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미망인의 6·25
  
  광목 상자에 담긴 육군 일등병 남편의 유골을 안고…
  
  현역 입영 대상도 아닌 37세의 남편은 40에 홀로 된 시어머니와 우리 가족을 두고 참전, 전사했다. 나는 두 아들도 군에 보냈고 휴가 나오면 마을 어른들을 찾아가 인사부터 하고 오라고 시켰다. 「애비 없는 후레자식」이란 말을 듣지 않도록…
  
  徐 蕃 任 경기도 하남시 하산곡동
  
  피난과 귀향
  
  1950년 6월25일 전쟁이 일어나고 그때 시동생이 육군 제17연대 현역으로 있었기에 우리는 인민공화국 체제하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가슴 조이며 3개월을 살고 있었다.
  
  악몽 속에서 살다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우리 국군이 다시 北으로 진격하니 가슴이 확 트이면서 살맛나는 세상을 만난 듯이 기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기쁨도 약 3개월간이고 12월 하순경에 내 남편과 막내 시동생(당시 중학교 4학년·19세) 형제가 제2국민병으로 징집돼 南下(남하)하였다.
  
  그때 내 나이는 32세이고, 40세에 홀로 되신 시어머님이 60세, 큰 아들이 12세, 작은 아들이 9세로 네 식구의 家長(가장)이 된 것이었다.
  
  아군이 평양에 입성하고, 韓滿(한만) 국경까지 간다고 하니 통일이 되는 것 같았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하여 역전이 되었다.
  
  1951년 1월 중순경에 우리집 4인 가족과 작은시댁 4인, 고모댁 6인 합하여 14인의 대가족이 집에 있는 우마차에 짐을 싣고 남쪽으로 정처없이 피난길에 나섰다.
  
  대가족이 이동하고 장정이 없으니 하루에 30~40리 길을 가기가 고작이었다. 가다 보면 적군이 지척에 와 있다는 소식이고 우리가 있는 곳은 아군의 최전방지역인 것이었다.
  
  가다 며칠씩 쉬고…. 2월 하순경에 경기도 안성군 죽산면에 이르니 아군이 더 이상 南下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기에 죽산면 소재 산골 어느 마을로 무조건 들어갔다. 제일 큰 집을 찾아갔더니 할머니가 혼자 계시며 자기 식구들도 다 피난을 가고 혼자 있다며 큰 사랑방을 흔쾌히 내 주시면서 기거하라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약 1개월 있다가 아군이 北進할 때 우리도 귀향길에 오르게 되었다.
  
  남편의 戰死통지서
  
  일할 사람은 나와 고모(당시 34세), 여자 둘뿐이고 나머지는 할머니와 어린 아이들이었다. 몇달 만에 경기도 광주군 광주면 경안리 9번지 집에 도착하니 집은 폭탄으로 불타 재만 소복이 쌓여 있었다.
  
  세 가족이 뿔뿔이 자기 집으로 가고 나는 집에서 약 1.5㎞ 떨어진 우리 전답이 있는 안골부락으로 가 방 하나를 얻어서 정착하게 되었다.
  
  논이 약 3000여 평, 밭이 1000여 평, 합하여 4000여 평의 땅이 있었는데 남편이 없으니 이 농사일을 내가 다 해야 했다. 다행히 나는 여자이지만 쌀 80㎏ 한 가마니는 거뜬히 지고 남자보다 더 멀리 갈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런 힘이 있기에 3000여 평 논 열다섯 마지기를 삽 하나 들고 새벽 5시부터 하루종일 일을 했다.
  
  동네 분들이 이것을 보시고, 나를 여장사, 여장부로 부르게 되었다. 가래질을 다 끝내고 못자리도 마치고 일을 하다 멀리서 남자만 보면 내 남편이 오는가 보다 하고 일손을 멈추고 가까이 오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이었다. 이러기를 몇날이 반복되었다.
  그때 30세 정도의 남자들은 계속 집으로 돌아오기에 나의 남편은 37세 고령이니 귀가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실망과 좌절 속에서 이때나 오시려나 저때나 오시려나 기다리다 3000여 평에 모를 다 심고 6월 하순경이 되었다. 눈이 빠지게 온 가족이 남편을 기다리던 중 편지가 날아왔다.
  
  기쁘기도 하지만, 왠지 초조하고 불안하며 가슴이 마구 뛰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예감이라는 것이 있었다.
  「고 육군 일병 곽봉준 전사」 통지서였다.
  강원도 인제전투에서 1951년 5월12일에 전사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전사한 것을 눈으로 못 보았으니 실감이 안 나고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시어머님과 어린 자식 둘이 있으니 마음을 굳게 먹고 들에 나가 일을 하지만 손이 떨리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며칠이 지나서 흰 광목상자에 담긴 유골이 나에게 안겨졌다. 이제는 남편이 확실히 전사한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아들 형제를 데려다 유골 앞에 절을 올리고 나서 나는 유골을 어루만지면서 아이들에게 『너희 아버지는 이 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전사를 하셨다. 너희들은 나이가 어리고 철이 안 나서 나의 말의 뜻을 잘 모를 것이다.
  
  이 다음 성장해서 아버지의 높으신 뜻 받들어 나라를 위해 더 큰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속으로만 한없이 울었다. 가슴이 찢어지고 하늘이 무너졌다.
  
  이제 나의 사랑하는 남편은 갔지만 시어머님과 어린자식 둘을 위해 내가 할 일이 너무나 많고 크기에 이 어미의 강한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애비 없는 자식 소리 안 듣도록 길렀다』
  
  나의 남편은 40세에 홀로 되신 시어머님께는 극진한 효자였다.
  그런 분이 어머님을 버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자식 형제를 두고 37세에 현역에 해당도 안되는데 자원입대하여 전쟁터에 간 것이었다.
  나의 남편 소속은 육군 제5729부대 1대대 3중대, 군번 0246002, 계급 이등병으로 1951년 5월12일 강원도 인제전투에서 전사하여 일계급 특진으로 「육군 일등병」이 된 것이다.
  
  당신은 육군 이등병으로 전사하였지만 그 어느 장군보다 더 존경스럽습니다. 당신이 희생되었기에 오늘 우리는 이렇게 편히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뿐이겠습니까.
  
  국립묘지에는 애국지사 222명, 장군과 장교 3000여 명, 사병 46000여 명, 경찰 8000여 명, 무명용사 5700여 명, 그리고 시신을 찾지 못한 호국용사 10만2000여 명, 시신을 찾았으나 이름을 모르는 5700여 명, 대전 현충원에는 약 1만4000여 명의 호국 영령들이 계시기에 이 나라가 이렇게 성장하고 세계 속으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이 기회에 당신과 그외 같이 잠드신 애국선열, 호국영령님들께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고이 잠드소서…
  
  나는 억척 같은 여자임을 자부한다. 논을 가는 것, 논을 쓰는 것 이 두 가지는 대한민국 어느 여성도 안하고 못했으나, 나는 할 수 있었다.
  
  아들 형제가 입대하여 휴가 나오면 군화를 벗기 전 마을(30여 세대) 어른들께 가가호호 방문해서 인사를 드리고 와야 식사를 하게 했다. 애비 없는 후레자식, 예의 없는 사람 소리는 듣지 않도록 가정교육을 철저히 시켰다.
  
  자유당 때는 원호혜택이란 것이 1년에 광목 몇 마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억척같이 일하여 나의 아들 형제를 다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농촌에서 대학 둘을 졸업시킨다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시절이었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은 이 어미의 뜻과 남편의 뜻을 이어 훌륭한 정치인이 되겠다고 정치에 발을 들여 놓았다. 큰 아들 인식이는 32세에 제8대 국회의원에 출마를 시작으로 10대 11대 15대 네 번 낙선했고, 작은 아들 용식이는 제10대 제14대 두 번 낙선하고 1995년 5월27일 지구당 위원장으로 일하다 과로로 유명을 달리했다.
  
  우리집에서만 국회의원 총 선거를 여섯 번 치렀다. 말이 여섯 번이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