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국고(國庫)강탈로 남북정상회담을 매수해 노벨(Nobel)평화상을 탄 것으로 탄로 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지난 2월 14일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말과 책임을 지겠다는 말을 각각 세 번씩이나 했다. 집권 5년 동안 여러 번 그랬듯이 이번에도 그는 악어의 눈물을 흘렸다. 진실로 책임을 지자면 사과 후에 처벌을 받아야하는데 그것을 스스로 유보해 놓고 계속 "법의 테두리 밖에" 있기를 원하면서 거짓말로 '햇볕게이트'의 죄를 보태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거짓말 중에서 가장 가증스런 것은 평화(平和)와 국익(國益)을 위해 실정법을 어겼다는 대목이다. 6.25 종전이래 한반도는 취약하나마 긴 평화를 유지했고 그런 평화로 남한은 20세기 후반의 세계역사상 가장 성공한 나라 중의 하나가 됐다. 그러다가 냉전의 종식으로 종전보다 덜 취약한 평화를 향유할 수 있는 대세를 맞았다. 소련이 망하고 중국이 실용주의 노선을 취함에 따라 북한은 예전같이 그 맹주에 의지할 수 없게 됐고 그 주민이 무수히 굶어죽는 터에 한반도에서 분란을 일으킬 형편이 못되었다. 그러니깐 분단 한반도의 평화조건이 객관적으로 가장 좋아진 때에 '햇볕'정부가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도 김 대통령은 엉뚱하게 평화타령을 했고 이에 북한의 김정일은 서해 도발 쇼로 맞장구를 쳤다. 그러다가 퇴임을 불과 열 하루 남겨 놓은 김 대통령은 "참담하고 가슴아픈 심정"을 토로하게 됐다. 과욕(過慾)의 탓이었는가? 흉계(凶計)의 소치였는가?
  
   빚더미 '현대'를 앞세워 마피아 식 범죄수법을 감행하고도 국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김 대통령의 궤변에 아연실색을 금치 못한다. 국익을 위했다는 신념이 그렇게 확고하다면 "참담하고 가슴아파"하거나 "죄송하기 그지없을" 이유가 없다. 통치권을 들먹일 정도의 중대한 국익을 위한 일에 국가의 최고지도자는 끝까지 늠름해야 하며 굽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들의 "관대한 아량"을 기대한 김 대통령은 한없이 비겁해 보였다. 노벨상 수상자답게 인류를 위해 한 나라의 국익을 초월하는 도덕적 가치나 숭고한 이상을 추구하지는 못했을망정--신음하는 북한동포들을 위해 그랬다는 말 한마디는 남길 수 있었어야 했다. 대한민국의 존립기반인 한미동맹과 국헌을 근본적으로 배신·유린하면서 악랄한 정경유착을 감행해 놓고 이제 와서 국익 때문이었다는 김 대통령의 변명은 반역(反逆)의 방패(防牌)가 될 수 없다.
  
   적(敵)에게 막대한 자금을 비밀리에 퍼준 햇볕게이트는 가공할 현대판 역모(逆謀)다. 전제군주시대에는 왕을 배반하면 역모였고 민주주의시대에는 국민을 배신하면 역모다. 미국의 워터게이트(Watergate)는 현대판 역모로 불법 정치공작이 철퇴를 당한 경우다. 법치의 두께가 엷고 집단치매 증세를 보이고 있는 나라에서 그 제왕적 대통령이 꾸민 역모는 처단하기가 쉽지 않다. 헌법상의 탄핵(彈劾)사유치고 햇볕게이트보다 더 위중한 사유가 나오기를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국회(國會)는 뒷짐을 졌다. 국가보안법이 사실상 죽어 있는 상태에서 정권의 주구 색이 짙은 한국검찰(檢察)이 조사를 포기한 것은 그 위상 그대로였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이 엽기적 사건을 다룰 법적 제도로 남은 것은 특검제(特檢制) 뿐인데 그것만으로 전대미문의 반역을 징벌해 대한민국을 보전할 수 있을지는 지극히 의문스럽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는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다 깽판쳐도 괜찮다"던 작년 5월 공언을 주권·민족타령으로 각색하더니 "북한에 더 퍼주더라도 투자를 해야 한다"고 지난 2월 13일 언급했다. 속(續)햇볕게이트라도 만들어 낼 것 같은 심사로 반역의 기류를 조장하기에 충분하다. '더 퍼주면' 이미 퍼준 것을 덮고 넘어갈 수 있다는 계략이 펼쳐지는 일방 '햇볕'의 대부(代父)에게 면죄부가 발부되는 사이에 햇볕게이트의 시계(視界)는 계속 흐려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태풍의 눈처럼 지금은 잠잠한 배신(背信)의 분노(憤怒)가 곧 몰아붙일 잠재적 폭발력을 오판하면 혁명적 재앙이 초래될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국사범죄(國事犯罪)를 다스리지 못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며 정당한 사법절차로 그런 죄를 추궁하지 못하는 나라는 민주국가가 아니다. 법에 정한 절차로 풀지 못하는 원성(怨聲)은 천명(天命)으로 풀어야 한다는 국민의 소리(vox populi)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 소리가 피플파워(people power)로 커지기 전에 해괴망측하기 유례없는 반역을 단죄(斷罪)하지 않고서는 노무현 정부가 순항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약력: 경남 마산 출생·4.19혁명공로자·고등고시(외교) 합격·서울대 정치학과 졸업·외무부 국제기구조약국장/외교정책기획실장·주싱가포르/오스트리아/IAEA/필리핀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