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초 현대의 대북송금 의혹이 감사원 감사를 통해 하나 둘 사실로 확인되기 시작하자, 당시 DJ와 그 측근들은 '대북 송금은 현대의 7大 대북 사업과 관련된 것이지만 남북관계와 국익을 생각해서 사법처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을 폈다.
  현대라는 私기업의 행위를 옹호하기 위해 오늘날 대부분의 헌법학자들 사이에서 배척되고 있는 대통령의 통치행위 이론을 갖다 붙이는 해괴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DJ는 퇴임 전에는 물론 퇴임 후까지도 현대의 대북송금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그러나 1989년 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노태우 정권의 암묵적 지원 아래 북한을 방문, 금강산 개발 등에 합의하고 왔을 때,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는 지금과는 정반대의 주장을 폈었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정주영 회장의 방북을 놓고 위법 시비가 일자 통치행위 이론을 내세워 정회장의 방북을 정당화했었다. 이에 대해 DJ는 이듬해 국회에서의 정당대표연설을 통해 '통치행위론도 인정하기 어렵거니와, 정주영씨가 금강산 개발해서 돈 버는 것이 어째서 통치행위냐? '면서 '그렇게 따지면 통치행위 아닌 것이 어디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똑같은 정주영 회장의 금강산 개발사업을 두고 DJ는 1989년에는 통치행위론 같은 것은 적용될 여지도 없는 정주영씨 개인의 돈벌이로 몰아붙이다가(통치행위론 자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임), 2003년에 이르러서는 대통령의 통치행위 이론을 억지로 갖다 붙여서라도 비호해야 하는, 남북관계와 국익을 위해 엄청나게 큰 의미가 민족적 사업인 것으로 말을 바꾼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발상이라고나 할까? DJ 및 그 측근들의 관련 어록들을 아래에 소개한다.
  
  <정주영씨를 이북에 보냈고 또 보낼 모양입니다. 정부는 이것을 통치권이라고 그럽니다. 통치권이라는데도 문제가 있지만, 통치권이라 칩시다. 그러나 정주영씨가 가서 이북하고 얘기하고, 금강산 개발해서 돈 버는데, 돈 버는 것도 통치권입니까? 이제부터 이북하고 직접 무역하겠다는데, 무역하는 사람들이 전부 통치권입니까? 통치권 아닌 것이 무엇이 남습니까?> (1990년2월27일, 김대중 평민당 총재 국회대표연설)
  
  <현재 문제되고 있는 현대상선의 일부 자금이 남북경제협력 사업에 사용된 것이라면 향후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국가의 장래 이익을 위해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 (2003년 1월30일, 김대중, 대북송금 관련 감사원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현대는 개성공단 등 7개 사업을 북쪽으로부터 30년간 보장받는 계약을 했다. 언젠가 북핵문제가 해결되고 국제사회가 북한 경제개발에 참여할 때, 개성공단 개발사업을 비롯해 통신·철도·관광 등 여러 사업을 독점 계약한 것이 우리 기업들이 (북한에) 진출하는 데 큰 기반이 될 것이다.…('대북 송금문제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언급 가운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통치권자의 결단이냐’는 질문에 대해) 현대상선의 대북송금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부분…이 문제는 국익과 남북관계의 특수성 차원에서 봐야 한다> (2003년 2월4일, 박지원 청와대비서실장)
  
  <평화를 위해서나 미래를 위해서 또 현실적으로 반국가 단체와 접촉하는 일이라는 점을 감안해서도 모든 것을 전부 공개하는 것은 국익에도, 남북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03년 2월5일,김대중)
  
  <-현대가 대북 7대 사업 대가로 5억달러를 북한에 주기로 했다는 것을 2000년 당시 임동원 국정원장으로부터 보고받았나?
  =(김대중) 그때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정상회담에 몰두하고 있었다. 정상회담이 과연 성공할지 확실치 않아 온 신경을 거기에 집중한 때였다. 그래서 현대 관계 보고를 잠깐 들은 기억이 있다. 이미 이뤄진 문제고, 남북의 평화나 국익을 위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큰 이의를 달지 않고 수용했다.
  
  -특검제를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데 대통령의 생각은? 또 임동원 특보는 당시 국정원장으로서 송금 편의를 제공했으나 상부에는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김대중) 특검이 됐건 여하튼 법률적으로 문제삼는 것은 국익을 위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이미 표시했다. 감사원과 검찰도 그런 생각에서 법적으로 문제삼는 것을 유보했다. 앞으로 정치권에서도 남북관계와 국익을 생각해 그런 방향에서 선처해주길 바란다.
  
  =(임동원) 송금편의 제공 요청을 현대로부터 받았다는 보고를 받고, 환전 편의를 제공하는 게 가능한지 검토하라고 지시했으나 이후 어떻게 됐다는 보고를 받지 못했다. 당시는 남북정상회담 1주일 전인데 회담에 전념하고 있을 때여서 보고받거나 관심을 갖지 못해 돈이 (북한으로) 갔는지도 몰랐다. 이번에 알게 됐는데 (당시 보고받지 않아) 대통령께 보고하지도 못했다. 송금 편의 내용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는 게 좋지 않을 것 같고, 또 잘 모르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책임진다고 했는데 검찰이나 특검 조사에 응할 것인가?
  =(김대중) 이 문제는 법률적으로 다루는 것이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러한 생각을 말씀드린 것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제가 책임질 일은 책임진다는 것이다.> (2003년2월14일, 김대중-임동원 기자회견)
  
  <2000년에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등 광범위한 사업의 사업권을 획득하고, 남북정상회담의 성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북한쪽의 요청도 있어 총 5억달러를 (북한에) 송금했다...남북간 민간경협의 특수성 때문에 정부의 이해와 협조가 불가피했고, 정부와 긴밀한 협의와 조율을 거쳤다> (2003년2월16일,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현대의 대북송금이 크게 보아 사법적인 심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2003년 4월22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의 청와대 만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