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월19일) 저녁에 저는 납북되었다가 30년만에 귀환한 李在根씨를 만났습니다. 올해 61세인 그는 1970년에 어선을 타고나갔다가 배와 함께 납북되어 강제억류당했습니다. 그는 1998년까지 함경남도 함흥 근방인 함주에서 살았습니다. 1998년에 북에서 결혼한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탈북한 그는 만주에서 숨어살면서 귀국하려고 했으나 우리 공관에서 영 협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저희 월간조선이 이 소식을 듣고 지난 여름 기자를 보내 이재근씨 일가를 구출해왔습니다.
  이재근씨가 말한 북한사정은 다른 탈북자들이 말하는 것보다는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이 분이 서른 살 때까지 한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남북한을 제대로 비교할 수가 있을 뿐 아니라 이해하기 힘든 북한의 실정을 한국인의 감각에 맞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속한 인민반(우리나라의 班에 해당)엔 24가구가 있었는데 1995년 이후 21명이 굶어죽었다고 합니다. 그는 북한에서 대기근으로 한 200만 명이 굶어죽었을 것이란 추정을 했습니다. 굶어죽는 사람들은 영양섭취가 충분하지 않아 서서히 체력이 소모되다가 마지막 단계에 들어가면 항문이 닫히지 않아 대변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데 이렇게 되면 거의가 사망한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마을에서 한 가정의 어른이 떠돌이 소년 소녀 거지, 즉 꽃제비 3명을 집안으로 유인하여 죽이고 그 사람고기를 삶아 가족과 같이 먹다가 붙들려 굶겨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재근씨는 북한에 대해선 절대로 식량원조를 해선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이유는 식량, 의약품이 모두 북한체제를 유지하는 세력, 즉 군인-당간부-국가보위부등 탄압기구 소속원들-군수공업체 종사자-평양주민들한테만 가기 때문에 북한정권의 체제유지능력을 강화시킬 뿐 인민들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은 매일 죽어나가는데, 마을 창고엔 쌀과 의약품이 가득한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물건들은 모두 지배계층한테만 분배되기 때문에 굶주림을 겪고 있는 인민들한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식량과 의약품은 이들 당간부들의 손을 통해 암시장에 팔려나가기도 하는데 결국 러시아의 마피아처럼 당간부들이 돈을 버는 것입니다. 이런 지배계층이 수백만인데 김정일은 이들한테만 식량배급을 실시하고 나머지 인민들한테는 배급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체제유지의 기득권세력만 관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김정일한테는 많이 굶어죽어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오히려 간편해지는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사람들은 은행에 예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문제는 예금을 찾아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외국에서 송금을 해도 은행에서 그 돈을 수취인한테 내주지 않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은행이 아니라 은행강도인 셈인데, 북한정권은 그나마 주민들이 갖고 있는 현금을 회수하기 위하여 지폐를 다른 새것으로 바꾸는 조치를 취해 묻혀 있는 현금을 은행에 강제예치케 하여 몽땅 회수해간다고 합니다.
   이씨는 1997년에 함주 시장바닥에서 만났던 꽃제비 형제를 잊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씨가 시장에서 국수를 사먹고 있는데 10, 7세 되어 보이는 형제 거지가 오더니 '국물만 좀 남겨주세요'라고 하더랍니다. 이씨가 국수 몇 가닥을 남겨 그릇을 건네주었더니 형와 아우는 서로 먹어라고 양보를 하더랍니다. 그 장면을 본 이씨는 가슴이 뭉클하여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합니다. 며칠 후 이 형제 꽃제비는 사회 안전부(경찰)에 붙들려 수용되었으나 도망을 가다가 동생은 높은 데서 떨어져 발목을 부러뜨렸답니다. 절뚝 절뚝하면서 동냥을 하러 다니던 7세쯤 되는 동생이 시장 한 구석에서 죽은 시체로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곧 트럭이 와서 가마니에 말린 소년의 시체를 싣고 어디로 가더랍니다.
  이재근씨는 김정일 정권이 집단농장을 개혁하여 주민들에게 나누어주면 단번에 식량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정일이 돈 안되는 이 개혁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주민들이 배급망에서 벗어나 통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말하자면 김정일은 통제의 편의를 위해서 생산성이 극히 낮은 이런 집단농장제를 고수함으로써 수백만의 아사자가 생기는 것을 방관한 셈입니다.
  이재근씨는 북한이 대기근 속에서도 군비증강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전쟁에 대한 집념은 절대로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아무리 김정일이 미워도 북한군은 김정일의 명령 일하에 한국에 대한 돌격을 감행할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이재근씨는 또 남한에 친북세력이 정말 많다고 하면서 이들중 상당수는 북한정권으로부터 돈을 받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