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 대한 미-영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미국은 각종 첨단무기들을 앞세워 이라크를 초토화하고 있다. 그 실체야 어떻든 간에 아랍권을 비롯한 무슬림 민중들로부터는 歐美제국주의에 맞서는 영웅으로 간주되어 온 후세인의 일방적인 패배는 그들에게 다시 한번 분노와 좌절감을 안겨 주고 있을 것이다.
  현재 中東각국에서 번져가고 있는 反美-反戰 시위는 그런 분노와 좌절감의 표현 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좌절감은 미국의 뜻대로 이라크 전쟁이 조기 종결되더라도, 9-11테러와 같은 형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느끼는 분노와 좌절감은 심정적으로는 이해한다. 필자 역시 고단한 역사를 이어온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오늘날 아랍 민중들이 느끼고 표출하고 있는 분노와 좌절감이 과연 건강한 것인지는 한번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나?'-
  
  중세 1000년 간에 걸쳐 中東의 이슬람 세계는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유럽 세계보다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중세가 끝나고 근대로 접어들 무렵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이 驅逐(구축)되고, 러시아가 카프카즈 및 흑해연안 일대를 잠식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레판토 해전에서의 패배, 1·2차 비인 공방전의 실패 등 여기저기서 이슬람 세력의 퇴조를 알리는 경고음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고음에 대한 중동 이슬람 세계의 첫 반응은 '무시'였다. 17세기 후반에 접어들어서야 역전된 현실을 인정하고, 군사 및 과학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西歐의 앞선 물질문명을 받아들이려는 노력들이 나타났다. 그 후에도 서구문명을 수용하기 위한 상당한 노력과 투자가 계속 이어졌음에도 18세기, 19세기를 거치는 동안 이슬람 세계는 점점 더 위축되었고, 결국 구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 이유는 어디 있을까?
  우선 이슬람교의 경전 꾸란을 '一字一劃도 인간이 손대지 않은 神의 말씀 그 자체'로 떠받드는 데서 보듯 이슬람교에 내재되어 있는 원리주의·근본주의적 속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종교개혁·政敎분리를 가로막았다. 西歐에서는 종교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정치·사상·언론의 자유와 경제활동의 자유가 싹트고, 근대시민사회로의 진입이 가능했던데 비해, 이슬람 세계는 그러한 도약에 실패했다.
  
  경제적으로는 지리상의 대발견 이후 동서양 중개무역의 利를 상실한데 따르는 경제적 쇠퇴, 지방 관리 및 토호들의 착취, 수레 사용의 부진, 과학기술에 대한 무관심 등에서 이슬람 쇠퇴의 원인을 찾는 주장도 있다.
  
  사회적으로는 이슬람교의 여성 차별이 여성 인적 자원의 활용을 가로막은 것이 이슬람 세계의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견해가 특기할만 하다. 근친혼으로 인해 유전적으로 열등한 후손들이 태어난 것이 이슬람 세계의 쇠퇴를 가져왔다는 주장도 흥미롭다. 중세 이래 이슬람 세계가 유럽에 대해 갖고 있던 우월의식도 이슬람 세계가 서구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커다란 장애물이 되었다.
  
  하지만 중동의 많은 무슬림들은 이슬람 세계 쇠퇴의 원인을 이처럼 '안'에서 찾기보다는 '밖'에서 찾으려 들었다. 아랍인들은 오스만 터키의 지배가 자신들의 발전을 가로막았다고 주장했고, 터키인들은 아랍인들의 후진성이 자신들의 발목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멀리 13세기 몽골의 지배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슬람 쇠퇴의 원인을 찾는 견해도 있다.
  
  19세기 이래 중동으로 진출했던 영국·프랑스의 제국주의나, 20세기의 覇者(패자) 미국, 그리고 그들 歐美 제국주의자들의 尖兵(첨병)으로 지목받은 유대인들도 당연히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자신들의 쇠퇴의 원인을 '밖'에서 찾는 것이 얼마나 정확한 현실진단이며, 이슬람 세계의 후진성을 극복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중동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버나드 루이스(프린스턴대 석좌교수)는'영국의 프랑스의 통치, 그리고 미국의 영향력은 몽골의 침략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중동 국가와 사회의 내부적인 질병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고 지적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나'). 구미 열강의 식민지배로 인해 중동 이슬람 세계가 낙후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앞에서 열거한 것과 같은 내부 모순으로 인해 약화된 틈을 타서 구미 열강의 식민지배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버나드 루이스는 근대 이래 이슬람 세계는 스스로의 쇠퇴원인을 놓고,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나?'라는 질문과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나?'라는 질문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왔다고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나?'라는 질문은 단지 음모론과 같은 공허한 상상만을 초래할 뿐이다. 보다 自省的)인 질문인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나?'는 자연스럽게 두 번째 중요한 질문인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상황을 바로잡을 것인가?'로 인도한다. 이 마지막 질문에서, 그리고 이에 대한 다양한 답변들에 미래를 밝힐 수 있는 희망이 존재한다>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상황을 바로잡을 것인가'-
  
  버나드 루이스의 주장에 대해 歐美人들의 우월의식의 반영이거나, 자신들의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회피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자신들이 낙후된 이유를 밖에서 찾으면서 남만 탓하기보다는, 자기 내부의 모순을 自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남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자만이 결국 자신들이 후진성을 극복하고 역사의 승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한번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
  
  우선, 지난 반세기 동안 끈질기게 이어온 反日캠페인과 反日감정들, 오늘날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反美의 열풍을 떠올리자면, 그 속에 행여 우리가 겪었던 被식민지배와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분단이라는 현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에 대한 처절한 自省보다는, 남에게 그 탓을 돌려버리려는 안이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오해는 말기 바란다, 그 민족주의적 열정을 탓하자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필자는 일본이나 미국을 탓하기보다는 스스로의 國權을 지켜내지 못한 우리 스스로의 무능과 나약, 분열, 낙후, 空理空論을 먼저 自省하는 것이 더 건강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의 우익 세력을 향해서도 같은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룩한 정치적-경제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이, 그리고 그 주류세력을 자처해 오던 우익세력이 오늘날과 같은 나락에 떨어진 것은 무엇때문인가?
  북한과 좌익세력들의 꾸준한 공작때문인가? 김대중 정권이 우리 사회의 물길을 친북좌경쪽으로 돌려놓았기 때문인가? 친북좌경 언론들의 편향보도때문인가? 포퓰리즘에 현혹된 愚衆들 때문인가? 우익을 대표해서 나섰던(?) 이회창 후보나 그를 대권 주자로 내세운 한나라당 때문인가?
  
  하지만 그처럼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나?'라면서 남을 탓하기만 하는 한, 한국의 우익에게는 희망이 없다.
  한국의 우익이 지금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마땅히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여야 한다.그 동안의 부조리, 안일, 나태를 이번 기회에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한국의 우익은 '무엇을 할 것인가?'와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상황을 바로잡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