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주례를 맡은 조갑제라고 합니다. 편집장으로서 월간조선이란 잡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신랑 홍길동군과 신부 김나라양의 결혼을 축하해주시기 위하여 바쁘신 가운데서도 이렇게 많이 왕림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신랑 신부는 오늘의 인연을 인생의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면서 하객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객 여러분들도 이 젊은 부부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시고 지도 편달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신랑 홍길동군은 아버지 홍명보님, 어머니 김윤희님 사이의 2녀1남중 독자입니다. 지금 만 서른두 살입니다. 우리대학교 섬유공학과를 졸업했고 서울합섬을 거쳐 비주얼 코퍼레이션의 영업부 과장으로 재직중에 있습니다. 저는 신랑의 아버지와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먼저 세상을 뜨셨지만 이렇게 잘 자란 아들이 좋은 집안의 인물 좋은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을 지금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있으면서 흐뭇해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지금 막 홍길동군의 아내가 된 김나라양은 남편보다 세 살 아래입니다. 아버지 김성호씨와 어머니 조성녀씨 사이의 1남2녀중 차녀인 신부는 지명대학교 공예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숙녀복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섬유업이란 같은 업종에 근무하면서 일을 통해서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경험상 살펴보니 일을 통해 맺어진 부부들이 아주 활력있게 잘 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같은 취향이고 같은 이야기거리를 갖고 있으므로 공통의 관심사를 놓고 서로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은 저도 같은 직장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한 경우입니다.
  
  제가 주례를 부탁받고 두 사람을 불러 물어보았습니다. 왜 서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신부는 신랑이 믿음직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가정적이고 자상하며 착실하게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믿음직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가정적이고 자상하며 착실하게 보인 사람도 대단하지만 신랑될 사람의 그런 장점을 발견해낸 김나라양의 마음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음이 순수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순수함과 장점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평범함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직업이 디자이너의 본령이라 할 수 있겠는데, 김양은 인생도 잘 디자인하여 행복하게 살아갈 것으로 확신합니다.
  
  신랑 홍길동군은 아내될 사람과 업종이 같아 대화가 잘 통해서 좋다고 했습니다. 사실 연애할 때는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흘러가는 시간을 붙들고싶을 정도인데, 일단 결혼하고 나서 고달프게 살아가다가 보면 그만 반벙어리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는 본색을 드러내자고 나오는 이런 남편에 절망하는 아내가 많습니다만 우리 홍길동군과 김나라양은 대화의 소재를 공유하고 있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광고 문안에도 나오는 말입니다만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고 어머니는 아내보다 더 아름답다고 합니다. 여기 하나 더 보탠다면 할머니는 어머니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여자란 돌보아주고 보살펴주어야 하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더욱 아름답게 빛이 나는 존재인가 봅니다.
  
  두 사람은 정상적인 가정에서 정상적으로 태어나서 정상적으로 자라고 공부하고 취직하여 여기에서 정상적으로 혼례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정상적입니다. 비정상적인 것이 너무나 많은 사회에서 정상으로 나고 자라고 만나는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두분은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두 분을 있게 한 부모, 스승, 회사, 선배, 직장의 상사 동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대한민국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분은 비정상적인 사람, 건강을 잃은 사람, 재산이 적은 사람, 가정을 잃은 사람, 나라를 잃은 사람 등 두분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해야 할 인간적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두 분은 날 때부터 타고난 이 행복을 불행한 사람들과 나눠 갖는 습관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행복이란 것은 나눌수록 더욱 커진다고 합니다.
  
  홍길동군과 김나라양은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났습니다. 두 사람이 공짜로 얻은 행복중 가장 큰 것은 아마도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고 남한에서 태어났다는 점일 것입니다. 두 분이 북한에서 태어났더라면 지금 두 분은 김정일 수령이란 단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만인이 불행해져야 하는 사회에서 행복이란 단어를 저주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태어난 다행스러움은 반대로 두 분에게 어떤 의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조국을 사랑하고 자랑하면서 지금도 굶어죽고 맞아죽고 있는 북한동포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어떻게 구출할 것인가를 갖고 고민하고 행동하여야 할 국민으로서 의무가 그것입니다. 두분에게 주어진 건강과 재산은 결코 여러분만의 것이 아님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사랑은 다 한 줄기, 한 흐름으로 통합니다. 아내와 남편에 대한 존경과 사랑, 부모에 대한 공경, 아들 딸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동포에 대한 사랑, 그리고 조국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은 모두가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경외심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줄 선물이 있습니다. 겸손과 고귀함이란 두 단어입니다. 그 중에서도 겸손을 고귀함보다 더 소중히 여기십시오. 겸손해야 고귀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의 핵심은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요사이 세상을 보면 겸손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 무모한 행동으로써 자신의 무능을 덮어보려고 애쓰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무식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고 합니다. 무식은 겸손을 모르기 때문에 무섭고 결국은 자신을 파괴하고 남을 불행하게 만들고맙니다. 이 말을 꼭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고귀해지고 싶으면 먼저 겸손하라!
  
  두 사람의 혼인에 하객으로 나오셔서 또한 혼인의 증인이 되어주신 여러분, 이제 인생의 바다를 향하여 항구를 떠나는 두 사람의 장도를 축하해주십시오. 두 사람이 함께 할 이 항해가 거센 풍랑 잘 헤쳐가면서 많은 이야기거리를 남기고 무사히 목적지에 당도할 수 있도록 성원을 아끼지 말아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이것으로써 저의 주례사를 마치겠습니다. 경청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