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에는 이런 공식이 있습니다.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부패한 정치인이 된다.
  그 이유는 법정 비용을 초과할 수밖에 없는 천문학적인 정치자금 때문입니다. 이 공식을 현실 정치에 대입해본다면 누가 가장 부패한 정치인인지 자동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런 부패한 정치인이 권력을 잡는 순간부터 자신이 가장 깨끗한 정치인이라고 착각하고 위장한 뒤엔 검찰을 동원하여 부패하긴 했지만 자신보다는 덜 부패한 정치인들을 잡아넣는 마녀사냥을 즐깁니다.
  이 마녀 사냥은 매우 위험합니다. 검찰이 휘두르는 칼은 여론과 언론이 만들어내는 풍향에 따라 그 방향을 달리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부패한 정치인이 검찰의 칼만 믿고서 자신을 가장 양심적인 정치인이라고 위장한 뒤 政敵을 부패 정치인이라고 잡아넣다가 어느 새 그 자신도 똑 같이, 아니 훨씬 더 부패한 인간이란 사실이 극적으로 밝혀지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엔 칼자루를 잡은 손이 칼날을 잡게 됩니다. 이럴 땐 선제공격을 편 쪽이 역전패하기도 합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대표적인 부패수사 - 수서 사건은 결국 노태우 대통령에게 큰 타격을 안겼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전두환, 노태우 비자금 수사도 결국은 김현철 비자금 수사의 전주곡이었고, 작금의 안기부 자금 횡령 수사를 준비한 경우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안기부 비자금 수사 공세는 필연적으로 그 유명한 1997년의 김대중 비자금과 1995년의 20억원 플러서 알파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킬 것이며, 정적들로 하여금 대통령에 대한 비리정보를 수집하도록 몰아세울 것입니다. 검찰이 나서서 열심히 하니까, 김대중 대통령의 선제공격이 성공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공평하지 못한 게임이란 인식이 있기 때문에 역공을 당할 헛점은 오히려 크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안기부 자금 횡령 혐의 사건의 당사자들이 모두 결격 사유가 있다면 이 스캔덜은 시간이 갈수록 관계 당사자 모두가 손해를 보는 共滅의 길을 치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김대중 대통령으로서는 레임덕을 재촉할지도 모릅니다.
  그러함에도 일단 제기된 이 사건의 실체는 공정하게 밝혀져야 합니다. 국민세금이 여당의 선거자금으로 횡령된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이 관례였다면 정보부, 국정원 시대로까지 확대시켜 조사를 하여 납세자에게 보고할 의무를 정부와 검찰은 지게 됩니다. 세금을 낼 때 이것이 여당 선거자금으로 전용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