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남매의 受難
  
  전쟁통에 잃은 부모님
  어머니는 약 한 봉지 써보지 못하고 피난지에서 돌아가셨다. 서울에 남아 있는 아버지와 할머니 걱정을 놓지 못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모르는 동생은 기어서 젖을 달라고 가슴으로 다가갔다. 아버지는 국군을 숨겨주었다가 들켜 인민군에게 맞아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
  
  金 英 吉 日本 神戶市 長田區
  
  할머니 놔두고 피난
  
  초여름 어느 날로 기억되는 1950년. 할머니와 어머니의 큰 말다툼 소리. 엄마의 젖꼭지를 마구 빨아대는 동생. 빨리 피난 준비를 하여 집을 떠나자는 어머니의 큰 목소리에 다 늙은 이 몸이 가면 어디를 가느냐고 죽어도 집에서 죽겠다고 버티시는 할머니. 집에 남아 있기를 고집하시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어머니와 3남매는 짐을 간단히 준비하여 출발하였다. 밖에는 동네 사람들이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야단법석이었다.
  
  서빙고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잠실로 건너갔다. 걸어서 말죽거리 과천으로 가는 길에는 등에 아기를 업고,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손에는 아이들을 꼭 잡고 피난 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지었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피난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는 누나의 손에 이끌려 무작정 따라만 가고 있었다. 과천 어디선가 노숙을 하게 되었다. 동생을 출산한 뒤로 계속 몸이 불편하여 젖이 안 나와 미음(밥물)으로 동생의 젖을 대신하시던 어머니는 배가 고파서 울어대는 아기를 향하여 어미를 잡아먹으려고 계속 울어댄다고 짜증을 내신다.
  어머니를 생각하여 누나는 어머니의 짐을 덜어서 나의 등에 짊어주었다. 중간중간 쉬어갔지만 어머니는 거동이 매우 불편하였고, 나는 나대로 작은 짐이지만 매우 무거웠다. 다리가 아파왔고 밤에는 불을 피워 돌멩이를 구워서 준 것을 몸의 배 부분에 대고 추위를 달래곤 하였다.
  
  밤낮을 걸어서 물어 물어 고생 끝에 경기도 화성군의 어느 먼 친척 집에 도착했다. 다리가 퉁퉁 부었고 허기와 피로에 지친 우리 가족은 집을 떠난 후 처음 친척 집에서 마련해준 음식으로 꿀맛 같은 저녁을 맛보았다. 허기진 배를 채운 우리는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여기에는 우리 가족보다 먼저 작은 집 식구가 일부 도착하여 있었다. 사촌 식구들과 비좁게 한 방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2, 3일을 지냈다. 이 집에는 매일 서울에서 피난오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나는 사촌형을 따라서 가까운 야산에 올라 땔나무를 하러 가는 기회가 있었다.
  
  서울이 어느 쪽인지 몰라 물어보니 가리키는 쪽은 검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물어보니 인민군한테 서울이 폭격을 당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개떡도 없어서 못 먹는 처지
  
  어머니는 다시 출발을 재촉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더 이상 이곳에 체류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생각을 알 수 없는 나는 더 쉬어가자고 울어대며 가기를 거부하였다.
  
  내 기억으로는 그때 처음 어머니한테 한 차례 매를 맞았다. 피난민들의 행렬을 따라 반월, 두구리(옛 이름)를 거쳐 남양만 바닷가 송산에 도착하였다.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길에는 우리와 같이 손, 등, 머리에 짐보따리를 든 피난민이 억수같이 많았다.
  주먹밥을 먹으며 울면서 따라가는 아이들, 마차 위에서 아기에게 젖을 주어가며 가는 사람, 길에 주저앉아 우는 어른들과 아기들, 형형각색의 풍경들 속에 끼인 우리 가족 또한 마찬가지였다. 징징 울면서 도착한 송산에서 어머니가 마련한 어느 짚더미 창고 같은 곳에서 본격적인 피난살이가 시작되었다. 매 끼니가 어려운 피난지에서 하루 두 번씩 쑥과 보리 싸래기로 만든 떡을 어머니는 나에게 주셨다.
  
  일명 개떡이란 것이었다. 매일 같은 떡만 주니 나는 울면서 써서 못 먹겠다고 거절하곤 하였다. 나중에는 쓴 개떡도 없어서 못 먹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아는 집을 찾아다니며 얻어온 시퍼런 보리를 비벼서 밥을 지어 주시곤 하였다. 이런 모진 피난살이 끝에 어머니는 완전히 거동을 못하시게 되었다.
  
  집에 누워만 계신 어머니는 하루하루 병세가 악화되어 갔다. 누님이 피난 생활을 꾸려가기 시작하였다. 보리 조금에 물을 많이 부어서 큰 대접에 한 그릇씩 만든 보리죽을 나에게 주었다.
  
  어느 때는 앞 바닷가에 나가 농바리라고 하는 게와 방게라는 게를 잡아다 먹기도 하였다. 하도 밥이 먹고픈 나는 동네 방앗간에 가서 기계 속에 끼어 있는 쌀 보리 등 한톨 한톨, 잡곡을 주워 모아 집으로 가지고 와서 누님께 한 주먹씩 드리곤 하였다. 어머니는 나를 대견하게 생각하시면서도 눈물만 흘리셨다. 아마도 거동 못하시는 자신을 원망하며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신 것 같다.
  
  어머니는 나에게 가까운 논밭을 가르쳐 주시며 가 보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밭에 나가보니 일하는 일꾼들이 둘러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구경만 하고 침을 흘리고 있는 내가 불쌍하게 보였던지 한 아주머니가 자기가 먹던 밥을 반 그릇 덜어서 나에게 주시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사망
  
  어머니들의 자식 생각은 모두 같다. 반 그릇의 보리밥은 꿀맛 같았다. 나는 가끔 이런 논밭을 찾아가서 밥을 얻어 먹으며 생활하였다. 이런 피난 생활이 계속되는 동안 어머니는 서울에 남아 있는 할머니와 아버지 걱정을 하시다 약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피난지에서 3남매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를 두고 떠나지 못해 눈을 감지 못하신 것 같다. 누님은 어머니의 눈을 손으로 쓸어내려드렸다.
  
  누님과 나는 통곡을 하고 울었다. 옆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모르는 동생은 젖을 달라고 가슴으로 기어가곤 하였다. 동네 어른들의 도움으로 이름 모를 공동 묘지에 어머니를 안장시켰다. 비석을 대신하여 큰 돌멩이를 하나 어머니의 묘 앞에 표시하고 나는 종종 혼자 성묘를 하곤 하였다.
  
  어느 날 이종사촌 누님께서 서빙고에 인민군이 쳐들어와 후퇴한 국군과 한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서빙고는 불바다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려 주었다. 또 인민군이 남하하기 위하여 한남동에 고무 다리를 설치하여 탱크가 건너오다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탱크가 강에 빠졌다는 소리도 들었다고 전하면서 우리 가족 소식을 들었냐고 물어보시는 것이었다.
  
  누님은 아버지와 할머니의 안부가 걱정된다며 기회를 보아서 죽어도 서울에서 죽겠다고 서울로 떠나기로 했다.
  
  떠나기 전 나는 인천이 보인다는 남양만 바닷가 산에 올라 인천 쪽을 바라보곤 하였다. 가끔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것이 보이기도 하였다. 국군이 서울을 다시 탈환하였다는 소식을 접한 우리는 가족 생사를 확인하기 위하여 송산을 출발 하였다. 한강 철교 앞 노량진에 사시는 고모댁을 찾아갔으나 인기척은 없고 인근 사람에게 물어보니 주인 아주머니는 폭격 파편에 맞아 돌아가셨고 남은 가족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할머니과 아버지가 집에 계실 것이라고 믿고 渡江(도강) 방법을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한강철교 입구는 미군과 국군이 통과하는 차량을 일일이 검문하고 있었다. 민간인은 전혀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동작동 앞 한강의 여울목이란 곳을 渡江하기로 하였다. 안내인의 말에 의하면 사람의 허리 정도 물 깊이에다 폭이 좁아 달이 없는 밤에 경비군인들 모르게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배가 와서 달이 없는 어느 날 渡江이 시작되었다.
  
  밤은 어두운데 물살이 빠르고 매우 깊어 보였다. 동생을 담요에 싸서 업은 누님, 나는 안내인의 등에 업히고, 사촌들은 각자 짐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건너가던 중 문제가 생겼다. 중간 지점에서 누님의 발바닥을 무엇이 무는 것 같은 아픔에 누님이 아프다고 큰 소리를 질러 渡江에 실패하고 되돌아섰다.
  
  담요 등 보따리는 강에 전부 떠내려가 버리고 발바닥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후일 점쟁이에게 물어보니 물 귀신이 될 것인데 어머니의 보호로 살아났다고 하였다 한다.
  우리는 다시 천호동과 광나루 근처로 옮겨 渡江 방법을 찾았다. 여기는 軍 트럭이 얼마의 수고비를 받고 渡江시켜 주는 길이 있었다.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하였다. 어린아이들이 있는 사람은 안된다는 것이다. 애기가 울면 검문소에서 발각이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였는지 소나무 땔감 속에 누워서 포장된 군용 트럭에 몸을 숨기고 무사히 검문소를 통과하여 왕십리 어느 곳에 하차하였다. 동생은 누님이 수건으로 입을 막고 계셨다.
  
  걸어서 일명 보테고개(지금의 장충단 국립극장 앞)을 넘어서 폐허가 된 서빙고 집에 도착하였다. 동네 방공호에서 몇 날을 보내고 폐허가 된 이집 저집 불탄 자리에서 양철통을 가져다 움막을 만들어 생활에 들어갔다. 돈도 없고 물건을 살 데도 없었다.
  
  아버지의 6·25
  
  다행히 군인 부대가 이태원과 서빙고 중간에 주둔하고 있어 돼지밥 같은 죽을 얻어다 먹었다. 이것이 후일 꿀꿀이 죽이란 것을 알았다.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지 아버지가 집에 찾아오셨다. 아버지 말씀이 이모댁은 폭격에 맞아서 식구가 전부 몰살하였고, 사촌 누님 바로 밑 여동생은 미인인데 폭격 전 인민군 장교한테 끌려갔다고 하셨다. 그분은 지금 현재도 생사를 모르고 있다. 아버지는 후퇴하는 국군 한 사람을 집 마루 밑에 숨겨주었다가 인민군이 집을 수색하여 감추어 준 것이 발각돼 모진 매를 맞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손가락 하나를 다치시고 치료를 할 수 없어 부러진 곳을 그냥 방치해둔 관계로 ㄱ자 모양으로 굳어져 있었다.
  
  다행히 군인은 아버지가 매 맞는 사이 아랫집으로 뛰어내려 도망치고 인민군이 뒤따라 쫓아가는 사이 할머니와 도망쳐 한강을 건너 말죽거리에 피신하여 계시다가 집이 궁금하여 찾아오신 것이다.
  
  아버지는 후일 그때 그 군인이 찾아와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은성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는 말을 전해듣고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했다는 자부심에 본인의 손가락 하나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어머니의 운명에 이어 인민군의 구타 등에 의한 후유증으로 아버지마저 3남매를 두고 세상을 떠나셨다. 후일 그 군인 아저씨는 우리가 고아가 된 것을 알고 여러모로 보살펴 주셨다. 이런 악몽 속에서 3남매는 각자의 길을 택해야만 했다. 노동 능력이 가능한 누님은 어느 공장의 침식 제공 공원으로, 동생은 다섯 살의 나이에 큰집에, 나는 작은집에 흩어져 성장하였다.
  
  뒤늦게 찾아간 어머니의 묘소는 온 기억을 더듬어도 지금까지 찾을 길이 없는데 왜 그날의 고통과 참상은 기억되고 있는지…. 어머니의 묘 자리는 왜 기억해 내지 못하는지…. 부모님의 명복을 빌면서 두 번 다시 북괴의 도발이 있다면 이북만리 타국에서 살고 있지만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날아가 이 한 몸 바칠 것을 약속한다.