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인쇄되어 내일부터 서점에 등장하는 2001년 월간조선 7월호에는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의 집안 이야기가 실려 있다. 李총재의 아버지는 대검 검사를 지낸 분이고 96세. 아직도 철봉을 하고 팔굽혀펴기를 100번이나 한다고 한다. 李총재의 어머니도 90세이다. 李총재의 이모는 92세의 종신 학술원 회원(농학자)이고 李총재의 큰 아버지는 유명한 화학자 李泰圭 박사(90세에 타계). 李총재의 장인은 대법관을 지낸 분이다. 이처럼 長壽와 秀才를 겸하고 있는 李총재의 집안 사람들은 키가 작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회창 총재는 자타가 공인하는 명문의 집안과 학교를 나왔다. 한국적인 관점에서는 엘리트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두루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반듯한 집안, 학교, 직업을 거친 극히 정상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가 법치를 중심으로 하여 정상적으로 기능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이회창 총재의 이런 경력이 안심할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반면, 이회창 총재에게서 인문적인 교양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인문학적인 교양이라면 흔히 말하듯이 문학, 철학, 역사를 중심으로 한 全人的 지식과 안목을 말한다. 원만하고 균형감각이 있으되 인생관과 역사관을 나름대로 갖춘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 교양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는 이유는 李총재의 말 속에서 명석함은 알 수 있지만 독서의 축적이나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명석함을 뒷받침해주는 신념이나 가치관, 이를 정확히, 그리고 감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정치적 감각과, 행동에 深度를 더해주는 역사인식이 썰렁하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지지자들을 감동, 감흥시키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차갑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사회라면 이회창 총재처럼 고지식하게 보일 정도로 정상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국가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자신을 말살하는 것을 유일한 존재 이유로 알고 있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대면하고 있으며 김정일 정권의 조종을 받고 있는 남한의 거대한 親김정일 세력과 대결해야 하는 어려운 입장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가 될 사람은 올바른 역사관에 기초한 가치관, 거기서 우러나오는 신념과 용기를 가져야 위기 국면을 돌파할 수 있다. 이승만, 박정희 같은 사람은 바로 그런 지도자였다.
  이회창 총재에게 부족한 것 같이 보이는 이런 역사적 용기와 신념은 자신의 고민, 체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서의 축적에서 나오는 것이다. '역사를 모르면 늘 어린아이다'란 말은 대통령 후보들한테 가장 적합한 경고일 것이다.
  李총재가 타고 난 것으로도 보이는 수재성과 정상성, 거기에 후천적으로 얻을 수밖에 없는 이런 역사관과 행동철학이 보태질 수 있을 것인지가 궁금하다.
  李총재는 꼭 결단해야 할 부분에서까지도 양비론이나 양시론을 쓰는 경우가 보인다. 박근혜 부총재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李총재의 견해 표명을 요구하고 있는 데 대해서 분명한 의견을 밝히지 않고 있는데 학자라면 모를까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전직 주요 대통령에 대한 시각을 정리, 공개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박근혜씨의 그런 요구가 무리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이다. 건국, 6.25, 근대화, 민주화 등 우리 현대사의 주요 포인트에 대해선 대통령이 될 사람이 분명하게 자신의 역사관을 밝혀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생각은 그런 역사관의 중요한 일부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답방 문제에 대한 이회창 총재의 생각도 보다 분명히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답방을 환영하는지, 반대하는지. 환영한다면서 6.25 - 아웅산 테러 - 대한항공 폭파 사죄를 요구할 수가 있는 것인지, 일반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김정일 답방을 환영한다고 말하여 한국 사회의 좌파 표를 얻으려 하고 그러면서도 사죄를 요구하여 우파 표도 먹겠다는 양다리 전략은 효과도 없을 뿐 아니라 중대 문제에 대한 기회주의적 행태로 비쳐져 큰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용기와 신뢰성에 금이 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