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에서 취재지침이 발동한 이후 최초로 정부기관에 전화 할 일이 생겼다. 모 부처로 전화하여 담당자에게 '이러저러한 건으로 취재를 하고 있는데 몇 가지만 묻고 싶다'고 말했다.
  
  담당자의 첫마디는 '공보관에게 허락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문광부 지침이 다른 부처에도 적용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몇 가지 수치만 확인하면 된다. 대단한 사안이 아니다. 그런 것까지 공보관을 거쳐야 하느냐'고 하자 모과장은 '어쨌든 법칙이 그러니 공보관에게 허락을 받으라'고 말했다.
  
  그 부처의 비밀을 캐려는 것도 아니고, 이미 그 부처에서 공표한 사실에 대해 몇가지 부가적인 설명을 듣자는 건데, 그런 것까지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불합리하게 생각됐다. 담당자에게 다시 '이미 보도된 내용인데, 몇 가지만 확인해주시죠'라고 말했다. 그러자 담당자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답변을 해주었다.
  
  그래서 일단 취재를 하긴 했는데, 은근히 화가 났다. 예전 같으면 자신의 부서에 관심을 가져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을 것이다. 나는 도와주어 감사하다며, 서로 좋은 얘기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둘 다 마치 뒤에서 남을 씹기라도 하듯 찜찜하게 얘기를 나누어야 했다.
  
  대충 얘기를 끝낸 뒤 '기사에 이름 넣어도 되죠?'라고 물었더니, 담당자는 '안되는데... 그럼 공보관에게 허락받으세요'라고 말했다. 내가 '이미 인터뷰 다 끝냈는데요 뭘'이라고 하자 담당자는 '그러면 안되는데...'라며 계속을 마음을 못놓았다. '알았어요. 허락받을게요'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예전에는 공무원들이 자신의 판단 하에 '이름을 넣으라, 부서명만 쓰라'는 등의 얘기를 자신있게 했다.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나중에 담당자가 문책을 받으면 안되겠기에 공보실로 전화를 했더니 계속 통화 중이었다. 그냥 '모부처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이라고 쓸까하다가 익명도 문제삼고 있으니, 이름을 정확히 밝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전화를 시도하여 공보관과 연결이 되었다.
  
  내가 '이런 사안 때문에 간단한 인터뷰를 했으면 한다'고 하자 공보관은 약간 한심스럽다는 듯한 말투로 '하~ 그냥 하세요. 공보관에게 얘기했다고 하시고...'라고 말했다. 대단한 사안이 아닌 것까지 공보실을 거쳐야 하는 새로운 시스템이 못마땅한 건지, 대수롭지 않은 일에 자신이 간여해야 한다는 사소함에 화가 나는지, 뭔가 열 받는 일이 있는지, 하여간 기분이 좋지 않은 듯 했다.
  
  비효율이 뭔가를 생각해야 한다. 중대 사안이라면 모를까, 몇 가지 수치를 알아보는 것까지 공보실을 거쳐야한다면, 그거야말로 공무원의 업무를 방해하는 거다.
  
  예전에는 담당자 선에서 대답해줄 수 있는 사안은 그 자리에서 즉각 답변을 해주고, 윗사람과 논의해야 할 사안이면 그쪽에서 나중에 전화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기자에게 직접 공보실로 전화하여 허락받으라고 하기보다, 내부에서 공보관에게 허락받을 사안이면, 허락을 받은 뒤 통보하는 식이었다. 그러면 기자도 기분나쁘지 않고, 담당자는 공연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공보관은 그 부처의 홍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갑자기 기자들의 취재를 검열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홍보를 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평소 이래서 안 된다고 거절했던 사람이 보도자료를 보내 보도를 요청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부에서 취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담당자가 이러저러하여 취재가 곤란하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좋은 거절방법 아닐까? 공보관이 사사건건 나서서 취재 여부를 판정하고, 취재 거절이라는 악역을 담당한다면, 정작 홍보를 해야할 때는 담당부서에서 각개전투로 나설 것인가?
  
  어쨌든 나의 인터뷰 요청으로 인해 세 사람 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담당자는 죄짓는 것도 아닌데 괜히 노심초사해야했다. 게다가 작은 일도 자기 마음대로 못한다는 데 따른 자기 열패감이 들었을 것이다. 공보관은 사소한 건까지 개입하느라, 정작 해야할 일을 방해받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검열이나 진배없는 새로운 역할과 홍보를 해야 하는 본연의 입장 사이에서 혼란을 느꼈을 게 분명하다.
  
  나는 담당직원에게 몇 가지 확인만 하면 되는 사안까지 일일이 허락 받아야 하는 한심한 나라에 사는 일로 잠시 짜증이 났다. 결재에도 과장 전결, 부장전결 등 아래 사람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있다. 대단찮은 것까지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하다니, 규제를 없애고 결재라인을 줄여 효율성을 높여야할 시대에 웬 뒷걸음질인지... 무엇보다도 서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 같은 분위기와, 서로를 감시하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뒷맛이 영 개운치 않았다. 하여간 자연스럽던 일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것, 그건 분명 발전이 아니다.
  
  이근미/프리랜서
  www.rootlee.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