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비에 가족 학살당하고 산으로 끌려갔던 4.3산증인 2명의 증언
  -“우리동네 상당수가 공비에 학살”, “군경에 의한 학살” 팽팽한 공방전
  
   제주 4·3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정부의 사과문제를 놓고 팽팽한 공방전이 일고 있는 가운데 3월 28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주 4·3사건과 한국언론’포럼에 발제자로 나선 김삼웅 성균관대 겸임교수가 “4·3사건 당시 남로당의 지시가 없었다”며 남로당 지령설의 허위성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4.3사건의 산증인인 대한민국건국희생자제주도유족회 김성수 부회장은 '거짓말이다. 하늘에 두고 맹세한다'고 강력 반박해 4·3사건 기념일을 앞두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김삼웅 교수는 이날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 인터뷰한 박갑동씨가 중앙일보가 하지도 않은 말을 적었다고 밝힌 점과 남로당 연구가 김모씨가 “제주 사건은 북한 중앙당의 지시가 아니었다”고 발언한 점, 사태 당시 경찰 문상길 중위가 “북한 중앙당 지시가 없어서 진입 안했다”고 고백한 점 등을 들며, “당시 남로당의 지시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등 군·경의 과잉진압에 의한 사건으로 몰았다.
  
  김 교수는 이날 ‘제주 4·3 사건과 한국언론’이란 주제의 발표에서 “공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검사동일체’하는 것처럼 언론들은 ‘기자동일체’의식으로 제주4·3 사건을 바라봤다”며 4·3사건을 다루는 중앙언론의 행태를 꼬집었다.
  
  김 교수는 “언론계에 몸담았던 사람으로 제 얼굴에 침 뱉는 것일 수도 있으나 그동안 언론은 제주 4·3사건에 대한 묵살, 축소, 외면, 왜곡 등 비언론적인 행태를 보였다”며 “이는 언론인들의 ‘미필적 고의’가 아닐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한민국건국희생자제주도유족회 김성수 부회장(68)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김 교수의 남로당 지시가 없었다는 말은 거짓이다. 우리 가족은 무장공비에게 죽었고, 나는 제주 4·3 사건을 직접 겪은 산증인이다”며 “하늘에 두고 맹세한다”고 강력 주장했다.
  
  이어 그는 “남로당 공비들이 어머니와 18살된 누나를 산으로 끌고 가서 죽였어요. 그리고 나도 5·10 선거에 반대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공비들의 협박에 이끌려 산에 올라가서 4일 동안 지냈으며, 인공기를 걸고 적기가를 불렀고, 공포 속에 인민재판도 지켜봐야 했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한숨을 쉬었다.
  
  김 부회장은 특히 “우리동네 사람들 가운데 60명이 희생자 가족으로 돼 있다. 남로당 활동을 한 사람을 희생자로 선정해서는 안 되는데도 6명이나 희생자 가족으로 돼 있다”며 “현재 4·3사건 희생자 선정은 잘못돼 있다. 순수 희생자들과 불순한 사람들을 가려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지금 방금 (우근민)도지사와 면담하고 왔다”며 도지사와 나눈 얘기를 소개했다. 그는 “내가 ‘진상은 사실대로 규명돼야 하고, 희생자에 살인자가 포함돼서는 안 된다. 그 후에(진상을 정확히 규명한 뒤)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자 도지사는 ‘양측으로 억울하게 된 사람이 있어서 안타깝게 생각한다. 진작에 항의도 있어야 했는데 조금 늦은 감이 있다. 김정일이 제주도를 방문한다면 사과하라고 하겠다. 북한에 갔더니 (4·3무장폭동의 초대 주동자였던) 김달산·이덕구의 영웅열사묘가 있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김 부회장의 ‘대통령 사과는 아직 이르다’는 발언은 정부가 제주4·3사건을 정부차원에서 사과하는 문제를 검토키로 한데 모든 4·3관련 희생자 가족들이 환영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그는 “4·3사건 피해자 수로 봤을 때 다수가 군·경의 진압으로 희생됐다. 그래서 정부의 사과를 원하는 측이 많긴 하지만 공비들에 의해 희생된 유가족들 중 순수한 희생자들은 대통령의 사과는 아직 이르며, 사실 그대로 진상이 규명된 후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전체 피해자 가운데 100명중 15명은 대통령의 사과보다 철저한 진상규명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4·3사건 진상조사 및 명예회복위원회’한광덕 위원은 4·3사건 당시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 “당시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군의 비호 하에 남쪽까지도 공산화 통일하려는 술수를 썼고 남로당의 박헌영은 남한을 공산화하여 북쪽과 통일한다는 기도를 갖고 김일성과의 협조적 경쟁이 진행 중에 있었다”며 “남로당은 대한민국이 건국되면 입지를 상실하기에 제헌국회의원 선거를 막아내고자 1948년의 4·3폭동으로 제주도를 무력으로 장악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오늘날 남북의 화해협력이 시도되는 분위기 하에서 4·3사건의 배후와 책임소재에 대한 규명과 언급자체가 냉전적 사고로 몰리고 있다”면서 “4·3사건에서 희생을 당한 무고한 양민의 후손들과는 아픔을 같이하며 국가로부터 최대의 혜택이 있어야 하지만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반대했거나 제주도를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공산기지로 만들려던 남로당 제주도당의 면당 위원장급 이상의 간부들과 리당이나 직장단위의 세포위원장들 그리고 군경에 대항했던 무장유격대의 분대장급 이상 간부들에 대해서까지 무조건 너그러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의 마지막 발제자였던 강창일 제주 4·3연구소장은 “‘4·3’이라는 역사기호에는 생존권 수호를 위한 방어적 저항운동으로서의 의미와 반민주·반통일 세력에 의한 반인륜적 양민학살 사건이라는 두 가지 뜻이 함의돼 있다”고 밝힌 뒤 “제주인은 전쟁과 폭력, 억압과 살상을 거부하면서 과거의 불행과 고통을 평화의 패러다임으로 승화시켜 가고 있으나 보수의 탈을 쓴 수구세력들은 반인륜적 범죄행위가 드러날까 하여 4·3을 타깃으로 삼아 집요하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사업을 훼방놓으면서 잘못된 과거로 돌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강 소장은 또 “50년 전 사건인데 왜 이렇게 인색하냐”고 반문한 뒤 “진상규명해서 ‘빨갱이’누명을 벗기고자 하는 것인데, 50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인데 왜 이렇게 인색하냐”고 감성적으로 호소했다. 이어 그는 “역사 바로 잡기 힘들다”고 아쉬워하며 “진상조사 보고서가 통과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부회장은 “강창일씨는 희생자 가족도 아니고, 4·3사건을 겪은 사람도 아니다”면서 “강씨는 4·3사건을 공권력에 의한 양민학살로 보는 경향이 커서 직접 4·3을 겪은 사람으로서 ‘너무 편향된 시각이 아니냐’고 지적하는 등 토론 석상에서 의견충돌로 그와 몇 번 다툰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민국건국희생자제주도유족회(회장 오형인)는 3월 20일 청와대에 보낸 ‘대통령님께 드리는 글’을 통해 제주도의회와 일부 4·3 단체 등에서 제55 주기 4·3 위령제에 대통령의 참석과 정부사과 주장에 대해 “이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완전 부정하며 4·3 사건을 민중항쟁으로 유도하려는 불순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고, 우리는 이를 결사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 이 단체는 “4·3 사건 당시 군·경의 과잉진압으로 무고한 양민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했고, 이들은 마땅히 명예회복이 돼야 하지만 4·3 사건 발생원인을 제공, 국가공공 시설 방화 및 우익인사들을 학살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남로당 핵심간부 및 무장공비들의 지휘자 등은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 21일 ‘4·3사건 진상조사 및 명예회복위원회’는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안을 심의 의결하려 했으나 보고서의 편향적 시각이 문제화되면서 29일로 의결이 미뤄져 보고서안 통과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4·3사건 당시 아버지가 공비에게 살해당하고, 자신은 공비들과 함께 생활한 적 있다는 오균택씨는 “인공기를 앞세우고 인민 항쟁가를 부르며 총칼을 들어 공공 기관을 습격하여 살인과 방화를 한 자들이 명예회복이라니요. 5·10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민가를 습격하고 남여노소 구분 없이 무참하게 살인·방화·약탈한 자가 명예회복이라니요”라며 “군인 경찰이 살해한 내용은 상세히 기술하고, 공비(인민해방군)가 선량한 양민 1,700여명이나 살해하였는데 왜 진상보고서에는 명기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밝혀주세요”라고 말했다.
  
  제주 4·3사건의 원인제공자인 남로당의 주도 세력과 무장 반란을 획책한 인민해방군 사령관 김달삼과 이덕구의 실질적인 행적이 보고서에 누락 되어서야 누가 진상이라고 믿을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4·3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는 4·3의 진실이 왜곡되지 않도록 바로 잡아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혜원 기자 hwlee@independen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