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長 春(외교평론가․명지대 초빙교수․전 외무부대사)--2003-03-27
  
   '노사모' 등이 이라크전(戰)을 명분없는 전쟁이라며 여론압박을 가하자 국회의 파병 결의안 표결이 연기된 데이어 국가인권위원회까지도 파병을 반대하고 나섰다. 이라크전은 유엔의 합법적 승인을 거치지 않은 불법적 전쟁인데다 수십만 명의 생명을 유린할 수 있는 반인도적 전쟁으로 이라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는 게 반대이유다.
  
   얼른 들어보면 한국이 대단히 고매한 명분국가로 격상된 것 같고 그 사활의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를 깨트려도 될 만큼 안보에 자신을 갖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한데 문제가 있다.
  
   도대체 역사상 어느 전쟁이 명분있는 전쟁이었고 합법적 전쟁이었는가?
  
   미국의 희생으로 우리가 살아남은 6.25전쟁에 대한 유엔안보리 결의도 반드시 합법적이지 못했다. 당시 소련의 안보리 불참으로 안보리 결의가 가능했으나 그 자체 법적 문제가 전혀 없지 않았고 소련이 안보리에 복귀한 후에는 소련이 망할 때까지 한반도에 관한 어떤 안보리 결의도 통과될 수 없었다.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략에 대한 안보리 결의는 냉전이 끝날 때 발휘된 미국의 압도적 위세 덕분이었으나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이 주장한 대로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유엔 헌장에 규정된 대로 유엔이 직접적으로 무력을 사용했던 적(direct UN action)은 유엔 창설이래 단 한 번도 없었다. 유엔의 승인을 받는 것(UN-authorized action)은 일종의 편법이다. 그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추진되나 국익의 경쟁장인 국제정치의 현실은 그것을 항상 필수적 요건으로 삼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유엔을 거치지 않고 무력이 사용된 경우는 허다하다. 우선 인권과 인도주의를 위해 당연히 유엔이 개입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안보리의 거부권 때문에 그렇지 못하여 유엔을 비켜가게 된다. 최근의 실례로는 1999년 코소보 위기에 즈음 나토(NATO)가 단행했던 벨그라드 공습으로 인종청소 등에 의해 수십만 명의 인명을 희생시킨 세르비아 대통령 밀로세비치(Milosevic)를 축출한 것이다.
  
   또 유엔을 통하지 않고 무력을 쓰는 가장 빈번한 케이스는 자위권 발동이다. 미국도 이번에 대 이라크 공격의 근거로 세 개의 안보리 결의 이외에 자위권을 꼽았다. 후세인에 대한 3월 17일자의 최후통첩에서 부시(Bush) 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에 의한 공격을 받은 후라야만 적(敵)에 대응한다고 하는 것은 자위가 아니라 자살“이라고 선언한 것은 바로 선제(先制)공격론(preemption)에 바탕을 둔 전쟁이유(戰爭理由)다. 미국본토가 역사상 처음으로 당한 2001년 9월 11일의 테러 피격은 바로 전쟁원인(戰爭原因)이다.
  
   한국이 미국과 동맹을 계속하자면 파병에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미국의 전쟁이유와 전쟁원인에 시비가 따르고 나라마다 동정의 강도가 다를 수 있지만 그 안보를 미국에 의지하고 있는 한국만은 달라야 한다.
  
   전쟁은 국가간의 가장 극악한 패싸움이다. 그런 싸움에서 동맹은 중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보험료를 납입하지 않으면 보험이 끊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맹이 전쟁에서 이기도록 도와야만 위급할 때 동맹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고 국제적 발언권이 생긴다.
  
   9/11테러로 바뀌기 시작한 세상이 이번 이라크전으로 엄청난 변화의 요동을 칠 것은 뻔하다. 국제석유가격을 포함한 중동정세에 굴곡이 일고 강대국관계의 갈등이 노골적으로 빚어지는 가운데 대량살상무기 문제로 야기될 분란으로 점철될 탈(脫)이라크전의 추이는 한국이 당면할 도전임에 틀림없다. 한국외교에 과연 얼마만큼의 마아진(margin)이 붙게 될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노무현(盧武鉉)) 외교는 ‘햇볕’으로 고장난 한미동맹을 치유하는 호기로 이라크전을 잘 활용할만하다. “한국 역사상 가장 반미적(反美的) 대통령”을 바로 이은 노 대통령은 멍든 한미동맹을 화끈하게 수리해야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북한의 핵문제까지 걸린 외교는 어디까지가 현실(現實)이고 무엇이 진정한 국익(國益)인지를 헤아리는데 그 오차범위가 지극히 좁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