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2월16일 청와대에서 외교통상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여러 말 가운데 이런 말을 했다(청와대 대변인 브리핑 내용)
  [우리는 미국과는 동맹, 일본과는 공조, 중국-러시아와는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금년은 외교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시 신정부와 우리 정부 사이에 확고한 대북정책이 정립돼야 한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 북미관계의 발전도 중요하다. 한반도에서 냉전을 종식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북미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북미관계란 표현이다. 미북이라 하지 않고 북미라고 한 점이다. 김대통령도 말했듯이 미국은 우리의 유일한 동맹국이다. 보통 동맹국이 아니라 군사동맹국이다. 적의 침략에 맞서 양쪽 국민들이 함께 피를 흘리기로 맹세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血盟이라 부르기도 한다. 팔뚝에 먹물을 서로 먹여 의형제 사이라고 다짐한 관계이다. 6.25남침 때는 미국이 우리를, 월남전에선 우리가 미국을 피로써 도왔다.
  북한정권은 헌법상 대한민국의 유일, 합법, 정통성에 도전하는 반란집단이다. 6.25
  전쟁과 수많은 테러를 일으켜 한국민을 살상한 범죄, 침략집단이다. 미국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어 있다. 국군의 主敵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主敵을 동맹국보다 먼저 내세워 北美라고 표현한
  것은 문제이다. 여기서 北이란 북한동포가 아니라 북한정권을 가리키는 것임은 명백하다. 북한동포와 미국시민 사이라면 동족애를 발휘하여 북미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정부와 북한정권 사이에서 남한 대통령이 북한정권을 우대하여 上席에 앉히는 語法을 쓴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우선순위와 가치관을 반영한다고 볼 수도 있다.
  개인간에도 식사를 할 때, 또는 차를 탈 때 상석과 하석을 구분하는 것이 한국인의 예의범절이고 서구에서도 정도는 심하지 않지만 마찬가지이다. 국가간에는 이 서열이 더욱 엄격하고 예민하다. 역대 정부와 상식을 지키는 언론 및 지식인들은 미국과 북한을 호칭할 때 항상 美北이라고 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일부 언론에서 북미라고 표기하더니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는 대통령까지도 북미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서열매김은 남북한의 현실, 헌법, 正義의 원칙, 국제관례와도 맞지 않다.
  유일하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은 북한정권이 같은 민족이니까 이민족인 미국보다 앞자리에 놓는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국민국가 이전의 前근대적 사고방식이다. 국가, 이념, 국익이 민족보다도 더 우월한 것이다. [같은 민족이니까...]하는 발상이 확대되면 [같은 민족이니까 김정일의 학살행위도 봐주자]가 된다. 사실 이런 생각을 가진 철없는 세력이 민족이란 말을 무기로 만들어 적화통일의 선전대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같은 민족이니까 북한정권의 反인류적 범죄도 봐주자]는 것은 [미군이 저지른 범죄는 처벌하고 동족이 저지른 범죄는 봐주자]는 식으로 연장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흑인차별, 유태인차별 같은 인종주의이다.
  근대 국민국가, 법치국가, 민족이란 감성적 단어보다는 국가, 법률, 인권이란 이성적이고 보편적인 단어를 판단의 기준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 확실하게 할 것은 김정일이 민족반역자란 사실이다. 그는 돈 안들이고 되는 개혁-집단농장의 私有化-만 하면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도 자신의 영향력이 약화된다고 이 개혁을 하지 않아 수백만의 주민들이 굶어죽어가도록 방치했고 호화극치의 사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공산당의 주력군이라는 노동자가 탄 대한항공기를 폭파시켰다. 그는 외래 사상인 사회주의를 맹종함으로써 동족을 도탄에 빠뜨린 사대주의자, 즉 민족반역자이다.
  이 김정일 정권을 부시 정부보다도 상석에 놓을 수 있는가. 정확한 말을 쓰는 연습은 대통령부터 해야 한다. 정치나 통치는 본질적으로 말을 통해 이뤄진다. 말이 거꾸로 가면 나라도 뒤집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