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3일) 서울 광화문 코리아나 호텔 앞에서 모범택시를 잡고 북아현동의 저희 집으로 오는 도중에 60대 초반의 운전기사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요사이 택시기사들의 정부 비판이 거세어졌는데 왜 그렇지요?
  '그야 당연하지요. 요사이 손님이 없어요. 수입이 엉망입니다'
  -얼마를 집에 가져가십니까?
  '오늘 제가 낮 12시에 집에서 나왔는데 이걸 보십시오, 3만7000원밖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새벽 1시에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한달에 며칠 일하십니까?
  '22 - 23일 정도지요. 하루에 10만원을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물론 기름값과 식대는 빼고 말입니다. 그래도 한 달에 200만원 남짓인데 이마저 힘듭니다. 모범택시가 생긴 이후 한번도 요금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보통택시보다 요금이 2.7배였는데 요사이는 두배 이고 장거리를 달리면 그 격차가 줄어들어요. 최근엔 기름값도 올라 수입이 더 줄었습니다요.'
  
  이 운전기사와 대화를 나누다가 저의 집 앞에 도착했는데 차비가 3800원 나왔습니다. 1만원짜리를 내면서 '6천원만 주세요'라고 했더니 '고맙습니다'란 인사가 돌아왔습니다. 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잔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을 때 운전기사가 이처럼 '고맙다'고 인사하는 비율은 한 40%나 될까요? '고맙다'는 인사를 기대하면서 잔돈을 안받는 것은 아니지만 '고맙다'란 말을 듣지 않으면 '혹시 저 운전기사가 화가 났나. 내가 너무 작은 선심을 쓴다고 같잖게 생각하는가'하고 오히려 이쪽이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지난 1월1일에도 저는 택시를 타고 세배하러 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을 붙이지도 않았는데 이 분은 열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여당 국회의원 세 사람이 자민련에 들어갔다면서요? 그러면 선거를 뭣하러 합니까. 그런 식으로 의원 빼내가기를 하면 말입니다.'
  
  이 운전기사는 한참 민주당과 자민련 욕을 하더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회창 총재도 그렇지요. 자민련이 17석이라고 구박을 너무 한 것 아닙니까. 교섭단체를 만들어주면 자민련이 한나라당 편을 들지 민주당 편을 들겠습니까. 그러다가 뒤통수 맞은 것 아닙니까'
  저는 이 운전기사의 논평이 어떤 사설보다도 균형이 잡혀 있고 성숙한 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종필 총재는 지난해 여름 골프장에서 이회창 총재를 만났을 때 이렇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국회의원 의석수가 299석일 때 교섭단체의 하한선을 20석으로 정한 것이니까, 이제 의석수가 273석으로 줄어든 마당에 교섭단체 조건을 17석으로 완화시켜주는 것이 어떨까요. 우리 자민련을 찍은 국민들의 뜻도 국회안에서 대변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회창 총재는 이 말에 가타부타 반응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뒤 한나라당은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려는 국회법 개정 움직임에 치열하게 저항했는데 이 사건으로 김종필 명예총재의 이회창 총재에 대한 감정이 극히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정치도 감정입니다. 만약 이회창 총재가 지도력을 발휘하여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어주었다면 자민련은 민주당과 다시 손을 잡지 않고 국가보안법 개정 문제라든지 對北 정책에 있어서는 한나라당과 공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념적으로 보아서도 자민련은 민주당보다는 한나라당에 더 가깝습니다.
  
  지역이기주의나 개인 감정보다는 이념에 따라 정치를 하는 것이 더 선진된 풍토인데 이회창 총재는 너무 잔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닌지, 복수심을 지닌 정적을 너무 많이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회창 총재의 정치가 가파르게 보이는 것은 인정이 별로 느껴지지 않고 포용력, 즉 자기 편을 불리는 능력이 약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으로 2년간 수비만 잘 하면 대통령은 우리 것이라고 낙관하는 한나라당 사람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2년은 그러나 안심하기엔 너무나 긴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란 말도 있습니다만 당내의 동의보다는 국민의 지지를 겨냥해서 큰 정치를 해보이고 이 힘으로써 당내의 잡음을 잠재우는 이회창식의 정치가 아쉬워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