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걸프전쟁의 끝이 가까워진 것 같다. 미영 연합군이 바그다드 중심부까지 진입했으며, 바그다드 중심가에 있는 사담 후세인의 동상이 철거되면서 사실상 이라크는 지난 20년이 넘도록 계속된 독재정권의 마수에서 해방을 맞게 되었다. 철거된 후세인의 동상을 짓밟으며 환호하는 바그다드 시민들의 모습은 독재와 대외침략으로 점철된 부도덕한 정권의 최후가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여주는 것이며, 사필귀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제 제2차 걸프전쟁 이후 본격화될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어제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 핵개발 문제에 대한 첫 번째 논의가 시작되었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오늘이 바로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지 3개월째 되는 날이며, 이제 북한은 아무 제약없이 핵무장에 나설 수 있는 입장이 되는 셈이다. 북한 핵위기는 그동안 유보되었을 뿐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며, 북한의 의지여하에 따라 언제든지 우리가 미처 준비를 갖추기 전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미영 연합군과 이라크 사이의 전쟁이 발발했을 초기부터 한국은 대이라크 파병문제와 더불어 이라크에서의 전쟁이 끝나면 본격화될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 등 주변국과의 논의를 지속해왔다. 지난 3월 29일 워싱턴에서 열린 외무장관 회담에서 한미 양국은 남북한과 주변 이해관련국들이 참여하는 다자간대화의 틀 속에서 평화적 해결이란 원칙을 공식천명했으며, 이후 일본 등 다른 주변 우방국들과도 이 점을 확인했다.
  
  미국 내에서도 그동안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우선순위가 밀려있었던 북한 핵위기에 대한 대응책 논의가 점차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을 ‘이라크 다음 목표’로 삼아 군사력을 동원한 강경책을 앞세울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와는 달리 일단 미국은 외교적 수단을 우선 앞세울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라크와의 전쟁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이며, 종전 후에도 단기간에 북한과 상대하기 위한 대규모의 군사력을 동원하기에는 아무리 초강대국일지라도 어려운 입장이다. 또한 이라크와의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UN 등 국제사회의 중론을 무시했다는 비난을 무마시키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외교 등 평화적 수단에 우선순위를 둘 가능성이 더욱 높다. 지난 한미 외무장관 회담에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한국의 윤영관 외교부장관과 함께 이 점을 확인했으며, 최근에는 부시 행정부 내에서도 대표적인 강성론자로 알려진 폴 월포비츠 국방성 부장관조차 “테러 지원국들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는 문제는 반드시 대처해야 할 현안이지만, 여건과 상황에 따라 나라별로 달리 해결해야 한다. 북한은 이라크 사태와 대단히 다르다”라고 언급하는 등 미국이 이라크와는 달리 아직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북한의 최근 태도들은 매우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제2차 걸프전쟁 개전 이후 이미 예정되어있던 남북한 당국간 경협 및 해운협력 관련 회담과 제10차 장관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하는 등 대화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관영매체를 통해 제2차 걸프전쟁에서의 후세인 정권 패퇴가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양보와 타협은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짓밟히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선군정치와 막강한 군사력은 공화국의 자주권 뿐 아니라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위력한 담보”라는 입장을 고집했다. 북한은 이전부터 유엔 안보리를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의 모든 결정과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할 것이라고 공언해왔으며, 이러한 입장 역시 계속되고 있다. 정말 안타깝게도 북한 전체주의 정권은 지금 바그다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으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북한 핵위기를 비롯하여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상 위협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시간적 여유는 아직 남아있다. 하지만 그러한 기회는 결코 무한정 남아있지 않다. 이번 제2차 걸프전쟁은 ‘독재체제와 대외침략 그리고 대량살상무기의 개발, 보유를 통해 주변국가와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정권은 필연적으로 파멸하고야 만다’는 명백한 교훈을 보여준다. 만일 북한 전체주의 정권이 이러한 교훈을 망각한 채 한반도 장악이라는 시대착오적 망상에 사로잡혀 한국에 대한 적대노선과 군사적 위협을 지속한다면, 그들 역시 후세인 정권의 뒤를 따라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그 누구도 수많은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동북아시아 전반에 걸친 군비경쟁의 악화를 초래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무장과 한국에 대한 적대노선을 원치 않는다.
  
  벌써부터 북한이 이라크 다음 차례가 될 것이라는 말이 거론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전적으로 북한 전체주의 정권의 선택에 달려있다. 만일 북한이 진정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가와의 평화공존을 위해 믿을 수 있는 실천에 나선다면, 한국과 국제사회는 기꺼이 북한의 생존과 재건을 위해 나설 준비가 되어있다. 아직 북한의 자발적인 변화 가능성을 믿는 국가들이 있고 자발적 변화에 의한 해결의 기회가 남아있는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오늘 바그다드에서 일어난 일이 머지않아 평양에서도 나타날 것임을 북한 전체주의 정권은 명심해야 한다.
  
  
  
  2003. 4. 10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