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大中 대통령이 낙관하는 사이 金正日은 美國과 직거래의 길을 텄다!
  
  파격적인 出迎
  
  북한의 실질적인 통치기구인 국방위원회의 제1부위원장이자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인 조명
  록 次帥(차수)가 5일간의 미국방문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지난 10월13일 평양으로 개선했다.
  그의 이번 임무가 金正日(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였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조선
  중앙방송 보도에 의하면, 10월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그의 일행에 대한 출영 모습은 파격
  적이었다.
  
  중앙방송은 명목적이기는 하지만 헌법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원수인 김영남 최고
  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필두로 김영춘 국방위원회 위원 겸 인민군 총참모장(차수),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김양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장, 김계관 외
  무성 부상, 王國章 駐북한 중국대사가 공항에서 조명록 일행을 맞이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파격적인 공항출영 모습은 북한 권력구조內 조명록의 위치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보다는 조명록의 미국 방문 활동 내용과 결과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만족도를 보여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조명록의 미국 방문은 지난 6월 金大中(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에 이어 金正日 국
  방위원장의 북한이 연출해 낸 또 하나의 「깜짝쇼」였다. 金正日이 그의 對美(대미) 특사로
  현역군인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 자체가 「깜짝쇼」의 훌륭한 소재였다. 현역군인인 조명록
  의 미국 방문은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가 가지고 있는 「未知(미지)의 나라」 북한에 대한
  「호기심」에도 절묘하게 영합하는 것이었다.
  
  1994년 金日成(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미국의 朝野(조야)가 지녀 온 궁금증 가운데 하나
  는 이른바 「先軍政治(선군정치)」를 표방하는 金正日 치하의 북한 권력구조 안에서 金正日
  과 軍 사이의 함수관계는 어떠한 것이냐는 것이었다. 즉, 「金正日의 군」이냐, 아니면 「군
  의 꼭두각시 金正日」이냐는 의문이었다. 미국 조야에서는 조명록의 이번 미국 방문은 이
  같은 의문에 대한 해답의 열쇠를 주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없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군복 정장」 차림의 조명록의 백악관 방문과 클린턴 대통령과의 대좌는 또다른 「깜짝
  쇼」의 소재였다. 당연히 이 파격적인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왜 하필
  이면 군복 차림이냐』는 것이었고 또 『그 의미는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이 있
  는 것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조명록의 백악관 방문 시각보다 半日(반일) 앞서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서는 북측이 지명하여 고려항공 특별기를 김포로 보내 모셔간 남측 인사 42명
  이 참관하는 가운데 「조선로동당 창건이래 최대 규모」라고 보도된 당 창건 55주년 군중행
  사가 거행되었다.
  
  비록 군사장비는 동원하지 않았지만 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당총비서」와 「인민군총사령
  관」의 자격으로 직접 참석한 이날의 행사는 평양시민들의 군중시위와 함께 인민군과 인민
  경비대 장병들, 노농적위대 및 붉은청년 근위대 병력이 참가한 열병식을 겸한 것이었다. 누
  가 보아도 이 행사는 단순한 군중행사가 아니라 「무력시위」의 성격을 아울러 띠고 있었
  다.
  
  벼랑끝 외교-공갈 외교 패턴
  
  『왜 현역군인가?』 『왜 조명록이었는가?』하는 의문에 대해서는 이번 조명록의 미국 방
  문이 종료된 시점에서도 명쾌한 해답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 논자에 따라서는 金正日의 이
  번 선택은 북한이 체제수호의 「생명선」으로 고수하는 「주체성」의 과시라는 견해가 제시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견해도 제시되고 있다. 즉, 이들은 최근 수년간 북한 對美외교의 특징
  이 핵 및 미사일 개발 「위협」을 등에 업은 「벼랑끝 외교(Brinkmanship)」라는 이름의
  「공갈 외교」였음을 지적하면서 이번의 「현역군인 조명록」의 특사 선택과 조명록의 「군
  복차림 백악관 방문」은 모두 북한의 「벼랑끝 외교」에 지레 겁을 먹는 미국에 대한 전형
  적인 「공갈 외교」의 한 행태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美北은 조명록의 미국 방문 종료에 즈음하여 장문의 「공동 커뮤니케」를 발표했다. 북한과
  의 관계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이번 「공동 커뮤니케」 발표의 경우에도 상
  궤를 벗어나는 파격성이 눈에 띄었다. 첫째로, 「공동 커뮤니케」의 발표시각이었다.
  「공동 커뮤니케」라면 발표시각도 「동시발표」가 상식이다. 그러나 이번의 「공동커뮤니
  케」는 북한이 10월12일 오후 5시(한국시간) 평양에서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 및 조선중
  앙텔레비전을 통해 「한글판」을 발표했고 워싱턴에서는 「영문판」이 그로부터 몇 시간이
  경과한 뒤에 따로 발표되었다.
  과거에 자주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한글판」과 「영문판」 사이에는 경우에 따라서는
  해석상의 차이와 이로 인한 혼선을 초래할 수 있는 용어와 표현의 차이가 몇 군데 목격되기
  도 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조명록의 미국 방문 결과는 한반도 문제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이 잘 진행되기만 하면 분단 이후 55년의 오랜 세월이 경과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아직도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냉전구조 타개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는 긍정적 가능성의 씨앗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왜냐 하면, 이번 조명록의 미국 방문 결과로 만들어진
  美北 「공동커뮤니케」는 보기에 따라서는 남북한간의 관계는 물론 남북한과 한반도 유관국
  가간의 관계가 현실화되고 정상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
  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우선 이번 조명록의 미국 방문에 앞서서 북한이 보여준 일련의 내외 동정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지적되어야 할 점은 지난 6월에 있었던 金大中 대통령
  의 평양방문과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그리고 이에 의거하여 남북간에 진행되어 온 장관
  급, 국방장관, 적십자 및 經協(경협)실무자 회담 등 몇 다양한 회담과 이산가족 상호방문, 관
  광단 교환 및 남측 언론사 사장단의 訪北(방북) 등 최근의 남북관계의 흐름이다.
  
  이와 아울러 북한은 전례 없이 활발한 對外활동을 전개해 왔다. 5월에 있었던 金正日의 중
  국 방문, 7월에 있었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그것이고 앞으로 클린턴 미국 대
  통령과 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이 예정되어 있으며, 金正日의 모스크바 및 서울
  방문 역시 예정되어 있고 日北(일북) 수교회담 일정이 잡혀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최근 이탈리아·호주는 물론 EU 국가들을 상대로 맹렬한 수교공세를
  펼치고 있다. 심지어 조명록의 미국 방문의 와중에서 일부 언론에서는 가까운 장래에 남북
  한과 미국 및 중국 頂上(정상)들이 참가하는 한반도 4개국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점
  치고 있기도 하다.
  
  낙관론자들의 입장에서는 이같은 최근의 상황전개는 金正日이 정점을 이루는 북한의 지도부
  가 한반도 내외의 객관적 현실을 수용하고 그 바탕 위에서 개혁과 개방을 수용하는 방향으
  로 정책전환을 시도하는 것을 말해 주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이제 북한은 남북간 평화공존을 수용하고, 미국·일본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을
  상대로 남한과의 교차수교를 수용하기로 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개혁과 개방을 수용함
  으로써 외부로부터의 수혈을 통해 당면한 경제위기를 탈출하려 한다는 것이다. 만약, 북한의
  현 지도부가 실제로 그러한 방향으로 정책전환을 추진하고 있고 이번 조명록의 訪美를 포함
  한 일련의 움직임이 그 같은 정책전환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환영해야 할 사
  태 진전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經南到美 정책
  
  그런데, 사실은, 이번 조명록의 미국 방문 결과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것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격언처럼 북한의 길은 모두가 미국으로 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6월에 있었던 남북 頂上회담과 이 회담을 계기로 펼쳐진 일련의 남북
  관계의 진전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기보다는, 이를 미국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북한이 구사한 전술이 「通美封南(통미봉남)」이었다면 이번에 북한이 채택한 전술은
  「經南到美(경남도미)」인 것이다. 북의 전술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북의 經
  南到美 전술은 북한을 미국으로 인도할 뿐 아니라 또 미국을 경유하여 일본으로 인도하고,
  궁극적으로는 이 같은 관계형성의 과정에서, 그리고 그 결과로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을 최
  종적으로 남한에 부담시킨다는 의미에서 미국과 일본을 경유하여 남한으로 돌아오는 路程
  (노정)을 개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북의 전략이 여전히 보다 큰 틀의 「統一戰線(통일전선)」 전술에 안주하여 남
  한을 통하여 미국을 공략하고, 미국을 통하여 일본을 공략하고, 그리고 다시 미국과 일본을
  경유하여 남한을 공략하는 전형적 「上層(상층) 통일전선」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고 보아서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이같은 가능성은 美北 공동 커뮤니케 가운데 한반도의 안보문제에 관한 합의내용을 보면 명
  료하게 부각된다. 공동 커뮤니케는 美北 쌍방이 「한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1953년
  의 정전협정을 평화보장 체계로 바꾸어 한국전쟁을 공식 종식시키는 데서 4者회담 등 여러
  가지 방도들이 있다는 데 대하여 견해를 같이 했다」고 밝히고 있다.
  
  바로 이 대목과 관련하여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위험할 정도로 안이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
  다. 즉, 북한이 소위 「평화보장 체계」 문제를 논의하는 장소에 관하여 「4者회담 등 여러
  가지 방도들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이 문제처리에 있어서 남한을 배제할 뜻이 없다는 융통
  성을 보여주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이 이 같이 보는 논거는 「4者회담」은 남북한과 미국
  및 중국이 참가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평화보장체계」가 논의될 경우에는 남한의 참가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체결문제와 관
  련하여 기존 「4者회담」의 틀을 약간 비틀어 「남북한이 체결하고 미국과 중국이 보증하
  는」 형태의 변형된 「4者회담」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의 생각에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북한의 진의를 멋대로 해
  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美北 공동 커뮤니케에서 사용하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것은 「평화보장 체계」라는 단어이다. 북한이 말하는 「평화보장
  체계」는 『남한을 배제한 가운데 美北간에 상호 「적대관계」와 「교전상태」를 해소하는
  쌍무적인 「평화조약」을 체결하여 이로써 1953년의 정전협정을 대체하고 이 「美北 평화협
  정」의 테두리 안에서 주한미군 문제를 처리하자』는 것이다.
  
  美北이 主가 되는 4者회담?
  
  북한은 이같은 소위 「평화보장 체계」 주장에 대한 韓美 양국의 확고한 반대에 직면하자
  1995년부터는 「과도적 조치」로 이른바 「평화보장 조치」라는 것을 들고 나왔다. 「평화
  보장 조치」란 美北간의 쌍무적 「평화협정」 체결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 문제는
  잠시 덮어두되 그 대신 기존 「군사정전위원회」는 해체하고 그 대신 미군과 북한군이 각기
  「판문점 군사대표부」를 설치하고 이 두 「대표부」간에 「군사회담」을 상설기구화하여
  비무장지대를 관리하고, 현존 정전협정에서 필요하다고 쌍방이 인정하는 조항의 이행을 담
  당하게 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美北간에 쌍무적으로 하자는 것이지만 최근에 와서 북한은 남한측이
  「미군의 일부」로 참여하는 것은 용인할 수 있다는 정도의 융통성을 보여왔었다. 그리고,
  북한은 그들이 말하는 「평화보장 체계」의 테두리 안에서 美北간에 「평화협정」이 쌍무적
  으로 체결되면 그 후속조치로, 또는 그와 병행하여, 남북간에 「불가침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이번에 美北 공동 커뮤니케에 담겨진 이 문제에 관한 대목의 표
  현상의 심각한 문제점은 美北 양국이 쌍방이 합의한 표현으로 「평화보장 체계」라는 단어
  를 문면에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섭 과정에서 이 「단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놓고 쌍방간에 어떠한 밝혀지지 않은
  양해사항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단어」로 인하여 앞으로 이 합의의 구체화 과
  정에서 북한측이 『미국이 이 「단어」를 받아들인 이상 이 「단어」에 담겨진 의미도 이미
  받아들인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논거가 마련된 것이다.
  공동성명이 「4者회담」 문제를 언급하는 데 사용한 표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현행
  「4者회담」으로 못 박은 것이 아니라 「4者회담 등 여러 가지 방도」로 풀어쓰고 있다. 이
  것은 북한이 「4者회담」의 틀 속에서도 「미국과 북한이 主(주)가 되고 남한과 중국이 從
  (종)이 되는」 또다른 형태의 「변형 4者회담」을 주장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가 앞으로의 우리의 과제이다.
  
  駐韓美軍 無用論의 길을 열다
  
  그러나, 이 문제와 관련하여 보다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쌍방은 그 어느 정부도
  타방에 대하여 적대적 의사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앞으로 과거의 적대감에서 벗
  어난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공약을 확언했다」는 공동
  커뮤니케의 대목에 함축된 의미이다. 형식상, 이 대목은 1993년 6월11일부 「美北 공동성
  명」의 합의사항을 再확인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공동성명」에서 美北은 양국간 상호관계를 규제할 원칙으로 ① 핵무기를 포함하여 상
  호 무력 불사용 및 사용 불위협 보장 ② 전반적 안전조치의 공정한 적용과 각자 주권에 대
  한 상호 존중 및 상대방 내정문제에 대한 불간섭을 포함하여 非핵화된 한반도의 평화와 안
  전 보장 ③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지지 등에 합의했었다.
  그러나, 이 합의는 다분히 「미래지향적」 인 「외상거래」 합의였던 반면, 이번 공동커뮤니
  케의 합의 내용의 경우 「쌍방은 그 어느 정부도 타방에 대하여 적대적 의사를 가지지 않는
  다」는 것은 「이미 선언한 기정사실」로 표현하고 다만 「앞으로 과거의 적대감에서 벗어
  난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문제」를 미래지향형 과제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주한미군 문제가 당장 美北간의 「쌍무적 현안문제」로 대두되게 되었다. 그동안 주
  한미군 문제에 관한 韓美 양국의 「합의된 입장」은 주한미군 문제는 『韓美(한미)상호 방
  위조약에 근거를 둔 韓美 양국간의 문제로 美北간에 논의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의 美北 공동커뮤니케로 말미암아 이같은 韓美 양국의 종래의 입장을 더 이상
  유지하기가 곤란해졌다. 왜냐 하면 美北 쌍방이 상호 「적대敵 의사를 가지지 않기로」 합
  의한 이상 최소한 「북한을 가상적으로 하는 전쟁억지력 내지 교전세력」으로서 주한미군의
  임무와 기능과 역할은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韓美상호방위조약, 韓美행정협정 및 戰時지원협정과 같은 韓美 양
  국간의 조약·협정체제는 물론이고 韓美 연합사와 「작전계획 5027」 및 韓美 양국간의 각
  종 합동군사훈련들이다.
  
  멀리 갈 것이 없이 지난 9월12일자로 美 국방성이 美 의회에 제출한 「한반도 안보보고서」
  (2000 Report to Congress - Military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는 주한미군의 임
  무와 기능 및 역할이 「韓美연합작전세력의 일부로 북한군의 침략을 사전에 억지하고, 전쟁
  발발시 북한군을 격멸시키는 것」이라고 설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보고서는 보고의 시점(2000년 9월12일)에서도 북한군은 「병력과 장비, 그
  리고 화력 면에서 수적인 우세를 유지할 뿐 아니라 최소한의 준비만으로 강력한 공격을 가
  할 수 있는 거대하고도 강력한 지상군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긴장완화와 평화정책이 빠진 6·15선언
  
  이와 관련하여 정말 심각한 문제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 그 자체가 아니다. 보다 심각한 문
  제는 이번 공동 커뮤니케로 말미암아 앞으로는 주한미군 문제를 남한의 참여가 있거나 없거
  나 상관없이 美北간에 직접 논의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그렇다면 어떻게 미국이 이같은 내용을 美北 공동 커뮤
  니케에 담는 데 동의했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에도 북한이
  한반도 평화문제의 主당사자는 남북한이 아니라 美北 양측이라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바로 여기에 金大中 대통령이 이끄는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對
  北정책의 심각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 동안 현 정부는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한간에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문제에 관
  한 진지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허구를 국민들에게 심어주려고 애써 왔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달랐다. 지난 6월 평양行에 오르면서 金대통령은 『현 단계는 통일을 추구할
  시점이 아니다』라면서 평양에서는 金正日 국방위원장과 「분단관리」 문제, 특히 「긴장완
  화와 평화정착」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하겠다고 공언했었다.
  
  평양에서 「상봉」과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청와대에서는 남북간 논의의 주제가 4개 항
  목이라고 밝혔다. ① 화해와 통일 ②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③ 이산가족 ④ 교류와 협력이라
  는 것이었다. 그러나 6월15일 발표된 「남북공동선언」에는 큰 구멍이 뚫려져 있었다. 「긴
  장완화와 평화정착」 문제에 관한 논의가 있었던 흔적이 없었던 것이다. 추측컨대, 이 문제
  에 관해서는 남북 쌍방간에 입장과 견해의 차이가 너무 커서 쌍방이 발표용 문안에 어물어
  물 합의하는 데도 성공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이 문제는 6·15 남
  북공동선언의 아킬레스 근육이었고 정부는 그 뒤 열린 「장관급」 회담을 통해 이를 보완하
  기 위해 진력하기 시작했다.
  
  양곡 100만t 지원 조건으로 군사회담 합의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는 것은 7월29일부터 7월30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장관
  급」 회담시 남측 수석대표 朴在圭(박재규) 통일부장관에게 부과된 지상명령이 되었다. 그러
  나, 상대방인 북측 단장 全今珍(전금진)의 거부는 완강했다. 거부 이유는 「우리의 임무는
  6·15 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것인데 그 문제는 6·15 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이 아
  니기 때문에 이 회담에서 논의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것이었다.
  급해진 남측 朴수석대표는 30일의 평양출발을 하루 늦추면서 북측에 대한 설득을 계속했다.
  이에 대해 북측의 全단장이 『그 문제는 (金正日) 위원장 동지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입
  장으로 대응하자 朴수석대표는 金正日 위원장 방문 주선을 끈덕지게 조른 끝에 이날 밤 심
  야 기차로 지방에 체류중이던 金正日 위원장을 찾아가기에 이르렀다.
  
  朴수석대표는 金正日 위원장에게 제2차 「장관급」 회담 「공동보도문」에 어떠한 형태로든
  긴장완화 및 평화정착 문제에 관한 언급이 되도록 배려해 주도록 간청했고 그 뒤에 전개된
  상황은 이에 대해 金正日 위원장이 양곡 100만t의 지원과 교환조건으로 공동보도문 제2항을
  삽입하도록 배려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때 공동보도문에 삽입된 제2항의 문면은 「남
  과 북은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와 관련해 쌍방 군사당국자들
  이 회담을 조속한 시일 내에 가지도록 협의한다」는 것이었다.
  남측의 목표는 일단 어떻게 해서든지 「국방장관 회담」을 성사시키는 것이었다. 북한 노동
  당의 김용순 對南담당 비서가 9월11일부터 9월14일까지 서울을 방문했을 때도 쌍방 국방장
  관 회담은 남측의 최대 관심사의 하나였고 이 문제는 결국 「공동보도문」 제2항에 「쌍방
  은 남쪽 국방부장관과 북쪽 인민무력부장간의 회담을 개최하는 문제가 현재 논의중에 있는
  데 대하여 환영했다」는 표현을 삽입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같은 우여곡절 끝에 쌍방간에는 9월25일부터 26일까지 1박2일간의 「국방장관 회담」이
  제주도에서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이 회담은 9월26일 5개 항목의 「공동보도문」을 발표하
  고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렇게 어렵사리 열린 제1차 「국방장관 회담」이 열리기까지의 全
  과정을 통하여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북측은 남측의 끈질긴 간청에 못이기는 체, 그것도 추가 식량원조 약속의 대가로 「국방장
  관 회담」 개최에 호응하는 형식적인 양보는 했지만 내용면에서는 6·15 공동선언의 이행이
  라는 테두리를 고수, 한반도의 안보문제를 남북간에 논의하는 것은 완강하게 거부했다는 사
  실이다.
  
  9월25∼26일의 제1차 「국방장관 회담」에서 남측은 남북간 군사직통전화 가설과 군사훈련
  사전통보 등 초보적인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 문제 논의를 제의했다. 그러나 이것은 免避用
  (면피용)의, 제의를 위한 제의에 불과한 것이었다. 왜냐 하면 북측이 6·15 공동선언의 테두
  리 밖이라는 이유로 논의에 불응했기 때문이다. 북측은 오직 경의선 철도 연결과 도로 개설
  과 관련하여 지뢰제거와 작업협력 등 남북간 군사적 협력에 관한 사안에 국한하여 논의에
  응할 것을 고집했다.
  
  북측은 심지어 회담 끝에 「공동보도문」을 발표하는 데도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남측의 끈
  덕진 요구로 「공동보도문」은 발표되었고 그 제2항에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한반도에
  서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를 이룩하여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긴요한 문제라는 데
  이해를 같이 하고 공동으로 노력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내용을 담아냈다.
  그러나 이 항목의 북측 발표 내용은 남측의 그것과는 달랐다. 북측의 표현은 「조선반도에
  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를 이룩하여 전쟁의 위험을 완전히 없애
  는 것이 가장 긴요한 문제로 나선다는 데 대하여 리해를 같이 하고 공동으로 노력해 나가기
  로 하였다」는 것이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이 없어졌다」면 駐韓美軍 불필요
  
  여기서 북측이 첨가한 「완전히」라는 단어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의미의 차이는 정확한
  음미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한반도 평화문제에 관한 「主美從南(주미종남)」을 고수하는 북
  의 완고한 입장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북측은 이같은 입장을 이번의 美北 공동 커뮤니케에 담았다. 그것이 「평화보장 체
  계」와 「4者회담」에 관한 「언급」의 형태로 표현된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짚어보아
  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북측의 이같은 의도를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과거 「평화보장 체
  계」는 물론 「평화보장 조치」 논의를 단호하게 거부해 왔던 미국이 이번에는 어찌하여 이
  표현을 공동 커뮤니케에 담는 데 동의했느냐는 의문이다.
  
  이 문제는 아무래도 지난 6월15일 평양방문을 끝내고 서울에 귀환한 후 金大中 대통령이 거
  듭 반복하여 천명하고 있는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없다」는 발언과 함수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金대통령은 그동안 『金正日 위원장도 여기에 동의했기 때문에 이제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다』는 주장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金대통령의 이 발언은 심각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왜냐 하면 이 발언은 당연히
  주한미군 철수론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이하게도 아직 이같은 金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북측, 특히 金正日로부터는 달다 쓰다는 아무런 뒷말이 나오지 않고 있다. 시인도 부인
  도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의 정상간에 「전쟁을 않기로」 합의가 되었다면 이 문제는 一波萬波(일파만파)
  의 파급효과를 파생시킬 것이 뻔했다. 우선 「그렇다면 주한미군은 무엇 때문에 더 있느
  냐」는 논란이 일 것이 뻔했다. 그 다음은 우리의 적정 국방력을 어떻게 유지하느냐는 것이
  었다.
  
  그렇지 않아도 국방부는 2001년부터 그 동안 IMF 재정위기 때문에 연기에 연기를 거듭해
  온 몇 가지 주요 방위력 개선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예컨대, 차세대 전투기 사업
  인 소위 FX사업, 공중경보기(AWAC) 사업, 잠수함 사업, 이지스(AEGIS) 구축함 사업, 공격
  용 헬기 사업, 다연장포 사업 등이 그것들이다.
  
  反美에 대한 美國의 고차원 대응:「북한과 駐韓미군문제 논의할 수 있다」
  
  이들 사업에 대해서는 「전쟁이 없다면 軍費(군비)를 감축해야지 왜 증강하느냐」는 논란이
  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은 최근 우리 국방부의 전력증강 사업에 대한 시비를
  날이 갈수록 강화하고 있다. 아마도 어쩌면 이 문제는 조만간 남북간에 새로운 갈등의 불씨
  로 등장하여 우리 정부에 무언가 선택을 강요하게 될 기세마져 보여주고 있다.
  
  특히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대해서도 평양으로부터 귀환 후 金대통령이 그렇게도 힘을 들여
  서 『駐韓미군 문제에 대해서는 金正日 위원장도 계속, 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에도 있어야
  된다는 입장이었다』고 거듭 역설하고 있었지만 정작 金正日 위원장은 是도 非도 아닌 침묵
  으로 시종해 왔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단 한 번의 예외가 있었다. 金正日이 친북 在美언론인인 文明子(문명자)
  와의 「단독회견」에서 이 문제에 언급한 것이다. 그 내용은 『주한미군 문제는 나가라고
  한다고 바로 나가겠느냐? 이 문제는 미국이 스스로 알아서 통일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
  직여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통일에 도움이 되는 방향」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金正日이 문
  명자와의 회견이 있기 며칠 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논평에서 모범답안이 제시되었
  었다. 그것은 「미군이 남조선에서 철수하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가장 당혹감을 느낀 것은 미국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9월 한국을 방문한 윌리엄 코
  언 국방장관의 최대 관심사도 바로 이것이었다. 이 때문에 코언 장관은 訪韓(방한)기간 중,
  그리고 歸路 일본에 들렀을 때 북한군의 공격형 군사력이 감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증강되고
  있다고 경고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趙成台(조성태) 국방장관과의 회담석상에서 코언 장관은 휴전선 비무장지대 안에 20개 이상
  의 북한이 굴착한 남침 지하 터널이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사
  실을 지적하면서 「과연 서울로의 主攻路(주공로) 선상에서 지뢰를 제거하고 철도를 연결하
  고 도로를 개설해도 괜찮은 것이냐』고 진지하게 질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 남북관계의 양상은 미국으로 하여금 주한미군 문제가 남북한간에 논의되고 또
  한국 국내에서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反美감정의 풍랑 속에서 예상치 못했던 결정이 미국에
  강요되는 사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당연히 미국은 주한미군 지위 변경
  이나 철수문제에 관하여 미국이 밀리는 입장을 피하고 이 문제에 대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건의 조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번의 美北 공동 커뮤니케는 바로 이 같은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이제 미국은 주한미군
  문제에 관하여 한국과도 논의할 뿐 아니라 북한과도 논의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한 것이다.
  
  현금 아닌 「어음」 교환한 꼴
  
  10월12일 발표된 美北 공동 커뮤니케는 대체로 여덟 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즉 ① 양국
  간 적대관계 종식 문제 ② 한반도 전쟁상태의 평화상태로의 전환 문제 ③ 경제교류와 협력
  발전 문제 ④ 1994년10월21일자 제네바 기본합의문 이행 문제 ⑤ 북한의 미사일 개발 문제
  ⑥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문제 ⑦ 양국간 인도적 차원의 문제 ⑧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클린턴 대통령의 북한 방문 문제 등이다.
  그런데, 이번 공동 커뮤니케의 놀라운 점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 합의를 제외
  하고는 어느 주제에 관해서도 구체적인 합의가 없다는 점이다. 나머지 7개 항목의 주제에
  관한 합의는 하나 같이 「원론적」 차원에서 「노력한다」는 수준으로 상호 「현금」이 아
  니라 「어음」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조명록의 미국 도착을 앞두고, 그리고 미국체류 기간 중에도 언론에서는 몇 가지 「구체
  적」 합의의 대상을 거론했었다. 예컨대, 연락사무소 내지 외교대표부 상호 교환 설치 문제
  라든가 테러 지원국가 명단에서 북한을 제외시키는 문제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커뮤니케
  는 이러한 문제들마저도 「원론적」 차원에서 다루는 데 그치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번의 공동커뮤니케는 1993년 6월11일자 「美北 공동성명」과 거
  의 방불한 패턴으로 성사되었고 그렇게 볼 때 이 공동 커뮤니케는 이 역시 북한이 자랑해마
  지않는 소위 「벼랑끝 외교」의 또 하나의 「전리품」이라는 것이다.
  
  1993년 6월11일자 「美北 공동성명」은 그보다 석 달 전인 3월12일 북한이 일방적으로 선언
  한 「핵확산 금지조약(NPT)」 탈퇴선언으로 빚어진 사태를 수습하는 데 관한 美北간의 합
  의사항을 담은 것이었다. NPT 조약의 명문조항에 의거하여 회원국이 탈퇴를 선언하면 스스
  로 태도를 번복하지 않는 한 3개월 후에는 자동적으로 탈퇴가 발효되어 非회원이 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북한의 경우 6월12일을 넘기면 자동적으로 탈퇴가 발효하게 되어 있었다.
  非회원국에게는 당연히 NPT 조약상의 의무를 부과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이 NPT 非회원
  국이 되면 당연히 IAEA와 체결한 「핵안전조치협정(Safeguards Agreement)」 상의 의무도
  부과할 수 없었다. 이같은 사태에 당황한 미국은 美北 직접협상을 통하여 소위 「공동성
  명」에 합의하고 이를 시한 하루 전인 6월11일자로 발효시켰다.
  
  여기서 北의 양보는 NPT 탈퇴를 철회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기
  간 동안 NPT 탈퇴의 발효를 유보시킨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이같이 「NPT 회원인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일종의 「특수지위」를 유지하다가 1994년 10월21일자 「美北 기
  본합의문」에서 「NPT에 계속 잔류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이 문제를 없었던 일로 만들었
  었다.
  
  1999년 8월31일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라고 주장하지만 「대포동 1호」라는 북한이 자체
  개발한 準(준) 대륙간 탄도탄(ICBM)을 일본 북해도 너머 태평양으로 발사함으로써 발단을
  만들었다. 이미 가공할 만한 화학·생물전 무기 在庫(재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혹에 더하여 대륙간 탄도탄 개발 가능성에 가슴이 서늘해진 미국은
  그동안 북한과의 집요한 협상 끝에 1993년 6월11일자 「공동성명」에서와 사실상 똑같은 내
  용의 「양보」를 북한으로부터 받아 냈다.
  
  즉, 「미사일 문제에 관한 美北 협상이 계속되는 동안은 모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
  는다」는 것이다. 지금 2년째 계속되고 있는 美北 미사일 협상의 쟁점은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비용을 미국이 부담하라」는 것이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이 문제에 관하여 쉽사리 타
  결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왜냐 하면 미국은 이미 집행되고 있는 對北 중유 지원대금의
  상당부분, 식량 등 인도적 구호물자 대금, 그리고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 지원
  자금 이외에는 일체 자금부담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 合意는 멀고 먼 길
  
  따라서 이 협상은 부지하세월일 것이고 그동안은 「미사일의 발사 유보」라는 엉거주춤한
  상황이 무한정 지속될 것이 틀림없다.
  아마도 11월 말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하고 이어서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을 방
  문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도 1994년 10월21일자 「기본합의문」처럼 최종적으로 마무리될지
  도 모른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올브라이트 장관의 訪北에도 불구하고 美北간의 현안문제
  에 관하여 양국간에 구체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 내 訪北은 유산
  될 수도 있어 보인다.
  
  지금 우리 정부에서 對北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북한 지도부가 이미 개혁과 개방을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환상」을 유포시키면서 「經協」이라는 이름으로 밑 빠
  진 독에 물 퍼붓기 식의 對北 물량 공세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한 낭만주의적 낙관론에
  입각하여 이번 美北 공동커뮤니케의 의미도 부풀리려 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바로 그러한 논거에 입각하여 미국 정부를 상대로 북한을 하루 빨리 테러지원
  국 명단에서 제외시켜 달라는 사실상의 로비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테러지
  원국 명단에서 삭제되기만 하면 북한은 IMF나 세계은행 또는 아시아은행 등 국제 금융기구
  로부터 북한이 필요로 하는 개발자금을 획득하여 현재의 경제위기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가
  능할 것 같은 장밋빛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는 동떨어진 허구이다. IMF나 세계은행 또는 아시아은행과 같은 국제
  금융기구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으려면 거기에 필요한 자격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
  다도 먼저 북한은 「투명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즉, 북한사회를 「개방」하여 모든
  기초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앞으로 북한이 일본으로부터
  국교정상화에 따르는 「청구권」 성격의 거액 보상금을 받아서 경제개발 자금으로 이를 활
  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부시가 당선된다면…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 적정액의 조건 없는 자금은 몰라도 앞으로 국교정상화
  와 결부하여 북한에 제공할 자금의 주종은 공적 자금이 될 공산이 크다. 이 역시 어떠한 형
  태로든지 일본에 의한 사용관리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불가피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이 북한 체제의 변화이다. 과연 북한의 현 金正日 체제가 이같은 체제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번에 조명록의 미국 방문이라는 「깜짝쇼」가 과연 한반도 상황에 의미 있는 돌파구를 마
  련할 것이냐의 여부는 이달 중에 있을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북한방문이 이루어지고 이를
  통하여 클린턴 대통령이 다음 달에 평양을 방문할 수 있는 조건이 성숙될 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퇴임을 앞두고 있는 클린턴 대통령이 지난 6월 金大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순안공항과 평양시내에서 일사불란하게 펼쳐졌던, 동원군중에 의한 狂的(광적)인 매스 게임
  에 심취하여 그 자신도 이제는 지구상 다른 어느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체험을 하기로 결심할 가능성도 지워버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에 앞서 또 하나의 고비가 있다. 만약 11월 초의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
  하여 부시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는 여야 정권교체를 앞두고 퇴임하는 대통령의
  입장에서 차기 대통령의 對外정책 수립에 부담이 될 수 있는 행동에는 제약을 느낄 것이 틀
  림없다.
  
  그 동안 우리 정부와 국민 각자가 유념해야 할 일이 있다. 이번 조명록의 미국 방문이 몰고
  올 파장을 다각적으로 면밀하게 검토하여 국가와 민족 이익의 차원에서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 특히 앞으로도 한반도 안보상황에 관하여 전통적인 韓美 안보유대는 물론 韓美日 3각
  협력체제가 훼손됨이 없이 오히려 보다 효율적인 것이 되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으로 생
  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