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 대한 회의론이라 할까, 한계론이라 할까 비관적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첫째, 그의 정치행태가 축소지향적이란 점이다. 정치란 본질적으로 세를 모으는 연대, 확장, 확대의 사업인데 그는 마음편한 사람들끼리만 주위에 모으려 하는지 지지기반을 좁혀간다는 것이다. 그 한 예로 지난해 4.13총선 직후 혼돈속에 빠진 자민련을 잡지 못한 점을 들 수 있다. 자민련과 한나라당은 이념적으로도, 인맥상으로도,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공통점이 많다. 이회창 총재가 17석의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인정해주었으면 김종필 총재는 큰 부채를 진 입장이 되었을 것이다. 최소한 자민련을 우호적 중립으로 돌려놓을 수 있었고, 김대중 대통령의 급진적인 대북정책에 대한 주류층의 불안을 효과적으로 대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종필 총재가 이회창 총재에게 개인적으로 교섭단체 문제를 부탁했을 때도 이회창 총재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이로써 두 사람 사이엔 인간적인 신뢰관계에 금이 갔고, 자민련이 다시 민주당과의 공조를 복원시키는 것을 막지 못하게 되었으며, 이회창 포위 작전이 지금처럼 힘을 얻게 되었으니, 이회창 총재로서는 당분간 만회하기 힘든 전략적 실수를 한 셈이다.
  둘째, 이회창 총재의 말에 문제가 있다. 그는 정치적 용어를 제대로 구사할 줄 모른다. 김정일의 한국 방문에 대해 그는 '김정일의 방한은 환영하지만 6.25남침, 아웅산 폭파사건, 대한항공 폭파사건에 대해선 사과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되풀이 하고 있다. 총론 찬성, 각론 반대인데 이런 식의 언어는 판결문으로서는 맞을지 모르지만 정치적 언어로서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이회창씨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김정일은 서울을 방문하기 전에 6.25남침, 아웅산 테러, 대한항공 폭파 사건에 대해 시인, 사과, 책임자 처벌을 해야 한다'.
  김정일의 서울방문을 환영하는 것은 정부 여당의 몫이지 이회창 총재의 몫이 아니다. 그가 아니라도 환영할 의무를 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회창 총재가 할 일은 김정일의 방한이 가져올 부작용을 지적, 견제함으로써 국가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회창 총재는 그러나 양시론적인 논법을 구사함으로써 '견제의 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정치는 결단이지 분석이 아니다. 분석은 결단의 前단계로 필요한 것이지 분석 결과를 국민들에게 공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회창 총재는 분석의 과정을 국민들에게 알림으로써 자신의 사려깊음과 고민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이는 정치인답지 못하다. 김정일의 방한에 대해서는 한 방향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방한에 따른 문제점만 지적하든지 환영하든지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정치이다. 환영도 하고 지적도 하겠다는 것은 법률가의 세계에선 있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치의 세계에선 그런 분석의 과정은 가슴속 깊이 묻어두어야 할 부분이다.
  김종필 총재는 최근 이런 이회창 총재의 태도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다.
  '정치인은 뒤집어써야 할 때는 뒤집어쓰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