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알사스 로렌 지방 紀行(2)
저는 지금 보잉 747의 점보기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3월20일) 오후 1시30분에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11시간30분 뒤 파리의 드골 공항에 도착하는 대한항공편입니다. 지금 한국 시간으로 오후 8시10분, 시베리아 상공을 날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은 月刊朝鮮과 한진관광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역사문화 기행 그 세번째입니다. 주로 라인강 주변의 프랑스(알사스 로렌 지방), 독일 남부(바덴바덴 등), 스위스(제네바 등)의 중소도시를 여행할 계획입니다.
인천 공항을 출발하기 직전에 부시 대통령의 개전 성명이 있었으니 지금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었으리라고 짐작합니다만 드골 공항에 내릴 때까지는 정확한 戰況은 모르는 것으로 해두려고 합니다.
이번 여행 코스 주변에는 세계사를 바꾼 戰場이 많이 있습니다. 1815년6월18일에 있었던 벨기에의 워털루 전투. 엘바섬을 탈출하여 황제에 복귀했던 나폴레옹은 여기서 영국의 웰링턴 군대에게 패전하여 대서양상의 孤島 센트 헬레나섬으로 귀양가서 거기서 죽습니다. 워털루 전투 하룻동안 죽거나 다친 군인은 5만 명이 넘습니다. 한국전쟁 3년간 죽은 미군숫자와 비슷합니다.
프랑스 아르덴느 지방의 세단. 1870년9월1일 이곳에서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 군대 10만 명이 프러시아의 참모총장 大몰트케 장군이 이끄는 20만 대군에 패전하여 항복했습니다. 普佛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에서 승리한 프러시아는 독일의 수십개 연방국가를 통합하여 통일독일제국을 건설합니다.
세단에서 프랑스 사령관은 항복 교섭을 하면서 비스마르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군이 명예롭게 항복하도록 해주시오. 우리는 무기를 갖고 편제를 갖추어 퇴각하고, 다시는 프러시아 군대와 싸우지 않겠소. 이렇게 해야만 장차 우리 두 나라 사이에는 원한과 복수전이 없을 것이오』
이에 대해서 비스마르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아는가. 프랑스는 지난 2세기 동안 우리 독일을 서른 번이나 침략하였다는 것을. 당장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비스마르크는 프랑스를 점령하기 위하여 이 전쟁을 한 것이 아닙니다. 독일민족통일국가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남부 독일의 작은 나라들이 프랑스의 영향권에서 독립하여, 독일제국에 편입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랑스를 꺾어야 수백년 동안 독일민족이 당했던 피해를 복수하면서 독일민족의 자존심을 세우고 프랑스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도 보았습니다. 비스마르크는 普佛전쟁을 역사적인 복수전으로 이해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普佛전쟁에서 진 프랑스는 그 뒤 44년간 와신상담하면서 복수의 기회를 노렸습니다. 1914년 독일군이 벨기에를 침공하여 거대한 우회전으로 파리를 향해서 진격할 때 프랑스 사령관 조프레는 이 예봉을 파리 근교 마른느에서 꺾었습니다. 마른느에서 진격이 저지된 독일군은 속전속결의 승리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 뒤 독일군대와 프랑스-영국 군대는 서부 전선에서 참호전, 독가스전을 하면서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이 죽어갔습니다. 마른느 전투는 1차세계대전의 방향을 바꾼 가장 중요한 전투였습니다(베르당 전투나 솜느 전투가 더 대규모였지만 전략적 의미는 마른느 전투가 더 무겁습니다).
이 마른느 전투를 총지휘한 독일의 참모총장은 小몰트케라고 불리는 사람으로서 세단 전투의 승리자 大몰트케의 조카였습니다. 마른느 패전의 충격으로 참모총장직에서 사임한 小몰트케는 2년 뒤 병사하였습니다. 프랑스로서는 몰트케 집안에 대한 복수도 한 셈입니다.
1차세계대전이 터진 1914년에 나이 20-32세 사이 프랑스 젊은이들(남자) 중 반이 전사했습니다. 140만 명의 프랑스 군인들이 이 유럽전쟁에서 죽었습니다. 저희 여행단이 내일 들리게 될 베르당도 유명한 戰場입니다.
1916년 2월 독일군은 이 베르당 요새를 수십만의 대군으로 공격합니다.목표는 점령이 아니라 섬멸이었습니다. 프랑스군을 이 결전장으로 끌어들여 5(프랑스)대2(독일)의 비율로 죽임으로써 병력의 원천을 고갈시키겠다는 전략목표를 두고 있었습니다. 페탕 장군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영웅적인 방어전을 펼쳐 독불 양쪽의 사상자가 비슷해졌습니다. 근 10개월을 끈 이 전투에서 쌍방 합쳐서 약80만 명이 전사했다고 합니다.
1차세계대전의 주전장은 라인강 연변 서부전선(독일측에서 보았을 때)이었습니다. 대포, 기관총, 참호, 나중엔 비행기와 탱크도 등장한 총력전이었습니다. 그 전의 전쟁은 결전을 몇번하면 어느 나라의 승리로 끝났지만 1차 세계대전부터는 그 나라의 국력이 소진될 때까지 계속하는 총력 소모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레 마지노 지하 요새를 구경할 예정입니다. 마지노선은 1차세계대전 때 너무나 많은 인명손실을 기록한 프랑스가 그런 희생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만든 지하요새였습니다. 독일과 프랑스 국경선을 따라 십년간 건설되었습니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 때 이 요새는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독일군이 마지노 요새를 우회하여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 대군의 옆구리를 강타하여 기절시켜버린 바람에 요새를 써먹지 못한 것입니다. 이때 독일군은 1차세계대전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벨기에 아르덴느 돌파작전을 했습니다. 아르덴느는 벨기에의 숲지대인데 탱크부대가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 프랑스의 판단이었습니다. 프랑스 군대는 아르덴느 숲의 前方에는 아주 미약한 방어선을 폈고 벨기에 전선에 주력을 배치했습니다. 독일군은 벨기에 전선을 主攻으로 하는 것처럼 페인팅 묘션을 취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 연합군은 독일군이 1차세계대전 때의 작전을 또 쓴다고 판단하여 주력군을 벨기에 쪽으로 북진시켰습니다.
이 틈을 탄 독일군은 기갑군단을 핵으로 한 주력군으로 아르덴느 숲지대를 지난 뒤 프랑스의 약한 방어선을 돌파하여 프랑스 주력군의 배후로 나왔습니다. 롬멜, 구데리안 등 맹장들이 지휘하는 전차부대는 무인지경을 가듯이 쾌속진격을 하여 도버해협까지 나가 프랑스 주력군과 파리 방어군을 양단하고 주력군을 북쪽에 고립시켰습니다. 프랑스는 6주만에 붕괴되었습니다. 독일군은 문짝의 경첩에 해당하는 부분을 강타하니 문짝이 날아가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둔 것입니다.
히틀러는 1914년 마른느 패전의 복수를 한 것입니다.
베르당 승리의 영웅이었던 프랑스의 페탕 원수는 프랑스를 점령한 히틀러와 협력하여 프랑스 남부에 비시 정부를 만들어 나치에 협력했습니다. 그는 2차세계대전 후 전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드골이 한때의 상관이던 그를 종신형으로 감형시켰습니다.
이처럼 라인강 주변은 수많은 군대와 전쟁영웅들이 승리와 패전을 거듭하면서 영화같은 인간 희비극을 연출한 곳입니다.
유럽은 산이 거의 없습니다. 러시아에서 피레네 산맥(프랑스와 스페인 국경)까지는 대평원입니다. 이런 곳에선 대규모 기병전이나 기갑전이 전광석화처럼 벌어집니다. 산악이 많아 기갑부대가 그렇게 효과가 강하지 못한 한국과는 다릅니다. 유럽은 또 여러 나라로 갈라져 있다가 보니까 전쟁이 많았습니다. 전쟁의 비극을 역사적으로 가장 많이 체험한 사람들이 유럽인들입니다. 이에 비하면 동양은 전쟁이 적었던 곳입니다(특히 동양에선 종교전쟁이 없었으므로) . 그러다가 보니까 군사문화와 군사과학이 발달하지 못해 결국은 서구 열강의 먹이가 된 면도 있습니다.
15세기 프랑스엔 영국과의 백년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프랑스의 시골 처녀 잔다크가 패전을 거듭하던 프랑스 군대의 앞장을 서 영국군을 몰아낸 이야기를 잘 아시죠. 잔다크는 주로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항상 선두에 섰다고 합니다. 그녀는 19세 때 화형당해 죽었습니다. 영국과 손잡았던 프랑스의 부르고뉴 공국의 군대가 그녀를 잡아 영국측에 넘겼고 영국은 프랑스 종교재판소에 넘겼습니다. 종교재판소는 이 소녀가 이적을 행한다는 주장을 이단이라 규정하고 사형시켜버렸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잔다크가 지금도 기억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정희, 잔다크, 시저, 링컨처럼 비극적인 죽음을 한 사람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은 아쉬움 때문인지 민중의 미안함 때문인지...
서기 1517년은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해였습니다. 가톨릭에 도전한 루터로 해서 유럽은 종교전쟁 속으로 휘말려 들어갑니다. 신교편인가, 구교편인가. 유럽국가, 귀족, 군대, 신도들은 양자택일하여야 했습니다. 그것은 또 죽음이냐 생존이냐의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에선 왕들이 신교도로 개종했다가 귀족들이 들고 일어나 쫒겨나고 암살되곤 했습니다. 결국은 가톨릭이 프랑스에선 승리합니다.
종교개혁의 진원지인 독일은 16세기에 본질적으로는 종교전쟁이지만 국제전쟁으로 비화되는 바람에 성격이 복잡해진 30년 전쟁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스페인, 스웨덴, 프랑스가 독일에 군대를 보내 이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그때 독일은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이 30년 전쟁으로 독일 인구의 약35%가 죽었다고 합니다. 인구비례의 피해로는 1,2차세계대전보다 더 심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독일은 프랑스보다도 후진국이 되어버립니다. 약200년이 지나서야 독일은 프랑스의 국력을 따라잡게 됩니다. 내전에 잘못 빠지면 몇 세기를 공친다는 이야기입니다.
외교의 천재 비스마르크와 군사의 천재 몰트케가 합작하여 성공시킨 프러시아 중심의 독일통일은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이기도 했습니다. 프랑스는 독일을 분열상태로 두어야 안전하다고 판단하여 그런 정책을 안보전략의 핵심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普佛전쟁은 프랑스의 이런 對獨 간섭을 배제한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게르만족은 로마시대부터 그 용맹을 날렸습니다. 로마도 이 야성적 부족을 복속시키지 못했습니다. 로마 시대 라인강은 문명의 최전선이고 야만이 시작되는 경계선이기도 했습니다. 라인강 동쪽 숲속의 주인공들인 게르만족은 결국 5세기에 서로마를 멸망시킵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그것입니다. 지금 몽골에 있었던 흉노족이 기원전 1세기 중국 漢武帝의 토벌전에 밀려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여 서기 4세기에 갑자기 유럽에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이들 기마군단은 훈족으로 불렸습니다.훈족이 게르만족을 치니 게르만족은 로마영내로 밀려들었고 로마 문명이 파괴되었습니다.
게르만족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을 휩쓸었습니다. 이들도 결국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문명화됩니다.
게르만족의 피를 이어받은 독일인들은 집단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종족입니다. 와그너의 음악, 니체의 超人철학, 히틀러의 선동력, 조직력, 과학정신, 음악, 관념철학 등 독일인들은 아주 깊고 복잡하며 어두운 내면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순수음악과 관념철학은 절대를 추구하는 이 독일인들의 영혼을 보여준다면 과학정신과 조직력은 이 사람들의 실용정신을 보여줍니다. 독일통일은 이 에너지를 큰 그릇에 담는 일을 했습니다. 국가란 조직안에 들어간 게르만족의 후손인 독일인들의 에너지는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줍니다. 거의 혼자서 세계 전체를 상대로 두번에 걸쳐 10년 전쟁(1,2차대전)을 벌인 독일이 아닙니까. 독일과 단독결전을 해서 이길 나라는 미국뿐이었습니다.
그 독일이 2차세계대전후 갈라져 있다가 하나가 되는 데 적극적으로 도운 것은 미국의 부시(아버지)정부였습니다. 독일의 콜 수상은 부시의 지원하에 프랑스와 영국의 방해를 물리치고 고르바초프의 소련을 설득하여 1년만에 독일통일 사업을 끝냈던 것입니다. 이 독일이 이라크 전쟁에서는 미국에 반기를 들고 나왔습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되는 세상입니다.
월간조선 여행간이 방문할 알사스 지방은 1648년의 웨스트팔리아 조약에 의해 프랑스 영토가 되었습니다. 이 조약은 30년 전쟁을 끝낸 평화조약으로서 그 뒤 약 200년간의 유럽 판도를 결정했습니다. 알사스와 로렌 지방의 일부는 1870년 보불 전쟁 이후 독일 영토가 되었습니다. 1918년 독일이 1차세계 대전에서 패배하자 다시 프랑스로 넘어갔다가 1940년부터 4년간은 나치 독일 치하에 있었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구교를 믿는 독일계 사람들이 많았는데 종교전쟁중 舊敎가 많은 프랑스 편을 들었습니다. 종교가 민족보다도 앞선 경우입니다. 이 지역엔 지금도 주민의 약20%는 신교도입니다..
로렌 지방은 18세기말, 1766년에 프랑스 영토가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퇴위한 폴란드 전 왕의 영지(스타니스로 1세. 루이 15세의 장인. 폴란드 계승 전쟁의 戰後 처리로 이곳이 스타니스로의 영지가 된 것임)였습니다.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 때 알사스 로렌 지방을 점령한 뒤에는 프랑스어를 쓰면 감옥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알사스 사람들은 수십만 명이 스위스나 프랑스 남부의 비시 정부쪽으로 피신했습니다. 알사스 지방에 남은 사람들은 나치 군대에 들어가 부역했는데, 이들은 전쟁 후 돌아온 알사스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당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6·25 사변 때 서울을 탈출했던 일부 사람들이 9·28 수복후 돌아와 渡江派를 자칭하면서 남아 고생하던 사람들을 공격한 일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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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20일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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