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참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무 이파리처럼 젊고 싱싱한 얼굴들,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젊은이들이 무리를 지어 앉아 있다. 그들 중에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젊은이들도 있다.
  일단의 젊은이들이 앞으로 나와 가볍고 밝은 곡조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율동을 펼쳐 보인다. 곡조는 가볍지만 그들이 부르는 노래말의 내용은 칼날을 세운 듯 하다. 모두들 비장한 결의를 가슴에 품고 모인 자리지만 분위기는 대학축제마냥 즐겁다.
  이어 대표자가 단상에 서서 마이크를 잡는다. 그는 신념에 찬 단호한 목소리로 압제와 독재를 타도하자고 절규한다. 그의 선창에 따라 참가자들은 한 목소리 되어 구호를 외친다. 구호를 외칠 때마다 앞으로 힘차게 내뻗는 젊은 팔뚝들. 그들의 머리 위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진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수없이 보았던 운동권의 집회 광경이 꼭 그랬다.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자발적 의지를 가지고 모여든 그들의 열정,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젊은이들의 대오가 부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대학 시절 단 한번도 그들의 대오 속에 나를 던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조부모님과 부모님들이 이룬 반세기 동안의 성취와 내 조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면서, 김일성-김정일에게 추파를 던지는 무리들이었기 때문이다.
  '저 젊음, 저 열정으로 북한해방을 외치는 젊은이들의 대오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이 기자의 오랜 꿈 가운데 하나였다.
  
  금년들어 1월에는 구국기도회, 3월에는 3-1절 국민대회가 있었다. 서울시청 앞을 가득 메운 인파들 속에서 '드디어 이 땅의 우익들도 행동에 나섰다'는 감동에 젖기도 했지만, 늘 아쉬움이 남았다. 참석자들은 대개 50,60대 이상의 참전군인들, 교회여신도들이었고, 젊은이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전 4-19청년대회에서는 젊은이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는 했지만, 흡족한 수준은 아니었다. 젊은층을 견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부재도 아쉬웠다.
  
  그리고 오늘.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기자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젊은이들의 대오를 발견했다.
  '전국북한민주화대학생연대'와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주관하에 15개 참가단체가 공동주최한 '북핵 저지와 북한인권 실현을 위한 시민학생 결의대회'가 그것이다. 500여 명의 대학생과 시민들이 참석한 행사의 진행 양상은 대학가 운동권의 집회를 그대로 빼닮았다.
  하지만 그들이 소리높여 규탄하는 것은 美帝도, 군사독재도 아니었다. 그들은 핵개발을 추진하면서 민족의 생존과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인민의 적 김정일'을 타도하고,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는 정치범들을 비롯해 북한인민들을 구출할 것을 소리높여 외쳤다.
  상상해 보라!
  작년 6월 시청앞에서, 광화문에서 '대~한민국!'을 소리높여 외치던 그 또래의 젊은이들이 한 목소리되어 '타도! 김정일!'을 외치는 모습을!
  정권의 홍위병으로, 한총련으로, 김정일과 야합하면서 대한민국을 부인하는 또래들과 대척점에 서서 '북한 민주화'를 외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행사 중간에는 밝고 힘찬 곡조의 '북한민주화 진군가','태양가족','북한민주화운동가'등을 부르고, 김정일 모의 재판을 하는 등 '흥'을 고조시키기 위한 노력들도 돋보였다.
  그것은 앞으로 애국세력들의 집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모델이기도 했다.
  
  ' 대학가에서 학생들에게,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북한의 인권과 탈북자들의 실태를 얘기할 때마다 '북한에 대한 수구꼴통들의 모략선동'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정말 내가 얘기하는 북한의 인권 실태가 거짓말이면 얼마나 좋을까? 300만 인민이 굶어죽고, 20만 명이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으며, 30만 명의 탈북자들이 중국땅을 떠도는 비참한 상황이 현실이 아니고 거짓말이라면 얼나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 한편으로 정부와 민간차원의 대북지원은 김정일의 손에 들어가 인민을 억압하고,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쓰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침묵할 수도 없고, 침묵해서도 안 된다. 역사는 먼저 깨우치고 먼저 행동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남들은 우리를 수구꼴통이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수구꼴통짓이라면 우리는 그 수구꼴통짓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본 집회가 열리기 전 있었던 '전국북한민주화대학생연대'의 가두 선전조직 '파랑새실천단' 해단식에서 同연대의 김익환 대표가 한 말이다.
  2003년 5월3일, 기자에게 있어서 오늘은 2002년 12월19일 이후 가장 유쾌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