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7일 김대중 대통령과 서울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공동성명에서 [1972년 체결된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 조약이 전략적 안정의 초석이며 핵무기 감축 및 비확산에 대한 국제적 노력의 중요한 기반이므로 이 조약을 보존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이에 대해 뉴욕 타임스는 연일 [김대중 대통령이 러시아 편에 서서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망(NMD) 건설에 반대하고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지난 2일 국가안전보장 상임회의와 외무장관의 기자 간담회를 통해 [우리 정부는 미국의 NMD 건설 계획에 대해 지지나 반대도 아니지만 미국의 입장을 호의적으로 이해(sympathetic understanding)하는 입장]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한 외교전문 학자는 [이것은 일종의 대형사고]라고 표현했다. ABM조약은 NMD와 같은 전국적인 규모의 미사일 방어망을 만들지 못하게 규정한 것이고, 미국이 만약 NMD를 강행하려면 이 조약을 개정하거나 그 조약으로부터 철수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ABM을 보존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한 말은 대학생 수준의 상식으로도 미국의 NMD 건설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러시아는 속으로는 미국의 NMD 건설을 부분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한발 물러나 있는 상황인데 김대중 정부가 나서서 [보존과 강화]에 동의했기 때문에 푸틴도 놀랐을 것이라고 이 전문가는 지적했다. 이 학자는 또 [한국정부가 러시아의 對美 협상력을 높여준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정부 태도가 김대중 대통령의 소신이라면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경멸의 대상은 될 수 없다.
  문제는 이 엄청난 성명-미국과 군사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이 한국전쟁을 조장한 책임이 있는 한때의 적국 편을 들어 미국의 핵심적인 세계적 군사전략에 반기를 들었다는 것-이 당연한 파문을 몰고 오자 우리 정부가 보인 자세이다.
  ABM 조약을 지지하면 자동적으로 NMD에 반대한다는 뜻이 되는데도 [우리는 NMD를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우호적 이해를 하고 있다]고 했으니 미국으로부터는 경멸을, 러시아로부터는 배신감을 부를 만한 일이다. 한 교수는 [우리 외교당국자의 이런 태도는 비극 뒤의 희극]이라고 표현했다.
  한 관변측 학자는 '강한 정부'와 '강력한 정부'는 다르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과 거짓말은 다르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그 관변측 학자는 또 6.25전쟁의 책임을 김정일에게 물을 수 없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작년에 한 납북어부가 탈북하여 모국에 있는 우리 외교관을 찾아가 고향에 데려다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이 외교관은 [당신 세금 낸 적 있어요? 가족이 알아서 해결할 일이지 왜 정부를 괴롭혀요?]라고 막말했다.
  이 모든 말장난과 말실수의 배경과 공통점은 무엇인가.
  첫째, 김대중 대통령의 문제이다. 그는 실무자들을 잘못 부리고 있다. 정확한 지침을 주지 않았거나 주었다가도 문제가 생기니 그 지침을 수정했을 것이다.
  둘째, 국익을 수호하는 것이 외교의 상식인데 국가의 의무와 국가의 자존심과 국가의 좌표에 대한 인식이 대통령과 외교당국자선에서 잘 이해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 외교관들에게 국가가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과 국가의 자존심 및 국익을 수호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전문적 지식과 교양 및 의무 조항에 대해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았든지, 외교관들이 이렇게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고 해이해 있든지, 대통령의 생각이 이런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지레 짐작했든지...
  셋째, 외교관이 ABM과 NMD의 연관성을 잘못 알고 있고, 학자가 개인 김정일과 권력승계로써 북한체제의 前過를 함께 승계한 북한통치자로서의 김정일을 혼동하고 있으며, 외국에 나가 있는 공무원이 국민보호를 위해 공직자가 취해야 할 의무를 망각하고 있다면 공부가 필요한 일이다. 공부는 교실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 국가이익이 도마위에 오르는 외교 현장에서 진짜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외교관이 그 유명한 조약의 의미를 모르고 협상에 임한다면 수많은 인명과 물자의 손실을 결과할 수 있다. 공부 안하는 공무원, 권력자의 눈치를 보는 공무원은 국민과 국익을 배반한다. 그런 자가 대통령으로부터는 좋은 점수를 받을지 모르지만, 역사와 국가 및 국민으로부터는 낙제점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