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토론방에서 퍼온 것이다.
  최성재(50, 남, .)
  
   평준화는 평등의 탈을 쓴 획일화
  
  
  
  입시 과열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고등학교 평준화를 단행한 지 한 세대가 다 흘렀다. 모든 학교를 평등하게 만든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함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기어코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부득부득 우기면서 지금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명감에 불타서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무리 똑같게 만들어도 노력을 더하는 사람이 있고 노력을 덜 하는 사람이 있는 한 평등은 이룩될 수 없다. 오히려 불평등이 심화된다. 공산주의 실험 70년이 그것을 잘 증명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불평등한 사회가 실은 평등을 지상목표로 내건 공산국가였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인간을 몰랐던 것이다. 인간이 만약 무생물이라면 평등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생물인 한, 생물 중에서도 가장 머리가 좋은 호모 시피엔스인 한, 어떤 환경에서도 스스로 적응하기 때문에 잘 적응한 사람은 다른 사람 위에 설 수밖에 없다.
  완전한 평등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공산 국가와 한국의 교육부는 너무도 쏙 빼 닮았다.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이 가장 많이 닮은 점이다.
  평등을 성취시킨다는 미명하에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것이 두 번째로 많이 닮았다. 평등을 강제할 힘을 가진 한, 공산당이 모든 집단 위에 군림하듯이, 평준화를 강제 배분할 힘을 가진 한, 교육부는 어떤 학교에 대해서도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된다.
  
  게으르고 못났지만 말 잘 듣는 사람은 이뻐하고 부지런하고 잘난 사람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사정없이 짓밟는 것도 똑같다.
  절대 자기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똑같다.
  중앙집권이 가장 바람직한 제도임을 강요하는 것도 똑같다.
  겉모양의 평등만을 강요해서 속은 한없이 불평등하게 만드는 것도 똑같다.
  
  공산 국가는 국민 전체의 급여가 겉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들의 실생활을 들여다보면 하늘과 땅이다. 불평등의 극치를 이룬다. 봉건 시대에도 그런 불평등은 없었다. 크게 세 계급으로 나뉘어지던 사회가 수백 개의 계급으로 나뉘어졌다. 권력의 피라미드 한 단계 단계가 모두 계급이다.
  바로 위 계급은 아래 계급의 평등을 책임졌기 때문에 아래 계급은 위 계급에 대해서 꼼짝 못하는 것이다. 위에서 보면, 모두가 명령을 잘 받들기에 아주 평등하지만, 아래에서 보면 끝이 없이 아득하다. 아랫것들은 평등하지만, 평등 배분권을 독점한 공산당 자체나 교육부 자체는 철저한 계급 사회이다. 9급과 8급은 하늘과 땅이고 8급과 7급은 하늘과 땅이다. 일선 학교의 교사는 아무리 근무 연한이 오래 되어도 교감이 되지 않는 한 영원한 7급이다. 국립 대학은 4급부터 시작한다. 그러니 교육부에서 보면, 일선 학교나 대학이 우습게 보이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의 명령에 따라 한 도시 전체가 구역으로 나누어 학생을 균등하게 나눈다. 형식적으로 완벽한 평등이다. 그러나 일선 학교에서는 학생이 엄청 불평등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절대 추첨으로 학생을 갈라서 반을 만들지 않는다.
  학생들의 학력이 천차만별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적순으로 골고루 섞어 반을 갈라놓는다. 겉보기에 완벽한 평등이다. 반성적 차이가 거의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교실에 들어가 보라.
  
  한 반에 50명이면 50명, 40명이면 40명, 30명이면 30명 이보다 더 불평등한 집단이 있을 수가 없다. 고3 교실에 중학 1학년 학력도 안 되는 학생과 대학 1학년 수준인 학생이 같은 교재로 같은 교사 밑에서 공부한다.
  평준화 이전에는 학교 차이가 선명히 난 대신에 한 학급 안에서는 거의 평등했다. 그러나 이제는 정반대다. 강제로 겉모습을 평등하게 해 놓자 속 모습은 이보다 더 불평등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인간적인 배려라는 미명하에, 유급제를 죽어도 받아들이지 않고 알량한 연합고사도 없애는 바람에 한글도 못 읽는 학생이 버젓이 고등학교에 들어와 졸업을 하게 된다.
  이게 평등의 실상이다.
  
  평준화가 안 된 지역의 명문고나 과학고 외국어고 등은 교육부의 평등의 준엄한 명령을 어긴 죄로 거의 균질의 집단을 강제로 불평등하게 잘게 잘게 나눈다.
  어느 집단이든지 집단은 같이 노력하면 같이 잘 되는 법인데, 아무리 같이 열심히 노력해도 이를 강제로 10등급이다, 15등급이다 나누니 그 집단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장소로 바뀐다. 살벌하기 짝이 없다. 이보다 더 비인간적인 일이 있을 수 없다. 이보다 더 비민주적인 일이 없다.
  
  겨우 생각해낸 것이 절대 평가이다. 그것도 장관이 바뀌면서 즉흥적으로 한 건수 올리고 나간 일이다. 평등의 달콤한 맛에 물들었던 일선학교들은 즉시 문제 쉽게 내기 경쟁이 붙었다. 과연 성적만 보면 각 학교가 평등하게 되었다.
  
  공부를 제대로 하는 학생은 불안해서 잠을 못 잔다. 이건 실력이 아니라 오로지 실수 안 하기다. 공부란 게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건데 일정 수준 이상은 하면 할수록 손해보게 되었다.
  쉽디 쉬운 것들을 지겹게 반복해야만 한다.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 교육 개혁하니 어쩌니 해 놓고는 이렇게 창의력의 싹을 원천적으로 잘라 버린다. 아무 것도 아닌 지식을 달달 외우게 만든다.
  
  살판난 학생은 단순한 아이다. 그걸 지겨운지도 모르고 그 쉬운 것을 무려 열 번 스무 번 보고 또 본다. 어느새 하늘같이 성적이 차이나는 학생과 거의 같은 점수가 나온다. 얼마나 신나랴!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학생 폭력이 날로 기승을 부리건만 학교생활부를 보면, 하나같이 천사다. 어찌 그리 좋은 말만 써 놓았는지. 이걸 긍정적인 기술이라고 교육부가 수시로 장려하고 있다.
  특별활동도 기록만으로 보면 세계 1위일 것이다. 실지로는 비교해 볼 것도 없이 단연 세계 꼴찌다. 봉사 활동, 이것도 부모가 약간의 신경만 쓰면, 기록상으로 세계 최고 만들기 일도 아니다.
  
  느느니 오로지 거짓이다. 성적도 거짓, 품행도 거짓, 특별활동도 거짓, 학급활동도 거짓, 봉사활동도 거짓 ---학교는 거짓말쟁이 양성소가 되었다. 이것이 평준화의 실상이다.
  
  이건 모두 평등이란 이름으로 교육부가 저지르고 있는 일이다.
  평등 배분권을 지닌 교육부에 어느 대학이 감히 이의를 제기할까. 감히 '우리는 교육부가 주관하는 시험을 못 믿겠고 교육부가 보증한 내신을 못 믿겠으니, 우리가 독자적으로 시험을 보겠다느니 내신 기준을 따로 만들어 학교를 차별하겠다느니'하는 소리를 절대 못한다.
  이렇게 교육부가 자기 힘만 한없이 키워 놓았다.
  지고지선의, 전지전능한 교육부 앞에 사악하고 무지몽매한 모든 학교와 대학교가 일제히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무릎 꿇기--이것이 평등의 실상이다.
  
  평등이란 무엇인가? 겉모습을 강제로 똑같이 만드는 것이 평등인가? 모래와 물과 시멘트를 한데 섞어 틀로 찍어내면 똑같은 벽돌이 나온다. 그것은 무생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명체이고 더군다나 지능이 고도로 발달했기 때문에 절대 똑같은 틀 속에 집어 넣어도 똑같은 인간이 나오지 않는다.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적응 방법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평등이란 무엇인가? 소아마비 앓아서 서는 것도 간신히 서는 아이에게 100m를 다른 아이와 똑같이 뛰게 하는 것이 평등인가? 심장병 때문에 걷지도 잘 못하는 아이에게 3,000m를 똑같이 달리게 하는 것이 평등인가?
  이건 누구도 평등이 아니라면서 '굿 모닝'밖에 모르는 아이와 타임지를 줄줄 읽는 아이가 한 반에서 공부하는 것은 어찌 평등이라고 우기는가.
  꼴찌를 맴돌던 한국의 과학고 학생이 미국 가서 SAT에서 만점을 맞아 국제적으로 그 실력을 인정 받는데도, 그 학생이 한글도 간신히 읽는 아이와 등급이 같다고 우기는 것이 어찌 평등인가.
  그것은 평등이 아니다. 획일이다.
  
  소아마비를 앓아 간신히 서는 아이에게 100m 달리기를 시키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국가 대표급 육상 잠재력을 가진 아이를, 일반 고등학교에서 정상적인 체육만 하게 하는 것도 잔인한 일이다.
  왜 체육에 대해서는 평등의 개념을 이해하면서 교육부는 일반 학과에 대해서는 전혀 평등의 개념을 이해 못하고 획일을 평등이라고 우기면서 제 권력만 강화시키며 일선학교를 불신하기만 하는가.
  
  얼핏 보기에는 비슷한 평등과 획일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한 마디로 획일은 인간을 하나의 무생물로 취급하여 각자의 소질과 장단점을 완전 무시하고 한 틀 속에 강제로 집어넣는 것이다.
  평등은 인간을 인간으로 대접해서 각자에게 '똑같은' 기회가 아니라 '알맞은' 기회를 주는 것이다.
  
  각자의 발전 속도에 맞춰서 각자의 소질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것이 평등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을 인간으로 대접하는 것이다. 시각 장애자에게는 점자책을 주는 것이 평등이다.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휠체어를 주고 단 한 학생을 위해서도 계단을 새로 만들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이 평등이다.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국가 차원에서 공부할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는 것이 평등이다.
  
  지능이 모자라 도저히 일반 학생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차근차근 한글이라도 깨우치게 하는 것이 평등이다. 더하기 빼기라도 몇 년이 걸리더라도 가르치는 게 평등이다.
  그에게 단순한 노동을 가르쳐서 그가 스스로 벌어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이 평등이다. 멍청하다고 죽기만을 기다리며 공짜로 자꾸 밥을 대주는 값싼 동정이 평등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머리가 있는 아이를 일반 아이 속에 집어넣고 무조건 참고 달달 외는 공부나 하라는 게 평등이 아니다. 그를 위한 학교를 따로 만들어 그의 소질을 최대로 개발하게 하여 인류에게 봉사하게 하는 게 평등이다.
  설령 일반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게 할지라도 그를 위해 따로 교과 과정을 개발해서 가르치거나 대학에 주말마다 보내 그 소질을 개발하게 하는 것이 평등이다.
  그런 아이가 과학고 가서 내신 나쁘다고 대학 문전에서 쫓아내는 게 평등이 아니다. 그런 아이는 내신을 무시하고 큰절을 하고 모셔가는 게 평등이다.
  
  평준화를 실시한 이래 교육부가 한 일은 하나같이 획일화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겠지만, 사실은 평등과는 정반대의 길을 당나귀처럼 고집스럽게 걸었다.
  
  교육에서 세계 최고의 평등을 이룩한 민족은 유태인이다. 각자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게 하여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상향 평등을 이루었다. 사고방식이 기계처럼 고정되어 있어서 한 세대 동안 평등과 획일의 차이도 알아채지 못한 한국은 인간 각자의 소질을 철저히 무시했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비참한 하향 평등을 달성했다.
  평등을 가장 잘 이해한 민족이 유태인이라면 평등을 가장 괴이하게 이해한 민족이 한국인, 아니 한국인 중 교육부 나으리와 그에 머리를 빌려준 박사와 교수와 교사와 민주 투사이다.
  
  평등한 사회를 건설한다며 제 나라 백성을 수천 만 명 무지막지하게 죽인 스탈린도 교육에는 평준화를 강행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엘리트 교육에 신경 썼다. 우리 나라같이 무지막지한 획일화 교육을 한 나라는 이 지구 그 어디에도 없다.
  그래 놓고도 창의력이 없는 학생을 양산했다고 일선 학교를 뒤늦게 몰아 세우는 교육부를 보면, 저들은 옛날에 이순신 장군에게 맥없이 죽어간 왜적들이 우리 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작정하고 이 나라에 태어난 사람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든다.
  
  (2000. 3. 15.) (2004. 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