에 이런 식의 설계는 문제가 있다’ 이렇게 썼습니다. 아마 그 뒤에 그 기사 때문에 이런 식의 설계는 하면 안된다고 정부의 방침이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바로 작은 것을 그냥 넘기지 않고 항상 특종을 염두에 두니까 이렇게 한 겁니다. 그렇죠? 그냥 편하게 할 거 같으면 파출소에 전화하는 것도 귀찮으니까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 손을 댈 텐데 왜 죽었을까 전화 한 번 해본 게 새로운 더 큰 기사로 연결된 겁니다.
   여섯 번째, 3대 일상적 체크에 충실해야 한다. 기자는 체크를 해야 합니다. 체크라는 말을 우리가 많이 쓰는 데 점검입니다. 기자는 꼭 세 가지 체크를 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자는 인터넷 기자든 어디 기자든 모두 공통된 겁니다. 꼭 사회부 기자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루틴 체크란 뭐냐. 세상에 일어나는 일은 어딘가의 그물에 걸리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보가 흐르는데 있어서 일종의 길목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쪽을 중점적으로 체크하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 교통과를 체크하고 형사과, 정보과를 체크하는 것도 그 정보가 그 쪽으로 몰리니까, 그것을 정보의 길목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을 전화를 걸어서 일상적으로 체크하다 보면 거기서 중요한 사건이 걸려든다는 겁니다. 점검이 되는 겁니다. 이것을 루틴 체크라고 합니다. 똑같은 것을 반복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잡지 기사는 어떻게 루틴 체크를 활용할 것인가. 인터넷 기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은 각각 자기 나름대로의 설계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나는 출입처에 가자마자 제일 처음에 누구누구 사이트를 확인을 하고 그 다음에 또 자기가 잘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가지고 요새 세상 돌아가는 게 어떤지 물어보고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걸어서 정보를 수집한다 하는, 이런 루틴 체크 리스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추적 체크입니다. 팔로우 업(Follow up) 체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기사를 쓴 다음 잊어버리지 말고 며칠 뒤 그게 어떻게 됐을까 다시 확인해 본다 이겁니다. 예컨대 살인사건으로 A라는 경찰서에서 K라는 범인을 잡아서 검찰에 송치를 했고 검찰에서는 재판을 했다고 하는 데 이 사람이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한번 물어보자 해서 물어보니까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또는 이 사람이 조사를 받다가 도망을 갔다더라. 또는 이 사람이 감옥 살다가 자살을 했다더라 하는 이런 후속 기사가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가끔씩 추적을 하는 점검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 다음 크로스 체크(Cross check)는 A라는 사람이 A라는 주장을 하면 그것과 반대되는 B라는 사람을 찾아가서 또다른 주장을 하는 것을 듣고서 기자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이런 뜻입니다.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체크를 해서 A라는 사람의 말이 맞느냐 하는 것을 점검을 해야 한다 이런 것입니다.
   제가 일요일에 집에서 사무실로 와서 인터넷을 켜니까 이런 기사가 나오더군요. 김동석이라는 대북공작원 출신 예비역 대령이 6.25가 끝난 후 인민군 사단장을 납치했다, 그리고 박정희하고 정일권이 소련군에게 붙잡혀서 탈출하는 것을 자기가 도왔다 이런 게 기사로 나왔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박정희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알지 않습니까? 박정희가 만주에서 소련군을 만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납치가 될 수 있을까 해서 거기에 대해 반박하는 기사를 금방 써서 올려놨습니다.
   그걸로 미루어봐서 제 생각은 그 사람이 인민군 사단장을 납치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박정희는 8.15때 어디에 있었냐 하면 지금의 북경 북쪽 열하성이라는 곳에 있으면서 모택동 군대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8.15를 맞으면서 滿軍(만군)이니까-그 책에서는 일본군이라고 써놨더군요-만군 사람들에게 무장해제를 당했습니다. 이 사람은 중국 사람이 아니라 일본 육사출신이니까요. 그래서 거기 있던, 당시 한국 장교가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현재 생존자는 신현준 한 사람입니다. 이주일, 신현준, 박정희, 이렇게 세 사람은 북경까지 걸어서 왔습니다. 북경을 통해서 귀국하려고. 북경에 도착한 게 1945년 9월 21일쯤 됩니다. 소련군은 들어오기도 전입니다. 장개석 군대의 관할 범위 안에서였습니다. 이 사람은 그것을 비슷하게도 아니고 소련군에게 붙잡혀가지고 호송되는 과정에 탈출을 했다는 등 뭐 완전히 이렇게 소설을 써놨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걸 취재를 한 번 해보세요. 꼭 취재를 해서 기사를 올리세요. 그 사람이 말한 것 중 특히 인민군 사단장을 납치했다는 것은 안믿습니다. 사단장을 납치했다면 지금까지 우리 군대에서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게 숨길 일도 아니구요. 아마 장교 정도야 납치할 수 있었겠지만 사단장은 납치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 말의 대부분은 과대망상증 환자의 가공적인 이야기라고 봅니다.
   김권혁: 예전에 사단장이 귀순했다는 이야기는 있었습니다. 신문에 보면 9사단장이 귀순을 했을 때 당시 북한군이 정전위원회를 통해 돌려달라고 말했고 그 사람은 당뇨병, 고혈압 등으로 5년 만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조갑제: 그 사람 말은 납치했다면서요?
   김권혁: 납치라고 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귀순했다고 되어 있는데 그 사람은 납치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조갑제: 그 사람 주장을 주의깊게 봐야 합니다. 기사 내용이 재미있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취재하다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종종 과대망상증에 걸린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머리 속에 상상으로 소설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이야기할 때는 진실처럼 이야기합니다. 들어보면 근사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기자들도 많이 속아넘어갑니다. 이런 경우와 유사합니다. 최소한 박정희, 정일권 부분은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입니다. 비슷하게 틀려야지. 이 말을 한 것을 보면 다른 부분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대필을 시켰다든지 하면서, 연세가 팔순이 넘으면 기억이 뒤죽박죽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 만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그 책을 꼭 밑줄 쳐가면서 읽고 꼭 물어보세요. 우리나라 국방부에도 물어보구요. 이제 그런 건 숨길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제 생각은 하여튼 그렇습니다. 자, 이런 것도 제가 루틴 체크를 계속하다가 그런 기사 하나가 나온 겁니다. 그리고 크로스 체크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이번의 경우는 제가 크로스체크를 한 것에도 해당됩니다. 그 사람의 말을 믿었던 게 아니라 어 이건 사실이 아니다 해서 제가 써올렸습니다. 써올린 후 연합통신 기자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보도는 사실과 다르니까 제 글을 참고하라고 했습니다. 후속보도가 나왔는지 안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조선닷컴에는 제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첨부되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바로 크로스 체크입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요새는 그런 사건이 없는데 70년대 사회부에 있으면서 자주 접하는 것 중 고아원이라고 있었습니다. 요새는 다른 이름으로 부릅니다만. 고아원 원생들이 꼬마들 아닙니까. 꼬마들이 찾아와서 원장을 고발합니다. ‘외부 사람들이 연탄도 가져다주고 담요도 가져다 주는데 우리한테는 안주고 우리는 추워죽을 지경입니다’ 라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젊은 기자들은 정의감에서 ‘원장이 참 나쁜 사람이다’해가지고 아이들 말을 믿고 기사를 씁니다. 악덕 고아원장을 고발한다 이런 식으로 씁니다.
   이런 일방적인 기사를 쓰면 어떻게 되냐. 그날 오후에는 고아원 원장이 장부를 가지고 찾아옵니다. 지금 정부에서 보조받는 것만 가지고는 한 끼도 먹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외부에서 담요 가져다 주는 걸 팔아가지고서라도 쌀이라도 사서 먹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요 꼬마들은 기증품 파는 것만 보고 국가보조는 모르고 이렇게 이야기한 겁니다. 이러면 기자는 할 말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 때 빨리 크로스 체크를 하기 위해서 고아원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설명을 들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말이지요.
   그러니까 기자는 동쪽에서 해가 뜬다고 말한 사람이 있으면 서쪽에서 해가 뜬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일부러 찾아서라도 그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크로스 체크는 기자의 의무입니다. 물론 이것은 사실확인에 관한 겁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쓴 기사를 비판을 할 때 그 기사를 비판을 하고 나서-일전에 전영기라는 사람을 비판하고 난 후 그 사람에게 전화해서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야기를 듣고 싶다-하는 게 원칙입니다. 논평의 경우에는 그게 원칙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논평은 논평 형식으로 비판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논평은 사람의 생각의 차이니까요. 이런 것이 의무는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전영기라는 사람의 의견도 듣고 하면 더 좋은 기사가 되는 겁니다. 더 공평하게 보인다는 겁니다.
   루틴 체크, 추적 체크, 크로스 체크, 이 의미는 아시겠지요? 추적 체크는 아까 제가 말씀드린 'KAL에 칼을 댄다'를 쓰고 난 2년 뒤에 다시 그 기사의 연장선상에서 'KAL 007 추적, 최후의 목격자'라는 기사를 썼는데 이게 국제적 기사가 됐습니다. 그런 경우가 추척 체크에 의해서 더 큰 기사를 만들어낸 하나의 사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루틴 체크는 박종철 고문사건 특종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 특종은 당시 중앙일보 기자가 했는데 이 기자가 그때 서울지검 출입기자였습니다. 이 사람은 루틴 체크를 아주 철저하게 하는 기자였습니다. 1층에서 9층까지 검사실을 올라다니면서 모두 문을 두드려가면서 오늘 일 있습니까 없습니까 체크를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검사에게 ‘아, 경찰에서 학생 하나가 수사를 받다가 죽었다고 하던데요’ 하는 말 한마디를 가지고 본사에 연락하고 서울대학교로 가서 그 이름을 11시쯤 확인을 해서 1보를 ‘경찰수사를 받다가 죽었다’ 이런 식으로 희미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루틴 체크에 의한 특종 사례에 들어갑니다.
   일곱 번째, 정보의 길목을 장악하고 내부 협조자를 확보하라. 이 정보라는 것은 마구잡이로 흩어지는 것 같지만 정보의 흐름이 있습니다. 정보도 강물처럼 어떤 쪽에 많이 모이는 곳이 있습니다. 그 길목을 지키고 있으면 그 정보가 다 거기서 집합됐다가 다시 흩어지고 하는 그 길목이 있습니다. 그 길목에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닙니까. 경찰서를 출입하는 게 경찰서에 가서 수사하는 거 구경하러 가는 게 아닙니다.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 치안과 관련되는 문제점에 관한 정보는 경찰에 다 모이기 때문에 경찰서에 출입하는 것입니다. 구청에 출입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서 행정과 관계된 각종 정보가 구청에 모이니까 구청에 가서 중요한 것을 점검해야 된다 이래서 길목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정보의 길목에 있는 사람하고 친해놔야 합니다.
   제가 예전에 경찰서 출입할 때 제일 고민이 뭐였는 줄 아십니까. 갑자기 살인사건이 났는데 나는 집에서 자고 있다. 전화해서 깨워주지 않으면 상대방이 특종을 하고 나는 낙종을 하게 된다. 그러면 우습게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건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럴 때 누가 전화를 해줄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사건현장에 제일 먼저 가는 사람이 누구냐 생각하다 기동순찰차 운전사와 친했습니다. 그렇다고 뇌물을 줬다는 게 아니라 평소 명절 때 양말이라도 선물하면서 친분을 쌓았습니다. 그 사람과 친해지니까 밤낮없이 수시로 전화가 오는 거에요. 기자가 보면 큰 사건도 아닌데도 전화가 오는 겁니다.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고맙다고 해야죠. 아니면 전화교환수도 좋습니다. 사건을 얼마나 많이 알겠습니까. 아니면 서장도 좋구요. 이렇게 정보의 길목에 있는 사람과 친하든지 내부협조자를 확보해야 한다. 나쁘게 말하면 간첩을 심어놔야 된다 이런 말입니다.
   여덟 번째, 그 다음에 기자는 세상 돌아가는 걸 다 아는 것 같지만 다 알 수가 없죠. 날고 기는 전문가들이 다 곳곳에 있는데 제가 항공사고에 대해서 안다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이 교통부나 공항이나 대한항공에 있는 사람들이겠죠? 저는 뭘 하느냐? 기자라면 항공사고에 대해 누가 전문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地質(지질)에 대해서는 누가 전문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전문가에 대한 인덱스가 있어야 합니다. 또 어떤 정보는 통계청에 있더라, 어떤 정보는 정부기록보존소에 있더라, 그 자료는 아마도 국회 도서관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거야 하는 식으로 정보가 있는 장소를 알아야 되겠죠. 그러니까 사람, 조직, 정보 소스(source)에 대한 인덱스가 있어야 합니다.
   金冠(금관)의 전문가는 누구누구다, 고려시대 중에서도 武臣(무신) 정권의 연구가로써는 누가 가장 유명하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누가 제일 많이 연구했는지, 삼국유사는 누가 제일 연구를 많이 했다든지 뭐 이런 식으로 아주 세분화된 전문가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기자는 사실 이런 전문가 인덱스를 관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무슨 일이 갑자기 터졌을 때 빨리 그 전문가들에게 전화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 번 가정을 해봅시다. 김정일이가 군부 쿠데타로 쫒겨났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을 때 뭘해야 합니까? 그 소문을 확인을 해야 되겠지요? 그럼 누구에게 전화를 할 것이냐? 전화를 걸 사람이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전화를 할 겁니까? 우선 국정원의 국장이나 對北(대북)담당 차장에게 전화를 해야 하겠죠. 그런데 전화가 잘 안된다. 그럼 국정원 말고 누가 알만한 사람이 없는가. 그럼 국방부다. 국방부의 정보분야에 있는 누구에겐가 전화를 해보는 겁니다. 그 다음에 일본 경찰과 친한 사람에게 연락을 해보는 겁니다. 이런식으로 동원할 수 있는 정보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전문가를 알아야죠. 이런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요새는 또 자료관리가 쉬우니까 더 좋죠. 이런 자료들이 계속 축적되고 모여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걸 많이 쌓아놓는 사람이 기자생활하면서 특종을 많이 하게 되고 기자의 생명이 이것 때문에 길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인덱스 자료축적을 열심히 하십시오. 저 같은 사람만 해도 이미 이런 데 대해서는 꼼꼼하게 이렇게 하지 않고 머릿속에 있다 뭐 이런 식으로 하는데 지금 세상은 워낙 복잡하니까 앞으로는 그렇게 안이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아홉 번째, 취재나 인터뷰 이전에 사전조사를 철저히 해야 효율적인 취재가 가능하다. 내가 오늘 누구를 만나야 한다. 예컨대 최광수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다 합시다. 내가 최광수를 만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박정희 전기를 연재하고 있는데 최광수 씨는 당시 의전수석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통역을 담당했던 사람이니까 이 사람으로부터 박정희와 카터의 정상회담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정상회담한 게 카터와 이광요 수상 두 사람인데 이 사이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좀 들어야겠다 라는 목표를 세우고 간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당시의 관련 기사를 찾아가지고 카터와 박정희가 나눈 대화라든지 이런 걸 머리에 넣고 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 이광요하고 박 대통령하고 어떤 자리에서 만났는지 기사가 있습니다. 이 때는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날짜나 육하원칙에 맞는 정보를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 최광수를 만난 이유 중의 또 하나는 5.17이 나고 나서 고건이라는 사람이 정무수석을 하다가 갑자기 행방을 감추었다 이래가지고 고건 씨가 어디 나올 때마다 결정적인 국가의 위기 때 비겁하게 도망갔다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여기에 대해 고건 씨는 ‘자기는 신군부가 등장하는 데 대해서 불만이 있었기 때문에 사표를 썼다. 사표는 운전사를 통해서 당시 최광수 비서실장의 보좌관에게 사표를 주고 출근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더라. 요 부분을 내가 확인해야 되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관계되는 기록을 다 읽고 가야 돼죠? 모두 읽고 질문해야 되지 ‘최광수 실장이 고건 씨가 보낸 사표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라는 질문을 하려면 그 주변 상황을 다 알아야죠.
  그러니까 고건 씨도 최광수 씨에게 사표를 직접 줬다고 하지 않고 자기 운전사한테 봉투를 줘가지고 운전사가 봉투를 들고 최광수 씨의 보좌관에게 전해줬다는 겁니다. 당시 문제의 보좌관은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최광수 씨가 유일한 증언자입니다. 최광수 씨가 안받았다고 하면 고건 씨는 거짓말 하는 거죠. 그걸 누가 취재를 해보세요. 왜 안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최광수 씨가 받았다고 하면 고건 씨가 억울한 누명을 쓴 거고 최광수 씨가 안받았다고 하면 고건 씨가 무슨 말을 해도 그건 거짓말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사표도 안쓰고는 5.17이라는 큰 사건이 생기니까 겁이 나서 어디 간다는 이야기도 안하고, 출근을 안한 거에요. 정무수석이 그렇게 행동했다면 대통령이 될 사람이 아니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 사람은 정무 담당 수석인데 말이죠. 그래서 최광수 씨의 말 한마디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어떤 기자도 최광수 씨에게 그 질문을 안하는 거 같습니다. 누가 가서 한 번 물어보세요. 그 사람의 말에 의해서 큰 기사가 나올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말을 못하겠다든지 고건 씨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정도로 말을 그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머리를 써야죠. 만약 고건 씨로부터 사표를 받았다고 한다면 최광수라는 사람이 받은 사실을 이야기 안할 이유가 없죠? 더구나 대통령 후보가 될 사람한테 불리한 것입니다. 고건 씨가 억울하다는 걸 알면서도 말을 안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 때는 이제 또 다른 질문을 해야죠?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렇다면 사표를 안받았다는 이야기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물어야죠. 그 때는 질문을 잘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취재하러 가는데 그 사람의 인적정보에 대해서는 아무 준비도 안하고는 가서 첫 마디가 선생님이 쓰신 대표작이 뭡니까 이렇게 물어보면 상대방은 황당하죠. 김동리 씨를 인터뷰한다고 하면서 그 사람의 대표작을 물어보면 그 때부터 인터뷰가 안되는 거죠. 선생님께서 쓰신 ‘사반의 십자가’ 중에서 이런이런 장면이 성경하고 잘 안맞는 거 같은데요 이렇게 물어야 ‘아하 이 사람이 나를 알고 왔구나’ 또 자기를 알아주니까 일단 기분이 좋은거고 그때부터 자발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상대방을 철저하게 연구를 하고 가야 된다 이 말입니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질문을 준비해 가시겠지만 더욱 철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열 번째 집중적인 취재가 가장 효율적이다. 사람은 차근차근 하는 것보다는 휘몰아치듯이 집중적으로 정신없이 일할 때 제일 좋은 기사가 나오는 겁니다. 그 때 쓴 기사가 제일 정확한 편입니다. 그러니까 집중적으로 하자. 취재나 글쓰기를 집중적으로 하자. 그래야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정확하다. 기본적으로 이렇다는 겁니다.
   열한 번째, 사람들에게 특히 취재원에게 신뢰감을 주어야 정보가 들어온다. 신뢰감은 뭐냐? 첫째는 능력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저 사람에게 내가 이야기를 하면 저 사람이 틀리지 않게 정확하게 아주 좋은 기사를 쓸 기자구나’하는 신뢰감과 인간적인 신뢰감이 필요합니다. 이 부분은 보도를 안해줬으면 좋겠다라고 하면 보도를 안해주는, 서로 신뢰하는 겁니다. 인간적인 신뢰감과 능력에서의 신뢰감, 두 개가 있어야 됩니다.
   열두 번째, 특종을 하는 것만큼 특종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특종이라는 것의 개념규정이 뭐냐. A라는 신문 하나에만 나오는 것은 특종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A라는 신문에 보도된 것을 B라는 신문이 인용해서 쓸 때 특종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특종을 한 다음에는 묵혀둘 것이 아니라 자랑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여러 신문이나 매체, 기관에서 그것을 퍼뜨리고 확산을 할 수 있도록 특종 홍보를 잘 해야 합니다. 외신 기자에게도 이야기를 해주고요. 그렇게 해서 자기 기사가 이 세상에 널리 읽혀져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든지 세상을 바로잡든지 해가지고 효과가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특종을 부끄럽게 한 것도 아닌데 자랑을 해야지요. 대충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취재의 원칙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하세요.
   고성달: 크로스 체크는 오보를 방지하는 기능도 있다고 봅니다. 아까 설명하실 때 사회부 쪽으로 본다면 서로 상반된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의 의견을 들어서 크로스 체크를 할 수 있는데요, 이게 만약 국가 정체성 같은 부분으로 들어간다면 A취재원에 대해서는 접근이 용이한 반면에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B라는 취재원에 대해서는 취재하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에는 크로스 체크를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조갑제: 예를 들어 MBC의 어느 기자가 오보를 했다고 보고 명백한 오보라고 생각하고 기사를 써놓고 기자와 연락을 취하려는 데 연락이 안된다 또는 답변을 거부한다, 답변을 거부하든 말든 ‘내가 보기에는 오보다’라고 자신이 있을 때에는 기사를 쓰고 그 뒤에는 이런 말을 붙여줘야 합니다. 반론을 듣기 위해서 某 기자와 전화를 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중에 법적인 문제가 있을 때 최선을 다해서 상대방의 반론을 들으려 노력했다는 증거를 남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확신이 없을 때는 기사를 안써야죠. 의견을 꼭 들어야 될 반론자가 만나주지도 않고 대화도 안한다 그럴 때는 자신이 없다, 저 사람이 뭔가 이야기를 해야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이 된다 그럴 때에는 안쓰는 게 맞습니다.
   박용수: 크로스 체크에 대한 질문입니다. 예전에 대우 트럼프 월드 사건 있었지 않습니까? 남상국 사장 돌아가셨던 그 사건 말입니다. 박지원과 자산관리공사의 해외부실채권과도 연관이 있다고 하던 그 사건 때였습니다. 그걸 제가 조사할 때는 분명히 잘못되었고 비리가 있는데 저 쪽에서는 끝까지 자기네들은 정당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 때는 다른 언론을 이용해서 우리쪽 주장을 뭉갠 흔적도 있고 그랬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난 다음에 검찰조사와 감사원 조사에서는 다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이럴 때에는 버틸 수 있는, 뭐랄까 나름대로의 뚝심과 끈기가 필요한건데 이럴 경우에 추적 체크가 계속 되지 않으면 크로스 체크를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저희가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구요. 그렇다고 계속 법정에 가자고 하는 데 갈 때까지 가는 것도 애매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럴 경우가 중요한 사건일수록 많지 않습니까?
   조갑제: 그럴 때 기자가 빠져나올 수 있는 틈은 공정성입니다.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은 확정된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렵고-확정된 사실이란 법원의 최종판결에 의해서 확정되는 경우가 많은 데 그 전단계에서 기자가 쓸 때에는 그것은 확정된 사실이라기보다는 ‘XX라는 주장이나 정황입니다’라는 식으로 그것을 소개하면서 판단을 하지 않는 겁니다. 100% 확신이 있다 하더라도 기사를 쓸 때는 의혹 정도로 표현하는 겁니다. 아는 것의 70%만 쓴다는 겁니다. 100을 다 쓰지 말고 약 70만 쓰고, 나머지 30은 자기가 가지고 있으면서 후속 대응을 하는 겁니다.
   이걸 전쟁으로 비유하자면 예비전력입니다. 항상 예비병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전장에 투입했을 때 거기서 지면 그걸로 손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져도 다시 추가로 투입할 수 있는 30% 정도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이게 아주 예민한 사건이고 틀림없이 반격이 있다 싶은 사건이라면 이 30%를 가지고 꼭 대응을 해야 합니다. 그게 이제 자기보호 방법입니다. 그게 하나의 방법이고, 그 다음에는 공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쓰고 여기에 대한 반론을 저쪽에서 제기하면 충분히 써주고, 독자들이 읽어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문제가 있다고 독자들이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써주면서 대처를 하면 우선 소송에 휘말린다든지 했을 때 소송에 질 염려는 없을 겁니다. 그게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실제 하다보면 기자란 게 70의 자료를 가지고 100을 쓰기는 쉽지만 100을 가지고 있으면서 70을 쓰기는 어렵습니다. 기사 작성의 경우에도 개념을 규정하는 용어가 중요합니다. 의혹, 논란, 이런 단어를 기자들이 많이 쓰는 이유가 단정적으로 보도했을 경우에 나중에 오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의혹이 있다’든지 ‘~로 알려져 있다’든지 이런 말을 쓰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적절하게 우리가 이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요새는 우리 사회에서 자기가 잘못한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죠? 검찰에 불려가서 내일 아침에 구속될 사람도 일단 거짓말을 하고 법원에 가서 또 거짓말을 하고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거짓말과의 대결이라는 것, 이 진실을 캔다는 것은 거짓말과 대결한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사람들은 불리하면 거짓말을 하든지 침묵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런게 아닙니다. 미국같은 경우에는 더합니다. 변호사가 나와가지고 차단하고 완전 거짓말만, 뻔히 알면서도 합니다. 기자가 이럴 때 할 수 있는 일은 정황을 많이 소개해가지고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서 사실을 확정지으려면 그 때는 물증이 필요합니다.
   박용수: 저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대일밴드 아시잖아요? 그 창업주 2세가 회사를 다 말아먹은데다 여자관계가 복잡해가지고 본처, 첫 번째 첩, 두 번째 첩 이렇게 사생활이 복잡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첩이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애를 낳았는데 자식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겁니다. 그래서 기사를 Tm려고 취재를 했는데 그 쪽에서 만나주지도 않고 한 달 동안 시간을 줘도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취재접근을 못하게 하더라구요. 그 여자는 소송을 건 재판기록을 다 가지고 있고. 그랬을 때 이것을 실명으로 써야 하는 건지 익명으로 처리해야 하는지도 헷갈리고, 어느 부분까지 취재를 해서 보도해야 하는지도 헷갈리더라구요. 일단은 사생아잖습니까. 최근 코오롱 창업주의 사생아가 국내에 와서 소송을 거는 이야기가 여성지에도 나왔고 방송에도 나왔고, CJ그룹의 이맹희 창업주의 아들도 소송 중입니다. 이런 것에서 어디까지 실명보도를 해야 하고 어느 정도까지-사실이라 하더라도-개개인의 사생활을 어디까지 보호해야 하는지 애매합니다.
   조갑제: 그 부분은 언론 소송을 많이 하는 변호사가 그 한계를 적절하게 이야기를 해줄 수 있습니다. 우선 그 사람이 재벌회장이 아니고 일반인, 私人일 경우에는 보도를 안하는 게 원칙입니다. 왜냐하면 사생활이니까요. 공인의 경우에는 실명도 가능합니다. 그러면 공인의 범위를 어떻게 잡느냐라고 하면 국회의원, 장관, 대통령, 기업인, 인기연예인 등은 공인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언론인을 공인이라고 봐야 하는가에는 조금 논란이 있습니다. 판례가 아직 없습니다. 이런 공인들의 사생활은 보호할 필요가 없다 하는 게 거의 확립되는 쪽으로 갑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아들, 친족은 공인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에게 소송을 건 사람들도 공인이 아닙니다. 그런 부분은 익명으로 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소송을 건 사람은 이미 공개될 것을 가정하고 소송을 건 것이니까 명예훼손을 포기한 게 아니냐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만 소송을 건 사람이 유명인이 아닐 경우에는 익명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일전에 SBS에서 김대중 前 대통령의 숨겨진 딸 보도를 할 때도 김대중은 실명으로 했지만 그의 딸은 익명으로 처리하고 얼굴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명예훼손에 대해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사실대로 보도하면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 사실을 보도해도 명예훼손이 됩니다. ‘A라는 사람이 이런 경력이 있다’라고보도하는 것도 이 사람이 보통사람일 경우에는 명예훼손이 됩니다. 그러나 공인일 경우에는 그게 명예훼손은 안됩니다. 그리고 공인일 경우라도 기사 내용이 허위, 과장, 왜곡인 경우에는…. 딱 부러지게 허위인 경우에는 명예훼손이 됩니다. 다만, 왜곡이나 과장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명예훼손에 대해서 변호사들이 쓴 책이 더러 있을 겁니다. 한 번 구입해 보세요. 요즘은 법원에서 명예훼손을 엄격하게 판결하고 있습니다. 언론으로써는 억울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박용수: 예전에 저는 이니셜로 써도 명예훼손으로 걸리던데요?
   조갑제: 그런 게 성립은 안될 텐데요. 판결은 어떻게 됐어요?
   박용수: 저는 검찰 조사까지 받고 합의로 소송을 풀었습니다. 예전에 진승현 게이트 사건 때 신건 씨가 진승현 아버지로부터 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돈이 아니라 신용금고 돈이었습니다. 그 돈이 옛날에 빌려준 돈의 이자를 받은 거라고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그걸 신건 씨와 통화를 하고 확인하고 담당검사와 통화해서 확인하고 기사를 썼습니다. 그 때가 국정원장 되기 전이었습니다. 장관 후보 S 씨, 진승현 측 돈을 받았다 했더니 신건 씨가 소송을 걸었습니다. ‘이게 나다’라고 하면서요. 우리나라 출판간행물에 의한 명예훼손법이 이게 익명이라 하더라도 한 사람만 알아봐도 걸리게 돼 있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참 이게 희한하다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원장 되시면서 풀었습니다.
   조갑제: 그게 사실 돈을 받은 것은 확실하구요?
   박용수: 받았다고 본인도 인정했습니다. 예전에 빌려준 돈의 이자라면서요. 받았는데 자기가 직접 받은 게 아니라 자기 부인을 통해서 받았답니다. 당시 장관이 될만한 사람이라고 말이 많았는데 그 기사가 나오고 진승현 게이트 터졌을 때입니다. 문화일보하고 저희만 그 기사가 나갔습니다. 이런 경우도 지금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어떻게 피해갈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법이 너무 강하더라구요.
   조갑제: 월간조선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2001년 안기부 시절에 만든 한겨레 신문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이 보고서를 보면 ‘한겨레 신문의 논조는 노동신문의 서울지국이다’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그런 등등. 광고를 받는 대신 문제가 되는 기사를 쓰지 않았다든지, 에버랜드 사고를 보도 안하는 대신에 그 쪽으로 광고를 받았다 등의 의혹이 써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사를 쓰기 이전에 중요한 테마를 적어서 한겨레 신문에 사실 확인을 해달라고 팩스를 보냈습니다. 한겨레 신문에서 그 팩스를 받고 안기부에 어떻게 압력을 넣었는지 같은 문서를 입수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겨레 신문이 기사를 먼저 써버렸습니다. 안기부에서 한겨레 신문을 감시해서 이런 기록을 남겼다면서 우리가 쓸 중요한 부분을 기사로 먼저 써버렸습니다. 월간조선은 며칠 뒤 잡지 기사를 통해 더욱 상세하게 보도했습니다. 그러니까 한겨레 신문이 월간조선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자기들의 보도는 명예훼손이 아니고 똑같은 걸 우리가 보도했다고 명예훼손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한겨레 신문의 반론도 상세히 소개했는데 명예훼손이라고 하더라고. 지금도 재판에 계류중입니다. 1심에서는 보도한 세 사람에게 합동으로 2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일부패소판결을 받았습니다. 우리로써는 굉장히 억울한 게 이건 누가 봐도 우리가 먼저 입수한 것을 가지고 취재 대상에게 알려주면서까지 이렇게 노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 광고 부분은 한겨레한테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2심 중입니다. 2심에 가면 이길 수 있다고 봅니다. 이처럼 언론 보도에 대한 판결이나 이런 걸 보면 판사 개인마다 다 해석이 다릅니다. 일단은 시각이 언론사한테 불리한 쪽으로 판결이 나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굉장히 조심을 해야 합니다.
   박용수: 취재의 원칙에 대해서 공부를 해보니까, 저도 현장에서 일을 해보니 소송 겁나서 솔직히 글쓰기가 어렵다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이런 소송이 워낙 잦아서요. 이런 게 사실 공익적 목적을 위해서 언론이 보도를 하는 것인데 이런 부분에서 우리나라 출판에 관한 명예훼손에서 너무 엄격하니까.
   조갑제: 대충 국가를 상대로 한 오보 등의 소송은 비교적 언론에 유리하게 나옵니다. 그러나 개인, 말하자면 판사가 봐서 힘이 없는 사람을 상대로 한 오보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격하게 나옵니다. 상대가 공권력이라든지 이런 경우에는 다소 과장을 하고 오보를 해도 판결에서 봐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사건으로 가면 이건 또 달라집니다. 예컨대 월간조선이 예전에 김동신 국방장관 당시 여순반란사건을 마치 민중봉기인 것처럼 다룬 영화에 국방부가 군복, 헬리콥터 등을 지원해줬다는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국방부의 자해행위, 이런 식으로. 이 사람들이 월간조선을 상대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가지고 자기들이 이겼습니다. 이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은 그렇게 실효성은 없습니다. 이미 책방에 나간 것은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在庫(재고)에 대해서만 적용했습니다.
   그러니 실효는 없지만 그렇게 국방부가 소송에서 이겼습니다. 당시 변호사들은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종의 사전검열에 해당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판결이 나왔느냐’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국방부도 우리가 협의를 해가지고 해명서 실어주고 해서 좋게 됐습니다.
   이런 것에 신경쓰다 보면 하나는 위축되는 경우가 있고 하나는 글이 소송에 걸리기 않기 위해서 더 열심히, 빈틈없는 취재를 해야 되겠다는 식으로 반응합니다. 오히려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면 기사가 더 정확해지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새는 스캔들이나 그런 기사를 예전처럼 심하게 쓰지 않는 경향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 건 좀 좋아진 것 같기도 합니다.
   고성달: 그런데 안보 분야에서는 기사화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구분이 있을 거 같은데요. 저는 기자는 아니라도 시민단체 등 활동을 하면서 들은 내용들이 있습니다. 예전에 김 박사님과 유 기자와 라포트 사령관을 만나는 자리에 갔을 때 사령관이 민감한 발언을 했습니다. 그 발언을 개인 블로그나 사이트에 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서로 의견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이건 해석하기에 따라 너무 폭발력이 셀 거 같다고 해서 우리끼리 이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해서 안한 게 있었습니다. 당시 발언이라는 게 라포트 사령관이 한국에 왔을 때의 소감을 이야기하면서 먼저 이야기를 한 게 ‘한국에 대한 첫인상이 굉장히 다이나믹하다’는 거였습니다. 자기가 일본에서 수시로 전용기 타고 한국에 왔다갔다할 때마다 보는 한국의 발전상이 참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제의 다이나믹한 것처럼 앞으로 2~5년 사이에 한국역사상 가장 다이나믹한 시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몇 번 강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끼리는 과연 그 다이나믹하다는 말의 의미가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다가 ‘지자체 선거, 다음 대통령 선거의 결과에 따라 주한미군의 동향이 확실히 결정된다는 말이 아니었을까’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걸 블로그 등에 공개하면 좌익 쪽에 책잡힌다든가 라포트 사령관이 곤경에 처할까봐 저희가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경우처럼 안보에 관한 기사는 어디까지 쓰고 어디부터 안써야 합니까.
   조갑제: 그건 과잉보호를 해준 거 같은데요. 그건 써야 할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는 공개해도 라포트 사령관이 곤경에 처하거나 문제가 일어날 일도 없을 말인데요. 다만 사실에 대해서 민감한 이야기들, 예를 들어 지금 핵무기가 배치돼 있다든지 하는 정도라면 보호해야죠.
   박용수: 예전에 대우조선이 잠수함을 수주할 때 대우조선하고 현대 중공업이 경쟁을 했습니다. 당시 국방부 획득실인가요. 거기서 정상적인 경쟁이 아니다 이래서 몇 년 전에 문제가 된 그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국민의 알 권리와 국익이 충돌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갑제: 알 권리라는 이런 말은 우리가 그냥 갖다붙힌 겁니다. 국익의 기준이라면 이런 게 있습니다. Clear and Present Danger라는 법률용어가 있습니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아닌 경우에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이런 뜻입니다. 당장 내일 북한을 치려고 한다든지 이런 경우가 아니면 기사를 쓰는 게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권영길 의원이 했던 이런 식의 국가기본전략에 관한 것을 공개하는 것과 같은 일은 안해야죠. 그럴 때 애국심이 있어야죠. 우리가 만약 일급작전문서를 얻었다 해서 그걸 가지고 기사를 쓸 수 있는가. 그걸 쓰면 감옥에 가고 결과적으로 적을 이롭게 하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까지 기사를 써야 하는가에는 의문입니다. 또 위법사항은 안해야 하지 않습니까. 기밀분류가 확실하게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입수했을 때 그걸 쓸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 기자는 상식적인 판단을 해서 이것이 국가의 이익에 도움이 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데, 애매하다면 써야 한다고 봅니다.
   유명한 사례가 있습니다. 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침공 작전을 폈는데 뉴욕타임스에서 그걸 미리 알았습니다. 그런데 미리 쓰면 안되니까 안썼습니다. 그런데 침공이 실패했습니다. 나중에 케네디 대통령이 당시 편집장이던 제임스 브레스턴이라는 사람을 만났을 때 뉴욕타임스가 미리 알았다고 하니까 ‘아, 그때 써줬으면 그 의견에 동의해서 침공도 안하고 실패도 안했을 텐데’ 하는 말을 했었답니다. 그러니까 세상 일이라는 게 뭐가 진실이고 뭐가 정당하다는 게 애매한 경우가 있습니다.
   고성달: 한 가지만 질문 드리겠습니다. 최근에 가장 큰 특종이라면 도청건인데요, MBC는 특종을 해놓고 보도를 못하게 해서 문제가 됐고 KBS하고 조선일보가 확실히 특종을 했는데, 그것이 실정법과 관련해서 법원에서는 공개하지 말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보도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조갑제: 이렇게 접근해 봅시다. 우선 도청했다는 사실은 보도하는 게 원칙입니다. 그러나 도청이 된 구체적인 대화 내용-그 내용에는 사적인 대화일 수도 있고 욕일 수도 있고 누구를 비하하는 내용일 수도 있고 카더라일 수도 있습니다. 제 이름도 나옵니다. 어떤 식으로 나오냐하면 이학수와 홍석현의 대화 중에서입니다. 김진태 기자가 조선일보의 조갑제, 우종창 기자에게 들어본 바에 의하면 조선일보가 김대중을 잡기 위해서 病歷(병력) 조사를 하고 있다더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방 씨 일가가 김대중을 공격하기 위해서 이런 회의를 하고 있다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제가 김진태라는 기자를 만난 것도 없고 우종창 기자도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답니다. 김진국이라는 기자는 있다고 합니다만 김진태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방 씨 일가가 모여 그런 모임을 가진 사실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까지 공개하면 저는 억울하게 명예훼손 당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대화 내용에 따라 어느 것은 보도하고 어느 부분은 보도하지 않는가고 하는 것은 기자가 판단해야 하는 겁니다. 이런 사항을 무조건 다 공개해버리면 이것은 명백한 위법이죠. 가치가 있는 것과 가치가 없는 것은 거기서 갈라야 하는 겁니다. 이학수와 홍석현 두 사람이 모의하면서 누구에게는 돈을 얼마씩 갖다줍시다 하는 이 정도는 보도해도 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당사자들끼리니까. 하지만 보도할 때도 돈을 받았는지 안받았는지는 모르니까 거론되는 후보 이름은 익명으로 해야죠. 그걸 아주 기술적으로 기자가 판단해서 상식적으로 처리하면 보도할 부분과 안할 부분을 가를 수 있다고 봅니다. 통째로 이것이 위법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자, 나눠드린 글을 보십시오. 이 글은 시조시인 金相沃(김상옥)이라는 분이 쓴 수필집에 나온 글입니다. 좋은 글의 하나의 典型이라고 생각해 가져왔습니다. 누구 소리내서 한 번 읽어보세요.
  
  < 가락지 필통
   세상에는 돈과 감투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 비굴과 아첨을 방편으로 살아가는 사람, 또 눈치로 살아가는 사람, 오기(傲氣)로 살아가는 사람, 다 제각기 살아가는 길이 다르다.
   잡지 「世代」6월(1975년)호엔 신인 문학상 당선자의 명단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거기 당선 소감이 실렸는데, 李外秀라는 신인의 소감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었다.
  「外秀! 이 망할 자식아! 세상이 모두 썩어 문드러져도 너만은 썩지 말고 영악스럽게 살아서 글을 쓰고 요절하지 말아라. 그리고, 마침내 너와 너의 언어(言語)들이 아름다운 비극으로 남아서 빛나는 순수가 되고, 또 그 누구도 잊을 수 없는 눈물이 되어라」고.
   나는 이 오만무쌍한 당선 소감을 읽어 보고 너무도 속이 후련하였다. 그동안 얼마나 우리에게 오기가 아쉬웠던가. 글 쓰는 사람에게 오기가 없다고 하면, 어떻게 글이 씌어질 것인가. 닥치는 고통에도 비굴하지 않고 아첨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오직 오기밖에 더 있겠는가. 우리 주변에 이처럼 의연한 오기를 가진 젊은이가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맙고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내게도 조그마한 오기는 있다. 돈이 되지 않는데 시(詩)를 쓰는 것도 오기려니와, 돈이 없으면서 골동을 수집하는 것도 나에게 있어서는 적이 오기인 것이다.
   나는 지금을 거슬러 10년 전, 인사동(仁寺洞) 골동 가게에서 가락지 무늬 투각필통(透刻筆筒)을 하나 샀다. 같은 투각 필통에도 귀갑(龜甲) 무늬가 있고 십자(十字) 무늬가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락지 무늬는 매우 희귀한 것이다. 희귀한 것은 그만큼 값도 비싸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 가락지 필통을 샀는가. 그것은 앞에서 말한 나의 오기에 연유하는 것이다.
   나는 내 어머니 생존시에 어머니 소원이었던 금가락지 하나를 끝내 못 해 드렸다. 그런데, 그 어머니 돌아가실 때의 유언에는 가락지를 갖고 싶어 했던 자신의 마음을 뉘우치고, 잠시나마 내 마음에 짐을 지웠던 것을 후회하셨다. 그러나, 그 날 내 어머니의 후회가 나로 하여금 이토록 아픔에 사무치게 할 줄이야!
   세상에 어느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까마는, 나의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와는 좀 다르다. 내 아버지 병환에는 살을 베어 바치고도 그 일을 오래도록 숨기신 어머니다. 그 뿐인가. 내가 일제(日帝)의 감방에 갇혔을 때는, 추운 겨울인데도 나를 생각하여 방에 불을 지피지 않고 해동을 기다리셨다. 그랬으나, 나는 그 어머니께서 갖고 싶어 하던 금 가락지 하나를 못 해 드렸다. 이것이 내 생애에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아픔으로 참을 수 없는 분함이 되고, 또 갚을 수 없는 빚이 되어 나를 울리는 것이다.
   이러한 나의 아픔, 나의 울분이 오기(傲氣)가 되어 가슴 속에 깊이 응어리로 남았다가 그 오기로, 그 분풀이로 이 가락지 필통을 사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때문에, 나의 골동 수집은 때로는 그 동기가 일종의 오기였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대개 골동이란 재물을 쌓기 위해서, 혹은 값싼 귀족 취미를 발휘하기 위해서, 혹은 탐미적(耽美的)인 애정을 위해서 수집하는 예가 많다. 물론 나에게 있어서는 탐미적인 애정이 그 전부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애정이라 해도 나 같은 어려운 처지에 값진 골동을 산다는 것은 보통 정신 상태로선 어림도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여느 도자기도 아닌 가락지 필통을 샀다는 것은, 오로지 내 어머니께 못 해 드린 그 금가락지 생각이 두고 두고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통 하나를 샀다고 해서 마음에 걸린 그 가시가 없어질 것도 아니고 또 없애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 필통을 바라보면서, 평생 가락지도 못 끼워 보신 내 어머니를 생각하고, 그 어머니에 대한 아픈 추억을 기리어 간직하고 싶어서다. 이러한 나의 오기, 나의 분풀이를 누가 허황되다고 허물할 것인가.
   아첨과 비굴이 탁류처럼 도도한 시대에 살면서, 뜻밖에도 그 젊은 신인의 오기에 찬 당선 소감이 몹시 마음에 끌렸다. 아니, 흡사 노염(老炎)을 견디다가 쏟아지는 소나기라도 맞은 듯 했다. 그러나, 나는 이 필통에 붙이는 가냘픈 오기, 아니 모성(母性) 지향적인 오기만을 가지고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고 적이 망설여진다.>
  
   어떻습니까? 이 글은 수필인데 읽어보면 우선 읽기가 쉽죠. 이 글은 운율이 맞고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 필요없는 단어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이런 말도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 일부러 적어넣은 글입니다. 좋은 글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글인데 이 글이 모범입니다.
   여기보면 뺄 단어나 표현은 별로 없죠? 중복되는 단어도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짧은 글-원고지 12장 쯤 될 거 같은데-안에 몇 가지 사례가 들어 있는지 아십니까. 첫째는 이외수라는 사람이 쓴 당선소감. 이걸 읽어보면 이외수라는 사람은 지금도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奇行을 하기로 유명한데 ‘오기가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이 짧은 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또 김상옥이라는 사람이 투각필통을 샀다는 이야기를 통해서 자기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다 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당시 폐병을 앓았던 거 같습니다. 옛날에는 자기 살을 베어 바치면 병이 낫는다고 해서 이런 일이 많았습니다. 이걸로 미루어 ‘아, 옛날 어른이구나’하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이 사람이 강조하는 것 중에서 ‘글 쓰는 사람은 오기로 글을 쓰는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기자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글 쓰는 사람이 어떻게 오기 없이 글을 쓰느냐 하는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이 사람은 ‘의연한 오기’라는 절묘한 표현을 썼는데 기자가 가져야 할 기자 魂(혼)이라는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의연한 오기’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건방져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권력이나 돈을 가진 사람에게 기자가 당당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의연한 오기입니다. 그 의연한 오기의 그 바탕에는 뭐가 있는가. 기자는 사실을 위해서 순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한테는 당신의 직업이나 나이, 위치, 직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오로지 사실이 무엇인가 하는 것으로 승부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의연한 오기라는 겁니다. 짧은 글이지만 읽어보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이 책은 1976년에 나온 것입니다. 요즘은 이렇게 잘 쓰여진 수필을 보기 힘듭니다. 우리나라 문장력이 한글전용으로 가는 바람에 많이 나빠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글을 보면서 우리가 앞으로 기사를 쓸 때 써먹을 수 있을 만한, 인용할 수 있을 만한 것도 자기의 어휘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게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의연한 오기’, ‘가냘픈 오기’, ‘적이 망설여진다’, ‘허물할 것인가’ 등의 표현이 있습니다. ‘허물하다’ 이 단어가 사전에 나올까요? 허물은 명사인데 이런 표현은 없을 거 같은데요. 그런데 이 사람은 자연스럽게 허물하다 하니까 별로 문법에 틀린 것 같지가 않네요. 그래서 좋은 글을 많이 읽자는 뜻에서 나눠드리는 겁니다. 또 하나 더 드리지요. 이것도 김상옥 시인이 쓴 글입니다. 이 문장이 좋은 문장입니다. 전형적인 우리나라 문장입니다. 요새 우리나라 문장은 멋이 없죠. 향기도 없고. 기능적인 것만 추구하니까요. 다음은 ‘이 아니 즐거운가’라는 수필입니다. 이것도 김상옥 시인이 쓴 글입니다.
  
  < 이 아니 즐거운가
   아무리 세상을 일러 고해(苦海)라 하지만, 인생의 어천만사(於千萬事)가 다 괴로운 것만은 아니다. 잠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가만히 생각에 잠기노라면, 개중에는 더러 자잘한 즐거운 일이 없지도 않으니, 이 아니 즐거운가.
   삼복 염천에 피서는 못 가고 곧장 집 안에서만 앉아 배기자니 울화가 터지고, 온몸에 땀이 비오듯 한다. 부득이 원고지와 볼펜을 들고 다방에라도 나갈까 하고 집을 나섰더니, 횡단보도 앞에 사람들이 구름같이 서 있다. 무거운 걸음이 차차 가까워지자, 마침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드디어 순경이 호각을 불고 파랑 불이 켜진다. 이 아니 즐거운가.
   다방의 밀폐(密閉)된 도어를 밀고 들어섰으나, 물만 먹고 사는 붕어족들이 초만원이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돌아서려는데, 저 쪽 에어컨 앞에 앉았던 한 쌍의 젊은 남녀는 마침 그들의 대화가 끝났던지 자리를 비우고 일어선다. 이 아니 즐거운 일인가.
   아직 즐거운 대화의 여운(餘韻)이 남아 있을 법한 그 의자에 앉아 이열치열(以熱治熱)을 빙자하여, 더운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원고지를 펼치고 이미 마감이 지난 글을 구상한다. 좀처럼 생각이 떠오르지 않더니, 재떨이를 갈아 놓고 돌아서는 여자의 그 마네킨같은 무표정에서 문득 한 귀절이 떠오른다.
   놓칠세라 서두(序頭)를 써 놓고 잠시 붓방아를 찧는데, 그 다음은 흡사 누에가 실을 풀어 고치를 치듯, 거침없이 소올 솔 풀려 나온다. 이리하여 단숨에 한 편의 글을 탈고(脫稿)하게 되었으니, 이 아니 즐거운가.
   더위는 못 견디겠고, 심심풀이로도 할 일은 없다. 하다못해 한 시인(詩人), 이미 운명감정(鑑定)으로 이름 있는 어느 작명사(作名師)를 찾아 「姓자는 4획, 名자는 5획이면, 어떻소?」하고 물었겠다. 작명사씨는 대답해 가로되 「아주 大不吉이요」한다. 이 때 시인은 가가대소(呵呵大笑)하며 「여보, 작명사씨! 姓자 4획은 『孔』, 名자 5획은 『丘』, 孔丘는 孔子의 본명인데, 대성(大聖) 孔子가 어찌 불길했단 말이오!」이에 그 유명(有名) 작명사는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 이 아니 즐거운가.
   여보, 유명 작명사씨! 미처 당신의 생각이 깜박 못 미쳤구료. 공자-그의 당년(當年)엔 네 마리 말이 이끄는 마차에 몸을 싣고 천하를 주유(周遊)하였지마는, 그가 만약 오늘과 같은 한국에 태어났더라면, 국무총리가 되었겠소? 대법원장, 국회의장 따위의 현관(顯官)을 바랐겠소? 대학 교수도 그렇고 그렇기에 교수 노릇도 할 수 없었을 거고, 또 영화(映畵)마저 무성영화가 없어졌으니 해설 변사조차 될 수가 없었을 터인즉, 그의 불행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거니, 이 같은 대답을 서슴없이 했더라면 저 가가대소(呵呵大笑)의 시인도 또한 유구무언이 아니었을까.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로고!
   孔子의 언행록(言行錄)이라 이르는 「論語」의 「學而篇」 첫머리에 「學而時習이면 不亦悅乎아, 有朋이 自遠方來하면 不亦樂乎아」이렇게 적어 놓았다. 오늘 이 땅에 있어서 학문이 즐거우며, 친구의 내방이 즐거운가? 이제 성인(聖人)의 금언(金言)도 한갓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텔런트들의 대사만큼 즐길 수도 없게 되었으니 세상의 역설적인 변화, 이 얼마나 역설적인 즐거움인가.
   문장가 金聖暵의 명문 「不亦快哉」가 孔子의 「不亦樂乎」에서 유래했는지 아니했는지 그가 이미 죽고 없으니 물어 볼 길이 없다.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역시 명문이 아님은 아니지마는, 하필이면 괴롭고 슬픈 세상에 애꿎은 슬픔을 그렇게 샅샅이 들출 것이 무엇이람! 내 이왕이면 金聖暵의 「不亦快哉」보다 孔子의 「不亦樂乎」를 빌어 올 밖에 없다. 이렇게 함부로 성인의 말씀을 빌어 와도 나를 사문난적(斯門亂賊)으로 몰아세울 똑똑한 유생(儒生) 하나 없으니 불역락호(不亦樂乎)! 이 아니 즐거운가.
   심심해서 백선(白扇)을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린다. 화가도 아닌 주제에 그림은 무슨 그림이냐. 모르는 말씀, 王維가 시인이지 화가는 아니다. 그러나 「觀, 摩詰之畵 畵中有詩, 味 摩詰之詩 詩中有畵」라 하지 않던가. 내 비록 화가는 아닐망정 시화일여(詩畵一如)의 경지에 노니지 못할 것도 없다. 먹을 갈고 채색을 풀어 붓질을 시작한다. 마침내 몇 송이의 연꽃을 그린다. 그러나, 생시에 보던 연꽃은 아니다. 그렇다고 꿈에 보던 연꽃도 아니다. 아마 이것은 연꽃이 보던 꿈일는지도 모른다. 짐짓 연꽃이 나인지 내가 연꽃인지 분별이 없다. 꿈과 생시가 분별 없음이 어찌 莊子만의 것이랴. 더구나 분별 없는 세상에 연꽃과 내가 분별 없고 또 나와 莊子도 분별 없으니, 이 얼마나 즐거운가.
   백선(白扇) 위에 그려진 연꽃을 위해 나는 화제(畵題)를 하나 써야겠다. 뭐라고 쓸꼬? 이것이 연꽃이거나, 꿈이거나, 아니면 또 내 자신이거나 간에, 이것이 이미 이 백선 위에 나타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부득이 「現在」라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닌 것만도 아님」이 분명하다. 때문에 다시 「非現在」라 썼다. 그러나, 또 생각하니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닌 것도 아님」이 분명하다. 까닭에 거듭 「非非現在」라 썼다.
   「想, 非想, 非非想天」은 일찍이 불교에서 발견한 하늘의 이름이지만, 오늘의 내 화제가 이와 상통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즐거운가.
   「現在」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현재 그것이다. 「現世」는 전생(前生)도 내생(來生)도 아닌 금생(今生) 그것이요, 「今生」은 바로 서기(西紀) 1971년이다. 아니 「西紀」라니 서양 기원이란 말인가. 동서가 이미 함께 하는 기원이니 「公紀」거나 「公元」이라야 옳을 것이다. 공기(公紀) 1971년은 1970년도 1972년도 아닌 「現在年」이다. 이 달인 8월은 분명 7월도 9월도 아닌 「現在月」이다. 내 이 날, 폭서를 무릅쓰고, 잡문을 초(草)하여 싸구려 고료라도 받아서 수박이나마 몇 덩이 사서 먹게 되었으니, 이 또한 나의 현재(現在)하는 즐거움이 아닌가.>
  
  이것으로 오늘 수업은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또 중앙일보에서 이명박 서울 시장에게 훈수를 두는 글이 있는데 이 글을 나눠드릴 테니까 다음 번에 읽고서 한 번 토의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