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경제는 호전되고 있고, 중국에서 흘러온 식량과 생필품으로 장마당 시장경제가 인민들을 먹여살리고 있다. 金正日이 주체가 된 개혁 개방은 어려울지 몰라도 변경 밀무역을 통해 형성된 장마당과 자투리땅에 대한 개인농사를 통해 인민들이 주체가 된 개혁 개방이 진행되고 있다. 덕분에 중앙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은 상당히 약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北은 이제 수령도, 黨도, 法도 아닌 돈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金正日이 鄭周永을 만나준 이후 남조선에서는 鄭周永이 金大中보다 더 높은 사람이 되었
  다』
  
  남북 頂上회담 이후 남한의 여론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우리 민족의 원
  수」였던 金正日은 거의 연예인 스타와 같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팬클럽까지 조직되고 있다
  고 한다. 이는 頂上회담이 있기 직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남한은 언론 자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에 방송이나 신문을 보면 일반 대중들의 생
  각이나 사회 분위기를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그런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북한
  의 중앙방송이나 노동신문을 꼼꼼히 분석해도 북한 주민이 실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
  며, 북한 사회의 실제 분위기가 어떠한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필자는 頂上회담 기간 중 중국 東北지방 출장 기회를 얻었고 운 좋게도 여러 명의 脫北者
  (탈북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는 頂上회담 직전에 함경북도 청진에서 脫北한 청년도
  있었고, 탈북한 지 6개월 정도 되는 인민군 출신 청년도 있었다. 또 頂上회담 직후 무산에서
  渡江(도강)한 꽃제비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명의 脫北者들을 만났다. 평소에
  도 북한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최근 북한의 실정과 頂上회담에 대한
  분위기, 그들의 생각과 기대감 등을 들을 수 있었다.
  頂上회담이 있기 하루 전 두만강을 넘어온 청진 출신 청년(27세)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
  다. 필자는 궁금한 점들을 그 청년에게 물어보았고 그 청년은 頂上회담이 있기 전 청진에서
  떠도는 여러 이야기들을 전달해 주었다.
  ―頂上회담에 대해서 북한 당국은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노동당 간부들을 비롯해 지도급 인사들은 頂上회담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金正日이
  남조선의 鄭周永은 만나주고 金大中을 안 만나주니까, 남조선에서는 鄭周永이 金大中보다
  더 높은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金大中이 金正日한테 한 번만 만나달라고 신신당부해서 친
  애하는 지도자 동지가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큰 결단을 내려 金大中을 만나주는 것이다」라
  고 말입니다』
  ―그와 같은 이야기가 청진에서는 많이 퍼져 있습니까.
  『그럼요. 그런 이야기를 못 들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 소문에 대해 청진 사람들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까.
  『예, 보통 사람들은 대체로 믿는 편입니다』
  북한 당국은 남한과 달리 어떠한 외부 여론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외부 소식을 알기 어렵고 외부 세계에서도 북한 주민들의 진짜 여론을 알기 어렵다. 북한의
  통치자들은 이런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모든 사건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이를
  유포해 온 것이다. 이는 이번 頂上회담에서도 여지없이 적용된 것이다.
  필자는 화제를 돌려 요즘 청진 주민들의 삶은 어떤지 물어보았다.
  
  북한 경제 호전되다
  
  ―최근 식량 공급은 잘 이루어지나요.
  『아닙니다. 여전히 미공급입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배급되는 정도이니 과거와 크게 다
  르지 않습니다』
  ―배급은 쌀을 주나요.
  『아니오, 옥수수를 줍니다』
  ―그럼, 어떻게 생계를 해결합니까.
  『장마당에서 해결합니다』
  ―장마당에는 물건이 충분히 있습니까.
  『예, 장마당에는 일상적으로 쓰는 물건은 없는 게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 중국 물품입니
  다』
  ―쌀도 팝니까.
  『예』
  ―중국쌀입니까.
  『예, 거의 다 중국쌀입니다』
  ―쌀값은 어느 정도 합니까.
  『북한 돈으로 1kg에 25원 내지 30원 합니다』
  필자는 쌀 가격을 듣고 상당히 놀랐다. 왜냐하면 중국돈과 북한돈의 실질 환율(중국돈 1원
  은 북한돈 20원)을 감안할 때 북한의 쌀값과 중국의 쌀값이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1999년 여름 때까지만 해도 북한의 쌀값은 1kg에 70원 내지 100원 정도였다. 쌀값이 하락한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북한의 경제는 과거에 비해 상당히 호전된 것은 분명하다. 북한 장마
  당의 쌀값이 중국의 변경 지방과 거의 같을 정도로 경제가 호전된 것은 두 가지 의미를 내
  포하고 있다.
  우선 북한의 경제 호전은 국가의 배급 경제가 활성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장마당 경제가
  활성화된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주지하다시피 수령주의 체제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경
  제적 수단이 배급이다. 그러나 지금은 장마당이 배급을 실질적으로 대체했다. 장마당이 없이
  는 북한의 지역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경제 구조의 변화는, 곧 수령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 약화를 의미한다. 즉 중앙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 약화는 최근 북한의 두드러진 현상이고, 이는 그 脫北者와의 대화를 통
  해 줄곧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북한의 경기 개선은 중국과의 교역 활성화의 결과이다. 중국 변경 지방과 북한의
  동북쪽에 위치한 청진의 쌀값이 거의 같다는 것은 이들 지역이 거의 단일 시장권을 형성하
  고 있으며, 그 내부에서는 사실상의 자유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역은 대부분 중앙의 통제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통계에 잡히지 않는
  非공식 교역이다. 즉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는 중국에 경제를 개방하고 있지 않지만 인민
  들 스스로 밀교역을 하면서 사실상 개방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 경영이 시작되고 있다
  
  이처럼 북한은 식량 공급 체제가 무너지고 중앙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각 지방에서는 아래
  로부터의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변화의 양상을 좀더 파고들어 보
  았다.
  ―요즘 공장에 사람들이 출근해서 일을 하나요.
  『출근은 하지만 공장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데 출근은 한다구요?
  『예, 실은 출근부에 도장만 찍고 공장이 관리하는 땅에 농사 지으러 가는 것이지요』
  ―그럼 그 농사 지은 것으로 공장 노동자들이 먹고 산단 말입니까.
  『예, 당에서는 배급을 중단하고 공장 노동자들의 생계를 공장장의 책임으로 떠넘겼습니다.
  그 이후로는 노동자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유능한 공장장이 되었습니다. 그래
  서 과거에는 농사를 지을 때도 집체적으로 했는데, 요즘 어떤 공장장은 땅을 노동자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래야 수확이 더 많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그럼 중국처럼 개인 경영을 허용하고 있다는 말이네요.
  『중앙에서 공식적으로 허용하지는 않아도 밑에서는 사실상 허용하고 있는 것이죠』
  ―개인 경영은 자본주의적 요소라고 하여 당국에서 탄압하지 않나요.
  『어떻게 탄압을 합니까? 그렇게 안하면 굶어죽는 것을 뻔히 아는데』
  이와 같은 대화를 하고 있는 중 과거 중국의 개혁, 개방 이전의 상황이 연상되었다. 중국도
  대약진과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수천만의 사람들이 굶어죽고 난 뒤 시골에서 주민들이 자발
  적으로 토지의 개인 경영을 시도했었고 큰 성과를 거두었다. 鄧小平은 이를 알고도 보호했
  으며 나중에 집권하고 나서는 이 경험을 전국에 보급한 것이다.
  삶의 극단에 다다른 북한 주민들도 이제 자발적으로 농업 개혁을 시도하는 것이다. 개인 소
  유제의 도입이 북한 전역에 어느 정도 퍼져 있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러한 시도가 있
  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였다. 金正日이 鄧小平처럼 진정으로 개혁, 개방하려는 의지
  가 있다면 이러한 흐름을 탄압하지 않고 전국적으로 확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북한 사람들, 이제는 돈이 최고
  
  계속 질문을 이어 나갔다.
  ―그러면 이제는 굶어죽는 사람들은 거의 없겠습니다.
  『예, 그동안 워낙 사람들이 많이 굶어 죽었고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 어려운 시기를
  극복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제는 어떻게 살더라도 굶어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쇠약한 건
  강 상태에 약과 병원 치료까지 부족해 병들어 죽는 사람은 여전히 많습니다』
  ―金正日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아직 金正日은 나쁜 놈이고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
  거에 비해 충성심은 상당히 희박해져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돈이 최고라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돈이면 안되는 것이 없거든요. 노동당 간부, 보위부·안전부 간부보다
  돈 많은 것을 더 높이 칩니다.
  한 번은 혜산시에 反사회주의 검열이란 것을 한 적이 있는데요. 그 검열에서 500만원(북한
  돈 500만원은 쌀값 기준으로 한국돈 5억원 가치에 해당) 상당의 돈을 가진 사람이 발각되었
  습니다. 옛날 같으면 그 사람은 당장 총살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총살은커녕 큰소리 치고 잘
  삽니다. 요즘 도시에서는 1000만원 이상 가진 사람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을 사회주의 사회라고 보기는 어렵겠네요.
  『사회주의가 뭡니까. 사람들은 우리 사회를 자본주의,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자본주의
  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자본주의라는 말은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사회를 일컫는다. 그러나 이 脫北者는 자본주
  의의 정의를 돈이 지배하는 사회로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북한은 이제 수령도 당도 법도
  아닌 돈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하여 돈이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범죄는 많지 않습니까.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흉악 범죄가 많습니다. 특히 주민들에게 원한을 많이 사고 있는 보
  위부, 안전부 간부들을 목표로 한 범죄가 많습니다. 한 번은 보위부 고위 간부가 눈알이 뽑
  혀 죽은 사건, 또 죽이고 난 뒤 얼굴을 칼로 도려낸 흉칙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범죄도 대담
  해져서 대낮에도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악질적인 사건들인데도 범
  인이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앙의 통제력, 상당히 약화돼
  
  ―사회 분위기가 그렇다면 중앙당의 지시나 명령도 잘 집행되지 않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요즘은 중앙의 명령이 잘 집행되지
  않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청진에 와 있는 외국인 고관 부인이 軍 장교와 함
  께 차를 타고 어디를 가고 있었습니다. 길가에서 검문 작업을 하던 하급 군인이 그 차를 멈
  추게 하고는 신분증을 요구했습니다.
  차를 몰고 있던 장교는 보면 모르냐고 비키라고 했지만 그 하급 군인은 끝까지 신분증을 요
  구했습니다. 그러다가 끝내는 싸움이 붙었고 하급 군인이 간부를 흠씬 패주고 도망가는 일
  이 벌어졌습니다. 옆에 있던 외국인 부인은 사색이 되어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아주 큰 정
  신적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 장교는 나중에 외국인 부인에게 그 일이 발설되면 외
  국인 부인을 잘못 모신 죄로 자기가 죽으니 제발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답니다.
  그러나 결국은 사실이 알려지고 상부에서는 해당 군대에 검문을 서던 그 하급 군인을 적발
  하여 처형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하급 군인은 군대 內에 줄이 있었고 처형
  은커녕 아직까지도 청진 시내를 활보하고 다니며 잘살고 있습니다. 청진의 군 부대에서 상
  부에는 처형했다고 보고했고 상부에서는 그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기에 그냥 넘어간 것입니
  다』
  며칠 뒤 평소에 알고 지내는 조선족 교회 전도사를 만났다. 이 전도사는 몇 년 동안 脫北者
  들을 돕는 일을 해오고 있었다. 필자는 요즘 중국 정부의 脫北者에 대한 수색 활동이 어떤
  가 물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5월경 중국쪽 두만강 접경도시인 도문 감옥에서 있었던 脫北
  者의 폭동 사건 때문에 한바탕 脫北者 검거 소동이 있었다고 한다. 이 검거 선풍에서 자신
  이 아는 脫北者들 30명 이상이 잡혀갔다고 한다.
  그런데 잡혀간 지 한 달도 채 안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脫北해 오고 있다고 했다. 이전과 달리 北으로 압송된 脫北者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조사와 감시가 훨씬 느슨해졌기 때문에 훨씬 쉽게 탈출한다는 것이다. 한번 중국에 넘어와서 북한과 다른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맛본 사람들은 반드시 중국으로 되돌아온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필자는 북한의 지방에는 기강과 규율이 상당히 느슨해져 있고 중앙의 통제력도 그만큼 약화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는 질문을 한국에 대한 것으로 옮겨보았다.
  ―북한 주민들이 요즘은 한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제 한국이 북한보다 잘산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인 의미에서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중에서도 안기부에 대
  한 적대감은 대단합니다』
  
  안기부가 北주민들 죽인다고 선전
  
  ―그건 왜 그렇습니까.
  『北에서는 철도가 선로를 이탈하여 사고가 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바로
  南의 안기부 특무가 우리를 혼란하게 하려고 조작한 책동이라고 소문이 납니다. 사실은 굶
  주린 사람들이 선로를 떼내어 팔아먹어 철도 사고가 나지만 주민들은 안기부 특무 소행이라
  고 하면 대체로 믿는 편입니다. 또 지금 청진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장마당에 나와 있는 중국산 아스피린을 먹은 사람들의 내장이 썩고 또 중국산 연고를 손
  에 발랐더니 손이 썩어 문드러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
  국의 안기부 특무가 중국 산 약에다가 독약을 섞어서 몰래 北으로 반입한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습니다』
  ―그게 정말 사실이라고 믿으시는지요.
  『저는 믿지 않습니다. 좋은 한국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한국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그처럼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그 脫北者는 손이 썩어 문드러진 사람을 직접 본 일이 있다고 했다. 그것으로 보아 중국산
  약에 독극물이 섞여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면 그것은 누구의 소행일까? 우리의 상식으로
  서는 소위 한국의 안기부 특무나 중국 상인이 그처럼 어리석은 짓을 할 리가 없다. 그 소행
  은 북한 당국의 자작극일 가능성이 가장 클 것이다. 그 脫北者는 아마도 북한 사람들이 남
  한의 실상을 조금씩 알게 되자 그러한 경향을 두려워하여 여전히 남한에 대한 적대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북한 당국이 조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화제는 다시 頂上회담으로 옮겨왔다. 이 脫北者를 비롯하여 다른 脫北者들도 대부분 頂上회
  담을 환영한다. 왜 그럴까? 필자는 이 질문을 이번에 만난 여러 脫北者들에게 던져보았다.
  어떤 脫北者들은 頂上회담이 잘되어 자신들에게 살길이 열리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를 가지
  고 있었다. 함흥 출신의 한 여성 脫北者(36세)에게 물었다.
  ―頂上회담이 잘되어 脫北者들이 다시 北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나요.
  『그건 불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金正日이 우리 같은 사람들을 민족의 반역자로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남북 문제가 잘 풀려 우리가 혹시 남한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아마 다른 脫北者들도 北으로 다시 무사하게 돌아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청진 출신의 또다른 脫北者는 필자의 頂上회담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頂上회담에 대해 기대하는 것은 金正日이 개혁, 개방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金正日이 중국처럼 개혁, 개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동안 너무
  나 많은 거짓말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개방이 되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경우 金正日이 무사
  하지 못하다는 것은 金正日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기본 통일방침엔 변화가 없다」는 提綱 내려와
  
  ―그럼 왜 頂上회담에 대해 기대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남한 사람들의 역할입니다. 중국에 나와 있는 많은 脫北者들도 남
  한 사람들이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북한의 주민들도 마찬가
  지입니다. 그동안 북한 內에서는 희망의 출로를 찾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남한의 대통령이
  북한으로 오는 것에 대해 그 출로를 발견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남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해방하고 구원해 줄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의 표출인 것입
  니다. 金正日은 頂上회담을 통하여 진정한 개혁, 개방보다는 자신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려
  할 것이지만 북한 사람들은 金正日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頂上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던 중 필자는 청진에서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脫北者
  에게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 상부에서 각급 노동당 간부들에게 頂上회담에 대한 提綱(제
  강)이 내려왔다는 것이다. 필자는 提綱이란 말을 처음 들어 그 뜻을 먼저 물어보았다.
  ―提綱이 무슨 뜻입니까.
  『상부의 교시 같은 것입니다. 즉 지도자 동지가 하부에 내린 지침서이지요』
  ―頂上회담에 대한 그 제강이 내려온 사실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제가 아는 분 중에 한 분이 노동당 간부인데 그분에게 들었습니다』
  ―그 제강은 무슨 내용입니까.
  『그 노동당 간부가 말하기를 제강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金大
  中에 대한 환영 사업을 조직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의 기본 통일방침에는 변화가 없다.
  결코 환상을 갖지 말라」는 겁니다』
  ―거기서 「기본 통일방침」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무력통일을 의미합니다. 金正日은 줄곧 남한은 반드시 무력통일하겠다고 일관되게
  주민들에게 이야기해 왔고 그 사실을 다시 확인한 것입니다』
  ―환영 사업을 조직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환영 사업이란 무엇입니까.
  『金大中 대통령이 왔을 때 평양 주민들이 가두로 나와 환영하는 것을 미리 예행연습하는
  것입니다』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서 환영하는 것을 미리 준비한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평양 사람들은 그 환영 사업을 위해 거의 일주일간을 매일 10
  시간 이상씩 연습합니다』
  필자는 그 脫北者가 노동당 간부에게서 들었다는 그 상부 제강의 내용을 어느 정도 신뢰해
  야 할지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그 내용은 다른 사람에게서 2차, 3차로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단지 그 노동당 간부가 그 脫北者와 잘 아는 사람이고 그 脫北者도 신뢰할
  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거짓으로 꾸몄을 가능성은 상당히 적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러 脫北者들과의 대화를 마치고 필자는 이번 頂上회담이 북한 주민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마음속으로 정리해 보고자 했다. 만난 脫北者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는 한계가 있기는 했지만 몇 가지 시사점을 얻었다.
  
  북한의 「남한 바로 알기」 운동
  
  먼저 북한 주민들은 頂上회담을 통해 남한 사람들이 북한 주민들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진다는 것이다. 과거 한때 남한에서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이 급격히 퍼
  진 적이 있는 것처럼 이제 북한에도 아래에서부터 남한을 바로 알자는 욕구가 점차 강해지
  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북한 주민들의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북
  한 주민들에게 남한의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金正日의 개혁, 개방 의지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판단이다. 脫北者들 대부분은 金
  正日이 중국처럼 개혁, 개방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한 사람들 대부분이 金正日의
  개혁, 개방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럼에도 金正日이 개혁, 개
  방 쪽으로 나가주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북한 주민들이 생존할
  수 있는 활로이기 때문이다.
  사실 金正日은 개혁, 개방하면 은폐해왔던 모든 진실이 밝혀져 무너질 것이고 개혁, 개방하
  지 않으면 아래로부터 파도처럼 밀려오는 개혁, 개방 욕구에 휩쓸려 무너질 가능성이 많다.
  金正日이 그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북한은 인민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개혁, 개방의 방향으
  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頂上회담이 끝나고 金大中 대통령이 남한으로 돌아간 며칠 뒤였다. 중국 변경지방의 한 시
  장을 거닐고 있는데 한 10여 명의 아이들이 나에게 『삼촌』 하고 부르며 다가왔다. 꽃제비
  들이었다. 5월경 중국 공안에 의해 잡혀서 北으로 보내어졌던 아이들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중에 몇몇은 이번에 처음 넘어온 애들도 있었다. 그 아이들은 頂上회담에 대해서 아는지
  모르는지. 頂上회담이 그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진정 무엇인지. 그 시장에서 꽃제비
  들을 만나는 것은 이제 일상사가 되었지만 그 날은 왠지 씁쓸한 마음을 털어버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