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는 12일 6·15 남북정상회담 3주년을 맞아 KBS ‘일요 스페셜’과 가진 인터뷰에서 대북 송금 특검 수사와 관련, “국가와 경제를 위해 수십년간 헌신한 사람들이 부정과 비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법처리 대상이 되고 있는 데 대해 참으로 가슴 아픈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면서 “대북 송금 문제가 사법심사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소신에 변함없다”고 주장했다.
  
  DJ의 이러한 주장에 맞장구라도 치듯 시인 고은씨는 오늘 SBS 라디오 ‘정진홍의 SBS 전망대’에 출연, “통일 문제, 남북한 문제를 사법 처리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이고, 세계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특검 자체가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면서 특검수사를 강도높게 비난했다.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과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도 다투어 DJ에 대한 특검조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DJ정부가 간여한 對北송금은 현대의 對北사업과는 무관한 정상회담을 위한 댓가성 송금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불법이 있었다는 것은 이미 특검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또 월간조선 5월호는 현대가 보낸 돈이 북한의 대남공작기관과 김정일의 私금고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러한 불법에도 불구하고 DJ와 그 비호자들이 '남북화해'와 '민족통일'을 내세워 '사법처리 불가'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목적이 善하다면 수단과 방법은 상관없다','통일을 위해서라면 법치주의, 자유민주주의는 짓밟아도 상관없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DJ는 평민당 총재시절인 1990년 2월27일 국회대표연설에서 '정주영씨가 가서 이북하고 얘기하고, 금강산 개발해서 돈 버는데, 돈 버는 것도 통치권입니까? 이제부터 이북하고 직접 무역하겠다는데, 무역하는 사람들이 전부 통치권입니까? 통치권 아닌 것이 무엇이 남습니까?'라며 통치행위론을 정면으로 부정했었다.
  
  DJ의 말바꾸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DJ가 재임시에는 박지원-임동원씨 등 소수의 측근들을 동원하여 극비리에 불법한 방법으로 對北송금을 행하면서 6-15정상회담을 추진했고, 오늘날에 와서는 6-15과 관련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음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DJ는 1970~90년대 초 야당 시절에는 공개적이고 투명하며, 국민적 동의와 민주적 절차에 바탕을 둔 통일정책 추진을 강조하면서, 정부가 이에 불응할 경우 '저항권'의 행사까지 시사했었다.
  
  『민주주의는 목적보다도 수단과 방법에 그 본질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도 국민적 동의와 민주적 절차가 없는 한 우리는 이를 용납할 수 없으며… (1972년 7월13일, 외신기자회견, 「7·4 남북공동성명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현 정부는 야당을 전면적으로 배제했으며, 뿐만 아니라 여당과 행정부마저도 참여시키지 않은 채 대통령과 중앙정보부장 등 2, 3명이 이를 독단, 전횡하고 있다. 이와 같은 朴정권의 자세는 신성한 민족적 과업 수행에 있어 모든 공로를 독점하려는 편협한 집권욕의 발로이며… 나는 朴정권이 지금이라도 독점과 비밀주의를 버리고 조속히 擧族的(거족적)인 태세와 공개적인 추진방법을 취하도록 다시 한번 촉구하는 바이다. …만일 그들이 끝까지 이같은 부당성을 시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독자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자유를 택할 것임을 분명히 밝혀 두는 바이다 (1972년 9월4일, 「남북적십자회담과 나의 주장」)』
  
  『정부·여당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통일을 정부만이 독점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야당과 공동처리해야 힘이 있습니다. 다해 놓고, 북한 하고 여러 가지 비밀 거래를 하고 있으면서 한 마디도 안 하고 있다가, 발표할 단계에서 말해 주는 그런 상황에서는 진정한 힘이 안 나옵니다(1991년 7월13일 제155회 임시국회, UN헌장 수락동의안 찬성 연설)』
  
  DJ가 남북관계와 관련해서 얘기한 위의 발언들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구구절절이 옳은 얘기들 뿐이다.
  그의 말처럼 설사 남북대화와 통일을 위해 정부가 민간기업을 앞세워 對北접촉을 했다 해도 그것이 실정법에 반하는 것이라면, 통치행위론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
  남북대화와 민족통일이 아무리 겨레의 염원이라 해도 '국민적 동의'와 '민주적 절차'가 수반되지 않는 한 우리는 이를 용납할 수 없다.
  대통령과 국정원장,문화부 장관 등 2,3명이 200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무리하게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것은 '신성한 민족적 과업 수행에 있어 모든 공로를 독점하려는 편협한 집권욕의 발로'라고 밖에 볼 수 없으며, DJ는 '지금이라도 독점과 비밀주의를 버리고'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
  만일 'DJ와 그 비호자들이 끝까지 이같은 부당성을 시정하지 않는다면, 애국국민들은 독자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자유를 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주장일까?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DJ나 그 비호자들이 노여워하는 일을 없으리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지난날 DJ 발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DJ의 말바꾸기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와서 자신이 과거에 했던 말들을 정면으로 뒤집어가면서 司法의 칼날을 피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DJ의 모습을 보며 안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송두환 특검팀이 '통치행위 여부는 사법부가 판단할 일'이라며 불법 대북송금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할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통치행위론'의 법리에 비추어 보아도 타당한 일이다. 특검팀의 성역없는 조사와 엄정한 사법처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