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방에서 퍼옵니다.
  
  1.
  오늘 여기에 쓰는 글은 몇 년 전에 만난 이라크 민주화 운동가들과 나눴던 이야기 그리고 이라크 민주화 운동 관련 사이트들을 참고했음을 먼저 말씀 드립니다.
  
  2.
  제가 그들을 처음 만난 건 한 4년전 쯤인 스위스 제네바의 인권위원회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도 한번 더 만나 이라크의 현실과 이라크 민주화의 경로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라크를 탈출해 해외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3.
  어떤 사람들은 후세인 독재를 우리 나라의 과거 독재와 비유하는 사람들이 있는 데
  후세인에 비하면 박정희나 전두환은 천사입니다. 후세인 치하에서 민주화 운동을 한다는 것은 자기 외에 자기의 가족, 친척, 가까운 친구까지 처형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 조건이었기 때문에 이라크 내부에 어떤 대중적인 민주화 운동이 형성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4.
  후세인 집권 기간 중에 약 400백만이 이라크를 탈출했다고 합니다. (이건 해외에서 잡은 통계이기에 꽤 정확할 것입니다.) 아마 그들과 연관이 있는 가족이나 친척들은
  후세인의 정보원들에 의해 끊임없이 감시받고 핍박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유엔이 식량을 구입하는 조건으로 석유 수출을 허용하는 oil for food 프로그램을 후세인에게 제안했지만 후세인은 이를 조건부라고 거절했습니다. 그 여파로 92~96년 사이에 죽어간 이라크의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200만 정도가 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 외에 화학 무기로 학살당한 5000명을 포함하여 십만이 넘는 쿠르드족이 학살당했습니다. 91년 남부 지역에서는 반후세인 봉기 참가자 18만 정도가 학살당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광주의 아픔이 있기에 그 학살 당한 가족들이 후세인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을지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권 단체들의 이라크 인권 보고서를 보면 한결같이 후세인의 잔학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기 한 달전에도 후세인을 비난해서 붙잡힌 한 사람이 '혀가 잘리고 사지가 잘려 피가 줄줄 흐르는 채'로 공개 처형당했습니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말입니다.인권 단체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라크에서 이런 처형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5.
  이런 이라크 상황에서 이라크 민중의 후세인으로부터의 해방과 민주화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우리는 80년대 말로만 무장봉기를 이야기했지만 정말 이라크는 무장봉기만이 이라크 민주화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무장 봉기해서 후세인을 축출할 정도가 되려면 이라크 정규군의 일부도 포섭해야 하는 그런 어려운 싸움일 수 밖에 없습니다. 즉, 내전이 일어나는 것이죠. 내전을 통하지 않으면 이라크 민중의 해방과 민주화는 요원하다는 것이지요.
  내전은 어마어마한 사람들의 인명 피해를 가져옵니다. 수십만, 아니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어갈수도 있겠죠. 더구나 이라크처럼 종교, 인종 갈등이 있는 곳에는 민주화를 위한 내전을 시작한다고 해도 그 내전의 성격이 종교, 인종 갈등과 겹쳐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수도 있겠죠. (르완다나 코소보 등의 내전을 보면 그 참상이 얼마나 심각할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6.
  모두들 이야기하는 것처럼 미국이 이라크 민주화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라크 민주화 운동하는 사람들도 그건 잘 압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이라크 민주화는 자기 자신들이 이루어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특히 이라크처럼 국민들의 일반 교양 수준이 낮고 종교적 색채가 강한 곳에서 민주주의와 시민 사회가 뿌리 내리는 것이 한국과 같은 사회보다도 훨씬 힘이 든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대신 그들이 지금 상황에서 미국에게 원하는 것은 후세인만 제대로 축출해 달라는 것입니다. 후세인만 제대로 축출하고 그 잔당들의 무력적인 반혁명만 막아주면 그 다음 상황은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다는 겁니다. (저는 이 문제에서 그들과는 생각이 다릅니다. 저는 후세인 축출 후 이라크를 바로 이라크인들의 자치에 맡기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그들과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후세인을 축출한다는 것은 얼마나 오랜 기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고 혹 후세인 축출 내전을 벌인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살상될 인명이 수백만을 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미국이 벌이고 있는 후세인 축출 전쟁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이 후세인에 대해 벌이고 있는 전쟁은 그들의 눈으로 볼 때는 훨씬 작은 희생으로 훨씬 신속하게 후세인 체제를 무너뜨려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7.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이 현 이라크 전쟁을 통해 건물이 파괴되고 민간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미국에 대해 적개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라크 민중들 다수도 그렇게 느끼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완전한 오판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감정은 이라크의 현실이 한국과 비슷할 것이라는 아주 잘못된 가정에 기초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라크는 한국과 같이 그런 평화로운 나라가 아니라는 겁니다. 수백만이 탈출하고 수백만이 먹을 것이 없어서, 의약품이 없어서 죽어 나가고 수십만의 민간인이 후세인에 반대했다고 학살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이라크입니다.
  이런 사회가 과연 평화로운 사회일까요? 요즘은 전쟁이 나더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지는 않습니다. 후세인 집권 20여년간은 그야말로 전쟁 그 자체 였던것입니다. (후세인 집권 이전 이라크는 포르투칼 보다 잘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 이라크가 지금은 세계의 최빈국으로 떨어졌습니다.)
  후세인을 피해 이라크를 탈출한 수 많은 이라크 망명자들, 그리고 후세인에 의해 자기 가족이 희생당한 수많은 이라크 민중들의 두 눈엔 지금 '미국의 후세인 때리기'가
  이라크 현실을 직접 겪어 보지 않은 한국인들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