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30대 후반의 우파 운동가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우리나라 50대 이상이 빨리 죽어야 나라가 된다'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친북 좌파가 문화운동을 통해 야금야금 여기저기 침투하는 것이 안타까워, 문화운동을 주창하며 실천해 왔던 사람이다. 나라 걱정하는 어른들을 만나 현실을 얘기하면 도무지 이해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꼿꼿해야 할 사람들이 현실에 편승하여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어 울화통이 터진다고도 했다.
  
  그 와중에서 지원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던 모 단체를 믿고 어떤 일을 시작했으나, 기대했던 쪽이 집권하지 못하자, 모 단체는 지금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고 한다. 결국 고스란히 남은 빚을 갚느라 불황에 고생이 심해 마음이 많이 상한 모양이었다. 그는 그 단체의 안티사이트라도 만들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그는 '가망 없는 우파들. 다음 정권도 좌파가 잡을 것'이라고 선언하듯 말했다. 총알이 없어 전장에 나가지 못하고, 아군들이 마구 쓰러지는 상황에 몸부림치다 탈진한 병사의 몰골이었다.
  
  청년우파 사이트를 운영하는 20대 초 중반의 젊은이들을 취재했을 때, 그들은 50-60대는 물론이고 30-40대도 믿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0-40대 프로 친북 좌파들이 설쳐대는 마당에서, 그에 대항하는 우파는 그림자도 찾을 수 없다며 한심해 했다. 90년도 이후 학번인 그들은 오직 믿을 수 있는 세대는 90년도 이후 학번이며, 대학교 1,2학년들이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만이 나라 살리는 길이라고 했다.
  
  90년도 이후 학번이 말하는 신세대의 특성은 '신문도 잘 안보고, 사회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관심도 없다'였다. 이미지와 컴퓨터 세대인 이들은 시국에 별다른 관심이 없지만 누가 강하게 주장하면 유행처럼 편승한다고 한다. 그래서 누가 큰 목소리로 反美를 외치면, 촛불들고 모이는 트랜드 反美, 두루뭉술한 反美가 일시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중생들에게 제대로 보상을 해주었고, 한국 전쟁 때 미군이 우리나라를 위해 피 흘렸다는 사실을 얘기하면, 금방 설득된다는 것이다.
  
  20대 젊은이들은 '사실만 알려도 친북 좌파를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젊은이들을 규합, 친북 좌파에 빠져들지 않도록 교육과 문화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어른들이 우파 사이트를 방문하여 젊은이들에게 많은 경험을 토로해주길 기대했다.
  
  젊은이들은 애국세력의 오프라인 모임이 시작되었으며, 강연과 세미나, 토론을 통해 우리나라의 현실과 미래비전을 갖도록 하는데 뜻을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대학에 나붙은 反美 대자보에 대한 반박 대자보를 붙이는 등 구체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내가 만난 이들이 30대와 20대 애국세력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행동하는 이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특히 20대가 30-40대를 못믿겠다고 한 얘기에 충격받았다. 그들이 너무 빨리 눈치 챈 사실에. 허리부분에 속하는 3040. 아마도 전 세대를 통틀어 분열이 가장 심한 그룹에 속할 것이다. 80년대 후반기, 내가 대학을 다닐 때 다분히 친북 성향인 운동권 세력이 전국 대학을 장악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오로지 한가지 목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대학에 다니는 4년 동안 우리 학교에 하루에도 수십 건의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의 내용은 천편일률적이었다. 그런 가운데 반대 대자보가 붙은 경우가 딱 한번 있었다. 회화과에서 설치미술전을 하면서 여성 속옷들과 스타킹 등을 작품으로 내건 적이 있었다. 그러자 한 여학생이 '여성을 성상품화 했다'는 내용의 비난 대자보를 붙였고, 이어 총여학생회, 총학생회의 지지 대자보가 붙었다. 그러자 회화과에서 '예술의 오브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행위'라는 내용의 반박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는 예술대 벽을 다 두를 정도로 줄줄이 이어졌고,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까지 흥미롭게 대자보를 읽었다.
  
  그 다음주 학교신문에 '대학에서 정말 오랜만에 토론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런 문화가 이어져야 한다'는 교수님의 글이 실렸고, 모 주간신문이 '보기 드문 신선한 토론'이라며 취재까지 해갔다. 하지만 그 날 이후 다시 한쪽의 목소리만 불거지는 대자보가 붙었다.
  
  당시 대자보가 친북적이었거나, 하는 걸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대자보에 나타나는 폭력성이 문제였다. 상대를 무자비하게 비판하고, 극렬한 단어를 총동원하여 비하하는 것이 문제였다. 국가원수가 무자비한 언어로 능욕 당하고, 기성세대는 타도의 대상일 뿐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존재이고, 대한민국은 과거를 다 지우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했다. 모든 해결책은 북쪽에서 갖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부꼈다.
  
  무엇보다도 근간에 깔린 나만 옳다는 아집이 큰 문제였다. 온갖 종류의 극렬한 단어로 한쪽을 깔아뭉개야 한다고 피를 토하는 마당에, 대결의 장으로 나서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른 사람, 다른 세력을 무자비하게 욕하고 비판한다는 게 보통사람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때 침묵했던 다수는 나이를 먹어 우리 사회 허리를 차지하고 있다. 해병대 취재를 할 때 초창기 해병대가 용감할 수 있었던 것은 타군보다 나이가 더 어리다는 것도 한 요인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만큼 물불 안 가리고, 주변을 안 살펴봐도 되는 처지였기 때문에 용감성이 더 배가되었다는 것이다. 그다지 걸리적거릴 것 없던 학생 때도 조용했던 다수가, 가정을 갖고 직장생활을 하는 지금, 어떻게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겠는가?
  
  20대 청년들이 프로 친북 좌파들에 대항하는 우파 애국세력이 없다고 말하는 데 대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요즘 5060이 위기감을 느끼고, 사람을 키우기 위해서는 돈을 써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데 가시적인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온건한 3040을 만나면, 강경 일변도인 한 그룹에 대해 불만을 얘기하면서도 나서서 뭉치거나 전면에 나서는 건 싫어한다. 20대가 30대 이상은 못 믿는다는 얘기에 대해 도무지 반박할 근거가 없다.
  
  TV토론을 할 때, 제대로 된 우파 단체가 없어 섭외가 불가능할 지경이라고 한다. 다른 한쪽은 나와서 당당히 목소리를 높이는데, 한쪽은 방청석에 앉았다가 행여 얼굴이 화면에 비치면 어쩌나를 걱정할 정도라고 한다. 20대 젊은이들은 '앉아서, 숨어서 나라 걱정하는 건 비겁한 일'이라고 개탄했다.
  
  한쪽의 목소리가 불거지는 것은 어쨌든 좋지 않은 현상이다. 5060이 나라 걱정에 돈을 쓰고 싶다면 젊은이들을 지원하는 데 쓰시라고 간곡히 권하고 싶다.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것이 걱정을 불식시키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것이다.
  
  20대 젊은이들이 그랬다.
  '어른들을 한숨만 쉬고, 요즘 젊은 것들 못 믿겠다는 얘기만 하신다. 정작 일을 하기 위해 협조를 요청하면, 우리가 하려는 일을 이해도 못한다. 인터넷을 너무 모르고 정보화 사회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도무지 모른다'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이들은 3040에서 친북 좌파 프로 운동가들에게 대항할만한 우파 프로운동가가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누구나 실감할 것이다. 10년 이상 굳어온 체념과 관망이 하루아침에 전투적으로 바뀌기는 힘든 일이다. 5060은 돈이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지원이라도 하겠지만, 3040은 뭘 할 것인가.
  '애들 생기고 나이 먹어봐, 마흔만 되면 다 보수로 바뀐다구... 쪽수가 많은 쪽이 이기게 되어 있어.'
  소극적 낙관론자들이 많다. 하지만 세상은 강한 의지를 갖고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쪽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소련 붕괴 후, 운동권으로부터 자유로웠던 학번들이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나라 살리는 길이라는 20대 젊은이들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정말로 나라가 걱정이라면, 그들 말대로 동시대 젊은이들을 설득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목소리 큰 쪽에 관심을 갖는다는 젊은이들을 바로 교육하고 싶다면,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내가 만난 젊은이들은 어른들이 정보화에 익숙해지고, 자신들이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실탄을 지급해 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李根美 프리랜서 www.rootlee.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