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새댁의 南行記
  
  피난 열차 지붕 위에서 졸다가 떨어져 죽는 사람들
  앞에는 국군, 뒤에는 중공군. 戰線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피난길은 죽음의 연속이었다. 채이는 것은 사람의 시체였다. 신발이고 바짓 가랑이고 온통 피투성이였다
  
  전 순 옥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평양에서의 6·25 전쟁 前夜
  
  내가 겪고 지내온 발자국을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렵고 아득한 옛 추억이다. 나의 출생지는 강원도 고성군 간성면 어천리이다. 이곳은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하다. 나는 간성에서 태어나 일곱 살까지 그곳에서 살았는데 병자년 9월에 큰 홍수가 나서 우리 집이 물에 떠내려가자 아버지는 가족을 모두 데리고 강원도 장전으로 이사를 갔다. 원래 농사꾼이었던 아버지는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다시 통천으로 이사를 갔다.
  
  일본인들이 우리 같은 처녀들을 모두 잡아다가 정신대로 보낼 때여서 거기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나는 서울 청량리에 있는 일본 군복을 짜는 태평주식회사 방직공장에 취직했다. 이곳에서 같이 일하던 친척의 소개로 남편(이원칠, 당시 나이 26세)을 만나 내 나이 스무 살 때인 1947년 3월18일 간단하게 舊式(구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남편의 고향인 평양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 당시 남편은 평양 시청에 근무했었는데 기독교 가족이라 신분이 좋지 않다고 쫓겨나서 市 소비조합 역전 매점에서 근무하였다. 나도 역전식당에 콩나물을 대주는 장사를 했는데 이 무렵 이미 이북에서는 국제정세가 나쁘다면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방공호 속을 들락날락거리는 훈련을 매일매일 하면서 불안하게 지냈다. 공산당원들은 매일같이 반원들을 모아놓고 독보회라는 정신교육을 시켰다. 두세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를 잘못해도 정치보위부에게 끌려갔다.
  
  모든 생활 필수품은 부족하였고 공민증을 목에 걸고 다녀야 하며 시장에 가도 검문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다. 평양 시내에는 전차가 다녔는데 물론 공민증과 차표가 있어야 탈 수 있었다. 기차로 한 정거장만 가려 해도 구청에 가서 여행증을 끊어야 했다. 여행증에는 어디를, 무슨 일로 가며, 언제 돌아올 것이라는 시간까지 기입해야 했다. 그런 후 돈을 내야 여행증과 차표를 살 수가 있었다.
  
  일상생활도 매일 저녁마다 내무서원들이 臨檢(임검)을 가가호호로 나와서 인구조사, 숙박계 조사를 했다. 혹시라도 이웃 사람이 와서 재워준 사람도 400원의 벌금을 물었다. 어느 직장이고 한달 봉급이 700원인데 법을 위반하면 벌금을 물렸다.
  
  그 당시에는 세대주가 보호하는 부양가족은 한 살에서 열일곱 살까지 세대주 책임이고 노인은 60세 이상만 세대주가 보호하고 식량배급을 했다. 그 다음은 각자 일해야 자기 몫을 받을 수 있었고 한 달에 10일씩은 노력동원도 해야 했다. 당시 군인들은 특별대우를 받았다. 상점이 따로 있어서 모든 것을 우대했고 시골의 인민군관 집에는 농사도 협동으로 지어주었다.
  
  전쟁 발발 직후의 평양
  
  1949년 말부터 시민생활이 아주 절박해지며 매일 라디오에서 어수선한 방송이 나왔다. 마침내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에 전쟁이 터졌다고 라디오에서 방송이 나왔다. 남한 괴뢰들이 북한을 쳐들어온다고 하면서 공습경보 사이렌을 마구 울려댔고 시민들은 우왕좌왕하며 이리저리 뛰었다.
  
  6월27일에는 평양 상공 높이 반짝반짝하는 B-29機 비행기가 날아오더니 평양 동대원 비행장으로 곤두박질치듯이 폭격을 하고 시커먼 연기가 평양시내를 덮었다. 평양에 있는 인민군사령부에도 폭격을 하고 비행기는 사라졌다. 검은색의 이북 비행기도 잠깐 나타나서는 미사일을 발사하더니 금방 사라졌다.
  
  다음날은 제트기라는 작은 비행기가 와서 평양 시내 전봇대 위로 번개같이 날아다니면서 군사시설을 찾아 기총사격을 하는데 한번 지나가면 사람 시체가 수도 없이 피바다를 이루며 범벅이 되어 뒹굴었다. 그래도 누구 하나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너나 할 것 없이 어디론가 들고 뛴다.
  
  그 다음날에는 정찰기가 먼저 와서 공중에서 삐라를 뿌린다. 어느 지역에 폭격한다, 선량한 시민은 피하라고 한 후에 이어서 바로 공습비행기가 날아온다. 평양 시내에는 매일 폭격기가 편대로 와서 시간마다 군사시설과 인민군 요충지들을 폭격하였다. 폭음 소리와 칠흑 같은 연기 속의 폭약 냄새는 사람이 쓰러질 정도이고 바로 앞의 시야도 분간할 수 없었다.
  
  일단 평양 시내는 피해야 살겠다고 생각한 우리 두 내외는 밤새도록 서쪽 외각지로 뛰고 걷다가 사람들이 많이 가는 데로 따라갔다. 날이 밝아져서 우리는 몇몇 청년들과 같이 평양 서쪽에 있는 노악산이라는 깊고 험산 산 속으로 들어갔다. 평양에서 한 삼십 리밖에 안 되는 거리지만 우리 부부는 잡곡 섞인 쌀 약간하고 왕소금 한 줌을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갔다. 가다 보니 인민군에 안 가려고 내무서원 눈을 피해 도망온 청년들이 한 십여 명이 있었다. 그때는 젊은 청년들과 고등학생까지 모두 군복을 입혀서 최전선으로 보냈다.
  
  내 남편은 원래 기독교 집안으로 공산당을 싫어하는데다 그때 잡혀가면 원산에 있는 해병으로 간다는 소문이 나 있어, 가면 무조건 죽는 것이므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피하는 것이 사는 길이었다. 그들과 함께 낮에는 큰 바위 위에 올라가서 평양 시내가 폭격당하는 것을 바라보기도 하고, 더덕이나 도라지 같은 산나물과 나뭇잎이나 나무껍질을 까먹었다. 쌀은 있어도 연기가 나면 숨어 있는 곳을 들킬까봐 불을 못 붙여 밥을 지어먹지 못하고 생쌀을 물에 불려 한 줌씩 나누어 먹고 지냈다.
  
  어둠 속에 나타난 호랑이
  
  한 10일 정도를 그렇게 지내는데 7월에는 매일 장마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남자들이 돌멩이를 주워 바위와 바위 사이에 걸쳐놓고 손으로 나뭇가지를 꺾어 올려놓은 뒤 넓적한 가랑잎을 따서 그 위에다 많이 덮어놓은 움막집 같은 것을 지어 간신히 비를 피하기도 하고, 맑은 날에는 가랑잎을 많이 따서 이불과 요를 삼고 드러누워 나뭇잎 사이로 하늘을 쳐다보면 수많은 별들이 우리를 비추어 주는 것 같았다.
  얼굴에는 새똥과 이슬이 축축하게 내린다. 동이 틀 무렵에는 날개치며 소리내어 날아가는 온갖 새들과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우리 일행은 내무서원들이 잡으러 올까봐 두려움에 떨면서도 자연의 향기를 낙으로 삼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아마도 산에 들어와 숨어지낸 지 아흐레쯤 된 것 같다. 호랑이가 나타났다. 우리 일행 중에는 노인 두 분과 나 같은 젊은 아낙네 한 명이 있었다. 잠 잘 때면 우리 두 여자는 가운데, 노인 두 분은 맨 끝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둠 속에서 두 개의 시퍼런 불빛과 킁킁 냄새를 맡는 소리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우리 모두는 놀라서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한 할아버지가 『점잖은 짐승이 어디로 오느냐』고 고함을 치자 그 호랑이가 우리 옆으로 휙 하고 지나갔다. 우리 모두는 벌벌 떨며 서로 졸지 못하게 꼬집으면서 밤을 새웠다. 산 밑에 조금 내려가면 절이 있었는데 그 절에 내려가 주지스님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이 산을 지키는 호랑이가 한 마리 있다고 하시면서 낮에 시내를 가려면 언제나 나타나 동행한다고 했다. 주지스님은 또 내무서원들이 이 산에 軍 도피자가 많다는 소식을 듣고 산을 포위할 계획이라고 일러주셨다.
  
  할 수 없이 우리 일행은 각자 헤어져 살길을 찾기로 했다. 7월6일경 우리 부부는 산 밑으로 내려와 옥수수 밭으로 숨어서 토마토 밭으로 갔다. 배가 너무 고파서 허겁지겁 토마토를 물만 빨아 먹었는데도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한참을 밭고랑에 쓰러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평양 시내에서 한 10여 리 떨어진 곳에 남형제산이라는 야산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곳은 평양 서쪽의 기차를 고치고 만드는 조차장 바로 옆이었는데 조차장이 폭격을 받으면 이 산까지 파편이 날아오곤 했다. 우리는 아카시아 밭으로 들어가서 몸을 숨기고 있는데 모기가 얼마나 많은지 입으로 눈으로 마구 들어가는데 그걸 견딜 수가 없어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우리가 장소를 옮기자마자 우리가 있던 그 자리에 큰 파편이 떨어졌다.
  
  그때 나는 교회는 안 다녔지만 하나님께 감사가 절로 나왔다. 시댁은 모두 기독교인이다. 부모님의 기도로 인해 우리가 은혜를 받은 것으로 믿고 감사했다. 모기가 온몸을 칭칭 감고 뜯어먹는 데 견딜 수가 없고, 조차장 폭격으로 날아오는 파편에 사람들이 연신 다치고 울고 죽고하여 더 이상 거기에 남아 있을 수도 없었다.
  
  군사시설·중요기관 옮겨도 폭격
  
  먹을 것도, 갈 데도 없어서 다시 평양 시내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꽝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어버렸다. 한참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 두 사람은 흙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래도 다친 데는 없었다. 파편이 떨어지면서 흙이 튄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살았다고 좋아하며 둘이 손을 꼭 잡고 계속 갔다.
  
  폭격을 좀 덜 받고 있는 것 같은 西평양 경찰서 부근에 아는 이발소 주인이 있어서 찾아갔다. 그분은 인민반장을 하는 사람인데 평소에 민주주의 남한을 좋아하는 사람 같아서 그 사람을 찾아갔다. 그때가 7월10일쯤 되었는데 그 주인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 집 뒤의 산 밑에는 일본 사람들이 파놓은 굴이 있었는데 그 반장은 그 굴에 청년들을 세 명이나 숨겨주고 있었다. 우리 남편도 인민군을 안 가고 피해왔다고 할 수는 없고 폭격에 맞아 다쳤다고 거짓말을 하고 아프지도 않은 다리, 팔, 얼굴을 붕대로 칭칭 감고 절뚝거리면서 그집 일을 도우면서 한 달 정도 살았다.
  
  전쟁은 날로 더 심해지고 폭격은 하루도 쉬지 않고 더 많은 비행기가 왔다. 하루는 정찰기가 와서 비행기 100대가 온다고 삐라를 뿌리고 가더니 곧이어 폭격기가 새까맣게 나타나더니 평양 시내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폭격기가 한번 지나가고 나면 인민반장은 다니면서 나와서 죽은 시체를 치우라고 아우성이다. 안 나오는 동무는 불순 반동분자라고 협박한다. 나가보면 거리고 집이고 할 것 없이 사람 시체가 팔, 다리, 머리가 각각 따로 나뒹굴고 있고, 한 트럭씩 주워 담아 가지고 가서 어디다 묻고 다시 와서 또 싣고… 연신 시체 실어 나르는 차밖에 다니는 것이 없었다.
  
  사람 살리라는 비명 소리와 하도 많은 시체를 보니까 아무 감각이 없고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되겠지 하는 절망적인 생각이 앞서서 고개를 흔들곤 했다. 8월 어느 날 성교리 東평양에서는 폭탄이 내려오다가 중간에서 터져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죽었다고 한다. 밤에도 조명탄을 띄워놓고 폭격을 해서 개미 기어가는 것까지 다 보인다고 하여 밤에도 숨을 곳이 없었다.
  
  이때는 유엔군이 평양에 들어오기 직전이고, 우리가 있는 곳이 관공서인 西평양 경찰서 부근이기 때문에 폭격이 더 심한 것 같았다. 그 주변에 교회가 있었는데 거기는 폭격을 안한다고 해서 경찰서를 그 곳으로 옮겼다. 그러나 밤새도록 군사시설과 중요기관을 옮겨놓으면 다음날 어떻게 알았는지 그곳을 또 폭격했다.
  
  유엔군의 평양 入城
  
  유엔군의 평양 점령 직전이 되어서는 더 많은 폭격이 있었고, 남자들은 붙잡히면 끌고 가서 평양 시내 화신 백화점 지하실에다 모두 쓸어넣고 따발총으로 다 죽인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러니 남자들은 절대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인집 부엌에다 또 방공호를 파놓고 그곳에 먹을 것을 조금씩 준비해 놓고 있었다.
  
  9월4일. 드디어 평양 시내에 대폭격이 있었다. 평양상공은 폭격기로 뒤덮여 있었고 시민들은 산이고 들이고 도망을 갔다. 나와 주인 아주머니는 아이를 하나씩 업고 北으로 가는 피난민 대열에 끼어 같이 갔다.
  
  산과 들에는 발에 차이는 것이 온통 시체이다. 길바닥에 쌓인 석탄가루에 뒤덮여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밟아보면 다 시체이다. 그러면서 북쪽으로 무작정 가다보니 야산이 있었다. 모두들 그 산으로 올라갔다. 평양 쪽에서는 제트기에서 쏘는 기관총 소리와 폭격하는 소리로 난리가 났다.
  
  그날 밤, 유엔군이 조명탄을 평양 하늘 높이 띄우고 西평양을 지나 대동강을 넘어서 하룻밤 사이에 평양으로 들어와서 인민당사 중앙청을 점령하였다는 소문이 났다.
  힘이 센 유엔군을 당할 수 없어서 평양을 내주고 모두 도망을 갔다. 모두가 뛴다. 산중턱에 올라가 있는데 한국군 전투기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었다. 앞에서 누군가가 빨리 흰 수건을 흔들라고 소리를 질러 우리 모두 수건을 하늘 높이 흔들었더니 알았다는 듯이 우리에게 사격을 하려다가 그냥 지나가 버렸다.
  
  우리는 모두 산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그 산에서 평지까지 내려오니 인민군과 내무서원들이 그 지경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잡아서 끌고 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몸수색을 당했다. 귀중품이나 수상한 것이 있으면 모조리 빼앗아 갔다. 나는 대한민국 돈 100환짜리 다섯 장을 얼른 꺼내서 발바닥 양말 속에 숨겼다. 이것을 들키면 그 자리에서 총살이다. 다행히 들키지 않고 위험을 면했다.
  
  그 수건을 흔든 지경에 있던 사람들은 내무서원들이 모두 잡아서 물이 배까지 차는 큰 방공호 속에 떠밀어 가두었다. 방공호가 가득 차면, 반동분자라고 하여 따발총으로 쏘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문 입구에 숨었다가 다른 사람을 조사하는 사이에 살짝 도망을 쳐서 그 방공호 뒤로 돌아가니 그곳은 천야만야한 낭떠러지였다.
  우리는 애기를 하나씩 업고 있었지만 오갈 길이 없어 그냥 밑으로 떨어졌다. 아이들은 죽는 비명소리를 지르며 굴러 떨어져 내려갔다. 중간에 나뭇가지에 걸렸다가 굴러서 저 밑바닥 도랑으로 처박혔다. 정신을 차려보니 업은 아이는 사방이 긁히고 찢기고, 나도 이곳 저곳에서 피가 나고 아픈 것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살았다는 희망으로 기뻤다.
  
  도랑에서 씻고 찬물을 실컷 마시고 나니 정신이 좀 들었다. 이제는 이곳을 빨리 떠나야 한다. 산 곳곳에서는 인민군 패잔병들이 어딘가를 향해서 따발총을 쏘아댄다. 우리는 도랑가 길로 걸어가는데 뱀이 왜 그리 많은지 몇 번이고 물릴 뻔하다가 또 피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감사해했다.
  
  피난민과 패잔병들이 뒤섞이다
  
  그곳에서 조금만 더가면 그 아주머니네 친정이 있어서 거기로 가려고 하는데 곳곳에 인민군 패잔병들이 시골 동네로 들어가서 소, 돼지, 닭을 있는 대로 털어서 잡아먹고 남아 있는 청년들을 끌고 가기 때문에 마을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먼 곳에서 친정 집을 바라만 보고 가지는 못했다. 옥수수 밭에 숨어서 기진맥진해 주저앉아서 배가 고파 옥수숫대를 꺾어 씹기도 했다. 아이들은 지쳐서 울지도 못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밤중에 왜 그리 추운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벌벌 떨면서 새벽까지 지냈다. 새벽이 되자 평양 쪽은 조용한데 인민군과 피난민들이 뒤섞여서 산으로 들로 뛰고 난리다.
  
  우리도 서로 상의하여 평양으로 다시 가기로 했다. 인민군들의 눈을 피해 걸어가는데 저 멀리서부터 평소에 보지 못했던 지프차가 태극기를 달고 우리 쪽으로 오면서 『선량한 북한 시민들이여, 평양은 자유대한민국이 되었으니 피난가지 말고 평양으로 돌아가라』고 방송을 하면서 오고 있었다. 우리는 너무 좋아서 두 손을 높이 들고 논둑에서 나와 『만세, 만만세!』를 외쳐 부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들의 몰골이야 오죽하겠는가. 며칠 먹지도 못하고 산과 숲속 흙에서 자고 씻지도 못하고 신도 못 신었으니 사람으로 볼 수도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너무 기뻐서 평양을 향해 뛰어갔다. 산과 들에는 맨 죽은 사람의 시체다. 우리는 겁도 없이 혹시 우리들의 남편인가 하고 가까이 가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평양을 향해 가면서도 너무 고맙고 기뻐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서로 얼싸안고 좋아하면서 서둘러서 갔다. 전날까지도 전쟁하느라고 총소리에 콩 볶듯 시끄러웠었는데 조용한 가운데 국군 복장을 입은 군인들, 모자를 쓴 새까만 사람과 코가 높고 눈이 파란 군인들이 보인다.
  
  군데군데 트럭들과 지프차도 보이고 시민들도 간혹 보인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면서도 남편들이 어떻게 되었나 걱정이 되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집으로 달려가 보니 집은 아무 이상이 없는데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목놓아 울고 있노라니 주인집 아저씨가 나타났다. 서로 반가워하면서 자초지종을 말하는데 방공호에 있던 사람들 중 너무 좁아서 먼저 나간 사람들은 퇴각하는 인민군 패잔병들의 총에 맞아 다 죽고 주인집 아저씨와 우리 남편이 제일 나중까지 남아 있다가 나와서 살았고 대한민국 치안대로 뽑혀 나갔다고 한다.
  
  그러고 있는데 나의 남편도 돌아왔다. 우리는 얼싸안고 엉엉 울었다. 너무 반가워서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도 몰랐다. 남편은 원하던 대로 대한민국을 위해서 죽도록 일하겠다고 하면서 치안대에 들어갔다.
  
  그때는 1950년 9월, 남편은 평양의 중심지인 대동문 파출소에서 근무하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근무처에서 가까운 대동강을 건너가는 대동문역 부근에 집을 구하고 거기서 살기로 했다. 거기는 평양에서 제일 번화한 거리인 상수리였다.
  
  우리 집 부근에는 대한민국 국군들을 치료하는 임시 병원이 있었고 그 옆에는 유엔군이 주둔하고 있는 부대가 있었다. 남편은 오여중학교에 임시로 창설된 대한민국 경찰학교에 교육을 받으러 갔다. 우리 집 옆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사는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와 나는 열심히 돈을 벌었다. 미군부대 세탁물을 대동강에 가지고 가서 추운 겨울에도 손끝을 호호 불면서 빨아 돈을 많이 벌었다. 대한민국 돈 5000환으로 바꿔놓았다.
  
  유엔군의 평양 철수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미군부대에서 심부름하는 한국 사람이 와서 우리에게 쌀을 시장가격보다 절반이나 싼값으로 사라고 했다. 우리가 사겠다고 하니까 이 사람이 돈을 먼저 주어야 물건을 가져온다고 하기에 어리석은 우리는 영하 30도가 넘는 추운 겨울에 그 고생하면서 번 돈을 몽땅 그 사람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약속한대로 리어카꾼을 데리고 아침부터 저녁 때까지 미군부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분을 참을 수가 없어서 미군부대 헌병대로 찾아갔다. 내 나이 23세로 한참 나이에 점령군의 횡포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포악한 시기에 헌병대 같은 곳을 찾아간다는 것은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헌병대를 찾아가서 미군 헌병한테 영어를 모르니 손짓 발짓 해가며 일본어를 섞어가면서 마구 떠들어댔다.
  
  한참 얘기를 하는데 한국 군인이 나오더니 통역을 해줬다. 그래서 북한 사람을 도와주는 대한민국이라고 믿었는데 손발이 얼어가면서 번 돈을 사기해 가는 아주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그 돈을 찾아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통역하는 국군이 앞장서서 미군 헌병들과 함께 그 사람 숙소에 같이 가주었다. 그 사람은 내일이면 그 부대가 후퇴하는 것을 알고 오늘만 넘기면 된다고 생각하고 사기를 쳤는데, 자기방 침대에 누워 있다가 헌병이 들이닥치니까 깜짝 놀라서 벌벌 떨었다.
  
  헌병은 돈을 돌려주라면서 따귀를 때렸다. 그 사람은 돈을 내 놓았다. 나는 그 사람이 너무 괘씸해서 확 밀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헌병과 함께 밀려서 두 사람이 이층 계단으로 굴러 떨어져 버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면 큰일이다 싶어서 내려다 보니 둘은 다행히도 괜찮았다. 헌병은 그 사람을 한참 때려주고는 돌아갔다.
  
  나는 당시 교회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 감사해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또 그 착한 헌병에게 감사했다. 그날 밤에 평양에 있던 국군과 유엔군이 다 후퇴하게 되어 그것을 안 「쏘리」라는 그 심부름하는 놈이 아무것도 모르는 주민들에게 사기를 쳐서 모은 돈을 챙겨서 도망가려고 했던 것이다.
  
  우리 집 옆에 국군임시병원이 있었다. 그날 낮에 그 병원 사람들은 다 떠났는데 밤에 공산당원들이 숨어 있다가 몰래 수류탄을 수십 개 던졌다. 그러나 이미 부상병들과 병원 전체가 다 떠나고 난 뒤라서 다행이었으나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불길이 계속 옆으로 번져서 주변이 불바다로 변하고 유리창은 다 깨졌다.
  
  평양의 군사시설에 유엔군이 갖다놓은 군수물자, 양식 중 유엔군이 전쟁에 밀려 후퇴하면서 못 가져가는 것은 북한군들이 먹을까봐 다 불태웠다. 평양 시내에는 불꽃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숯덩이가 되어서 눈 내리듯 머리 위로, 어깨 위로 떨어지는데 이루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끊어진 대동강에서 필사의 탈출
  
  1951년 1월4일, 평양에서는 全시민들이 대동강변으로 나와 대동강을 건너려고 했다. 모든 사람들은 이리저리 우왕좌왕 대동강가에 나가서 강을 건너려고 했으나 대동강 다리는 이미 폭격에 끊어져서 물에 가라앉았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다리를 향해 몰려갔다. 다리가 끊어진 곳까지 간 사람들은 건너갈 수 없는 걸 뒤늦게 알고 돌아가려 했지만 뒷사람들에 밀려서 물에 빠져 죽었다. 강에는 시체가 둥둥 떠내려갔다.
  
  전쟁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밀려서 후퇴하는데 남편은 오여중학교에 경찰교육 받으러 가서 오지 않았다. 지방 빨갱이 공산당원들은 숨었다가 나와 사람을 잡아가고, 온통 무법천지이다. 나는 간단한 짐을 싸놓고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꽃을 피해 이리저리 헤맸다. 만약 빨갱이들이 내 남편이 경찰학교에 교육받으러 간 걸 알면 나는 무조건 총살이다.
  
  사람은 안 오고 어쩔 줄 몰라 쩔쩔매고 있는데 드디어 남편이 나타났다. 경찰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모두 트럭에 태워서 대동강을 건너 南으로 보내는데 나의 남편은 나를 데리고 가려고 달리는 트럭에서 뛰어내렸다고 했다. 그리고는 빨리 대동강을 건너야 한다고 작은 보따리를 하나씩 지고 대동강변 대동문 파출소 부근으로 갔다.
  우리 집 위에도 불똥이 떨어져서 집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평양 상공에 북한 비행기가 잠깐 비치더니 곧 사라졌다. 북한 비행기는 색깔이 약간 시커멓고 비행기 소리도 조금 다르다. 공산당들이 숨었다가 나와서 미군이 도망간다고 좋아서 춤을 추고 난리다.
  
  대동강변에는 나룻배가 있었는데 군인들이 모두 깨부수어 버려서 시민들은 모두 대동강 둑에서 헤매다가 약하고 힘없는 사람이 쓰러져도 그 위로 사람이 밀려서 밟고 지나가니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대로 밟혀 죽고 만다. 우리 부부는 이틀을 아무것도 못 먹고 대동강변만 헤맸다. 어떤 사람들은 나무조각을 엮어서 물에 띄워놓고 건너려다 죽는 경우도 많았다.
  
  모란봉 밑에 능수버들이 늘어진 곳에 가면 평양에서 선교리로 건너가는 수도 전기선이 연결되어 그 넓은 강을 건너 동대원 쪽으로 건너가는 줄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젊은 청년들은 그줄을 이용해서 넓은 대동강을 건넌다고 했다. 마치 대관령에 명태 말리려고 걸어 놓은 것같이 매달려 건너가려 했지만 영하 30도가 넘는데 어떻게 그 넓은 강을 건너겠는가. 손이 얼어붙어 중간에서 다 떨어져 죽고 만다.
  
  우리는 다리 주변을 맴돌다가 유엔군이 임시로 가설해 놓은 목다리로 가서 도보로 후퇴하는 유엔군 대열에 끼어 건너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새벽 두 시경부터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필사적으로 군인들 대열에 끼어들었다. 어떤 군인들은 깜깜한 밤중인데도 어떻게 알고 우리를 빼냈다. 우리는 그래도 끈질기게 군인 대열에 끼어들었다. 그러다가 다리목에 가면 거기서 미군 헌병한테 검문을 받는다.
  
  거기서 검문에 불응하면 바로 현장에서 사살한다고 했다. 나는 그 군인대열에 끼어 검문소를 무사히 통과했는데 다리 중간쯤에 가다가 돌아보니 남편이 헌병한테 걸려서 검문소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나는 더 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거기만 보고 있었는데 남편이 없어졌다. 이제는 죽이려 데려갔나 보다 하고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울고 있는데 누가 어깨를 툭 쳐서 쳐다보니 남편이었다. 그 위험한 곳에서 도망을 쳐서 다리를 건너온 것이다.
  
  우리는 너무 반가워서 손을 꼭 잡고 그곳을 떠나왔다. 성교리를 지나 동대원이라는 곳에서 한 30분쯤 걸어왔을 때 유엔군이 대동강을 다 건넜는지 그 다리마저 폭격해서 끊어졌다. 대동강을 건너야 남쪽으로 가는데 우리 뒤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건너다 물에 빠져 죽고, 밟혀 죽고, 불에 타 죽고, 총에 맞아 죽었다.
  
  사람 목숨이 하루살이 날파리 같다. 피난길은 사람들이 벌떼같이 모여들어 길을 메우니 국군 지프차나 트럭들이 아무리 빵빵거리고 길을 비키라 해도 비키지 않았다. 차가 지나갈 수가 없게 되니 그대로 속도를 내어 사람들 위로 밟고 지나간다. 지프차 한 대가 남편 위로 지나갔다. 이제 남쪽으로 가지도 못하고 여기서 죽는구나 하면서 남편을 일으키니 신기하게도 남편은 아무 데도 다친 데가 없었다. 참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가 절로 나왔다.
  
  사리원 냉면집
  
  이제는 남쪽을 향해서 걷는다. 한참 걸어가다가 중화라는 곳까지 왔다. 이곳은 꽤 큰 도시인데 전쟁이 할퀴고 지나간 뒤라 집이라는 집은 한 채도 없고 잿더미만 남아 있었다. 그곳은 남편의 고모님이 살던 곳이라 친척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잿더미만 남아 있었다.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피난민에 떠밀려 저절로 전진했다. 얼마를 걸었는지 가다 보니 길 옆에 우물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물을 먹고 있어 남이 먹는 것을 조금씩 얻어먹고 나서 보니 남편이 그만 사람들에게 밀려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울면서 있는 힘을 다해 남편 이름을 불러대며 이리저리 뛰었다. 그러나 찾을 길이 없었다. 거기서부터는 길이 세 갈래로 갈라져 어느 길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남편도 나를 찾아 헤맬 것이다 싶어서 물 먹던 곳에 가서 바보같이 울고 있는데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는 그리로 왔다. 우리는 너무 반가워서 서로 얼싸안고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우리는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서로 손을 꽉 잡으며 약속하고 남쪽으로 걸었다. 힘센 사람에게 밀려서 손을 놓치면 큰일이기 때문에 소변도 서서 걸으면서 보았다.
  
  얼마나 걸어갔는지 해는 다 저물어 깜깜해지는데 동네가 나왔다. 더 걸을 힘도 없고 해서 그 동네로 갔다. 그곳은 황해도 사리원이라는 곳인데 집은 흔적도 없었다. 냉면집 한 채만 남아 있었는데 그나마 반은 부서지고 반만 남아 있었다. 냉면가마에는 물이 설설 끓는다. 많은 피난민들이 그 집에 있는 냉면가루며 고구마, 무김치 등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뒤져서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아우성이다.
  
  냉면가마에 개떡, 고구마가 채 익지도 않았는데 집어넣은 사람은 따로 있고 먼저 건져 먹는 게 임자다. 나도 막대기를 주워 가지고 한 개 겨우 건졌다. 한 사흘 만에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둘이서 한 조각을 나누어 먹고 개떡 삶은 물을 한 바가지 먹으니 눈이 번쩍 떠진다.
  
  거기서 짐보따리를 내려놓고 보니 신 두 켤레와 입은 옷 한 벌이 全재산이다. 한 발짝이라도 더 남쪽으로 가야 산다고 아귀다툼을 하면서 가다 보니 길가에는 군복 차림의 미군도 많이 죽어 있었고 전사한 국군도 많았다. 그 시체 옆에서 피난민들이 황톳불을 해놓고 웅크리고 앉아서 잔다.
  
  앞에는 미군, 뒤엔 중공군
  
  그런데 제일 문제는 물이다. 날이 얼마나 추운지 시골집 동네에 있는 샘물 먹는 곳은 다 얼어붙고 한 곳에 우물이 있는데 두레박 줄이 한 이십 발이나 깊은데 몇 사람이 물을 푸면 옆에 있던 사람이 중간에서 가로챈다. 그 물은 아주 더러운 흙탕물이었다. 그것도 없어서 빈 두레박이 올라오면 쌀 씻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그냥 쌀에다 붓고 지저분한 것은 손으로 건져내고 황톳불에 올려놓는다.
  
  어떤 사람은 눈을 쌀 위에 많이 올려놓고 황톳불에 밥을 하는데 반은 익고 반은 설고, 솥뚜껑을 열어보면 재가 들어가서 새까맣지만 그래도 서로 씻지도 못하고 몇날 며칠을 걸어온 손으로 한 덩어리 더 먹으려고 싸움질을 한다. 우리는 밥 해먹을 도구가 하나도 없었다.
  
  다행히 어느 빈 집에서 타다 남은 양은 냄비 하나를 주웠다. 집은 다 탔는데 김칫독이 그대로 있길래 보았더니 김치는 다 가져 가고 국물만 조금 남아 있었다. 그 집을 이 구석 저 구석 뒤져보니 쌀이 한 되 정도 있었다. 그것을 박박 긁어서 김칫국물을 거기 붓고 밥을 하니 비빔밥이 되었다. 그 이후로 서울 올 때까지 빈 집의 김치 항아리에 남은 김칫국물은 언제나 우리 몫이었다. 밥과 반찬을 한꺼번에 얻는 셈이었다.
  우리는 밤에도 계속 걸었다. 한 발자국이라도 빨리 남한으로 가야 살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초행길이라 길을 몰라 웅덩이에도 빠지고, 험해서 넘어지고, 힘이 없어서 쓰러지기도 수없이 했다. 가다가 보니 외딴집 한 채가 보였다. 그 집에 가보니 반은 타고 반은 남았는데 먹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부엌 구석에 늙은 호박이 하나 있었다. 그래도 얼마나 반가운지 얼른 집어 보니 꽁꽁 얼어 있었다. 그 집에는 호박을 자를 수 있는 칼 같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발로 밟아 껍질을 조금 벗긴 다음 녹여가면서 빨아먹으니 물기가 나와서 나중에는 정신이 조금 들었다.
  
  우리는 다시 남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걸어도 이십 리 정도나 걸을까. 우리 피난민들 앞에는 유엔군들이 후퇴하고 있고, 뒤에서는 중공군이 추격해오고 있다 보니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중간 비무장지대에서 양쪽의 군대와 함께 남쪽으로 가는 이상한 형국이 되었다. 가끔 산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인민군 패잔병들의 따발총 소리가 사방에서 났다.
  
  우리는 발바닥이 부르터서 걷지도 못할 정도였다. 가다 보니 오막살이 집 한 채가 있었는데, 밤늦은 시간인데도 수많은 피난민들로 꽉 차 있었다. 그집 앞뒤를 둘러보아도 우리 두 사람이 들어갈 틈은 없었다. 부엌은 멍석으로 문을 해 달았는데 우리는 그 멍석을 들치고 들어갔다. 남편은 먼저 들어가고 나는 남편을 의지하고 기대서서, 한 발은 문지방 안에 한 발은 문 밖에 두고 피곤해서 선 채로 잤다.
  
  자다 보니 두 발을 다 들여 놓을 틈이 생겨서 두 발을 부엌 쪽으로 들여놓고 보니 기대고 있던 남자의 냄새가 남편이 아닌 것 같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깜깜한 밤중에 『여보, 여보』를 연달아 부르면서 그 남자의 온몸을 더듬어도 이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얼굴에서부터 머리까지 더듬다 보니 이게 웬일인가. 글쎄 남편은 머리가 긴데 이 남자는 빡빡 깎은 머리가 아닌가.
  
  내 남편은 어디론가 가고 남의 남자 가슴에서 여태 잠을 자고 더듬은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서 밖으로 뛰어나와 울면서 집을 빙빙 돌며 『이원칠, 이원칠, 여보, 여보』하고 남편 이름을 불러댔다. 얼마를 그러고 다니니까 안방에서 남편이 『나 여기 있어』하면서 대답을 하고 나왔다. 화가 나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따지니까 사정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배는 아픈데 곤히 자는 나를 깨우기가 미안해서 살짝 나갔다 왔다고 한다.
  
  날파리 목숨 같은 피난민 신세
  
  우리는 또 걷기 시작했다. 하염없이 걷다가 다리가 너무 아파서 잠깐 길가에서 한 십여 분 쉬다가 일어나려고 하는데 자전거를 끌고 가던 국군 낙오자 한 사람이 비상식량으로 싣고 가던 사과를 우리들에게 한 개씩 나눠주면서 많이들 쉬었으니 빨리 남쪽으로 가자고 재촉한다.
  
  우리는 고마워하며 그 사과를 먹고 한 이십여 분 더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걸어가려고 하는 찰나에 유엔군 전투기들이 우리 바로 앞에서부터 한 십 리 가량을 기총사격을 하면서 지나갔다. 우리 바로 앞에는 소달구지에 짐을 가득 싣고 그 위에다 노인과 아이들을 태우고 그 옆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짐을 지고 걸어가고 있었다.
  
  중공군 팔로군이 몰려내려 온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터에 이 모습을 공중에서 보면 북한 탱크가 밀고 내려오는 것처럼 보였는 모양이다. 그 때문에 이북이 싫어서 남으로 가던 수많은 피난민들이 무차별하게 떼죽음을 당했다. 아이들을 업고 가는 사람도 많았는데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우리는 정말 기적같이 그 어이없는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살려주신 것이다. 그 국군 낙오자를 만나지 않았으면 그대로 총에 맞아 죽었을 텐데 그 사람과 그 사과 한 개 때문에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많은 피난민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치고, 소는 배가 터져서 배알이 쏟아져 나온 채로 나뒹굴고 있고, 어른은 어린아이를 업은 채 죽어 있는데 아이는 살아서 『엄마, 엄마』하면서 울고 있는가 하면, 엄마는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는데 등에 업힌 아이는 죽어 있고…. 길 바닥은 온통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런 참혹한 현장은 정말 말로 어떻게 형용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그 뒤에 따라오던 남은 피난민들은 혼비백산하여 산으로 들로 마구 뛰었다. 우리도 조밭에 이삭만 잘라가고 대궁은 사람 키보다 높은 밭고랑으로 서로 손을 붙잡고 얼마동안 정신없이 뛰어갔다. 그러다가 나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그곳은 갈대가 사람 키보다도 더 큰 강가였는데 밑에는 얼음이 얼어서 매우 미끄럽고 얼마나 추운지 서로 부둥켜 안고 간신히 하룻밤을 지냈다.
  
  깜깜한 밤중이니 어디가 어딘지 몰라서 갈 수도 없었다.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점점 더 추워져서 입이 얼어붙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날이 밝았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남쪽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갈대가 쓰러진 쪽이 남쪽인가 보다 하고 강을 따라 얼마만큼 가다 보니 산길이 나왔다. 그 길로 따라가다 보니 집 한 채가 보여서 들어갔다.
  
  그 집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다 헐린 오막살이에 먹을 것이 있나 하고 찾아보니 옥수수 씨 하려고 처마 밑에 매달아놓은 옥수수 한 통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생으로 꼭꼭 씹어 먹고 시래기 마른 것을 부숴서 입에 넣고 침으로 적셔 씹으니 한 입이 된다. 시래기를 삼키려고 물을 찾으니 없어서 고드름을 따서 입에 넣고 우물거려서 겨우 넘겼다.
  
  드디어 38선을 넘다
  
  우리는 또 걷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 또 무슨 일이 있을지, 어디서 누가 먼저 죽을지 모르니 우리는 이제 누구든지 한 사람이 죽으면 같이 죽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조금 걸어가는데 기찻길이 나왔다. 기찻길로 가면 남으로 가는 길이 나올 거라 생각하고 가다보니 수많은 피난민들이 그 길로 간다. 기차굴은 캄캄해서 잘 보이지도 않고 서로 밀려서 가다 보니 발에 채이고 걸리는 것이 온통 사람의 시체다. 굴을 빠져나와 보니 신발이고 바짓가랑이고 온통 피투성이였다.
  
  그렇게 가다보니 산막이라는 동네가 나왔다. 그런데 집은 다 타고 잿더미만 남아있었다. 우리는 모두 발이 부르터서 걸을 수가 없는 처지였다. 그래도 그렇게 그리던 38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기대를 가지고 쩔뚝거리면서도 힘을 냈다. 계속 가다보니 조그만 다리가 있었는데 그 남쪽에는 「38선」이라고 쓰여진 대형간판이 세워져 있었고, 이쪽 북쪽에는 「38이북」이라는 간판이 있었다. 우리는 이젠 살았다고 외치면서 만세를 힘차게 불러댔다.
  
  우리는 거기를 통과해서 대한민국 땅으로 걸어갔다. 얼마 안 가서 개성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남쪽 사람을 보았다. 그전까지는 불에 타버린 마을만 보면서 마음이 아파 안타까웠는데 이렇게 개성시민을 만나니 반가울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당장 어디에 거처할 곳이 없었다. 잘 집을 구하려고 여러 집을 다녔지만 문을 열어주는 집이 한 집도 없었다. 눈비가 와서 얼마나 추운지 말로 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입고 있는 옷 한 벌뿐이었다. 배도 너무 고팠다. 산 밑의 외딴집을 찾아가서 사정사정했더니 혼자 집을 지키시던 할머니 한 분이 우리를 받아 주셨다. 정말로 고마운 분이었다. 그 집은 개성고등학교 선생님집으로 온 가족은 다 피난 가고 할머니 혼자 남아서 집을 지키고 계셨다. 우리는 그 집에서 4일 동안을 묵으면서 남편은 개성 시내에 나가 돈을 벌었다.
  
  그곳은 피난민도 많고 주민도 많다 보니 쌀 한 말에 4000환씩이나 했다. 우리에게는 대한민국 돈이 하나도 없었고 그 할머니한테 그냥 얻어먹기만 하는 것이 미안해서 남편이 개성 시내에 나갔다가 개성역전에서 나무송판 울타리를 뜯어서 새끼줄로 묶어 집으로 오는데 사람들이 팔라고 해서 하루종일 몇 집에 팔아 쌀과 쇠고기를 사 가지고 왔다.
  
  개성은 나무가 귀해서 여름에 풀을 뽑아 말렸다가 겨울에 그것을 연료로 썼다. 오는 도중에 인민군 패잔병들이 산에 숨어 있다가 개성으로 나와 총을 아무 데나 쏴대면서 식량과 필수품을 훔쳐가고, 피난 오는 젊은 사람들을 붙잡아가려고 온통 난리가 났는데 남편은 그 와중에 쌀과 고기를 가지고 무사히 돌아왔다.
  
  남편이 고기를 끓여먹자고 해서 나는 안된다고 했다. 바로 남쪽으로 가자고, 여기까지 와서 인민군한테 죽으면 안된다고 빨리 가자고 애원했다. 그러자 남편은 지금은 밤이지만 눈이 와서 천지가 하얀데 시커먼 물체가 가면 패잔병들한테 붙잡히거나 총에 맞아 죽는다고 했다.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너다
  
  그래서 고기를 대충 삶아서 할머니 것을 많이 남겨드리고 우리도 비상식량으로 싸들고 새벽에 임진강가로 나갔다. 임진강을 향해 가다 보니 장단이라는 면소재지가 있었다. 그곳 역전에는 쌀 창고가 있는데 군인들은 그곳을 그냥 놔두고 후퇴를 했다. 피난민들이 함석으로 된 그 창고에 개미떼처럼 매달려 함석을 뜯고 쌀을 빼내갔다. 쌀을 담을 자루가 없어서 머리에 썼던 수건보자기나, 입은 몸뻬 가랑이를 묶어 옷 속에 쌀을 담아 가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쌀을 빼내갔다.
  
  우리도 머리에 썼던 수건에 닷 되 정도를 담아 가지고 서둘러 임진강 쪽으로 갔다. 아직 이른 아침인데다 사람들은 모두 쌀 창고에 매달려 있다 보니 임진강변에는 별로 사람이 없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강을 나룻배로 한 사람 건네 주는데 4000환이라고 해서 피난민들이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었는데 전날밤에 날씨가 갑자기 영하 30도까지 내려가서 임진강은 얼어붙었다. 강을 건너려고 남편이 막대기를 들고 얼음을 꾹꾹 눌러보면서 앞에서 가고 나는 얼음이 깨질까봐 멀리 뒤에서 따라 걸었다.
  
  이 강이 얼마나 깊고 얼마나 넓은지도 모르고 얼마나 얼었는지도 모르면서 얼음 위로 걸었다. 걸을 때마다 얼음 밑에서 물이 철렁철렁하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유엔군이 강변 초소에서 자기들 쪽으로 사람이 강을 건너오니까 총을 쏘아댔다. 총알이 이곳 저곳으로 왱왱하고 지나간다. 그럴 때마다 자지러지게 놀라 허리를 굽히곤 했다.
  다행히 무사히 강을 건너서 모래 백사장으로 왔는데 거기에 있던 미군 몇 사람이 우리의 몸을 수색했다. 우리는 두 손을 번쩍 쳐들었다. 그 사람들은 영어로 뭐라고 하더니 우리 주머니에서 북한에서 가져온 북한 돈을 다 빼서 불에 던지고, 내 주머니에 있던 미국 돈 한 장을 빼앗고는 가라고 하면서 등을 밀었다.
  
  우리 부부는 파주 쪽을 향해서 갔다. 가다가 생각해 보니 그 사람들에게 돈을 빼앗긴 것이 기분 나빠서 도로 가서 찾자고 했다. 남편은 그냥 가자고 했지만 나는 경우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돼서 다시 가서 따지면서 내 돈을 내놓으라고 항의를 해 보았지만 그 미군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돈을 주지 않았다. 나는 다시 일본말로 『오카네구다사이』하면서 달라고 사정을 했더니 그제서야 돈을 돌려주었다.
  
  우리는 이제 살았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가다가 어느 집에 들어가서 두루 살펴보니 우리가 들어갈 만한 곳은 소 외양간과 마구간밖에 없었다. 소는 없고 지푸라기만 깔려 있는 것을 보고 거기서 하룻밤을 자는데 지금까지 피난 오던 중에 가장 편안하고 든든한 곳에서 잘 쉰 것 같았다.
  
  볏짚으로 요를 하고 짚단을 풀어서 이불을 하니 얼마나 편하고 포근한지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었다. 그래도 우리는 일어나 가야만 했다. 서울 쪽으로 조금 가다보니 경기도 파주라는 곳이 나오고 그곳에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는 것을 보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다시 일산이라는 곳을 향해서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피난민들이 더 가지 못했다. 행주 나룻배를 타고 건너가면 향토방위대로 잡아서 논산이라는 곳으로 보낸다고 해서 피난민 청소년들이 못 가고 있었다. 그곳 주민들은 모두 피난가고 北에서 온 사람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나흘을 묵었다. 그곳도 나무가 귀해서 남편은 산에 가서 생솔가지를 잘라다가 불을 때고 나흘을 쉬었다.
  
  드디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도착
  
  우리는 또 걸었다. 오라는 데는 없지만 남한으로 가야 산다는 생각에 가다 보니 행주나루라는 큰 강이 있어서 나룻배로 건넜다. 얼마 안 가서 소사라는 곳을 지나 영등포까지 왔다.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이제 드디어 대한민국 서울에 다 왔다는 그 기쁨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을 모를 것이다.
  
  우리는 언니가 간호원으로 있는 서울의전병원이라는 곳을 찾아가려고 마포 나루터에 가서 배를 타고 서대문 쪽으로 들어가는데 오히려 수많은 서울 사람들은 거꾸로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과 반대로 서울 시내 쪽으로 가다가 서대문 쪽에서 향토방위대들에게 붙잡혔다. 北에서 온 청년들은 모두 잡아서 제2국민병으로 보낸다고 했다. 남편도 붙잡아서 수용소로 들여보냈다.
  
  큰일 났다. 나 혼자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서 궁리 끝에 그 향토방위대에게 아양을 떨면서 본인이 대한민국에 와서 군인 나간다고 인민군대에도 안 들어갔다고 해가면서 남편이 어제부터 몇 끼를 굶었으니 가서 아침 좀 사먹고 오면 안되겠냐고 꼬셨다.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가서 남편을 데리고 왔다. 짐 보따리를 거기 놓고 갔다 올 테니 봐달라고 하고서는 우리는 오던 길로 되돌아서 마포 쪽으로 도망을 쳐서 다시 나룻배를 타고 영등포로 갔다.
  
  배에서 내려 가다 보니 거기서 또 잡혔다. 잡혀가다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또 도망치고 그렇게 하루종일 몇 번을 붙잡히고 도망을 쳤는데 서울 지리를 모르니까 그 구역 내에서 맴돌다가 결국은 또 잡혀서 파출소 안 대기실로 들어갔다. 거기에다 사람들을 모아두었다가 논산으로 보내 훈련을 시켜 군인을 만들어 전방부대에 보낸다고 한다.
  
  나는 이제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고민을 하다가 거기 감시원으로 있는 여자 경찰관에게 가서 나도 여군으로 가서 간호보조원이라도 하겠다고 하며 남편을 불러달라고 했다. 이왕에 가는 거 속옷이라도 갈아입고 갔으면 한다고 졸라대니 이 여순경이 가서 남편을 데리고 왔다. 우리는 속옷을 갈아입고 오겠다고 하면서 또 도망을 갔다.
  
  남편을 어느 구멍가게에 기다리게 하고 약 한 40집 가량을 다니면서 사정을 해도 집을 못 구했다. 할 수 없어서 어느 이발관에 들어가서 일 좀 거들어드리겠다고 하면서 수건을 빨고 열심히 일을 해보여줬더니 일을 해보라고 허락을 해줬다. 이 집은 직원과 가족은 청주로 다 보내고 주인 혼자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남편을 데리고 그 집에 가서 밥도 하고 반찬도 만들면서 10일을 같이 살았다.
  
  기차지붕 위에 올라타고 또다시 남쪽으로
  
  아침에 밥을 푸려고 하는데 일산 쪽에서 나는 대포 소리에 집이 무너져 밥솥을 덮치고 사람도 다칠 뻔했다. 전쟁은 다시 서울까지 밀려온 것이다. 우리는 다시 남쪽으로 피난을 가기 위해서 주인집 아저씨와 같이 영등포역으로 나갔다. 기차역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기차지붕 위에도 올라갈 곳이 없어서 겨우 사람 위로 해서 올라갔다. 그 추운 날 하루종일 눈비는 계속 오는데 기차는 떠나지 않고 있었다. 저녁 때가 되어서야 우리가 탄 차는 안 가고 저쪽 차만 간다고 해서 얼른 내려와서 그 차 지붕 위에 올라갔는데 한밤중이 다 되어서야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겨우 수원까지만 가고 또 안 간다. 거기까지 가는데도 아침에 보니 자리가 많이 비어 있었다. 왜냐하면 둥그스런 지붕 위에 양쪽에 앉아서 서로 붙들어야 하는데 잠이 들면서 쥐었던 손을 놓치면 두 사람 다 떨어져 죽는다. 지붕 위에 몇 사람 남지 않고 다 떨어졌는데 얼마를 가다가 천안까지 가서는 또 안 간다고 해서 우리는 내렸다. 저쪽에 있는 기차가 간다고 해서 가보니 지붕에도 탈 데가 없어서 기차 물 넣는 화통에 탔다.
  
  차가 가려면 물을 넣어야 한다고 내려오라고 해도 한 사람도 내려오지 않자 사람이 있는 곳에 물을 부어 사람 옷과 철판이 붙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섰는데 그 상태로 기차는 조치원까지 갔다. 사람들은 다 내려도 우리는 몸과 옷이 철판에 얼어붙어서 움직여지질 않아 꼼짝도 못하고 있는데 화통 양쪽 가장자리에 붙어 있던 남자 한 사람이 움직여 발을 빼서 얼음이 부서지면서 모두 내릴 수 있었다. 먼저 내린 사람들이 황톳불을 해놓고 거기 앉아서 옷들을 말리며 기진맥진해서 이리저리 쓰러져 잤다.
  
  우리는 주인집 아저씨가 빨리 가자고 해서 또 걸었다. 얼마 안 가서 내수라는 마을의 동네 구장집에 들어갔다. 거기 숙직 방에 쉬라고 해서 쉬고 있노라니 구장님이 시래기를 썰어 넣고 된장을 넣은 멀건 죽을 끓여주는데 그것이 얼마나 맛있고 배가 부른지 모두 먹고 쓰러져 잠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시간도 모르고 날짜 가는 것도 모르고 일어났는데, 청주까지 얼마 안 남았다고 해서 서둘러 또 걸었다.
  
  드디어 청주에 도착해서 주인집 아저씨네 식구들을 만났다. 서로 반가워하며 밥을 하는데 밥이 다 끓기도 전에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났다. 경찰들이 와서 또 피난을 가야 산다고 해서 밥도 못 먹고 그대로 둔 채 또다시 피난을 갔다.
  
  가다보니 고개가 아흔아홉 구비라는 피발령재(해발 361m)가 나왔다. 그 고개를 넘어가면 보은 속리산 가는 길이라 하여 그 길로 모든 사람들이 피난을 가는데 뒤에선 전쟁이 밀려 내려온다고 하고, 우리는 빨리 가야 하는데 눈보라는 치고 비탈길이 미끄러워서 아무리 가도 제자리걸음이다. 가다보면 어린아이들을 눈 위에다 버리고 가서 얼어죽은 아이가 여기저기 많이 보인다. 아직 죽지 않은 아이도 있는데 누구 하나 아이를 구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자기도 가다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다가 충북 보은군 옥천 월례리라는 동네까지 가서 구장님 댁에 자리 잡고 거기서 구정 명절을 지냈다. 참으로 인심 좋은 구장댁 할아버지였다. 이 댁은 방앗간 집인데, 발로 밟는 디딜방아, 소가 맷돌을 메고 다니면서 찧는 연자방아, 모터로 찧는 동동방아, 이렇게 많은 방아에 떡을 해서 그 동네에 많은 피난민들에게 한 바가지씩 나누어 주기도 하고 매일 저녁 고염이라는 감 같은 실과도 간식으로 주고 참 인심 좋고 情이 많은 할아버지셨다. 그 인심은 49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피난생활을 청주에서 끝내다
  
  우리는 그곳에 있다가 전쟁이 어느 정도 끝나가는 것 같아서 청주로 다시 되돌아왔다. 남편은 다시 경찰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청주경찰국에 들어가 근무를 하게 되었고, 거기서 아들과 큰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다가 원주로 이사하여 딸 둘을 더 낳았다. 남편은 경찰 생활을 그만두고 이발사로 생활하면서 고향 사람만 만나면 그렇게 반가워하곤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죽기 전에 통일이 되어 그리운 고향에 돌아가 부모형제 만날 날만을 학수고대 했다. 1983년 방송국과 적십자사에서 시작한 이산가족찾기 운동 때 남편의 8남매 중 셋째 남동생(이원구, 6·25국가유공 원호대상자, 강원도 춘천 거주)을 극적으로 만나본 후 1985년 12월에 결국 먼저 저세상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나는 지금 72세의 할머니가 되었지만 원주로 이사온 후 단구동에서 명륜 이발관을 운영하며 소일하고 있다. 아들은 1951년생으로 청주에서 낳았는데 지금은 아버지의 뜻대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통일을 달성하는 최선봉에 서서 나라를 지키는 육군 대령으로 근무하고 있고, 딸 삼형제도 다 출가해서 잘 살고 있다.
  
  1997년 6·25 때는 아들이 휴가를 내서 임진강 자유의 다리로부터 시작해서 충청북도 옥천군과 피발령재, 청주 등의 피난길을 다시 한번 답사하고 왔다. 지금은 길이고 집이고 건물들이 모두 많이 변하였지만 그래도 옛날 그 고생하던 일들이 아련하게 되살아났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땅에 6·25와 같은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 국민을 다스리고 정치하는 높은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다시는 전쟁이 없게 해주세요. 두서없이 적은 말, 널리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