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日報와 東亞日報 앞에는 民族紙란 말이 붙어다녔다. 1920년에 창간된 이후 81년간 우리 민족과 함께 숨쉬고 고뇌하며 좌절했다가 다시 일어나 성취하고 성숙해간 역사 때문에 그런 정관사가 자연스럽게 붙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가장 오랜 두 신문을 族閥언론이라고 비방하는 세력이 있다. 두 신문사를 족벌언론이라고 부른다면 세계 최고 신문인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도 족벌이다. 재벌을 연상시키는 족벌이란 말과는 어울리지 않게 두 신문의 매출액은 중소기업 수준이다. 족벌언론 타도를 언론개혁이의 同義語로 써온 세력과 궤를 같이 하면서 진행된 것이 金大中대통령이 지휘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언론사 세무조사였다.
  조선-동아-중앙일보 세 신문의 법인과 대주주들에게 국세청이 통보한 추징세액은 각 신문사 연간 매출액의 약20%나 되었다. 3대 신문사의 연간 매출액을 모두 합쳐보아야 1조원을 약간 넘을 정도이다.
  세무조사권을 남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집요한 계좌 추적과 이 너무한 추징액은 3대 신문사 종사자들로 하여금 이 정권이 권력을 의도적으로, 감정적으로, 신경질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감상을 갖도록 만들었다.
  이번 월간조선 8월호에 실려 있는 입체 여론 조사 결과가 말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과 전직 언론인들 중 압도적 다수가 이 세무조사는 비판 신문을 약화시키기 위해 기획된 것이라고. 권력은 막강한 만큼 이성적이라야 하고 권력의 지시하에 이뤄지는 조사와 수사는 공정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미 굳어진 여론 구조로 볼 때 金大中 정권의 세무조사와 검찰수사가 신뢰를 되찾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1년 매출액이 4천억원에도 못미치는 동아일보에 부과된 추징세액은 827억원, 이 가운데 469억원이 金炳琯 명예회장 등 대주주 일가 몫이었다. 국세청은 金 명예회장과 동생(부사장)을 검찰에 고발도 했다. 지난 14일 오후 金 명예회장의 부인 安慶姬(62)씨가 고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사망했다. 동아일보의 발표에 따르면 安여사는 국세청 조사와 검찰 수사로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고 심적 부담을 느껴왔다고 한다.
  이 悲報에 접했을 때 기자는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건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金炳琯회장의 할아버지 金性洙 선생 집안은 호남의 제1명문으로서 한국 현대사에 굵은 발자취를 남겼다. 2대 부통령이기도 했던 金性洙는 일제시대엔 민족지 동아일보, 민족 私學 고려대학, 민족기업 경성방직(주), 광복 후엔 우익 민족 진영의 중심 한민당을 만들고 키운 주역이었다.
  한민당을 지주정당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광복 후의 혼란기에서 李承晩의 건국 노선을 지지했고, 李承晩이 독재로 흐를 때는 그를 견제한 것이 한민당이었고 그래서 한국의 정통야당은 한민당에 뿌리를 둔 것을 자랑하곤 했었다.
  金大中 대통령도 광복 직후 좌경 활동을 하다가 장인의 권유로 한민당 목포 지구당에 가입했었다고 말하고 있다. 金大中씨가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야당투사로 활동할 때 동아일보의 도움을 크게 받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는 사실과 크게 다른 설명이 될 것이다. 동아일보가 우리 민족과 대한민국에 대해서 한 기여나 金大中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을 잘 아는 기자로서는 安慶姬 여사의 죽음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바라보면서 '동아일보에 대해서는 이럴 수가 없는 건데'하는 감회가 생겼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