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참 기자가 기사를 써왔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反金反核 시위를 벌였다'는 대목이 들어 있으면 선배 기자는 신경질을 낸다.
  ''수많은' 좋아하네. 몇 명이 '수많은'인가. 다섯 사람, 여섯 사람, 천명? 평수를 계산하고 군중수를 추산해서 써야지, 막연하게 '수많은'이라니?'
  
  신참 기자는 경찰서나 주최측에 전화를 걸어 구체적인 숫자를 알아온다. '수많은'은 '경찰추산 30만, 주최측 주장 50만 명'으로 바뀐다. 주관이 객관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북한은 호전적이다' '북한은 굶주리고 있다'라고 할 때 이 북한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호전적인 것은 김정일 정권이지 북한주민들이 아니다. 굶주리는 것은 북한주민들이지 북한정권이 아니다. 정확히 쓰면, '북한 정권은 호전적이다' '북한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다'이다. 북한이 북한정권과 북한주민들로 분류되는 것이다. 그만큼 思考가 정확해지고 깊어진 것이다. 언어는 생각을 인도하는 길잡이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두 사람이 북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분석해보면 북한정권과 북한주민들을 구별하지 않아 혼란이 생긴다. 두 사람은 '북한은 변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주민들은 변하고 있으나 북한정권은 변하고 있지 않다. 그렇게 말해야 할 것이 아닌가. 북한을 범죄자로 대우해선 안된다고 한다. 북한주민을 범죄자로 대우하면 안되지만 북한정권은 수많은 테러와 납치, 그리고 김정일의 자백에 의해 공인된 범죄자이다. 북한주민들을 범죄자로 대우하면 안된다고 해야 말이 된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항상 북한정권과 북한주민들을 구별한다. 북한정권이 '악의 축' 이지 북한 주민들은 피해자라고 말한다. 멀리 있는 그가 가까이 있는 김대중 노무현 전현직 대통령보다도 북한을 정확히 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정확한 언어를 사용하여 사물을 정확히 해석하는 사람이 정확한 정책을 세울 가능성이 높다.
  
  북한주민과 북한정권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압제자와 피압박자의 관계이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한 장르에 넣는다는 것은 선과 악을 섞는 것과 같다. 물과 기름을 하나로 무리하게 섞으려는 것과 같다. 도덕적으로 논리적으로나 불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가능하긴 하다. 도덕과 논리를 버리면. 김대중의 對北정책은 북한정권과 북한주민을 구별하지 않음으로써 도덕도 논리도 저버린 것이다. 이런 정책이 성공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살인강도가 聖者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