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11시 44분. 라디오에서 다급한 아나운서 멘트가 흘러나왔다. 미국이 방금 이라크 공습을 시행했다는 뉴스였다. 오전 10시에 전쟁이 개시된다고 하여 모든 공중파 방송사가 특별생방송을 시작했다가 별다른 조짐이 없자, 평상으로 되돌아갔다. '하려면 빨리 하고, 안하려면 빨리 접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집을 나섰던 나는 전쟁 소식을 택시 안에서 들었다. 택시 기사가 라디오 볼륨을 높였고, 우리는 기자의 흥분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번 이라크 전쟁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라크 전쟁이후 북핵 문제가 대두되면 우리 경제가 나빠질 거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라크 전쟁 이후에 한국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얘기가 떠돌고 있다. 사실이든 아니든 민심이 흉흉하다는 게 문제다. 이라크전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강 건너 불'이 아닌 '발등에 떨어진 불'인 것이다.
  
  큰 사건이 터졌을 때 자신도 모르게 공황상태에 빠지곤 한다. 종일 뉴스를 들으며, 사건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911 테러, 대구지하철 참사 등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날 때면 삶의 무게가 갑자기 감당할 수 없을만큼 무겁게 느껴진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풀잎처럼 간단히 지는 걸 지켜보는 일,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전 세계적으로 반전 여론이 높은 가운데, 국내에서도 반전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비전투병 파병을 결정하고, 대국민성명서를 낸 이후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그런가운데 언론매체를 통해 국내외 여러 전문가들이 이번 전쟁에 대한 갖가지 논평을 하고 있다.
  
  전문가라는 자들이 쏟아내는 의견을 듣고 있자면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92년 걸프전 때만해도 소위 좌파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 매스컴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직설적으로 말하긴 힘들었다. 일부 매체를 제외하고. 요즘 우파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말하기 힘들어진 상황이 되어서인지, 지금 엄청나게 진보적인(?) 의견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반전 여론이 드높고, 이번 전쟁이 유엔 안보리를 통과하지 못했고, 전쟁에 참여한 나라가 미국과 영국뿐인 상황이니, 그야말로 반미주의자들이 마음놓고 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국가의 방침이나 국익을 고려한 발언들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반미 감정을 섞은 소신(?) 발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중이 똑똑해지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토론 프로그램이야 양쪽을 나누어서 논쟁을 하는 것이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일반 프로그램에서 같은 사안에 대해 전혀 상반된 얘기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니, 어느 나라방송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폐수를 흘려보내듯, 그동안의 묵은 감정을 이번 전쟁과 연관지어, 여러 사람이 마구 목청을 높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여기저기 면면을 내민 인사들 가운데 가장 한심하게 생각됐던 사람은 한 토론 프로그램에 나온 모 대학 국제관계학부 교수였다. 이번 전쟁에 관한 그의 견해는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근거없는 추측까지 내놓을 때 그의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교수는 미국이 전쟁을 하는 당위성이 부족하다고 말하다가 이런 발언을 했다.
  '미국은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전쟁을 한다고 했는데, 화학무기가 발견되지 않으면 아마 미국이 몰래 화학무기를 이라크에 갖다 놓고 화학무기가 있다고 말할 겁니다.'
  발언을 마친 그는 회심의 미소까지 지었다.
  
  반전여론이 높은 가운데 개시된 전쟁, 그 전쟁을 논평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등장하고 있다. 계속 쏟아져 나올 다양한 의견가운데 과연 바른 의견은 어떤 것이고, 진정한 전문가는 누구인지, 가려서 받아 들여야 할 때이다.
  
   李根美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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