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토론방에서 퍼온 것이다.
   이름:민족통합 연구소 (@hotmail.com) (1, 남, 2)
   2003-06-11 오후 4:05:00 172.202.249.154
  
   국가사로 본 남북한의 역사학
  
  < 국가사로 본 남북한의 역사학 >
  
  정 두 희 (서강대 사학과)
  
  
  Ⅰ. 문제의 제기
  
  남북한에 동시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학문분야에 앞서 남북한 역사학의 통합문제가 제일 먼저 제기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것은 남북이 반세기에 이르는 분단 이전 수 천 년의 역사를 서로 공유하고 있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소박하면서도 강렬한 민족주의적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남북한 역사학의 통합은 남북의 통일을 당위적 전제로 두고서 제기되는 문제라는 점을 먼저 확실하게 인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민족이 하나로 된다면 소위 '민족의 역사'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좀 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역사학을 포함한 학문의 세계에서 통합이란 말은 성립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하나의 객관적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나 모든 다른 견해를 하나로 귀결시킨다는 일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문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진실에 이르기 위한 수많은 대안이 제기되고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다양한 이견(異見)들을 하나로 통합한다는 것은 학문을 말살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생각이라 할 수 있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통합이 아니라 다양성이 더 중요한 덕목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남북한 역사학의 통합이 문제되어야 하는가? 남북한의 역사학의 통합이 문제된다 것은 남북한의 역사학이 지금 서로 다른 세계에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한의 역사학과 북한의 역사학은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가? 남한의 역사학, 북한의 역사학은 합해져 '통일된 민족사'가 될 수 있는가? 현재 너무도 상이한 두 개의 서로 다른 국가체제로 존재하는 남북한의 역사학은 민족사인가 아니면 국가사인가? 남북한 역사학의 통합문제를 성찰해 보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생각해 보아야 할 사안들이 너무도 많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여기에서 제기한 문제들을 드러낸 다음 남북한 역사학의 통합문제라는 주제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Ⅱ. 우리들에게 '남북한'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우리들에게 너무도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남북한이란 말속에 어떤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 것인지를 명료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말 그대로라면 우선 남북한은 한반도라는 지역의 남쪽과 북쪽을 지칭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같은 상황에서 남북 모두를 지칭할 때 결코 남북한이라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남북한 대신 북남조선 등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남북한이란 말 자체에 벌써 남쪽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들에게 익숙한 남북한이라는 용어는 한국, 즉 대한민국의 남쪽과 북쪽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북한에서 쓰는 용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북쪽과 남쪽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남북한이라는 말속에는 북한을 우리와 대등한 또 다른 국가로 인정치 않겠다는 생각이 은연 중에 담겨져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고 다원화되어 가면서 남북한간 대화의 폭도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북한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단지 익숙하고 편리하기 때문일까? 그렇다 하더라도 통일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 속에서는 이 문제가 다른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즉 남북한이란 지칭 속에는 남북한은 갈라져 있어도 결국 하나라는 의식이 담겨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통일될 미래 어떤 나라의 남쪽과 북쪽일 뿐이라는 생각이라면 남북한이라는 편리한 관용어는 오늘날도 널리 쓰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 남북한이라는 용어 속에는 심각한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감추어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러나 오늘날 남북한의 통합을 거론할 때 남북한은 무엇인가? 이렇게 생각해 보면 결국 남쪽에는 대한민국이 있고, 북쪽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남북한의 통합, 혹은 남북한 역사학의 통합이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는 남북한이 각기 철저하게 다른 이념과 체제로 갖추어진 두 개의 서로 다른 국가들이라는 점을 덮어두어서는 안 된다. 남북한의 통합이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통합을 의미하며, 남북한의 역사학이란 이처럼 다른 두 개의 서로 다른 국가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1998년 9월 5일자로 확정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전문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조국 통일의 구성이시다. 김일성 동지께서는 나라의 통일을 민족 지상의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그 실현을 위하여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 김일성 동지께서는 공화국을 조국 통일의 강유력한 보루로 다지시는 한편 조국 통일의 근본 원칙과 방도를 제시하시고 조국 통일 운동을 전민족적인 운동으로 발전시키시여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조국 통일 위업을 성취하기 위한 길을 열어 놓으시였다.
  
  이 전문은 김일성의 업적을 토대로 북한 정권이 탄생했음을 강조하면서 위에서 본 것처럼 그가 '공화국을 조국 통일의 강유력한 보루'를 다지고, '조국 통일 운동을 전민족적인 운동으로 발전' 시켰다고 강조하였다. 동시에 동 헌법의 제9조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반부에서 인민정권을 강화하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을 힘있게 벌려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자주, 평화 통일, 민족 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규정하여 북한 정부가 한반도의 통일 지향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한편 1987년 10월 29일에 개정된 '대한민국'의 헌법 전문은 다음과 되어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 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즉 남한에서도 '조국의 민주 개혁과 평화적 통일'이 국가가 지향하는 최고의 목적임을 분명히 하였다. 동 헌법의 제3조에서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명시하고 제4조에서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한반도 전체와 부속 도서를 영토로 규정하고 있으며, 따라서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한다는 명분을 헌법에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두 헌법을 보면 양쪽이 모두 자기들의 이념과 체제로 상대방을 통일시키겠다는 점을 국가 존립의 중요한 이유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치 않고 상대방을 통일시킬 대상으로 본다면 남북의 대립과 경쟁이 얼마나 뜨거울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남북 양 국가가 모두 민족의 이름으로 통일을 추진한다 하였으니, 그 민족이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는 민족이 아니라는 점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북의 문제를 어떤 각도에서 생각하든 이처럼 엄연히 다른 이념과 체제를 가진 철저하게 다른 경쟁적 국가라는 점을 깊이 새겨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Ⅲ.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와 역사학
  
  우리들은 한국사를 민족사라고 이해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은 그 나름대로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신채호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해방 후 신민족주의를 표방했던 손진태의 {국사대요}의 서문을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우리 민족사는 우리 민족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요, 우리 민족이 세계 여러 민족 중의 하나임과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사도 또한 세계사 속의 하나인 것이다... 우리는 쇄국적인 배타적, 독선적 사이비한 민족 사상을 버리고, 개방적이요 세계적이요 평등적인 신민족주의 입장에서 우리 민족사를 연구하고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손진태는 자신이 주창하는 신민족주의의 사학이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것이 아니라 개방적, 세계적, 평등적이라고 하였으나, 역사연구의 단위를 '우리 민족사'라고 단정하였다. 그러기에 그의 {국사대요}에서는 민족의 성장에 따른 시대구분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신석기시대를 민족형성 배태기, 삼국 이전 시대를 민족형성 시초기, 삼국시대를 민족 통일 추진기, 고려시대를 민족의식 왕성기, 조선왕조를 민족의식 쇠퇴기, 그리고 일제시대를 민족운동 전개기로 구분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손진태의 뒤를 이어 {국사요론}이란 개설서를 쓴 이인영은 해방 이후 세계사적인 흐름에 노출된 조국의 현실 속에서 '우리 나라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국사와 세계사'의 문제를 깊이 다루고자 하였다. 그는 '국사는 우리 민족의 형성 성쇠의 역사로 국사의 주체가 우리 민족 자신임에는 틀림없지만 우리 민족은 우리 민족만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여러 민족들과 더불어 교섭하여 왔으며 현재에도 더욱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전제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사가 세계사에 묻혀 독자적인 특수성을 잃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을 의식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나 국사의 주체가 언제나 우리 민족 자신인 만큼 세계사적 조류 또는 소위 세계사적 필연성을 중시하는 나머지 민족적 의지 민족적 창조를 전혀 몰각(沒覺)하여 버린다고 하면 국사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고사(姑捨)하고 세계사의 파악에 있어서도 정곡을 잃을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사실이다. 국사와 세계사, 민족 문화와 세계 문화, 이것은 일견 대립되는 듯하지만 실상은 불가불리(不可不離)의 관계를 가지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다 같이 세계 인류 사회 발전사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는 역사의 보편성만을 강조하는 유물사관의 입장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관념적 민족성의 우수 또는 졸열'에 만사를 귀결시키는 편협하고 잘못된 민족주의적 태도 또한 비판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역사관을 '민족적 세계관에 입각한 세계사적 국사의 새로운 인식'이라 규정하고 이러한 역사관이 앞으로는 크게 보급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손진태의 신민족주의 태도에 상당히 공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손진태와 이인영이 개설서를 썼을 때는 해방 이후 아직 한국전쟁이 벌어지지 않았을 때였다. 이 때는 현대사가들이 흔히 해방공간이라 부르지만 아직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된 때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 두 역사가가 민족사라고 했을 때는 국가체제가 남과 북에서 갖추어져 있었을 때보다는 훨씬 진지하고 사실과 부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남북분단이 고착되고 남과 북은 각기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서 각자의 길을 걸어갔으며, 동시에 치열하고 처절한 적대적인 경쟁관계를 유지하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개설서로서 오랜 권위를 지니고 있는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에서 한국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한국사의 주인공은 결국 한국인인 것이다. 이 한국인은 물론 한국민족이란 말로 대치시킬 수가 있다. 그런데 이 한국인 혹은 한국민족을 개인과 같은 단일한 존재로서 추상화시키는 것은 한국사의 진실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한국민족도 하나의 사회적 존재인 것이며, 거기에는 각기 역사적인 역할이 다른 여러 인간집단이 존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이기백은 한국사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그 안에서 그가 '한국사의 주인공은 한국인'이며, '이 한국인은 한국민족'이란 말로 대치시킬 수가 있다고 한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에게 있어서도 한국사는 한국민족의 역사였다. 그리고 한국민족의 역사를 배타적이고 특수하게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손진태와 이인영의 민족주의적인 역사해석의 전통과 그 뿌리를 맞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기백이 이 책을 낸 1996년은 손진태와 이인영의 책이 나오던 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손진태와 이인영의 역사서술에서 그들이 살던 시대의 '국가사'의 흔적을 찾기는 힘들다. 그 시대에는 아직 남과 북이 별도의 국가체제로 각자의 운명을 개척해 간다는 의식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96년 역사가(歷史家) 이기백은 대한민국의 국민이었으며, 그의 민족사는 한국 즉 대한민국의 민족사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책의 제16장을 '민주주의의 성장'이라 제목하였으며, 그 마지막 절을 4·19혁명으로 장식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민족사는 대한민국이 자본주의적인 민주주의국가로 발전해 가는 큰 흐름 속에서 파악된 역사였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대한민국의 국가사라는 범위 속에 있는 것이다. 물론 그는 시종 민족사를 강조했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적 관점에서 민족의 문제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사였다. 그러기에 책제목도 한국사, 즉 대한민국사라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서술은 어떠한가? 1991년에 간행된 북한의 가장 대표적인 역사 개설서인 {조선통사(상)}에는 매우 짤막한 '머리말'이 있다. 여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조선 인민의 발전 력사는 오랜 기간 자연의 구속과 사회적 예속으로부터 자기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여 온 자랑스러운 력사이다... 하나의 피줄과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한 강토 우에서 수천 년 동안 살아온 단일 민족인 조선 인민은 매우 이른 시기에 력사를 창조하는 질에 들어선 문명한 민족이다.
  조선 인민은 오래동안 외적들의 큰 규모의 침략을 여러 차례 받았으나 그때마다 높은 애국심을 발휘하여 침략자들을 용감히 쳐물리치고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영예롭게 지켜왔다.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는 정신이 강한 조선 인민은 예로부터 지배와 폭압을 반대하고 자유와 진보를 위하여 굴함 없이 싸워왔으며 자기의 우수한 재능을 꽃피워 찬란한 문화를 창조함으로써 인류 문화의 보물고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조선통사}에서는 조선의 역사는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려는 '조선 인민'의 역사라고 하면서, 동시에 '단일 민족'이며 '문명한 민족'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 외래의 침략을 물리쳐 찬란한 문화를 창조한 민족임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민족주의적 입장을 강조한 {조선통사}의 구체적 내용은 시종일관 사회적 계급으로서의 인민이라는 입장보다는 외래의 침략에 대항하는 민족 투쟁의 역사를 훨씬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에서는 민족과 인민이라는 말을 혼용해 쓰지만 이는 사회주의적 계급이론과 민족주의 관점을 합하려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북한에서는 이 두 상충되어 보이는 개념을 하나로 묶는 주체사상이 성립하였으며 모든 역사해석은 이에 따라야만 하였다. 그러기에 1987년 판 {조선통사(하)}에서는 한국전쟁 부분을 마무리하면서 이 전쟁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조국 해방 전쟁에서의 조선 인민의 력사적 승리는 오직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조국 해방 전쟁의 전기간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한 몸에 지니시고 겹쌓인 난관과 시련을 헤치시면서 우리 당과 국가, 군대와 인민을 빛나는 승리에로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조국 해방 전쟁에서의 조선 인민의 승리는 영생 불멸의 주체사상이 가져다 준 빛나는 결실이였다.
  주체사상은 우리 당과 정부, 인민 군대와 인민에게 그 어떠한 엄혹한 시련도 이겨내고 원쑤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필승 불패의 사상 정신적 량식을 안겨 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이 있고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가 계심으로 하여 전쟁 승리의 모든 요인들이 확고히 마련될 수 있었다.
  
  김일성이 주체사상으로 항일 무장 투쟁을 이끌었는데, 그들의 말 대로라면 이 때에 와서 조국 해방 전쟁을 완전한 승리로 이끈 것도 김일성과 그가 창시한 '영생 불멸의 주체사상' 때문이었다는 위의 인용문은 북한의 역사학이 북한의 현 체제에 얼마나 철저하게 예속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에서 1979년에 펴낸 {조선전사} 제1권의 첫머리에는 이 책을 펴낸 입장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원리에 기초하시여 사회력사발전의 합법칙성을 새롭게 밝혀주심으로써 력사과학의 유일하게 정확한 방법론적 지침을 마련하여 주시였다.
  
  위의 인용문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은 '영생불멸'이며 동시에 역사과학의 '유일하게 정확한 방법론'을 마련해 주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지금부터 22년 전에 나온 책의 머리말이지만 북한의 역사학에는 이 원칙이 지금까지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역사학연구의 유일하고 정확한 방법론이며, 이 원칙은 영생불멸하기 때문에 20세기말의 격랑이 온 지구를 휩쌀 때에도 북한의 역사학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대원칙 아래서 북한의 역사학은 세 가지 골격을 세우는데 진력해 왔다. 첫째는 무엇보다도 이민족과의 항쟁사를 체계화하는데 노력하였으며, 둘째는 역사상의 모든 발전은 근로인민대중에 의한 내재적 요인에 의해 자주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을 강조해 왔다. 그리고 셋째로는 단군의 고조선에서 시작하여 고구려-발해-고려-북한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중심으로 소위 북한식 정통사관을 확립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오늘날 북한이 철저한 자력갱생주의를 주장하는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국시로 내걸고 있음을 감안하면, 북한 역사학이 이렇게 구성되어야 할 필요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남북분단 상황에서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 우리 역사의 진정한 정통성을 계승한 국가임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그 역사서술에 깊이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토대를 둔 북한의 역사학이 민족의 역사라는 점을 아무리 강조해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적 관점에서 본 민족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더 나아가 위의 인용문을 보면, 주체사상은 '영생불명'이며, 김일성이 제시한 방법론은 '력사과학의 유일하게 정확한 방법론'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사에 대한 해석은 김일성이 제시하는 이 지침에만 따라야 하며 그렇게 정리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가 민족사의 정통이었다. 이는 그 외의 역사해석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본 역사학은 이단이라는 뜻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민족은 하나라고 하지만 적어도 민족을 인식하는 태도는 결코 하나가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을 직시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남북의 두 국가는 모두가 하나의 민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역사를 민족주의적으로 인식하지만, 상대방의 민족인식을 거부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단 이전의 장구한 역사 혹은 과거를 공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남북 양국의 역사학은 결코 하나가 아니며, 현재로서는 하나로 될 수도 없는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다.
  
  
  Ⅳ. 통합론의 이면에 내재한 문제점: 결론에 대신하여
  
  이상에서 필자는 남북한의 문제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상이한 국가간의 문제로 보아야 할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러므로 남북한의 역사학은 이 두 국가의 '국가사'이지, 결코 하나로 통합된 '민족사'가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따라서 남북의 두 국가가 하나로 통합되지 않는다면 두 국가의 역사학도 결코 통합될 수 없을 것이 당연하다. 여기에서 통합의 문제점을 좀더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지금 어떠한 통합을 말하는가 라는 점을 명료하게 하지 않으면 상당한 혼선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두 국가의 통합이라는 말은 두 국가의 통일이라는 말과는 어딘가 다른 것 같다. 우리는 통일이라는 말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으므로 이 자리에서는 일단 통합과 통일이 같은 의미로 생각하고 몇 가지 논의를 진전시키고자 한다.
  먼저 남과 북을 통일한다면 어떤 통일을 의미하는 것일까? 먼저 남과 북 어느 일방이 상대방을 압도해서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전쟁을 통해 통일을 달성하거나 아니면 경제력과 같은 또 다른 힘을 내세워 상대방을 자기 체제하에 흡수해 버리는 통일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통일을 전제한다면 남과 북의 역사학 통합 문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한 부분으로 일방적 통합을 강요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 남북의 통합을 논의한다면 그것은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는 통합, 양쪽이 동일한 지분을 가지고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이루는 어떤 통합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서로 적대적이며 너무도 다른 이념과 체제를 지닌 남과 북의 두 국가는 동일한 지분을 가진 50:50의 통합을 이룰 수는 없는 상태에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의 역사학의 통합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날로 다원화의 길을 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오랜 동안 독재체제 아래서 죄악시하던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에 의한 역사학 연구가 상당히 자유롭게 이루어 질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머지 않아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따라 역사연구를 하는 일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므로 만약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역사학계가 그러한 역사해석도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개방적이고 자유로와 져야 한다는 의미로 남북 역사학의 통합을 말한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생각할 뿐 아니라 이미 우리 사회는 그렇게 될 정도로 다원화되어 가고 있는 과정에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도 초보적 역사학도에 머물러 있는 필자의 소견으로도 우리 사회의 다원화 과정은 이 정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당분간 더욱 빠른 속도로 진전될 것이라고 믿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사회가 더욱 개방적이며 민주적 사회로 발전해 가는 과정이지 남과 북이 동일하게 참여하는 통합은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이처럼 개방된 사회로 진전될수록 북한과의 차이점은 더욱 확대되어 나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면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북한식 역사해석도 다양한 사회의 한 부분으로 포함될 수는 있을 지라도 북한에서 이러한 다양성을 그대로 인정하기는 사실성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유일무이한 역사연구의 지침인 주체사상과 전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다원화, 개방화는 대한민국의 발전이 될지언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체제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모로 보더라도 소위 남북한의 역사학은 적어도 남과 북의 역사학이 동일한 지분으로 참여하여 또 다른 하나에 이르는 통합에 이를 길은 없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다양한 역사해석이 이미 대한민국 사회 내에 공존하게 되었기 때문에 소위 남한의 역사학이라는 것도 하나로 묶을 수도 없게 되었다. 이미 대한민국 사회 안에서는 하나의 절대적 역사해석이라는 명제는 존재할 수도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자리에서 남북한의 역사학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학이라고 말해야 문제가 분명해 진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 두 국가는 너무도 이질적이어서 단순하며 대등한 지분으로 참여하는 통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두 국가의 역사학의 통합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모든 국가사는 그 국가의 국민 만들기에 직접 간접으로 참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남북의 두 국가체제가 아무리 상이하고 그 역사학의 방법론과 존재의미가 아무리 달라도 분단 이전 천년이 넘는 긴 세월을 통일된 국가와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무의미한 일로 돌릴 수는 없다. 한국전쟁 이후 그처럼 철저하게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너무도 다른 이념과 체제를 구축한 남북의 두 나라였으면서도 양쪽 모두 민족통일을 지상의 과제로 설정하였던 것은 이러한 역사를 무시하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남과 북은 분단되어 제 각기 다른 길을 갔으면서도 남과 북은 통일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는 데서는 한 가지였다. 그러므로 남북의 화해가능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커진 오늘날 통합의 문제를 활발하게 공개적으로 논의하게 된 것은 커다란 발전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에 걸친 철저한 남북대립에서 이제 겨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공존의 시대로 들어서려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처음 시도하는 공존의 세계가 우리 모두가 기대하는 것만큼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져 서로를 겨냥한 총칼이 녹아 호미와 낫이 되고 남북을 갈라놓은 저 무서운 DMZ가 남북을 왕래하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발길로 덮일 날이 있을지도 아직은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북의 문제를 서로 다른 국가간의 문제로 분리시켜 생각하는 사고에 더욱 익숙해져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남북이 공유하는 과거의 무게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북 사이에는 언제나 서로를 통합하려는 구심력이 서로를 떼어놓으려는 원심력보다 훨씬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를 가지고 날카롭게 대립해 온 남북의 두 국가가 어떻게 동일한 통합론에 합의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남북에서 주장되는 통합론은 그 장래를 낙관적으로만 보는 견해가 일반적인 것 같지만 사실 남북 두 국가는 치열한 대립으로 치달을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립이 한국전쟁과 같은 처절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남북 역사학의 통합, 그것이 이 글에서 필자가 규정한 개념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불가능하며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국가적 통합을 전제하지 않는 역사학의 통합을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남북한 두 국가의 대등한 통합의 길이 없다면 역사학 통합의 길도 없을 것이다. 남북한이 서로 (전쟁을 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관계를 맺는다 하더라도 서로 상대방을 통일하고자 하는 것을 국가적 목표로 지향하는 한 두 국가간의 경쟁은 언제나 치열할 것이며, 그 경쟁의 길에서 우열의 차이가 없기를 바란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러므로 현 단계에서 남북한의 역사학이 학문으로서 결코 동등한 가치를 지닌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인위적인 대등한 통합이란 불가능하며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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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rini.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