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등의 기자회견 성명 비판/正과 誤, 범인과 경찰관 사이에서 중립선언?
  
  ‘어제 한반도의 반핵, 반전, 평화실현을 위한 기자회견’이 신라호텔에서 있었다. 金壽煥 추기경, 姜元龍 목사, 宋月珠 스님, 徐英勳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 24명이 참석했다.
  
  이들이 발표한 성명서엔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이 성명은 「북한의 핵개발 의혹은 마침내 유엔 安保理로 회부되었고, 미국은 일방적인 北核 제재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으며」라고 했다. 지금 金正日의 핵개발을 의혹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다. 金正日 정권이 우라늄 농축법에 의한 핵개발 추진을 自認했다. 영변 지역의 재처리 시설과 원자로가 원자탄용이란 것은 북한측도 인정한 상식이 아닌가. 그런데도 의혹이라니?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현실 인식이 이 정도 수준이란 말인가.
  
  미국이 일방적인 北核 제재를 모색하고 있다고?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 이 성명서를 낸 인사들은 핵문제의 구조를 잘 모르는 듯하다. 핵무기의 세계적 확산을 막는 책임은 유엔의 안보리 5개국(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이 지고 있다. 이 다섯 나라는 핵무장 국가인데 핵무기가 북한과 같은 믿을 수 없는 깡패국가 손에 넘어가선 안된다는 점에 합의하고 핵비확산조약(NPT)을 만들고 이를 관리하는 기구로서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설치했다. 이번에 IAEA가 북한정권에 의한 국제법 위반건을 안보리에 회부한 것도 안보리가 상급 기관이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이 나서서 北核 문제를 해결하기로 한 것은 국제사회를 대표해서 하는 것이지 미국만의 對北제재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1994년 때도 안보리가 對北 경제제재를 결의하기 직전까지 갔었다. 북한 김정일 정권의 불법적 핵개발에 대한 제재는 국제사회 전체가 하게 되어 있다. 미국은 일방적인 제재 대신에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 전체의 제재를 모색할 것이다(지금은 제재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
  
  부시 행정부는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의한 對北제재를 모색할 것이다. 북한은 미국하고만 핵 문제를 타결 지으려 하는데 미국은 이를 피하려고 한다. 부시 행정부는 한반도 주변국가들을 참여시킨 협의 틀을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일방적인 對北 제재를 모색하고 있다는 말은 미국에게는 억울한 이야기이고 북한의 핵개발을 의혹이라고 표현해준 것은 金正日에게 유리한 표현이다. 이 성명서엔 그런 대목이 더 있다.
  
  이 성명서는 「무엇보다도 오늘의 위기적 상황은 북한의 핵개발 의혹에 대한, 미국의 무력제재 가능성 제기에서 온 것인 만큼」이라고 했다. 위기의 책임 그 1차적 원인을 「미국의 무력 제재 가능성」에 두고 있다. 북한정권의 핵개발을 핵개발 의혹이라고 완화시켜주면서 미국 정부가 한번도 공식적으로 천명하지 않은 對北 무력 사용을 가능성으로 격상시켜놓았다. 金正日 정권은 미국이 한반도 주변에 병력을 증강시키면 선제공격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한반도의 전쟁 위험은 金正日의 불법적인 핵개발과 전쟁도발 위협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은 답답하다고 생각될 만큼 미지근하게 대응하고 있다. 이 성명은 그런 金正日의 전쟁공갈에는 한 마디 언급도 없이 마치 미국이 전쟁 위기의 책임자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 성명은「악의 축을 응징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의지가 한반도에서의 전쟁으로까지 확대되는 것은 우리 국민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했다. 한반도의 전쟁 위기 책임은 전적으로 전쟁범죄의 前歷이 있고 지금도 전쟁이란 말을 입에 달고 있는 김정일 정권에게 있다. 부시 행정부는 전쟁이란 단어는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김정일의 전쟁행위에 대한 응징차원의 무력 행사만 막후에서 가능성으로서 논의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 성명은 김정일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가 전쟁론 책임자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이 성명은 자꾸만 사실과 다른 논리와 주장을 펴고 있다. 이 성명은 兩非論을 편다.
  「북에 대해 지나치게 적대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과 「북핵을 민족공동의 소유로 간주하는 입장」을 다같이 비판하고 있다. 이 논리는 正과 誤, 善과 惡 사이의 중립이다. 주민들을 굶겨 죽여가면서 동족 공멸의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북한정권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선하고 의로운 일이다. 우리 헌법정신이 그런 자세를 모든 국민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북한정권의 악행에 대해서 너무나 비판적 목소리가 낮았다. 겨우 애국 시민들이 가만 있을 수 없다고 해서 3.1절 국민대회를 준비하는 정도이다. 이 대회에 나올 사람들이 몽둥이와 화염병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혹시 이 소위 지도층이 들었단 말인가. 무엇이 지나치다는 것일까. 김정일을 비판하는 것이 지나친 것인가. 기도회도 지나치고 평화 시위도 지나친 것인가. 애국이 지나친 것인가. 김정일을 거세하고 북한동포들을 구출하자는 말이 지나친 것인가. 지나치다니? 무엇이 지나친 것인가? 반미 촛불 시위 때 이 분들이 지나치다는 충고를 했던가.
  
  헌법이 보장하고 조국이 요청하고 있는 당연한 행동을 지나치다고 표현한 이 성명서는 그 애국행동을, 김정일 정권이 핵무기를 가져도 좋다는 정신 나간 이야기와 等價로 두려는 문장법을 썼다. 애국적 행동과 반역적 발상이 다 나쁘다는 식이다. 참으로 편리한, 그러나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이다.
  
  이 성명서는 「미국과 북한이 서로 한발씩 물러서서 운운」했다. 전형적인 美北 중재론이다. 범법자인 김정일 정권과 국제 경찰관인 미국 사이에서 말리는 시늉을 한다. 우리도 김정일의 범법에 피해를 본 입장이다. 피해자는 경찰관 편을 들어 범법자를 다스려야지 피해자가 나서서 범인과 경찰관이 한 발씩 양보하라고? 이건 범인 편을 드려는 말장난이 아닌가.
  
  미국이, 북한정권에게 핵무기를 10개까지만 만들고 그 이상은 만들지 말라고 양보하는 것」이 「한발씩 물러서는 법」인가. 이 성명은 대한민국 편에 선 사람도, 김정일 편에 선 사람도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내용이다. 읽고나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메시지가 남지 않는다. 선과 악, 범인과 피해자 사이에서 중립을 주장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그건 중립이 아니다.
  
  이런 류의 양비론은 1987년 6월29일 민주화 선언 이전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많이 있었다. 그때는 정권의 눈치를 보는 입장에서 바른 말을 하자니 양비론이란 편법을 썼던 것이다. 지금 언론자유가 상당히 보장되어 있는데 왜 이런 양비론이 등장하나. 지금은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가. 김정일과 한국내의 추종세력이 그때의 권위주의 정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사회지도층 인사란 사람들의 사실과 논리가 이 정도 수준이란 것, 그들의 신념과 용기부족을 확인시켜준 이 성명서는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의 진정한 위기의 소재를 알려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