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사당역에서 시내방향으로 향하는 4호선 지하철을 탔다. 삼삼오오 짝을 이룬 50,60대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서울역이 가까워질 무렵, 그 중 한 분이 목청을 높인다. '우리 역전의 용사들이 말이야....'
  그제서야 그분들도 나와 목적지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탄 그분들은 시청역에서 내렸다. '그동안 취재했던 우익관련 행사들처럼 이번 행사도 5060행사로 끝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과 발걸음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거두어들였다. 적어도 누가 등떠밀어 나온 사람들은 아니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청역 지하도에서는 젊은이들이 오늘 대회의 집행위원장인 김상철 변호사가 발행인으로 있는 '미래한국신문'호외를 배포하고 있었다. 몰려드는 인파에 신이 나서일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미래한국신문입니다!'라는 그들의 외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시청앞 광장. 출구를 나오면서 하늘부터 쳐다봤다. 잔뜩 찌푸린 하늘, 하지만 비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정오. '나라를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 최해일 목사의 개회사에 이어,홍순우,지덕,김홍도 목사의 기도가 이어졌다. 나라가 위난에 처한 지금 교회와 신도들의 회개를 촉구하면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내용들이었지만, 신자가 아닌 나에게는 솔직히 별로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다만 김홍도 목사가 자유와 창의, 신앙의 자유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의 모순을 비판하고, 국내 친북좌익세력들을 향해 '그렇게 공산당이 좋으면 북한에 가서 살아라','의정부 여중생 교통사고는 가슴아픈 일이지만, 그들의 죽음을 가지고서는 몇 달씩 촛불시위를 하면서, 서해교전에서 비참하게 죽은 해군장병들에 대해서는 왜 얘기가 없느냐'고 일갈할 때는 마음에서부터 공감이 갔다.
  
  신현균,김한식 목사의 기도, 찬송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는 시청앞 광장을 돌아보아보았다. 누가 어깨를 치기에 돌아보니 박찬성 과소비추방운동본부 사무총장이다. 이벤트에 강한 사람. 오늘은 무슨 이벤트를 펼칠지 기대가 됐다 . 이세기 전 의원, 이기택 전 연세대 교수, 그리고 조갑제 편집장, 김석규 편집위원, 이오봉 사진부장 등 월간조선 가족들의 모습도 보였다.
  참석자들 가운데는 이북5도민 단체, 재향군인회, 월남전 참전 전우회, 해병전우회, 특전전우회, 그리고 몇몇 대형교회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50,60대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하지만 그들이 전부는 아니었다. 자녀들의 손을 잡고 나온 40대 부부들이나, 마치 작년 월드컵때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다녔던 것처럼 '우리는 6-25전쟁에서의 미군의 희생을 기억합니다'라고 쓴 천을 온 몸에 두르고 다니는 대학생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젊은이들은 대개 교회계통에서 나왔다고들 했다. 1부 기도회가 끝난 뒤에도 그들은 스산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켰다.
  
  대회 참석자들에게 오늘 대회에 참여한 이유를 물어보았다. 張三李四들이어서일까. 이름을 물어보면 '그런 건 알아서 뭐하느냐'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그들의 입에서는 똑부러지는 얘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오늘날 북한땅을 굶주림과 억압의 땅으로 만든 장본인은 김정일이다. 김정일의 잘못을 규탄하지 않고, 북한돕기와 통일을 얘기하는 것은 위선이다' (남자 대학생)
  
  '긴 말이 필요없다. 김정일은 범죄자다. 이 사실을 외면하는 자는 김정일의 공범이다. 나는 범죄자의 곰범이 되고 싶지 않다' (40대 중반의 남성)
  
  '북한에서 굶주리고 있는 어린이들의 비참한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난 내 손주가 그렇게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 (50대 초반의 여성-나중에 탈북자 돕기 운동을 하는 독일인 의사 노베르트 폴러첸씨가 단상에 올라 굶주리고 있는 북한 어린이들의 사진을 들어보이며 북한동포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을 때, 이 여성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대선이 끝난 다음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 60대 이상은 高麗葬 지내는 분위기다. 나라가 어수선한데 가만히 앉아 있는다면 나는 고려장 당해도 싸다. 이렇게 나오는 것으로 내가 이 나라에 아직도 소용이 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60대 중반 노인,남)
  
  '지금 나라가 넘어가게 생겼다.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면 6-25때 죽은 전우들 볼 면목이 없다' (70대 중반 노인,남)
  
  1부에서 목사님들의 기도가 너무 길었기 때문일까. 12시40분 시작될 예정이던 국민대회는 1시가 훨씬 넘어 시작되었다.
  국민대회 마이크는 방송인이자 韓赤 부총재를 지낸 봉두완씨가 맡았다. 그는 적절히 농담을 구사해 가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개회선언과 풍선날리기에 이어 국민의례. 애국가는 모처럼 4절까지 불렀다. 노래방에만 가면 버벅대는 나지만, 음정,박자가 틀려도 뭐라고 그러는 사람이 없는 너른 광장에서 나도 목이 터져라 애국가를 불렀다. 특히 4절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라는 대목을 부를 때는 콧날이 시큰해졌다.
  이상훈 재향군인회장의 대회사에 이어 납북어부 이재근씨가 단상에 올라와 테러와 납치를 자행해 온 김정일을 고발했다. 이재근씨는 자신의 귀환과정을 소개하면서 '월간조선 김용삼 기자'의 이름을 언급했다. 순간 내가 월간조선에 몸담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한미우호를 다짐하는 의미에서 미국국가 연주가 있은 후에, '전우야 잘 자라' 합창이 있었다.마침 내 옆에는 얼룩무늬 전투복 차림의 노인들이 무리지어 있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를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자라.....'
  노래가 2절,3절, 4절로 넘어가는 동안, 그들의 눈시울은 붉게 물들어 갔다.
  '저들은 지금 무엇 때문에 눈시울을 붉히고 있을까? 전쟁터에서 죽어간 전우들을 생각? 자신들이 칠십 노구에 군복을 입고 거리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든 세태? 아니면 나라를 이토록 흔들리게 만들어 놓은 후배들에 대한 원망?'
  
  정오부터 시작된 행사가 오후 두 시를 넘기면서 대회장 분위기는 조금씩 흐트러져 갔다. 그때 단상에 오른 것이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이었다. 가톨릭 신부인 박 전 총장이 '하나님 아버지, 부처님, 조상님'을 찾으면서 '善을 가장한 惡의 사상, 자유도, 빵도 해결하지 못하는 공산주의, 남한을 적화하려고 원자탄을 만들고 젊은이들을 물들이는 놈들, 똥먹어라'고 외치자 청중들은 박장대소했다. 이어 박 전 총장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낭독했는데, 특히 '참여정부가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 내 사람들만 참여하는 정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한 부분이 인상에 남았다.
  
  이어 조국찬가 합창. 어렸을 때 많이 듣고 불렀던 노래, 작년 대선 이후 인터넷 등을 통해 곧잘 들으면서 흥얼거리던 노래지만, 오늘 군중들과 함께 부르는 맛은 확실히 달랐다.
   '완전통일 이루어 영원한 자유평화/ 태극기 휘날리며 벅차게 노래불러 자유대한 나의 조국 길이 빛내리라'
  
  이어 인터넷 독립신문 대표 신혜식씨가 등장했다. 평소 생각이 반듯하고 말도 정연하게 잘하는 그였지만, 시청앞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들 앞에서 그처럼 사자후를 토해 낼 줄은 몰랐다. 멀티비전을 통해 절규하듯 외치는 그의 얼굴 표정과 힘찬 목소리는 순식간에 대회장을 휘어잡았다.
  신혜식씨는 '현재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6.25 남침 전쟁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면서 '붕괴 직전까지 갔던 북한 김정일 체제는, 김대중 정권의 퍼주기와 뇌물 덕분에, 실세를 일거에 만회하여, 미사일을 날리고 핵 위협을 하는 지경에 와있다' 면서 DJ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순간 청중들은 미친듯이 환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그는 '일부 청년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민족생존과 동북아,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김정일의 핵을 「민족의 자산」이라고 서슴없이 두둔하며, 사이비 민족주의를 개진하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낭만적 민족주의가 나라를 망친다! 감상적 반미가 민족반역자를 돕고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신혜식씨는 구호를 선창하면서도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이 놈 새끼의 버릇을 고쳐라!','북한 핵개발 자금을 지원한 친북김정일 똘마니 놈들 반역세력을 엄단하라!'며 험한 소리를 거침없이 토해냈다 (나중에 신혜식가 보내 준 원고에는 '이 놈 새끼'니 '친북김정일 똘마니'이 하는 소리는 없었다. 그런 말들은 그가 현장에서 토해낸 애드립이었던 셈이다).
  
  나중에 대회가 끝나고 군중들이 흩어질 무렵 뒤에서 노인들이 나누는 얘기 소리가 들렸다.
  '아, 그 신혜식인가 하는 젊은이, 대단해. 그 열정에 그 선동술! 꼭 히틀러의 연설을 보는 것 같았어. 그런 젊은이들이 많이 나와야 해'
  '암, 크게 될 젊은이야'
  '하필 히틀러에 비유하나'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분들의 얘기를 들으니 '오늘 대회 최대의 스타는 신혜식씨'라는 내 생각이 그다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나이드신 분들도 '우익운동은 이제 젊은이들이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 같았다.
  
  대회가 끝날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청중들은 누가 지키지도 않았는데도 땅 위에 떨어진 담배꽁초나 종이류등을 줍기 시작했다.
  
  대회는 김상철 대회집행위원장의 '우리의 결의' 낭독과 이철승 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의 만세삼창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만세!!'라는 외침의 여운을 뒤로 하고 돌아서는 청중들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들의 얼굴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라를 걱정하고 세상이 이렇게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 온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 나는 결코 우리 사회에서 少數가 아니다. 나는 우리 사회의 '多數', 그것도 '침묵하는 多數'가 아니라, '행동하는 多數' 가운데 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