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과 제자들은, 지옥의 변호사로 가야
  
  盧武鉉 정부의 對北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李鍾奭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의 박사학위 논문「조선로동당의 指導思想과 構造變化에 關한 硏究」(1993년4월호 성균관 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張乙炳)는 그가 북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데 참고가 된다. 여기서 그는 이 논문을 쓰기 위해서 활용한 연구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인식론적 수준으로 [내재적 비판적 접근]과 [역사상황적 접근]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국내에는 송두율 교수를 통해서 처음 소개된 내재적 접근에 필자가 그 뜻을 보다 분명히 하고자 『비판적』이라는 말을 덧붙인 것이다」고 썼다.
  
  <송두율 교수가 소개한 내재적 접근은 서구에서 개발된 대부분의 사회주의 연구방법론이 사회주의를 『밖』으로부터, 즉 시민적 민주주의나 자본주의의 척도로 분석해내려는 데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중략). 즉, 안으로부터 분석 비판하여 사회주의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와는 다른 이념과 정책의 바탕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사회주의가 이룩한 『성과』를 이 사회가 이미 설정한 이념에 비추어 검토 비판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내재비판적 접근은 북한연구에서 사전적으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북한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와 비판적 검토라는 점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李씨가 요약한 宋斗律식 내재적 접근법의 핵심은 「사회주의가 이룩한 『성과』를 이 사회가 이미 설정한 이념에 비추어 검토 비판하는 것」인데, 이 말속에 모순이 들어 있다. 북한을 예로 들면 이렇게 된다.
  
   <북한이 처한 현실에 비추어 수백만이 굶어죽었다 해도 지도층의 잘못이 아니다. 미국과 한국이 對北 압박정책을 쓰는 마당에 북한으로선 군사비를 GNP의 3분의 1씩 쓸 수밖에 없다.그러자니 농업이 허약해질 수밖에 없고, 여기에다가 홍수와 가뭄이란 불가항력적 천재지변까지 겹쳤으니 수백만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수백만이 굶어죽었다는 말도 확인할 수 없다. 북한 내부로부터는 그런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북한의 사정을 북한의 논리로 검토 비판한다는 것은 북한정권이 만든 정보와 이념과 가치기준으로 검토하고 비판하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높다. 로동신문이나 金日成 金正日의 글과 말을 통해서 북한을 검토 비판하는 결과에 이를 위험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북한 原典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 아는 북한이 정확한가, 아니면 탈북자들을 많이 만나 취재한 사람이 아는 북한이 정확한가. 後者가 더 정확하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 아닌가. 그 예가 李鍾奭씨의 박사 논문이다.
  
  이 논문의 결론 부분에서 李씨는 주체사상을 실패한 이론이라 비판하고 있다.
  <원래 「인민대중의 자주성 실현」의 사상으로 제시되었던 주체사상이 혁명적 수령관의 영향을 받아「수령의 지도를 혁명과 건설을 성공시키기 위한 근본적인 담보」로 주장함으로써 스스로가 역사발전의 주체로 천명한 「인민대중」을 역사의 피동체로 전락시킬 논리적 모순을 내재적으로 담지하게 되었다>
  
  이 분석은 상식적이고 정확하다. 주체사상의 창시자로 알려진 黃長燁씨가 말한 대로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주체성을 중심에 놓은 黃씨의 이론은 모든 인민의 정치적 대표는 黨이고 黨의 뇌수는 수령이란 혁명적 수령관에 소매치기 당했다. 무오류의 수령이 당을 지배하고 당이 전체 인민의 판단을 대신하는 것이 주체적이란 식의, 가장 非주체적인 통치이론으로 악용당했다는 것이 黃씨의 설명이다.
  
  李鍾奭씨의 주체사상 비판은 계속된다.
  <유일지도체계는 역사의 현실에서 개인 숭배와 동원 사회체계, 일인절대 권력 등에 기반하면서 黨과 사회의 민주적 역동성을 거세시키고 구조적으로 개인의 창의력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용해왔다. 뿐만 아니라 이 체계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최고지도력의 집체적 담당 주체인 黨을 수령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시켜 왔다. 아마 북한주민들의 민주적 삶의 구현을 가로막고 북한사회의 지속적인 생산력 발전을 지체시키는 현재의 근본적인 걸림돌은 사회주의 자체나 현상적으로 나타난 경제적 침체현상이라기보다는 유일지도체계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위의 분석 또한 맞는 이야기이다. 1974년2월 북한노동당 중앙위원회가 채택한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은 [수령의 권위를 절대화」「수령의 교시를 신조화」「교시 집행은 무조건성의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못박음으로써 金日成-金正日 수령을 무오류의 神으로 만들어버렸고 자체수정의 논리를 원천적으로 제거하였던 것이다.
  
  李鍾奭씨가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상식적으로 정상이지만 그가 宋斗律씨의 내재적 접근법을 참고로 하여 연구를 한 결과로써도 그런 정상적 판단에 도달하였다는 것은 흥미롭다.
  
  黃長燁씨와 국정원은 宋斗律씨를 학자로 보지 않고 김철수란 가명을 가진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 신분의 거물 공작원으로 단정하고 있다. 따라서 宋斗律씨의 내재적 접근법이란 것도 단순히 학문의 방법론이 아니라, 1980년대말 소련 붕괴 이후 한국 사회에서 확산된 金日成-金正日 수령지배체제에 대한 비판을 무디게 하려고 만든 공작적 차원의 전술로 보아야 할 것이다.
  
  李鍾奭씨는 박사논문에서 유일사상 체계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도 金正日체제의 자기 개혁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점이 이채롭다.
  
  <김정일 지도부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일지도체계 해체를 강요하는 구조적 조건이 지속적으로 작용할 경우 체제 존립을 위해서 그것을 거부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즉 조선로동당 지도부는 경우에 따라서 유일지도체계를 해체시키거나 이완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조선로동당 지도부는 이미 1992년4월에 개정된 북한헌법 개정을 통해서 어느 정도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李씨는 개정헌법은 구헌법에 비해서 상당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권력의 집중에서 분산의 지향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개정헌법은 구헌법에 제도적으로 보장했던 국가기관 체계에서의 수령의 유일지도체계를 분명히 와해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형식적 제도적 차원에서는 이미 일각에서 유일지도체계의 이완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라고 썼다.
  
   이 대목에서 李鍾奭씨는 북한의 헌법을 우리의 헌법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북한의 헌법은 金日成, 金正日 교시보다 아래인 것은 물론이고 노동당 규약보다도 아래 개념이다.
  
  기본적으로 북한체제는 김일성 김정일 두 하느님이 통치하는 神政체제이므로 그곳의 헌법은 국가의 최고 규범인 한국의 헌법과 다르다. 이 별것 아닌 헌법상의 작은 변화를 확대해석한 李씨는 金正日 유일 체계의 내부 개혁 가능성을 예상하는 비약을 하고 있다.
  
  북한 원전으로써 북한의 실상과 변화를 잡으려 할 때 범하기 쉬운 실수이다. 내재적 접근법의 문제는 북한의 인권탄압에 대한, 보편적 기준하의 비판을 어렵게 만들고, 「북한 시각과 자료에 의한 북한 연구」로서 현실과 동떨어진 가공의 북한을 그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 논문 결론의 결론부에서 李鍾奭씨는 이런 전망을 내어놓았다.
  <현재 북한사회에서 지도자(수령), 정권(regime), 당, 국가(state)는 외부 관찰자의 가치판단과는 상관없이 불가분의 유기적 통일체로 인식되고 있다. 사회구성원들에게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상태에서 수령, 즉 정권의 붕괴는 국가의 붕괴이자 전체사회의 와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바꿔말하면 김정일 체제의 붕괴는 곧 전체사회의 붕괴로 직결되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북한사회의 존립과 발전을 전제로 한 유일지도체제의 해체는 역설적이지만 이 체계를 자신의 권력기초로 삼고 있는 김정일이 스스로 이 체계의 해체에 나서는 길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중략). 이밖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李鍾奭씨는 북한 사회의 발전을 위해선 유일체제가 해체되어야 하고 그 해체는 金正日의 손에 의해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李씨는 金正日의 붕괴는 국가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金正日 정권이 무너져도 代替 정권이 들어설 것이며 개혁 개방은 이 새 정권에 의해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과 다르다.
  
   李씨는 수령, 대중, 정권, 당, 국가가 운명공동체란 인식하에서 그런 결론을 도출한 것 같다. 이것도 생동하는 북한사회를, 북한측 원전을 통해서 들여다 볼 때 범할 수 있는 실수로 보인다. 金正日과 대중은 결코 공동운명체가 아니다. 「유일사상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을 읽으면 공동운명체 같아 보이지만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이번호 月刊朝鮮에 실린 납북 어부 金柄淘씨의 증언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金正日이 사슴농장을 현지지도차 시찰하는 시간 동안에 일반 농장원들은 경호원들에 의해 창고에 갇힌다고 한다. 대중을 잠재적 敵으로 보는 수령, 수백만을 굶겨죽이면서도 곰 발바닥 요리와 매일 空輸해오는 파리의 아이스크림을 먹는 수령이 대중과 공동운명체일 순 없다. 문서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의 북한에선 적대적 운명체인 것이다. 金正日이 죽어야 인민들이 사는 관계인 것이다. 그렇다면 金正日이 붕괴되어도 북한 군대와 당 조직과 북한동포들은 재빨리 代替 질서를 만들어낼 것이다.
  
  다만, 金正日 정권 붕괴시, 서독이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동독에 대해서 했던대로, 한국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흡수통일 정책을 펴고나올 때는 북한체제는 짧은 과도기를 거친 뒤 남한에 흡수되어 소멸될 가능성이 있다. 李鍾奭씨가 말하는 그런 자동적 붕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金大中-盧武鉉 정부의 對北정책팀 사람들 중에는 李鍾奭씨처럼 金正日의 자체 개혁 가능성을 믿고, 金正日 붕괴가 북한 체제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북한체제 붕괴를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의 재앙이 된다고 공포감을 조성한 뒤, 그런 재앙을 피하기 위해선 對北 퍼주기를 계속해야 하며, 국가적인 굴욕을 감수하고서라도 서해 도발을 따지지 말아야 하며, 심지어 북한체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선 차라리 핵무장을 허용하는 것이 낫다는 논리를 편다.
  
  宋斗律식 내재적 접근법으로 李承晩, 朴正熙 정권을 평가한다면, 즉 당시 처한 한국 사회가 이미 설정한 이념속에서 두 지도자의 업적을 검토 비판한다면 칭찬밖에 나올 것이 없게 된다. 인명 600만 명을 전쟁과 개혁 거부로써 희생시킨 두 악마적 지도자를 용서할 수 있는 논리를 구사하는 이들은 건국의 아버지와 근대화의 騎手를 비판할 수가 없게 된다. 김일성, 김정일을 비호하는 송두율과 그 제자들이 이승만, 박정희 비판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에서 내재적 접근법의 사기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 사기의 논리가 필요한 곳이 있긴 있을 것이다.
  
  남북한의 상황을, 현실에 발을 붙이고 연구하여 정확히 인식한 다음엔 그 현실도 감안하면서 보편적이고 과학적 기준으로 비판, 평가해야 한다. 그 기준이 남북한에 대하여 달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宋斗律의 제자들인데, 그들은 악마에게도 무죄를 내릴 수 있는 변호사가 되어 지옥에 가보는 게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